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가장자리를 소개합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달그림자
가장자리의 편지 1
다시,
삶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서로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는 행복도 모르는, 고향도 잃은, 감사할 아무런 것도 갖고 있지 않은 세대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만나, 서로 함께 지낸다. 그리고 난 다음 각자 몸을 감춘다. 우리는 오래 머물지도 않고, 진정한 이별도 모르고, 제 가슴에서 나는 소리를 두려워하며, 도둑처럼 그 자리에서 몸을 숨기는 세대다. …… 그러나 우리는 모든 미래가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벗에게.
역사의 잔인한 반복을 본 탓일까요? 겨울의 긴 터널을 지나 봄으로 접어들었음에도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 또한 이 시대의 우울에서 비켜설 수 없어, 벗을 찾는 새봄의 첫 편지를 화사한 인사로 시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먼저 이해를 구하려 합니다.
벗.
누구나 자신을 추스르는 저마다의 방도가 있겠지만, 제게도 마음이 이처럼 힘든 때면 찾는 오랜 치유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저보다 앞선 시대에, 저보다 훨씬 불행했지만, 그럼에도 존재가 간직한 진실 하나로 강요된 불행에 맞서려 했던 사람들이 남긴 글을 찾아 읽는 것입니다. 편지 앞에 인용한 볼프강 베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라는 글에 나오는 몇 개의 구절도 최근 읽고 메모해 둔 것입니다.
1921년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제가 태어난 해인 1947년에 죽었으니, 보르헤르트는 무척 짧은 생을 산 사람입니다. 슬픈 역사는 슬픈 인간을 만드는 법. 알다시피 그 시대 독일은 파시즘 체제로 전쟁으로 치달았으니 역사는 열다섯에 시를 쓰기 시작하던 감성이 예민한 소년의 삶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겠지요.
상처 입은 삶이 남긴 글을 읽어 내려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놀라운 것은 모두 합하여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이 안 되는 그가 남긴 글들이 소름이 끼칠 만큼 제게는 ‘동시대적’으로 읽힌다는 것이었습니다.
롤랑 바르트가 그랬던가요. “동시대인이란 반시대적인 자이다”라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파멸로 몰고 간 전쟁의 허위를 고발한 편지글이 발각되어 잡혀가 사형 구형을 받기도 했던 보르헤르트는, 비유하자면 그는 시대의 거친 물살을 살갗이 찢기며 거슬러 오르는 은빛 연어였지요. 기슭에 이르러 상처투성이 주검이 되고 말지만.
진실이란 도시의 창녀와 같다고, 그녀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대낮에 길에서 만나면 질색하는. 어떠한 긍지도 없이 전쟁의 폭력에 동원될 뿐인, ‘1킬로미터마다 기다리고 있는 이별을 체험할 힘’조차 없는, ‘제 가슴에서 나는 소리’ 즉 진실이 두려워 자신의 몸속으로 숨어버리는 자기 시대(세대)를 그는 깊은 자조로(그러나 슬프도록 아름다운 언어로) 드러내 보여주었지요.
파시즘이 파멸의 체제였다면, 전후 독일은 ‘무책임의 체제’였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전장에 내몰렸다가 돌아온 자들에게 ‘닫힌 문’이었습니다. 러시아 동부전선에서 돌아온 보르헤르트가 숨을 거두기 몇 달 전, 꺼져가는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짜내듯 단 며칠 동안에 써내려간 희곡 『문 밖에서』는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통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했던 자들에게 세계는 낯설고 생에 다시 이르는 문은 죄다 닫혀 있지요. 엘베 강에 몸을 던지지만 죽을 수조차 없었던 주인공에게 ‘타인’이란 이름을 지닌 사람이 권합니다. 당신의 염세적인 생각의 원인이 ‘책임감’ 때문으로 보이니, 그것을 돌려주라고. 그래서 옛 상관을 찾아가지요. 내 부하들을 ‘책임’지고 이끌라 했던 명령, 그 ‘책임’을 돌려주려 왔노라고.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벗.
우리는 누구와, 무엇과 동시대인인가요. 말하자면, 어떤 깨달음이나 의지 속에서 우리는 동시대인으로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여전히 우리는 역사와 인간이 맺는 관계에 대해 물으면 모든 운명은 각자의 몫이고 책임일 뿐이라고 대답하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들릴지 몰라도, 요즘 저는 ‘박대통령’이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40년 전의 시간으로 순간 이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벗이여, 비록 명령과 동원이 과잉되었던 암울한 독재체제 아래서도 소실되지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함께 살고 있다는, ‘공동성’에 대한 감각 혹은 자각 같은 것이 공기 속에 흐르고 있었다고 감히 기억합니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고향이 되는, 존재가 존재에 이르는 길이 보였던 그런 시대였다고. 그래서 전태일은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 테지요. ‘모든 향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향수’라는 말처럼, 이 또한 저의 허망한 회고에 불과한 것일까요.
긴 겨울을 지나오면서, 저는 또 한 편의 슬픈 언어와 만나고 그것을 상처로 가슴에 새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평생 엄마를 찾아 헤맸나 봅니다.” 지난 1월 28일 스스로 목숨을 버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 윤주형의 짧은 유서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겨우내 저는 이 한마디 말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는 이 지상에서 고향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일 겁니다.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져줄 만한 사람이 우리에게는 없다”고 보르헤르트가 자기 시대를 한탄했듯이, 그는 서로가 서로에게 닫힌 문이 되어버린 차가운 세계의 문 밖에서 더 이상 서성대기를 멈춘 것이지요. 그리고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기를, 조용히 사라져 잊히기를, 남은 우리에게 당부하면서.
