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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有情
바둑을 처음 배우다
나는 바둑을 좋아 한다. 그래서 (지금은 한참 옛날이야기 이지만) 입학원서나 입사원서의 「취미」란에 으레 바둑이라고 적었었다. 사실 국민(초등)학교 때는 꼰지리, 중학교 때는 장기는 집 동네에서 두어 봤다. 그런데 바둑을 처음 배운 것은 아마 고1 아니면 고2 때 학교 에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에는 오목부터 시작하였고 이어서 바둑으로 승격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쉬는 시간에 막간을 이용하여 두던 것이 점차 발전(?)하여 나중에는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몰래 짝하고 두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등학교 때 내 짝했던 것은 김기석, 한홍섭, 그리고 돌아간 정태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사실 내가 바둑을 본격 배운 것은 대학 들어가서 (그러니까 그게 벌써 50년이 넘는군)였다. 그때 우리 집은 만리동 이었고 충정로에 살던 김광배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바둑판이 있는 것을 보고 바둑을 두잔다. 둔 결과는 여지없는 나의 참패! 결국 아홉 점을 놓고도 안 되는 바둑을 두고 또 두고 했다. 그 후로도 기회만 있으면 바둑을 두었다. 그때 주로 다니던 기원은 태릉 서울공대 정문 앞에 있던 기원과 명동에 있던 송원기원(조남철 9단이 운영하던), 그리고 만리동 고개 입구 파출소 근처에 있던 기원 이었다. 그때까지도 바둑에 관한한 나의 멘토는 광배였고 처음 아홉 점으로 시작한 바둑은 점점 차이를 좁혀 마침내는 내가 선으로 두는 것 까지 진보하였다.
요 지음에는 바둑책도 여러 가지 좋은 것이 많이 나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초보자가 볼만한 것은 위기개론 정도였고 급수가 조금 오른 후부터는 중국고전 사활문제집 현현기경, 그리고는 일본 바둑 잡지 등을 닥치는 대로 구해보곤 하였었다. 송원기원에는 미국 간 장충국과 고인이 된 이희균 등이 자주 나왔고 나보다는 급수가 한창 높아서 몇 점씩 붙이고 두었었다. 바둑이 한 4급 정도 되니까 내가 두었던 것을 거의 다 복기할 수 있게 되었고 집에 와서도 바둑판을 펼쳐 놓고 곰곰 이수 저수를 생각해 보곤 할 수 있었다.
대학가서 본격 두기 시작한 바둑은 군대에서도 이어졌다. 나는 공대 2학년을 마치고 공군에 자원입대하였다.(공군 일반병 103기) 광배는 나보다 두 달 늦게 105기로 입대 하였고 대전 기교단 시절부터 평택 레이다 사이트에서 까지 장장 3년 가까이를 같은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였다. 대전 통신학교에서 훈련병 시절에는 마침 윤기현 9단(당시에는 3단정도)도 광배와 같은 105기로 입대하여 주말 외출 시 대전역 앞에 있는 김명환 4단(김재구 7단의 부친)이 운영하던 기원에서 한 수 지도 받았던 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슈퍼컴과 바둑
사실 바둑의 역사는 길어서 3000년이 넘으며 처음 인도에서 만들어져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넘어 넘어왔고 이게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이다. 삼국시대에 이미 왕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널리 두어졌었던 것은 기록이나 설화로도 잘 알 수 있다.
바둑같이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도 많지 않다. 전후좌우 19로 모두 361개의 점을 갖는 바둑판 하나와 흑과 백. 두 가지 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게임 규칙도 간단해서 흑과 백이 한번 씩 번갈아 두고 두 집이 나야 살고 집이 많은 사람이 이기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또한 잘 두고 못 두고 상관없이 모두 게임에 참여할 수 있고 실력 차이는 단지 칫수 몇 개 놓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바둑만큼 공명정대한 게임도 없다. 다른 게임이나 스포츠에는 속임수나 불공정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요지음 문제가 되는 프로 축구나 온라인 게임등과 같이) 바둑에는 없다. 바둑 한판의 모든 과정이 정확히 재현될 수 있고 여기에는 어떤 불공정이나 속임수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둑이 진짜 재미있는 것은 바둑의 수가 무궁무진하고 변화무쌍해서 나의 바둑경력 50년은 물론, 수많은 바둑 역사상 단언컨대 똑 같은 바둑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바둑이 인간이 개발한 최고도의 논리적 게임이라면 인간이 개발한 또 다른 최고도의 논리 기계인 슈퍼컴과의 대결은 어찌 될까?
