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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천기누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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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누설]
박제천 시집 / 문학아카데미시선 279 / 문학아카데미(2016.06.01)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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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향초茶半香初
박제천
내 마음문을 지키는 금강야차들
아, 하고 소리를 지르다
훔, 하고 입을 앙다물어요
아직도
그날 이후 내게 남은
햇빛 속 내 마음 떨리는 눈빛의 문신
어둠 속 내 몸 달뜨는 숨결의 문신
참으로 묘하지요 사람은 사라져도
처음의 그 얼굴 그 눈길 그 숨소리 바늘땀이 되어
꿈이자 환상이자 물거품이자 그림자여도
이슬인듯 번개인듯 새겨진 금강 문신
아직도
잔을 기울이면 처음처럼 그윽한 향내 속
물은 흐르고 꽃은 피어요.
불이선란不二禪蘭
박제천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를 본다
늙은이가 20년만에 신이 들려 우연히 그렸다는
난초그림,
옳커니, 하늘의 본성이 원래 저런 것이니,
문 닫아 걸고, 혼자서 깊이 깊이 찾아들어가는
마음의 경지.
선객노인이 구름처럼 함께 흘러가니,
만향노인도 길마다 향을 피우고,
구경노인도 길동무하느니,
늙은이 넷이 주고받는 소리가 자장가 같아,
잠들다 깨어나 보니, 유마네 동산일세
난초그림이 주인인지 구경하는 사람들이 문자인지
알 바 없으나
곳곳마다 난초줄기가 마음에 새긴 이름인양
흐드러지게 어울리고,
사이사이 붉은 낙관과 유인遊印을 꽃처럼 활짝 피운
한세상의 경지,
나 역시 내 안의 늙은 동무들 다 불러모아
그림 구경하며 한세상 이름을 다 잊어버리네.
*선객, 만향, 구경: 추사 김정희의 호.
노자 제73장 평창評唱
박제천
나이 드니 좋은 게 많구나, 우선 시력이 좋아졌어
이제도록 안보이던 꿈 속 친구들,
내 곁에서 나를 돌보던 친구들이 보였어
도교의 800신, 힌두교의 36,000 신, 불교의 항하사,
모두들 함께 사는 온갖 귀신들의 본래 면목이 보였어
천자문을 읽으면, 우주 홍황 속
1천억개의 은하, 1천억개의 별, 1천억개의 행성이 보였어
한 세상의 여러 세상을 동시에 살며,
귀신들을 따라다니며, 사람들에게 쫒겨다니는
한 살이마다 극락이자 지옥이었어.
꿈 속에서 딴 꿈을 꾸는 한세상,
성기되 빠져나가지 못하는 천망 회회天網恢恢
하늘그물이었어.
다반향초茶半香初
박제천
물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들여다보니 먹장삼의 스님 한분
물에서 나와 물을 터니 관음보살,
물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이번엔 누구신가 항아리 한분
물에서 나와 물을 마시니 백두산 천지
물은 언제나 나를 매혹시킨다
물이 써나가는 물의 자서전,
수석水石들이 보여주는 모음과 자음
물 속에 사는 여자들을 들여다본다
저 여자는, 한손에 딱 쥐어지는 A컵 젖가슴
저 여자는, 차돌처럼 매끄러운 젖가슴
자유자재, 보여주는 변신술
물결과 물결 사이,
그 사이, 물 속의 또다른 별들 사이,
그 사이, 낯선 별들과 낯선 은하계,
낯선 블랙홀이 보여주는 별들의 자서전,
화선지 한 장에 펼쳐진 이 밤의 은하
물방울 하나 되어, 첨벙 뛰어든다.
부유천하
박제천
요즘, 뱀파이어, 늑대인간, 워킹 데드를 연구중,
그 중에서도 뱀파이어는 변신의 귀재다
한밤중에 달을 보노라면 어느새 두꺼비 되어
호시탐탐 내 일거일동을 지켜본다
와인을 마실 적에는 초파리가 되어
피처럼 붉은 술에 적셔진 내 입술을 노린다
잠이 들면, 내 몸은 뱀파이어 차지다
기분좋은 날은 손잡고 은하계를 산책하지만
대개는 모기처럼
물고 빨고, 나 잡아 봐라, 숨바꼭질을 즐긴다
늙은 홀아비냄새가 역겨워
전설 속 미인들조차
이름만 불러도 줄행랑을 치는 요즘,
차라리 뱀파이어나 될까. 늑대인간이 될까
꿈 속 애인의 목덜미를 탐하거나,
마음껏 저 자연을 달려볼까 그도 싫증나면
워킹 데드가 되어 천하나 주유해야겠다.
무위자연無爲自然
박제천
아직 멀었는데
단풍이 피듯
아직 멀었는데
눈이 내리듯
아직 멀었는데
눈이 트고
개나리 진달래 피듯
내 사랑은 처음부터 물이었어라
타오르는 불꽃 심지를 물속에 박아넣고
물과 불이 하나되어 피어 올리는
만길 바다속 불타는 물이 피어 올리는 저 물꽃,
자연의 사랑이었어라.
말하지 않아도 말하고无謂有謂
말을 해도 말이 아니듯有謂无謂.
방산서실芳山書室
박제천
이 가을, 산을 하나 장만했다
저절로 서실이 생겼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하느님께 빌렸다
그 산의 바람과 구름과 햇빛이 다 내 것이 되었다
아직 달빛과는 필담筆談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풀이며 나무들 하나 하나가 오래된 가족이었다
그래도 벌레들은 땅속에서 아직 낯을 가렸다
잘들 지내보자, 돌멩이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메아리는 재빨리 대답했다
친구야,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산이 나를 허락한 거였다
산이 하는 말을 열심히 받아적는 게 내 몫이었다
나라는 도화지에 산이 그리는 그림,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마힐摩詰 왕유의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듯이.
상선약수上善若水
박제천
눈이 내리네 눈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입술이 보이네 눈 속의 입술과 입술을 맞대면,
부르르 떨리는 입술 속
죽음처럼 떠오르는 희미한 기억
눈이 내리네 눈 속에 누군가를 부르며 떠다니는
입술이 보이네 눈 속의 내 입술이 입술을 맞대면
번개맞은 듯 온몸이 환하게 사라지는 눈이 내리네
아득한 우레소리 잠재우는 눈이 내리네
마지막 남은 입술마저 아이스크림처럼 녹이는
눈이 내리네, 그 입술들 녹이는 눈이 내리네
내 가슴에 고여 샘물이 되는 눈이 내리네
너에게 흘러가는 물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샘물에 눈이 내리네 물이 되어
이세상 어디라도 너를 찾아가는 내 사랑,
눈이 되어 내리네, 눈으로 내리네, 눈이 내리네.