금속노조 기아자동자지부 사내하청분회 조합원. 이것이 윤주형이 지상에서 그가 걸치고 있던 신분이며, 그가 놓여 있던 ‘몸 자리’입니다. 참 길고도 복잡한 이름이지요. 노동자라는 존재의 기본권을 지탱해주는 노동조합이 언제부터 이렇게 긴 이름으로 계층화되어 있었던 것일까요.
그래도 1차 하청노동자로서 ‘조합원’이 될 수 있었던 그의 눈이 이 위계의 사다리의 맨 밑에서 높은 곳이 아니라 조합에 가입조차 할 수 없는, 사다리에 발을 올려놓지도 못하는 2차, 3차 노동자에게로 향해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는 하청노동자와 계약직 노동자의 노조가입은 구걸이 아닌 평등 전제이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철학이라고, 그래서 삶의 마지막 시간 속에서 그는 노조원이 아닌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이동우는 우리의 동지, 기아차지부 조합원이다”라고 외쳤고요. 조직노동 안의 ‘대공장 권력’이 이 시대의 전태일의 죽음 앞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여기서 생략하지요.
벗.
우리는 분명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모두가 자신이 맞고 있는 시간을 동일하게 경험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역사는 늘 그랬지요. 어떤 이들에게는 주어진 행복조차 무료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안과 번민으로 온몸의 신경줄기가 마르는 시간이라는 이 비대칭성을 시대의 모순이라 일컫기도 하고요. 하지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격을 몰수당한 가장자리의 존재들이 시대적 모순 앞에 이토록 무기력하고 서로를 이어주는 공동의 끈을 놓쳐버린 때는 일찍이 없었다 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시대를 걷고 있다는 공동의 시간 감각은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기는 한 걸까요. 우리에게는 자신의 삶과 다른 이의 삶을 잇는 공동의 끈을 되찾으려는 의지가 이미 소진되어버린 건 아닐까요.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볼 정신적 능력을 영영 잃어버린 건 아닌지.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할 아무런 것도 갖고 있지 않은, 기계의 부속품과 같은 존재들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요. 쉽게 버려지고 또 쉽게 교체되는.
파시즘의 참화가 끝난 후,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쓰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이 제기되었었지요. 조직도, 노조도, 친구도, 동지도 차갑더라는 윤주형의 절망 앞에서 그래도 다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우정의 가능성을 묻는 것은 가능할까요. “인간에게 있어서 함께 산다는 것은 가축의 경우처럼 목초지를 함께 나눈다는 뜻이 아니라, 함께 살며 서로 행동과 생각을 나누는 일을 통해 성립된다.” 이는 우정을 제1철학으로 정립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지요.
친구(동무)는 뜯어먹을 목초-이해를 함께 나누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각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존재, 모든 다른 함께-나눔에 앞서는 함께-나눔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근원적인 함께-지각함이 ‘정치’를 구성하는 것이라 했고요.
벗.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놓이는 몸 자리가 있습니다. 이 몸 자리의 궤적이 그 사람의 삶이라 말할 수도 있겠고요. 그런데 이 몸 자리는 예기치 않게 닥친 운명의 힘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곳에 놓이게도 되고, 무엇보다 통치-지배하는 권력에 의해 누군가는 어김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지척인 가장자리로 밀려나야 하지요. 한때 제가 먼 곳으로부터 돌아올 수 없었던 자였음을 벗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시 귀향길에 오르면서 제가 다짐한 것은 하나였습니다. 추방된 자들, 가장자리로 쫓겨난 자들, 마침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지워진 자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지난 1년 진보정당의 대표가 되기도 했으니 정말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런데 벗이여, 거기서 저는 인간과 세계의 모순된 현실을 변화시키는 정치가 아니라 통치하는 권력에 다가서지 못해 조바심이 나고 마침내 경영과 행정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남아있지 않은 정치를 보았습니다. 동시대의 비참함과 절망으로부터 멀리 도망친.
벗.
저는 다시 삶의 가장자리를 찾고 그곳으로 되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서 벗과 함께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찾고 우리를 함께 살아가게 할 공동의 가치와 그것이 실현될 미래를 같이 꿈꾸고 나아가 그러한 미래를 미리 살아보는 기쁨을 벗과 함께 느껴보고 싶습니다.
‘사유하는 인간’이 멸종되어가는 희귀종이 되었다는 오늘에도, 사회경제적 처지에 의해 자신이 ‘놓이는’ 자리와 자신의 의지로 ‘놓는’ 자리를 일치시키려는 ‘소박한 자유인’이 우리들 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웃과 그렇게 만나고, 나아가 자연과도 그렇게 만나려는 희망을 아직 포기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생존법이 금기라고 가르치는 것이 ‘생각’과 ‘우정’이라면, 우리는 이것을 무기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함께 모여 생각하고 함께 행동하는 법을 배우는 ‘사유-실천’의 거처, 이미 존재하는 과거의 텍스트들을 함께 읽고 그 속에 흐르는 시대의 모순과 맞서는 정신을 배우고 그 정신과 동시대인이 되는 능력을 기르는 것과 동시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텍스트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말(언어)의 진지를 만드는 일, 이제 이 일을 시작하자고 저는 벗을 부릅니다. 더 늦추지 말자고. ‘지금’이 아니면,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홍세화
첫댓글 좋은 글 있어 소개합니다.
홍세화님이 가장자리라는 카페를 만드셨네요. 그 분이 카페에 올린 편지입니다.
홍세화 샘의 칼럼을 읽으면 항상 부끄러움이 밀려오곤 했었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