1997년 5월 7일 미국 뉴욕에서 역사적인 대결이 벌어졌다. 34세의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토프와 미국 IBM의 슈퍼컴 딥블루의 체스 대결이 그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카스토프의 결정적 실수를 간파한 딥블루의 공격으로 카스토프는 마침내 기계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면 슈퍼컴은 과연 바둑의 세계 참피온인 이창호나 이세돌을 이길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나의 답은 No! 이다. 먼 미래에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금세기말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죽고 없어질 때 까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것을 엄밀히 증명할 수는 없지만 대략 계산해보면 다음과 같다.
바둑판위의 가능한 착점 수는 모두 19X19 즉 361 개다. 맨 처음 수는 361개의 선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하여 다음 수는 이 보다 하나 적은 360개의 착점이 가능하고 또 그 다음은 359개, 다음은 358, 다음은 357,....이렇게 하여 모든 가능한 착점이 계속될 때까지,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대 착점의 경우의 수는 361!(factorial)이다. 이 값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나도 모른다. 나 나름대로의 엉터리 계산을 다음과 같이 해본다. 즉 361!을 둘로 나누어 100! 과 101부터 361 까지의 자연수의 곱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관계가 성립한다. 100!≥10의 90승, 그리고 두 번째 계산값은 100의 260승 보다 크다. 따라서 361!≥10의 90승 곱하기 100의 260승, 이는 즉 10의610승, 이것이 얼마나 큰 수인지 나는 가늠할 수가 없다.
다음, 세계 슈퍼컴 중 아직까지 알려진 가장 빠른 것은 일본에서 개발한 K 슈퍼컴인데 계산 속도는 물경 8.2 petaflops/s 즉 초당 8.2X10의 15승 (약 1京)회. 그러면 다음 슈퍼컴 K로 계산하여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전부 대입해보고 최적(그러니까 이기는) 해를 구하려면 10의 594승 초, 햇수로는 10의 586승 년이 필요하다. 설사 이보다 엄청나게 빠른 (예로 10의 16승의 10의 16승 flops/s 즉 10의 256승 flops/s) 의 슈퍼컴이 개발된다 하여도 이것은 햇수로는 10의570승 년이 된다.
빅뱅 이후 우주의 역사가 약 250억년이라고 하는데 이 계산을 끝내려면 우주가 수없이 다시 만들어 진다 해도 끝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나의 지극히 단순한 계산에 의한 것이고 실제 바둑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거나 불합리한 착점은 다 배제하고 최적이 아니더라도 준 최적의 해(quasi-optimum solution)를 구하는 알고리즘이 개발되어 이를 적용한다고 하면 계산 시간은 많이 단축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슈퍼컴이 체스와 달리 바둑에서 아직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고 본다.
바둑의 묘미
우리나라의 바둑 인구는 약 1000만명으로 여러 개의 케이블 채널 중 흑자를 올리는 것은 바둑채널밖에 없다고 한다. 옛날에는 어느 동네에나 다 기원이 두세 개 씩 있었는데 요 지음은 많이 없어졌고 젊은이들은 컴퓨터게임이나 인터넷바둑으로 돌고 기원에는 주로 우리 또래들이 많이 모인다.