산산수수山山水水
박제천
봄날, 누군가 허공에 먹물을 뿌릴 때마다
안개 속에 산봉우리 나타난다
먹물을 쫒아올라가 발길로 찰 때마다
낭떠러지에 조선소나무 매달린다
먹물과 함께 뒹굴 때마다
비산 비야非山非野에 일초 일목一草一木 솟아오른다
누군가 오름 가득 먹물을 풀고
붓 가득 먹물을 찍어 개칠을 한다
누군가 마음 가득 먹물을 풀고
붓 가득 먹물을 찍어 뿌리는 발묵潑墨
보이는 것 모두 다 먹칠을 한다
산은 산, 물은 물이 될 때까지다.
다반향초茶半香初
박제천
오늘 밤 달빛이 환하자, 수국꽃이 떠올랐다
수국꽃 향에 몸은 시나브로 달뜨는데,
꽃도 꽃을 가져온 그여자도 보이지 않는다
달 속에 항아가 문득 보였다
명궁 예의 불사약을 훔쳐 달로 도망간 여자다
하늘의 해도 쏴서 떨어뜨리던
예서방은, 차마 달을 쏘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한다
사내란 예나 이제나 여자에겐 약한 걸까
지금도 예는 보름달이 뜨면 항아를 찾아간다 한다
하지만 나는 찾아갈 수도 없다
옛다, 너나 읽으렴
시 한 편 써서 달에게 보여준다.
달무리진다 수국꽃 피었다.
독심술
박제천
술잔이 내게 말을 건다
이때쯤이면 술잔 속의 술도, 안주로 갖다놓은 튀각도,
엉덩이를 받쳐든 의자도,
턱을 괴는 팔까지도 모두들 말을 건넨다
이모두가 혼자 사는 기쁨이다
달빛 별빛 말만 듣다가
나 역시 눈빛의 말을 건넨다
그럴 때 내 눈빛과 달빛, 눈빛과 별빛이
서로 만나 만드는 자미성의 오로라가
오늘의 주제다
나는 저 오로라의 운명에게 건배한다
이때쯤이면 외계인도 나타난다
점입가경이다
밤하늘도 별도 달도 내 마음을 읽고,
나 역시 저들의 마음을 읽는다
보기만 하면 술술 읽혀지는 마음.
엣다 던져 주는 달빛 별빛 눈빛들
오늘밤엔 술빛도 찰랑찰랑 달이 되고 별이 된다.
언어도단
박제천
술을 인주 삼아 지문을 찍는다
지문 속 애타는 눈빛
마티에르 속 문드러진 얼굴
달빛 별빛을 인주 삼아
손도장을 찍어본다
손길 닿는 곳마다 퍼져 나가는 목소리,
소리가 되지 못한 눌함,
끊어지는 모르스 부호,
도화지 가득 지문이며 손도장을 찍고
내 안의 오감과 육정을 뒤섞어
피카소 식의 꼴라쥬를 만든다
그 제목,
언어도단.
내 전생은 무지개귀신
박제천
무명세상 내 애인아
한 일억년쯤 , 눈 귀 입을 봉하고
벼랑끝 괴석이 되어 있을 때
어쩌다 찾아오는 천둥의 못정, 번개의 칼금으로
하루살이 적, 한살이 적의
만남과 헤어짐을 온몸에 새기다가
하늘로 떠올라 무지개귀신이 되었을 때
손각시귀신들 불길로 온몸을 물들인 채
나 여기 있다, 소리치다 사라지는 몽달귀신 보았었다
한시라도 보고싶은 내 애인아
다음 생에는 우리 몸 바꿔 다시 만나자.
이 몹쓸 아수라도 살더라도 풀무치 되어, 동박새 되어,
우리 그렇게 서로 얽혀 먹고 먹히더라도
그리워하다가 미워하다가
만나고 헤어지는 황홀한 사랑을 이어나가자.
내 무명세상 애인아.
밀당
박제천
우리가 보는 것은 기실 우리 마음이 보고싶은 것이란다. 와인병을 따자 초파리가 동무하자고 날아왔다 성가셔서 쫓으면 다시 달려왔다 이미 70년 전에 이 몸을 얻었는데 왜 쟤가 나를 저라 생각할까 매몰차게 나를 거절했던 그때 그여자가 마음을 고쳐먹었나 어쩌랴 내 이미 여자는 물렸단다 일배일배부일배 초파리랑 밀당을 하다가 백낙천처럼 오늘 북창 아래에서(今日北窓下), 무엇 하느냐고 스스로 묻다가(自問何所爲) 아하 깨우쳤다 술과 시인이 이미 있으니 거문고 대신 초파리 여인이 찾아왔구나
천방지축
박제천
복사꽃 분홍 눈 천지를 덮어 환한 대낮
고독아귀를 애인 삼아
복희랑 여와처럼 용龍 꽈배기를 만들듯
석달 열흘 중중몰이 자진춘향전 사랑가를 듣듯
심심해서, 여와가 진흙물로 사람을 만들 듯
피처럼 붉은 술잔 속 피의 애인을 만들듯
여의주 입에 문 용처럼,
복희랑 여와처럼, 한몸 한마음으로
햇빛 환한 방의 그날처럼
춘향이 이도령 업듯 이도령 춘향에게 업히듯
이화중선 노래처럼 징검징검 따라 걷듯
복사꽃 분홍 눈 붉은 눈 천지를 덮어 환한 대낮.
시인의 변신술
박제천
이렇게 하늘이 맑고 해가 빛날 때
방안에 앉아 있는 건 죄지요,
성찬경 시인이 말하는 아이오와 겨울 하늘
내 머물던 겨울엔 눈이 한자 갸웃 쌓였다
성찬경 시인과 야오 시인은 아마도
강 건너 메이플라워 공원을 거닐었으리라
그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영원의 도포자락,
도포자락 펄럭이는 눈길 저편의 시인,
내 오늘 산신각에서 만났다
장죽을 뻐끔뻐끔 빨면서 웃고 있는 조선호랑이
산신각은 답답해
가끔 용이 되어 하늘을 한바퀴 도는 게 낙이야
산신각에 자리 잡고부터 골초가 된 시인과
마주 앉아 맛있게 아주 맛있게 담배를 피웠다
빨리 와, 여기도 좋은 곳이야
그럼요 형님, 머잖아, 그런데,
아직은 여기서 죄를 더 쌓아야 합니다 업이지요
산신각을 감싸며 아이오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내 담배연기, 저 바람의 도포.
시계변신술
박제천
평생 차고 다니던 시계를 벗었다
별이나 되어라 밤하늘에 던졌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들여다보던 시계,
잠을 잘 때도 풀지 않던 시계수갑을 버렸다
시계를 잊자
모든 시간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자청해서 죄수가 되었던 내가 자유인이 되었다
이제 시간은 내 것이다
좀더 좋은 수갑, 보석수갑을 꿈꾸던
나도 버렸다 버려서 나를 찾았다
이 밤, 하늘에서 반짝이는 추억의 시침, 초침
문자판이 재생하는 별빛의 말을 무심히 듣는다
아마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그럴 것이다.
