89년5월 15일 월요일
어머니가 갑자기 배가아파서 병원에 아버지와 가는 바람에 나는 병원에 못가고 약이 2일이나 못 먹 게
될 것 같아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선생님 이러해서 병원에 갈수 없으니 간호원에게 약을 같다 줄 수 업 느냐고
선생님은 오라 동생이나 이웃과도 오라 하여 다 나 는 혼자 한번도 간적이 없으니 왕진 요
드릴 태니 오라하여 편지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간호원도 선생님도 모른다한다 그러면 어디로 갔어요. 그냥 버렸어요? 아니다, 정말미안 하다 그 박스를
동생 주는 바람에 걸로 간 것 같다. 하면서 정말 미안 하여 머리가 더 빠진 것 같이 걱정이다 하면서
미안해 하셨다 나는 정말 서 섭 하 다. 찾아 볼 수없느냐고 하면서 못 마 땅 하게 말을 하니 찾아보겠다. 하드니
5월 16일
아버님이 병원에서 일 찍 오셔서 병원에 갓 드니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다. 이날부터 일주일 약을 주게다 .하 나
약이적어 간호원이 18일 날 가 다 주었다 이날 난 화분도 가 다 주면서 스승에 날 이아니 엇나 너무 고마워서
만원 짜리난이다 고맙다고 성의를 보아서 잘 길러야 한다고 고마워하며 비쌀 텐데 하였다
5월20일 토요일
오늘도 아버지는 너무 숨이 차고소변이 불편해 하셔서 병원에 물어 보기로 하고 전화를 너어 물어보니
편지 잘 보았다고 선생님이 나에게 위로의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육체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예수님의 짧은 생애에 살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인 간 들에게 하신말씀이
무엇이냐 모르니까 조롱하며 비웃는다고 하며 그들을 위해기도 해주어라 좋은 동생을 두어 얼마나
행복 한가 사랑하는 부모형제 교우들 그런 정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 겐 나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못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만은 가 술집에 다니는 아가씨가 좋아요 다만 키가 작고 불편할 뿐이지
무슨 상관이냐 덕 순씨는 자기학대를 만이 하는 것 같다고· 왜 혼자 못 다니는 가시집 을 안가서
아가씨지만 나이가 40이 다된 사람이 하여 다 장애자 올림픽 때 아래하체가 업는 사람을 보았느냐 그
사람도 못 하 는 것이 업고 주어진 생을 열심히 산다고 하며 목이 부러져 평생을 사는 이의 책을 보 앗 나 하나
사주지 하면서 여러 가지로 전화로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셨다 그러나 자기 가족 관계는 말씀 하지 안 으 셔 다
이제는 1주일 에 한번 병원 가는 것이 15일부터 2주가 지나고 22일 날 가면서 아가씨 약을 같다줘서 고맙다
하고 아이스크림을7개나 사다 주었다.
나는 서 경옥 전도사에게도 편지를 쓰고 있다. 5월도 보름이 지나가고 중순 이 닥아 오네요 쓰다가 쉬다가
써두고도 보내지 못해서 17일 날 보내었다. 왜 이렇게 편지 소식이 없을까 행여 받아 보지 못해나
기다리니 27일 저녁 전화가 왔다 몸은 어떠냐며 의사 선생 기다 리 지 말라고 걱정하였다. 바빠서 편지
못했노라고 나는 또 편지를 써야겠다, 내가 편지라도 쓸 수 있는 보낼 곳이 있다는 것이 정말 희망이다
5월 25일 목요일
그날이 생각난다. 아버님 병원에 가시는 날이다. 나는 공연 희 님 도 보 고 뽕도 딴다드니 선생님도 한번보고
바지 수선도 하고구두도 고치고 약도사고 따라 간다 하여 다.
오전11시 되어 나섰다 구름이 잔득 끼여 비가 올 것 만 같다 나서니까 벌서 가랑비가 내렸다 구포 가서
구두를 고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어떡하나 하면서 소나기를 맞고 성전에 들려
기도하고바지는 수선 집 에 마 겨 다. 비를 맞으며 또 약국에 갔다 나의약소화제 삐 콤 마이리드 등
세 가지 14000원에 사고 아버님은 어머니주사약을 삼 만 원 짜리를 사서 옷을 다 버려 병원에는 못
가겠다 하시면서 집으로 왔다. 옷이다 젖어 벗어 말 여다 공연히 나 때문에 아버님 이 비를 맛 고
미안 하 여다. 아버님은 나를 다리고 다니는 것이 창피하실지 몰라 나는 기분이 좋다 오 토
바이 타고 밖아 구경을 하니 언제까지 나를 대리 고 다니실 기력이 있을지 걱정이다 다들 고통
슬어 워 하시니까!
1989년 5월 27일 토요일
저녁 9시 30분 논 픽선 드라마 한 자 루 의 촛불 이라는 연속극을 보았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는
순간부터 한없이 눈물이 솥 아 저 내렸다.