그런데 50년이나 두어도 결코 싫증나지 않는 바둑의 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이걸 한마디로 답하기는 어렵다. 우선 하나는 바둑이 고도의 논리적,지적인 게임이면서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인간적인 면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상대에 따라 그리고 판세에 따라 마음이 동요하고 때론 괜히 흥분하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다 이긴 바둑을 지고만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때론 불리한 판세에서 과감한 승부수를 던져 역경을 헤치고 형세를 역전시켰던 경우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때론 유리한 형세에서 이를 지킨다고 안전제일주의로 나가다가 상대가 야금야금 밀고 들어오고 이를 계속 양보하다가 마침내는 지고 만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또 하나, 흔히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처음 포석에서 시작하여 중반전을 거쳐 마무리 끝내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마다 고비가 있다. 때론 유리하고 때론 불리하고 아니면 적의 책략에 걸려 고전을 하다가도 기사회생의 묘수 하나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고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도 슬적 평화공존으로 타협하기도 하는 등 우리 인생살이의 애환이 다 깃들어 있다.
바둑有情
나는 하루 일과를 우리 집 뒷산 樂山亭 있는데 올라가 맨손체조 한번하고 내려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아침 신문을 대충 훑어보고 아침밥 먹고 화장실에 간다. 이때 신문의 바둑란이 있는 면을 챙겨 갖고 들어간다. 전날에 이어 반면 위의 변화를 음미하면서 배변하는 樂이란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사실 요 지음 내 바둑 공부는 이게 전부다. 전에는 포석, 중반전, 끝내기, 사활문제집 등 이론서 그리고 또 기보집도 많이 보았고 한때는 바둑TV도 많이 봤었는데 말이다.
포석문제에서는 대세 점 찾기, 사활이나 중반전에서는 급소 찾기가 재미있다. 건너붙임의 묘수, 배붙임의 묘수, 코붙임의 묘수, 끼우기의 묘수, 들여 놓기의 묘수. 후절수의 묘수, 등등 그리고 축머리 보기, 패가 났을 때 과연 팻감이 되는지 여부, 바꿔치기 할 때 어느 것이 더 큰지 대소를 판단하는 것 등은 아직도 어렵다. 세력과 실리의 균형잡기, 때론 세력작전에서 실리작전으로 , 또는 반대로 실리에서 세력으로 能柔能强 ,자유자재로 변신 하는 게 필요한데 이게 정말 어렵다. 위기십결은 기본이고 육도삼략, 손오병법, Operations Research,. Game Theory에 이르기 까지 모든 책략과 술수가 다 동원된다. 그런데 이건 말 뿐이고 실제로 둘 때에는 거의 감각과 직관에 의지한다. 특히나 상대가 속기파인 경우에는 덩달아 빨리 두게 되고 그 때는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바둑 이야기에 우리 56회 기우회 이야기를 빼 놓을 수 는 없겠다. 56회 기우회 모임은 처음 박정열 회장이 모임을 주선한 이래 지금까지 어언 20여년 가까이 지속되어 왔다. 그 후로 김광배, 이규영, 김호기, 이문형에 이어 주우일 현 회장에 이르기 까지 여러 대를 거쳤고 차기 회장으로는 김영호 동문이 내정되어 있다. 사실 회장이란 감투가 순전히 봉사하는 자리인 만큼 다들 선듯 맡으려 하지 않는데 주회장은 3년째 장기집권(?)하고 있으니 그 봉사정신은 우리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하겠다. 모임 장소도 여러 번 바뀌었는데 지금은 교대역 5번 출구 우석기원에서 매달 1토, 3토에 만난다. 그런데 사실 난 집에서 막걸리장사를 하고 있고 주로 주말이 대목(?)이라 매번 참석하는 게 어렵다. 그래도 마음만은 늘 콩밭에 가있다. 바둑도 좋고 친구도 좋고, 게다가 친구들과 같이 하는 막걸리 한잔의 맛이란! 이번 토요일에는 김영호 차기회장 아들 결혼식도 있고 또 비도 온다고 하니 가게는 제쳐 놓고 기우회에 나가야겠다. 이게 바로 바둑有情 아니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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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둑 한판을 두면서 인생살이의 축소판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바둑 께임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 60 동문들이 모여 바둑을 두며 지난인생을 한판의 바둑에 투영해 봄도 재미 있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