낙타변신술
박제천
낙타털이불을 덮으면서부터
밤이면 밤마다 추운 사막에서 깨어난다
잠만 들면 낙타는 나를 태운 채 사막을 헤맨다
모래여자, 선인장여자, 낙타여자를 찾아다닌다
제 짝을 찾아다니는 것같다
아무래도 이놈을 잘못 고른 것같다
그냥 나처럼 무심으로 내가 저를 껴안듯
저도 나를 껴안은 채,
바람구멍 하나 없이 사막추위를 막아주면
저나 나나 달디단 잠을 잘 것이다
짝이 없어 넋이 나간 낙타,
정신이 번쩍 나게 혼을 내준다
이놈아, 좀 참아라, 나도 천년을 참고 있단다
정 없어도, 살 섞으면 새록새록 솟아나는 게 정이란다
시절인연 기다리다 내가 먼저 죽겠다 싶어,
차라리 이불을 바꿀까
늑대여자, 고양이여자, 오아시스여자,
이번엔 누가 좋을까, 밤을 꼴깍 새웠다.
영혼변신술
박제천
네 이름 말하자마자 너, 내 앞에 나타났구나
눈뜨자마자 저 산에 나타난 무지개더니
어느새 내 앞에 눈잣나무 한그루로 서 있구나
영혼으로 사는 기쁨, 그 자유를 만끽하며
너 보고싶은 마음 들 때마다
천변만화, 향기로운 두릅 되어 내 안을 밝혀주고
송절주, 청명주 맑은 술이 되어 내 안을 덥혀주는구나
네가 사는 어느 공간, 어느 별이 되랴
네가 머무는 어느 시간, 어느 구름이 되랴
만경평야 어느 포구, 주문진 어느 항구
강물로 바닷물로 합수되어 물고기처럼 내달리랴
생각해 보니, 영혼도 결국은 한 벌 옷이구나
입을 때마다 입성이 달라지는 맨몸 맨살이구나
백록담에서도, 천지에서도, 나스카에서도
매화오름, 장미오름, 불오름, 물오름에서도
여기요! 여기요! 소리쳐 나를 부르는 너,
은산철벽을 뚫고 들려오는 네 목소리,
내 사는 세상이 곧 네가 사는 세상이구나.
은하변신술
박제천
지난밤엔 인사불성이었다
술에 너무 취해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울었단다
거울을 보니 눈물자국이 있는 것도 같았다
나이 70 너머 웬 눈물, 눈이 짓물렀나보다
생각해 보니, 진짜 울었다
한밤중 엄마 무덤에 혼자 앉았다가 울음텡이가 되었다
그런데, 사실은 젊은 여자를 껴안고 울었단다
울다 보면, 열여덟 혹은 열아홉,
아니, 다섯살 아이
마흔 넘어 낳았다는 막둥이라
젖 한 줌 제대로 못 먹어 젖배가 곯앓나
엄마 젖무덤이 그리 그리웠나
그래서, 이 밤, 별이 내뿜는 젖줄기에 입을 모은다
분수처럼 내뿜는 별빛 달빛 미리내
입 안 가득 머금고 엄마 무덤을 가슴에 만든다
다시는 엄마 생각 안해도 되겠다.
다시는 울지 않아도 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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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어느새 제15시집이다. 시단에 발을 들여놓은 지 50년이 지났다. 아직도 시를 대하면 신명이 나니 복받은 인생이다.
새 시집『천기누설』의 작품들은 그런 내 시의 놀이와 동무들에 관한 일기장이다.
시집 제목의 ‘천기天機’는 장자에서 빌려왔다.
장자가「추수」「대종사」「천운」등의 여러 글에서 밝힌 대자연과 스스로 그러함(自然而然)의 천연이다.
굳이 ‘비밀’과 같은 뜻으로 읽고 싶다면 시의 비밀한 묘용妙用으로 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시는 꿈꾸는 시인의 것이다. 꿈꾸는 시인을 중심으로 시는 진화한다.
바라건대 그 모든 것이 보는 이나 하는 이에게 황홀한 기쁨이었으면 좋겠다.
2016년 5월 어느 좋은 날
芳山齋에서 박제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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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천 詩集 [※천기누설※]
[ 박제천 시인의 시세계 ] -
사랑과 우주를 넘어선 자유인
이 혜 선
1.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M.Heidegger는 횔덜린F.Holderlin의 시를 이야기하면서 시인을 신과 인간의 매개자로 보았다. 즉 시인은 하늘의 눈짓을 붙잡아서 겨레에게 전해주는 중간자로 본 것이다.(M.하이데거「횔덜린과 시의 본질」)
그런가 하면 동양에서는 시인을 거의 신과 동격으로 생각해왔다. 5세기 위진남북조시대에 씌어진, 문학을 계통적으로 논의한 중국 제일의 저작인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에는 시를 쓰는 방법론의 첫 편에「신사神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사’란 상상력이 활발할 때 혹은 영감을 받은 상태에서의 창조적 구상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정신이 아득히 먼 곳에 머무름을 말한다. 그러므로 고요함에 머무르면 서로 엉기게 되고 마음은 천년의 세월과 만나게 된다. 그 얼굴에 변화가 조금만 일어나도 생각은 만리 밖을 보게 된다”라고 하여 시인의 상상력이 무한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상상력을 통해 시간적으로 천년의 세월 저쪽과 공간적으로 만리 저쪽을 소통하는 초월적인 세계를 창조해서 언어로 표현해내는 언어의 신이다. 시인은 상상력을 통해 꿈을 꾸고 그 꿈속에서 신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낳는다.
박제천의 시가 바로 그렇다. 초기 시부터 시력 50년을 넘긴 작금의 작품까지 아우르는 상상력은 장자와 노자의 불교, 그리고 산해경, SF-UFO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들면서 꿈을 꾸고 그 꿈속의 사물과 교감하고 일치되고 동화되는 새로운 세계를 무수히 창조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펴낸 연가곡시집『마틸다』를 통해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도 무화시키는 초월적 사랑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시세계는 특히 동양적 사유와 더 많이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 유협이 일찍이 얘기한 “신물감응神物感應”처럼, 세상의 만물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그 교감을 통해서 시인의 정신이 감응하여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되면, 화자 스스로 그 사물 속으로 들어가 한 치의 틈도 없이 동화되는 물아일체를 이루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2.