고통과 절망 그 처절한 절망 과 고통을 뼈 져 리 고 쓰라린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말로
표현 하여 알 수 있을까! 정말 그 19세의 불구가 되어 처음부터 보지 안 아서 어떻게 된지는 잘 모르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와 놀러가서 다친 것 같았다. 드라마의주인공 김 옥진양은 8년 동안 안지도 못하고
누워서 살았다. 한 다 사지가 마비가 되어서 글도 쓰지 못하고 입으로 연필을 물고 쓰다가 자꾸만 애를 쓰니까
손으로 편지는 쓸 수 있었다. 한 다 라디오에 절망을 딛고 에 편지도 보내고 글을 써 모은 것을 책으로
시집도 출판 하기도 하여 다 그러던 어느 날 시와 편지를 보고 사회단체에서 김 옥진 양을 8년 만에 고처 줄
사람이 와서 재활 의학과에서 치료하여서 이제는 휠 체에 앉아서 집에 돌아왔다 그 아이의 고통이
그 마음이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 정말 눈물이 한없이 흘러서 눈이 퉁퉁 부었다 이뿐 옷
입은 소녀를 보니 나도 치마가 입고 싶다.
다정한 연인을 보니 나도 결혼하고 싶다. 예쁜 아기를 보니 나도 아기를 낳고 싶다.
남들처럼 뛰어 다니고 싶다고 하여 다, 산골소녀 김 옥진 양 지금은29세라고 한 다 나도 시를 쓰고 싶다 그 소녀는
세상에 낳던 보람이 있건만 나는 무슨 존재일까 나는 그 아이 김 양보다 나은 것일까? 다망가진 육체로도 가정에
봉사 할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다 정신과 생각은 말짱하나 몸이 말을 듯 지 안으니 무슨 소용 이
이게는 가. 배우지 못한 무식쟁이니김양에게편지라도해보고싶다서로에처지를 얘기해보고 서신 열락이 하고
싶어진다. 의지하고 위로 할 곳 업는 나의몰골 오직 주 하나님께 호소하고 하소연 할뿐 나의 주어진 운명
어찌하랴 아무도 대신 살아 줄 수업 는 단 한번밖에 초대 받지 못한 인생 이라한다 열심히 살아야한다.
환자들의 촛불 이 되어야한다. 나보다 더 불우한처지에이웃을생각하고도와주어야한다 나는 항상 남에게
도움만 받았지 남을 도와준 적이 업는 것 같다.
5월28일일요일
오늘은 주일날 정말날씨도화창하다. 아 달리아 장 노님이 오셔서 같이 가자고한다.
몇 년 만에 오셨다. 연세는83세라고 한 다 그래도 아 푼 곳 없이 건강하시다 주위에 다 보면 건강 한데
우리는 왜 이래 나를 비롯해서 양친부모님 모두 병마의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지 남들 보다 별나게
살아서 일까 정말 너무 속상 한다 아버님의병은 의약으로 곤칠 수 없는 것일까? 정말 안타까운
마음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본인은 오죽 답답하랴 오늘은 종환이가 왕복자가용으로 태워다 주셔서
편안하게 왔다. 마침장날이라 어찌 할고 하여는데 다행이다. 진리는 정말 겁이 나고 떨리지만
실행실천이 안되니 어찌하랴 천국열쇠 거역하는 죄가 크다한다. 신앙생활 열심히하라한다
5월 29일월요일
오늘도 병원에 가는 날이다 허씨 아주머니와 자전거방 정희가 왔다 보험 하라고 이야기 하 다 가
놀라고 하고 병원에 가 다. 한주일 만에 선생을 만나니 반가웠다 간호원은 조금 더 친절히 이야기도
하면 조흘 여만 문는 말만 대답인사뿐이다. 정말 아쉽다 만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84년 6월 12일 백병원에서 처음 진단받은 것을 갔다 보이니 그 역시 결핵이란 진단이 난 것이다
우리식구 나만 몰랐으니 5년이란 세월을 허송세월 한 것이 정말 안타깝다 지나간 세월 도리 킬 수 없는
것 후회 한들 무슨 소용이랴. 오늘 선생님이 나보고 살 젓다 부은 것이면 허공사이다 몸무게가 늘
엇 을 것이다 하셔 다 나는 달아 보아야 안다 하여 다 달아보니 똑같다 하니 기계가 고장인가 하셨다 29키로
첫댓글 천사님의 글이 가슴을 찡하게 하나요.결핵진단이 5년이나 지난후에야 발견이 되었군요. 29KG 이면 너무나 약하시군요 그래도 힘차게 살아가시는 것이마음에듭니다.옛글을 옮겨 적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연약한 몸으로 이못난 남편을 만나 너무고생만하다가 저세상으로 갔으므로 이렇게라도 그사람이 적어놓고간 일기글을 적으면서 다시한번 추억해보고싶었습니다
참새가 작아도 알을 부화하듯이 어린아이만한 체구를 가지고도 자기몫은 다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