시집『천기누설』의 시는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사랑의 시이다.「달아 달아 나랑 놀던 달아」와「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꿈을 통해 사랑과 추억을 찾아가고 그것을 현재화시켜 펼쳐놓는 상상력의 세계이다. 생사를 초월한 육화된 사랑을 화자가 접하는 평소의 두두물물에서 만나고 느끼고 그 사랑을 현재화시킨다. 다음 단계는「훈데르트바서 풍風의 숲속 가족듪」과「방산서실芳山書室」등에서 볼 수 있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고 드디어는 자연을 넘어서는 범 우주적 자아를 제시하는 초월적 시세계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불이선란不二禪蘭」에 오면 선을 통해 마음경을 읽고 진정한 자아를 만나 유유자적하며 하늘의 본성으로 돌아간다. 또한 「노자 제73장 평창評唱」「장자 코스프레」「시계 변신술」등에서는 고전과 꿈을 통해, 꿈과 삶을 오가며 자기 안에서 스스로 즐기는 자족의 삶 속에서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이쯤 되면 사랑도 자연도 더 나아가서 전 우주도 시인의 안에서 꽃피기도 하고 스러지기도 하는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에 이르러 유무의 구별 없이 스스로 그러하며 스스로 자유롭다.
달디단 입맞춤의 그 혀가, 어느 날 비수처럼
우리 사이를 끊어낼 줄 누가 알았으리
이제는 입술만 남은 저, 황금의 활
황홀경의 입맞춤은 아직도 감미롭건만
저 하늘의 입술은 비수와 같은 화살이 되었다오
하염없이 날아오는 바람의 화살
죄와 벌로 가슴에 꽂혀 소용돌이치는
입술의 화살
가슴에 명적鳴鏑이 소용돌이칠수록
뉘우침을 잊고자
죽음처럼 달디단 입술의 잠에 빠져든다오
황금의 달로 떠 있는 혀를
맛보고, 빨아들이며, 숨막히돌폭
추억의 혀를 탐하는, 잠 속의 나를 본다오
-「달아 달아 나랑 놀던 달아」전문
사랑하는 이와 더불어 가족과 더불어, 세상 모든 생명과 더불어 한세상을 살아오면서 뉘우쳐지는 일, 회한으로 남는 일이 왜 없겠는가. 넓디넓은 밤하늘에 홀로 걸려 외로이 나를 바라보는 달을 보면서, 사랑하는 이와의 “달디단 입맞춤”을 추억하고, 이제는 곁에 없는 멀리 간 이를 그리워하는 화자, 멀리서 안타까이 그리움만 주는 그 입술을 “비수”로, “화살”로 받아 안는 화자의 모습이 달빛 아래 처연하다. 화자는 입술의 화살뿐만 아니라, 상처는 물론이고 공기와 부딪칠 때 소리까지 나는 “명적”의 소용돌이를 가슴에 받아 안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뉘우침을 잊고자 오히려 잠에 빠져들어 생시에는 불가능한 꿈속의 사랑에 빠진다.
작품의 시작부터 화자가 바라보는 “달”은 “달디단 입맞춤의 혀”이며 “입술”이다. 비록 “비수와 같은 화살”이 되었지만 그 화살은 입술의 화살이며 그렇기에 화자가 잠 속에 들면 “맛보고, 빨아들이며, 숨막히도록” 탐할 수 있는 황홀한 에로티즘의 혀인 것이다. 제목에서는「달아 달아 나랑 놀던 달아」라고 과거형으로 시작했지만, 작품의 후반부로 가면서 화자는 “추억의 혀”로 제유되는 지난날의 사랑하는 이를 달고 잠을 매개로 현재화시키고 다시 사랑의 행위에 빠지는 초월적 세계를 펼치고 있다.
눈이 내리네 눈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입술이 보이네 눈 속의 입술과 입술을 맞대면
부르르 떨리는 입술 속
죽음처럼 떠오르는 희미한 기억
눈이 내리네 눈 속에 누군가를 부르며 떠다니는
입술이 보이네 눈 속의 내 입숙이 입술을 맞대면
번개맞은 듯 온몸이 환하게 사라지는 눈이 내리네
아득한 우레소리 잠 재우는 눈이 내리네
마지막 남은 입술마저 아이스크림처럼 녹이는
눈이 내리네, 그 입술들 녹이는 눈이 내리네
내 가슴에 고여 샘물이 되는 눈이 내리네
너에게 흘러가는 물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샘물에 눈이 내리네 물이 되어
이세상 어디라도 너를 찾아가는 내 사랑
눈이 되어 내리네, 눈으로 내리네, 눈이 내리네
-「상선약수上善若水」
「상선약수上善若水」에서도 시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초월적 경지를 펼치고 있다. 어쩌면 현실세계보다 더 가깝게 교감하고 교통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죽음 너머의 세계를 인식한다.
하늘에서 분붆피 날리며 내려오며 서로 부딪히는 눈의 입자들을 보면서 화자는 그 자신이 눈이 되어 그리운 이, 사랑하는 이와 입술을 맞대며 “희미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나 눈 속에서 누군가를 부르며 떠다니는 눈은 정작 “내 입숙”과 맞닿으면 “사라지는” 눈이며 “아이스크림처럼” 마지막 입술까지 녹이는 눈이다. 사라지되 순간적이나마 “온몸이 환하게” 황홀경으로 밝히며 사라지는 눈이기에 화자는 그 “희미한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떠난 줄 알았는데 보내지 못한 사랑, 더불어 나누었던 환희의 순간들이 “죽음처럼” 떠오르지만, 막상 서로 입술을 맞대면 녹아지는 사랑, 그래도 그 사랑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에 고여 샘물이 된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이 세상 어디라도 너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미당의 시「춘향유문春香遺文」에서 보듯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사랑이다. 춘향이 소나기 되어 도련님을 찾아가듯이, 화자도 물이 되어 “이 세상 어디라도” 찾아간다면 거기 사랑하는 이도 녹아 물이 되어 서로 합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제목에 함의해 놓은 시인의 의도가 더 깊이 읽히는 작품이다.
내 마음문을 지키는 금강야차들
아, 하고 소리를 지르다
흠, 하고 입을 앙다물어요
아직도
그날 이후 내게 남은
햇빛 속 내 마음 떨리는 눈빛의 문신
어둠 속 내 몸 달뜨는 숨결의 문신
참으로 묘하지요 사람은 사라져도 처음의
그 얼굴 그 눈길 그 숨소리 바늘땀이 되어
꿈이자 환상이자 물거품이자 그림자여도
이슬인듯 번개인듯 새겨진 금강 문신
아직도
잔을 기울이면 처음처럼 그윽한 향내 속
물은 흐르고 꽃은 피어요
-「다반향초茶半香初」전문
물이 되어 이 세상 어디라도 찾아가는 “사랑”에서「다반향초茶半香初」에 이르면 찾아갈 필요조차 느끼지 않고 그냥 처음인 듯 “물은 흐르고 꽃은 피어”나듯이 여여如如해진다. 제목의 “다반향초茶半香初”는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고요히 앉은 곳, 차 마시다 향 사르고, 묘한 작용이 일 때, 물 흐르고 꽃이 피네”라는 추사秋史의 대련對聯에 나오는 구절의 인용이다. 원시는 황정견의 작품인데 신위申緯와 홍현주洪顯周 등 19세기 문인의 시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구절이다. 이처럼 화자도 고요히 앉아서 차를 마시고 향을 사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달뜨는 숨결의 문신”을 여여히 느끼고 있다.
이 시의 3연에서는『금강경』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냥 인용한 것이 아니라『금강경』의 말씀을 정면에서 뒤집어서 오히려 변치 않는 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니라. 또한 이슬 같고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같이 관觀할지니라”라고 하여 제법이 무아諸法無我하고 제행이 무상諸行無常하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시인은 “참으로 묘하지요”라고 뒤집어놓는다.『금강경』의 말씀처럼 “처음의/그 얼굴 그 눈길 그 숨소리 바늘땀이 되어/꿈이자 환상이자 물거품이자 그림자”라고 시작하지만 다음 연에서는 오히려 시적 화자에게 “이슬인 듯 번개인 듯 새겨진 금강 문신”이 된다. 살 속에 새겨져 떠날 수 없는 문신, 그것도 그냥 문신이 아니라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금강문신이다. 아무리 인생이 무상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해도, 그 “사람”이 또 다른 세상(이승이든 저승이든)으로 떠나서 지금 내 곁에 없다 해도 그 사람은 “처음처럼 그윽한 향내속”에 여여히 흐르고 꽃피어나는 현재형의 사랑으로 화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이 얼마나 굳건하고 지극한지 금강야차도 지켜주고 있다.
화자의 이러한 사랑은 여러 가지의 ‘변신술’에 의해 더욱 함께 하는 현재형의 사랑이 된다.「풍등 변신술」에서 시인이 그동안 띄워 보낸 풍등은 “잠길, 꿈길, 몇 광년” 동안 심장의 불빛을 나침반 삼아 서로를 찾아서 오늘밤도 반짝이는 별빛이 되어 서로에게 눈빛을 보낸다. 시간 밖에서도 의식 밖에서도 나를 지켜보며 반짝이는 눈빛, 그 비밀한 우주의 눈빛은, 떠나서도 나를 잊지 못하는, 그리고 내가 떠나보내고도 잊지 못하는 “그리운 이”의 이름과 눈빛과 동일시되는 “떠돌이행성”으로 지금도 나와 함께 한다.「영혼 변신술」에서 사랑하는 이는 “천변만화”의 옷을 입고 내가 부를 때마다 내 앞에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백록담에서도, 천지에서도, 나스카에서도/매화오름, 장미오름, 불오름, 물오름에서도/여기요! 여기요!” 소리쳐 나를 부르며 함께 하는 초월적인 현재형의 사랑이다.
3.
산을 하나 장만했다
저절로 서실이 생겼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하느님께 빌렸다
그 산의 바람과 구름과 햇빛이 다 내 것이 되었다
아직 달빛과는 필담筆談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풀이며 나무들 하나 하나가 오히된 가족이었다
그래도 벌레들은 땅속에서 아직 낯을 가렸다
잘들 지내보자, 돌멩이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메아리는 재빨리 대답했다
친구야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산이 나를 허락한 거였다
산이 하는 말을 열심히 받아적는 게 내 몫이었다
나라는 도화지에 산이 그리는 그림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마힐摩詰 왕유의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듯이
-「방산서실芳山書室」전문
「방산서실芳山書室」에서는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듯이 내 속에 산이 있고 산 속에 내가 있다. 나는 산이 하는 말을 받아 적는 대필자가 되기도 하고 산이 그림을 그리도록 판을 벌려주는 도화지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시적 화자인 “나”가 산보다 더 크고 대범하고 자연스럽다는 뜻이 되겠다.
산보다 더 큰 “나”, 산이 그리는 그림을 보기만 해도 즐거운 우주적 존재,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누가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시인만이, 꿈꾸는 시인만이, 꿈을 붙잡아 실현시키는 시인의 상상력만이, 그런 큰 “나”를 낳을 수 있다. 시인의 이러한 상상력은 많은 독자에게로 가서 독자도 함께 꿈꾸게 한다. 그래서 시인의 언어는 세상 모든 이를 꿈속에 들게 하고 꿈꾸게 하는, 새로운 세상을 낳는 언어이다.
참나무마을, 소나무마을, 너도밤나무마을
가슴을 넘어 목을 돌다보면
잎맥을 따라 붉은 무당벌레집 푸른 꽃매미집
훈데르트바서 풍의 숲이 펼쳐집니다
유록색 창문도 나뭇잎, 청보라 지붕도 나뭇잎
적갈색 침대도 나뭇잎, 연두빛 방바닥도 나뭇잎
석달 열흘 꿈꾸듯 살았던 아이오와시티의 내 오두막
10년째 혼자 사는 다락방에 옮겨온 그 나뭇잎 방
풍경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풍경을 만드는
이승 저승,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들
뭉게뭉게 꽃구름처럼 떠다니는
훈데르트바서 풍의 숲도 따라왔답니다
여기서는 마을도 숲도 나무 한 그루
벌레들에게 집 한 채씩 나눠주는 나뭇잎들도 한 가족
달팽이 집 한 채 등에 진 나도 한가족이랍니다
-「훈데르트바서 풍風의 숲속 가족들」전문
F.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는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화가이자 생태운동가이다. 신체, 생물, 물질의 유기적 순환을 강조한 그는 「자연과의 평화조약」을 발표하여 자연과의 조화와 재결합을 주장하고, 인간이 무단으로 점유한 자연의 영역을 자연에 환원시켜 주어야 한다고 자연보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오스트리아빈에 있는 임대주택이지만 건물 전체가 온통 푸른 식물로 뒤덮여 있다.
위의 시에서 화자는 “석달 열흘 꿈꾸듯 살았던 아이오와 시티의 내 오두막”을 훈데르트바서 풍의 숲 속 오두막집으로 추억하고 있다. 시인이 꿈꾸어서 그 오두막이 훈데르트바서 풍이 되었는지, 추억이 아름다워서 그렇게 기억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화자는 아이오와시티의 오두막을 추억하면서 훈데르트바서 풍의 숲과 나뭇잎 방을 “10년째 혼자 사는 다락방”에 옮겨와서 현재화시키고 있다. 그 숲 속 마을에는 붉은 무당벌레집도 푸른 꽃매미집도 있고, 마을도 숲도 나무 한 그루도 모두 한 가족이다. 나뭇잎들은 벌레들에게 집 한 채씩 나눠주고 창문도 지붕도 침대도 방바닥도 모두 나뭇잎으로 채워주어 푸른 꿈을 꾸게 한다.
그리고 그 숲 속 방에서는 “달팽이집 한 채 등에 진 나도 한 가족”으로 꽃구름 속에서 훈데르트바서가 “우리는 자연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자연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한 평화조약의 주장대로 자연의 언어로 서로 소통하고 있을 것이다.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만 함께 하고 가까이 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소통하며 함께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구를 파괴해온 자연으로부터 어떤 위험을 되돌려 받을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시점에서, 1993년에 발표한 훈데르트바서의 평화조약을 다시 한번 음미하게 하는 작품이다. ”무엇을 어떻게“라고 주장하지 않고, 꿈꾸는 시인의 삶의 모습을 통해 ”자연이 재생할 수 있도록“자연과 조화되는 삶으로 되돌아가야 할 경종을 조용히 울리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자연과 깊이 교감하고 동화되어 그들의 말을 받아 적고 그들과 한 가족이 되는 신물감응의 시세계이다.
시「포도나무 변신술」에서도 천지자연과 교감하고 감응하는 시세계를 만날 수 있다. “티끌이 된 내가”, 혹은 미래 어느 날의 내가, 거꾸로 지금은 포도를 먹으며, “포도나무”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자연을 추체험한다. 미당의 시「인연설화조」에서도 볼 수 있는 윤회와 변신을 통해 화자는 천지자연과 육화되어 교감하고 감응하는 범우주적 자아를 창조하고 있다.
4.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를 본다
늙은이가 20년만에 신이 들려 우연히 그렸다는
난초그림
옳거니, 하늘의 본성이 원래 저런 것이니
문 닫아 걸고, 혼자서 깊이 깊이 찾아들어가는
마음의 경지
선객노인이 구름처럼 함께 흘러가니
만향노인도 길마다 향을 피우고
구경노인도 길동무하느니
늙은이 넷이 주고받는 소리가 자장가 같아
잠들다 깨어나 보니, 유마네 동산일세
난초그림이 주인인지 구경하는 사람들이 문자인지
알 바 없으나
곳곳마다 난초줄기가 마음에 새긴 이름인양
흐드러지게 어울리고
사이사이 붉은 낙관과 유인遊印을 꽃처럼 활짝 피운
한세상의 경지
나 역시 내 안의 늙은 동무들 다 불러모아
그림 구경하며 한세상 이름을 다 잊어버리네
-「불이선란不二禪蘭」전문
※선객, 만향, 구경:추사 김정희의 호
시인이 오브제로 삼고 있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불이선란도」는 시, 서, 화의 혼융을 삼절로 하여 이것을 완전히 보여준 작품으로 추사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완숙미를 갖춘 작품으로 꼽힌다. 한 뿌리의 난 그림을 둘러싸고 제시와 세 종류의 발문, 자호와 다양한 인문의 낙관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그림은 추사체가 농익어 완성되는 말년의 작품이자 서예적 추상성과 불교의 선적인 초월성의 결정체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그림 속의 화제를 통해 우리는 이 그림 속에 있는 한 줄기의 난초가 더 이상 자연물의 외양 묘사가 아닌 작가 자신이 발견해낸 성중천性中天이자 작가가 난초 그림의 화의를 유마의 ‘불이선’에 견주고 있는 이유임을 알게 된다. 유마힐 소설경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에 불이에 대한 문답이 있다.
불이법문에 대해 묻는 유마힐에게 문수보살이 대답한 후에 유마힐에게 되물으니 유마힐은 오직 아무런 말 없이 침묵하였다. 문수보살은 감탄하여 말하였다. “문자文字로도 언어의 설명[語言]까지도 전혀 없는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불이의 경지에 깨달아 들어가는 법문입니다.”
문자로도 언어로도 설명되지 않는 이러한 유마거사의 불이선을 그림과 화제로 나타낸 것이 추사의「불이선란도」이다.
화자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선객노인, 만향노인, 구경노인, 그리고 그림을 그린 이 등 “늙은이 넷이 주고 받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유마네 동산”의 이곳 저곳을 기웃대며 구경하는 사이 어느새 자신의 경지도 불이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마음에 새긴 이름인 양” 흐드러진 그림과 글씨를 구경하면서 화자는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리는 망아忘我의 경지, 선禪의 경지에 이른다.
내 안에는 여러 개의 자아가 살고 있다. 프로이드 식으로 말하자면 이드id도 있고 에고ego도 있고 슈퍼 에고super ego도 있다. 그 이드와 에고와 슈퍼에고도 여러 가지 성격을 지닌 각각으로 나눠질 것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나, 나의 마음과 나의 사랑과 나의 욕망과 나의 의지와 나의 절제심과 똑바로 가려고 해도 내 마음대로 가지지 않고 옆길만 곁눈질 하거나 심지어 주인을 끌고 그쪽으로 부득부득 비뚤어져 가는 나, 그러나 이제는 「불이선란도」를 그린 늙은 추사처럼 화자도 스스로를 다스리며 한 세상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경지로 들어선 모양이다. 그러기에 “내 안의 나” 인 늙은 동무들을 다 불러모아 불이선과 난이 다르지 않은 그림 구경도 하며 한세상 살아오면서 불어오던 이름들마저 다 잊어버리고 꽃으로 활짝 핀 “유마네 동산”을 유유자적 노닐며 “하늘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시적 화자는 자기 안에서 스스로 즐기는 자족의 살(「유람천하」)을 누리고, 고전 속에서 고전과 함께 하기도 하고 꿈과 삶을 오가며 꿈 속에서 딴 꿈을 꾸는 한세상(「노자 제73장 평창評唱」)을 살기도 한다.「장자 코스프레」에서의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땅 속에 있으면 벌레와 개미의 밥/누군가의 밥을 빼앗아”처럼, 하늘을 날아가는 자신의 몸까지 자연의 순환과 섭리에 맡기는 자연의식을 보여준다.
평생 차고 다니던 시계를 벗었다
별이나 되어라 밤하늘에 시계를 던졌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들여다보던 시계
잠을 잘 때도 풀지 않던 시계수갑을 버렸다
시계를 잊자
모든 시간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자청해서 죄수가 되었던 내가 자유인이 되었다
이제 시간은 내 것이다
좀 더 좋은 수갑, 보석수갑을 꿈꾸던
나도 버렸다 버려서 나를 찾았다
이 밤, 하늘에서 반짝이는 추억의 시침, 초침
문자판이 재생하는 별빛의 말을 무심히 듣는다
아마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그럴 것이다
-「시계 변신술」전문
화자는 다양한 변신술을 통해 여러 종류의 삶을 살아내기도 하는데 「시계 변신술」에 오면 이제는 시간까지 버리고 “모든 시간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자유인이 된다.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자신에게 여러 가지의 수갑을 채운 죄수가 되어 스스로 감옥 속에서 구속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가장 평범하게는 가족이라는 감옥, 사회라는 감옥, 지켜내야 할 사회적 관습과 전통과 관념이라는 감옥, 그리고 좀 더 깊게는 자기 스스로 계획하는 삶의 지향점에 대한 감옥, 발 밑에도 감옥이고 허공에도 감옥이 무수하다. 특히 현대인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바쁘다, 바쁘다’를 연발하며 여유없이 산다. 화자는 보통 사람들이 줄줄이 끌고 다니는 이러한 감옥에서 이미 벗어난 지 오래지만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그를 구속하는 ‘시간’이라는 수갑을 벗어 버렸다. 그래서 “버려서 나를 찾았다”고 한다. 그 결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의 말을 무심히 듣는 평화와 자족自足이 찾아오는데, 결연에서 “아마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하여 오매불망 못 잊어 죽을 너머까지 찾아가던 사랑마저 잊어버리고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자유인이 된 화자는 “밤하늘의 별도 달도 내 마음을 읽고//나 역시 저들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의 경지에 이른다.(「독심술」) “보기만 하면 술술”읽혀지는 이 세상 두두물물과 소통하고 말을 건네며 마음을 나누는 “독심”은 바로 자연의 마음을 읽고 천기를 읽는 “천기누설”( 「천기누설」)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어떤 경지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만족하며 머물러 있는 것은 자족 속에 스스로를 포기하는 길이다. 그래서 화자는 “방하착放下着이 곧 착득거着得去라지요”라는 깨달음 속에서 “착득거 했으니 또 방하착해야겠지요(着得去)”라고 새로운 구도의 길을 나선다.
5.
박제천 시인은 상상력을 통해 꿈을 꾸며 그 꿈속에서 신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낳는다. 낳아서는 그 속에서 유유자적, 꽃이 활짝 핀 동산에서 “한세상 이름”까지 다 잊어버리고 하늘의 본성에 젖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과 더불어 자기 동일시를 이루기도 한다. 주위의 만물과 자연현상, 두두물물 속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그 사랑을 스스로 찾아 나서기도 하고, 자연보다 더 큰 자연인 우주적 존재가 되기도 한다. 유협이 『문심조룡』에서 말하는 신물감응처럼 세상의 만물과 자연과 교감하고 감응하며 꿈꾸며 범우주적 자아를 창조한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우주적 자아 안에서 스스로 즐기는 자족의 삶을 누리며, 꿈 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기도 하고, 다양한 변신술을 통해 여러 종류의 삶을 살아내기도 한다. 마침내는 시간의 구속에서도 벗어나 자유인이 되어 두두물물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을 얻어 천기누설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어느 한 경지에 머물러 자존하거나 방심하지 않고 끝없이 변화하는 변신술을 통해 다시 모든 것을 놓고 자유인이 되는 방하착放下着의 구도의 길을 떠나고 있다.
“한세상 신나고 즐겁고, 신명나게 살기로 했다… 꿈결 속에 살다 본즉 사랑도 삶도 시도 그 무엇도 다 가능한 일이었다”라고 시인이 2013년에 펴낸 시집『호랑이 장가가는 날』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유유자적, 즐기며 언어의 신이 되어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상상력의 장을 펼치는 시 세계가 앞으로 더욱 크고 깊은 화엄세상을 낳기를 바람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독자들이 그 새로운 화엄 세상에 들어 함께 꿈꾸게 되기를 빈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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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천 시인의 시세계♣
내 시의 놀이와 동무들
박제천
나는 살아오면서 내 생각이 늘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길 희망했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그 즉시 풀어버리며 노여움도 미움도 끊임없이 지웠다. 역지사지하면 대개는 그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상사야 끊임없이 실수와 후회, 상처와 고통이 줄지어 닥쳐오지만, 그때마다 ‘일체유심조’를 마음에 새기며 순리를 찾아냈다.
그런데 10여년째 독거생활을 해오다 보니, 문득문득 고독아귀의 손아귀가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때가 많아졌다. 아귀란 이름이 붙듯이 이놈을 떼어내는 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놀이’였다. 상상력의 놀이, 그러면서도 재미있어야 하는 놀이를 생각해보지, 시쓰기였다.
그 때문에 죽은 아내와 연결된 제11시집『아,』를 펴내면서 내 자신에게 다짐을 하듯 다음 시집부터는 놀이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고, 계속 놀이의 방법론을 시에 접목시켜 왔다. 그런 소회를 지난번 제12시집『달마나무』를 펴냈을 때 서문에 자세히 밝힌 바 있다.
정신이든 육체든 사람살이란 게 결국은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놀이의 반복이 아니던가. 이번 시집에선 한걸음 더 나아가 남녀에 별들도 끼워 넣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은 사람의 세포와 닮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주를 떠다니는 별들도 사람처럼 사랑하고 헤어진다는 로망을 상상해 보았다. 일테면 바람둥이 우주를 아예 내 안에 불러들여 신명나게 한판 놀이를 벌여보자는 것이다. 바람둥이 별들과 남녀를 서로 엮어보니 한결 재미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모두가 혼자 살면서의 일이라 사람들이 아내와의 추억담으로 보아주는 것 역시 싫지 않은 일이다.
제6시집『노자시편老子詩篇』을 출간하였을 때 노자의 도道와 명名을 ‘너’와 ‘나’로 바꾸어 대입했듯이 ‘돈오’는 사랑의 깨우침이고, ‘점수’는 놀이의 즐거움이라 생각하니 만사가 줄줄 풀렸다. 내 딴에는 재미있게 쉽게 쓰고자 고안해낸 방식이지만, 쓰는 동안에도 내내 즐겁고 행복해서 이 방식을 앞으로도 활용하기로 했다.
덧붙여, 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꿈속에 나비가 된 장자의 행복, 꿈속에 장자가 된 나비의 불행(張潮)를 따지기보다는 꿈속을 드나들며 이렇듯 시집을 내는 내 행복처럼 차별과 경계를 벗어난 독자들도 모처럼 달콤한 풋잠을 맛보시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었다.
제13시집『호랑이 장가가는 날』을 쓰면서 내 놀이의 상대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소년시대부터 사귀어 온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장자나 노자, 열자, 왕필, 곽상과 같은 사상가들로부터 시작해 사마상여, 이하, 이백, 두보, 왕유, 백거이, 소식 등의 시인들, 팔대산인, 양주팔괴 등의 화가들은 물론 서양 예술가들까지 집합시키자니 목록은 여간해서 끝이 나지 않았다.
놀이를 계속하다본즉 꼭 상대가 사람이나 우주여야 할 것도 없었다. 마음껏 대상을 넓히면서 계속 같이 놀아줄 새로운 상대를 고르는 게 일이라면 일이었다. 천하의 두두물물이 하나같이 누군가 같이 놀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교의 윤회 역시 유정한 생명체끼리 순환한다는 생각을 확대하면 돌멩이나 개울물과 같이 무정물까지 두루 포함되니 그야말로 두두물물이 아닌가.
예컨대 도깨비와 귀신을 생각해 보자. 옛사람들은 귀신을 죽음의 한쪽에 세우는 동시에 삶의 한쪽에 도깨비를 내세웠다. 도깨비는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사람 마음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닳아지고 버려진 절구공이, 빗자루, 주걱, 손잡이가 달아난 멧돌짝과 같은 하찮은 것들이지만 오래도록 사람과 정들었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도깨비가 되었고, 숲속의 고사목, 언덕의 바윗덩이와 같이 생명이 없다고 여겨진 자연의 것들이 돌연 우리네 삶에 도깨비로 끼어든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죽은 마음을 살리는 일종의 장치였던 셈이다. 버려진 것들, 하찮은 것들 역시 그 존재의 의미가 있음을 우리에게 깨우쳐 줌으로써 우리의 삶을 죽음과 함께 소중하게 받들라는 하늘의 이치였다.
도깨비 뿐이야, 강시, 좀비, 뱀파이어, 늑대인가, 하이브리드 인간과 같은 초자연적인 생명체는 또 어떠한가.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그리스 로마가 보여주듯 하늘의 신들을 올림프스동산으로 불러와 사람과 함께 사랑하고 놀았다. 또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하늘이든 바다든 가리지 않고 용왕과 염라대왕과 상제를 만들어냈으며, 봉황, 주작, 현무, 백호를 사방에 거느린 채 혹은 신선이 되거나 선녀가 되어 한세상을 즐겼다. 장주는 붕새를 타고 지구 상공을 떠돌았고, 이백은 고래를 타고 달나라로 갔으며 항아는 달에서 두꺼비랑 살며 방아를 찧었다. 이 모두가 사람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도교적 상상력을 비롯해 동양사상의 무궁무진한 보물창고가 항상 문을 열어놓고 있으니, 내 정신의 놀이터는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그 래도 또다시 생각했다. 상대가 없으면 어떤가, 혼자서도 놀아보자. 시야말로 혼자 노는 예술이 아니던가. 궁즉통이다. 자미두수나 명리학, 당사주 등의 운명학 또한 혼자서 놀기에 알맞은 도구가 아니던가. 놀이 상대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그 결과가『호랑이 장가가는 날』에 이어진 최근의 내 시작업이다. 혼자서 혹은 심심하면 동무들을 불러 모아 야단법석을 차려놓은 채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는 일이다. 버킷리스트조차 필요 없는 삶이다. 여기에 변신술, 코스프레, 둔갑술까지 적용하니, 근래의 나는 고독아귀가 범접할 사이도 없을 만큼 바쁘다. 나날이 즐겁고 기쁘기 그지없다.
최근에는 다시 역으로 생각했다. 고독아귀에 사로잡히면 어떨까. 내 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고독과 슬픔과 고통을 다 드러내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니 내 시는 언제나 자신만만했다. 그 자신만만은 어떠면 내 안의 좌절과 갈등을 눈속임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번에는 다 벗어던지고 맨몸 맨마음으로 청승을 떨어보자 생각했다.
슬퍼도 해보고 울어도 보고, 무서움에 질려보고, 외롭다고 허공에 악다구니도 하면서 시를 써보니, 이런 작품들도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화초는 여자가 되고, 여자는 질투가 되고, 질투는 병을 만드니, 이세상 병통이 한마음 먹기에 달렸다. 놀이는 변신을 만들고 변신은 상상을 불러들인다. 곡비가 남의 설움을 대신해 곡을 하다보면 제 설움에 겨워 끝없이 울음이 나온다고 한다. 청승을 떨다본즉 내가 바로 그 꼴이다. 내 몸이 병원이다.
어떻든 이번에 펴내는 새 시집 『천기누설』의 작품들은 이런 갖가지 놀이에 따른 변신, 청승, 환상이자 자연에 대한 내 나름의 탐색이라 할 것이다. 시집의 제호로 빌려온 ‘천기天機는’ 장자가 「추수」「대종사」「천운」등의 여러 글에서 밝힌 재자연과 스스로 그러함(自然而然)의 천연을 뜻한다. 굳이 ‘비밀’과 같은 뜻으로 읽고 싶다면 시의 비밀한 묘용妙用으로 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시는 꿈꾸는 시인의 것이다. 꿈꾸는 시인을 중심으로 시는 진화한다. 나는 늘 내 꿈이 놀이를 만나서 더욱 의미 있게 진화하기를 기대하면서 살아간다. 바라건대 그 모든 것이 보는 이나 하는 이에게 황홀한 기쁨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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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지락至樂과 지복至福의 세계
사랑과 우주를 넘어선 자유인
그는 자신이 창조한 우주적 자아 안에서 스스로 즐기는 자족의 삶을 누리며, 꿈 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기도 하고, 다양한 변신술을 통해 여러 종류의 삶을 살아내기도 한다. 마침내는 시간의 구속에서도 벗어나 자유인이 되어 두두물물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을 얻어 천기누설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어느 한 경지에 머물러 자존하거나 방심하지 않고 끝없이 변화하는 변신술을 통해 다시 모든 것을 놓고 자유인이 되는 방하착放下着의 구도의 길을 떠나고 있다. “한세상 신나고 즐겁고, 신명나게 살기로 했다… 꿈결 속에 살다 본즉 사랑도 삶도 시도 그 무엇도 다 가능한 일이었다”라고 시인이 2013년에 펴낸 시집『호랑이 장가가는 날』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유유자적, 즐기며 언어의 신이 되어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상상력의 장을 펼치는 시세계가 앞으로 더욱 크고 깊은 화엄세상을 낳기를 바란다.
― 이혜선(시인)
고전시학이론에서 흔히 쓰이는 신사神思란 용어는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적 사유능력을 의미한다. 즉 ‘서두르지 않아도 빨리 갈 수 있으며, 직접 가지 않아도 이를 수 있는’ 무궁무진한 형상적 예술 사유를 말한다. 이러한 신사의 구사에 있어 박제천 시인은 탁월하다. 그의 시세계는 그야말로 화엄적 상상의 바다를 노니는 자유 자재함을 보여주는 신사의 시학으로서, 현 단계 한국 현대시의 깊이와 높이의 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노년시학의 한 획을 그으며 독거의 낙을 통해 지복의 세계를 보여주는 박제천 시인의 시가 한국시의 높이와 깊이를 더해주기를 기대한다.
― 고명수(시인, 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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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천 시인∥
∙ 서울 출생.
∙ 동국대 국어국문과 수학.
∙ 1965~66년『현대문학』 등단.
∙ 시집 『장자시』『달은 즈믄 가람에』『호랑이 장가 가는 날』『천기누설』등 15권.
∙ 저서 『박제천시전집(전5권)』『시업 50년 박제천시전집(전5권) 2차분』
∙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동국문학상 등 수상.
∙ 현재 문학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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