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 봄호 논쟁문화의 장
공감과 치유의 노래
---나태주의 시세계
이경수
1.
「풀꽃」의 시인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나태주는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며 등단해 40여 권의 시집과 다수의 산문집 등을 출간했고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나태주의 시에 대한 비평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비평이라는 징검다리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그의 시가 독자들과 직접 소통이 가능한 쉬운 시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있는 시대에 시는 여전히 문학 본연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업성이나 대중성과 거리를 두고 있는 장르 고유의 속성이 시단의 주류에서 통용되고 있고 시 독자의 상당수가 시인을 지망하는 독특한 구조도 시가 고유성을 지키는 데 기여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설사 ‘인공지능-시인’과 ‘인간-시인’이 경합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시인들은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는 방식으로 ‘인공지능-시인’에 대응할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가 어렵다는 독자들의 선입견이 독자들을 좀 더 쉽게 다른 대체 장르나 읽을거리를 찾아 이동하게 한 것 또한 사실이다. 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독자들의 상당수는 시 읽기의 어려움을 통과하려는 시도를 진지하게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난해성 논란이 그대로 좋은 시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쉽고 평이한 언어로 쓰인 시는 평단에서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거나 대중성에 영합하거나 깊이가 없는 시라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읽기 쉬운 시라고 해서 쓰기도 쉬운 시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쉬운 시에 대해서 오랫동안 통용되어 오던 편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나 또한 젊은 날 이런 편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는데 천상병의 시를 읽으면서 쉬운 시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태주의 시도 오랫동안 쉬운 시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다작의 시인이라는 점도 이런 편견을 부추기는 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풀꽃」이 대중적으로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그런 편견에서 얼마간 벗어났을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나태주 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 또한 그동안 나태주의 시를 관심 있게 읽어오지 않았다는 고백을 하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2.
나태주의 시는 자연에서 건져 올린 시이다. 많은 서정시가 그렇듯 그의 시에는 꽃과 나무와 강과 구름 같은 자연이 자주 출현한다. 단지 대상으로서만 자연이 호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는 자연의 일부이자 자연과 혼연일체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제자들에게 시의 효용성을 설파하면서 시를 읽으면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나태주의 시도 그런 공자의 전언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겠다. 다만 나태주의 시는 효용의 차원에서 자연의 세목을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시를 발견하고 사랑을 발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연은 나태주 시의 원천인 셈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1」 전문
사랑을 빼고 나태주의 시를 논할 수 있을까? 나태주의 시에는 사랑의 마음이 넘쳐 흐른다. 그것은 대개 대상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서 비롯된다. 나태주를 대표하는 시 「풀꽃·1」 역시 마찬가지다. 풀꽃은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춰야 비로소 볼 수 있다. 대개 봄이 오면 민들레, 제비꽃, 냉이꽃, 꽃다지, 쇠별꽃, 꽃마리, 씀바귀꽃, 괭이밥풀꽃 등 다양한 풀꽃들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피는 시기를 알고 아래를 살피며 걷다가 쪼그려 앉아야 제대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아야/예”쁜 줄 알고 “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화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깨달음이다. “너도 그렇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이 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생명도 사랑할 줄 아는 화자의 시선에서 나온 인식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너’에는 작은 풀꽃뿐 아니라 이 시를 읽는 독자도 포함된다. 이러한 사랑의 확장성이야말로 이 시가 지니는 공감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누구에겐가 말해주긴 해야 했는데
마음 놓고 말해줄 사람 없어
산수유꽃 옆에 와 무심히 중얼거린 소리
노랗게 핀 산수유꽃이 외워두었다가
따사로운 햇빛한테 들려주고
놀러온 산새에게 들려주고
시냇물 소리한테까지 들려주어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차마 이름까진 말해줄 수 없어 이름만 빼고
알려준 나의 말
여름 한 철 시냇물이 줄창 외우며 흘러가더니
이제 가을도 저물어 시냇물 소리도 입을 다물고
다만 산수유꽃 진 자리 산수유 열매들만
내리는 눈발 속에 더욱 예쁘고 붉습니다.
-「산수유꽃 진 자리」 전문
그의 시가 어떻게 사랑을 확장해 가는지 잘 보여주는 또 한 편의 시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비밀스러우면서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동반한다. 이 시의 화자도 그랬던 것 같다.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하고 “누구에겐가” 자랑하고 싶었는데 “마음 놓고 말해줄 사람 없어” “산수유꽃 옆에 와 무심히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소리를 “노랗게 핀 산수유꽃이 외워두었다가/따사로운 햇빛한테 들려주고/놀러온 산새에게 들려주고/시냇물 소리한테까지 들려주”었다. 사랑의 말은 산수유꽃을 거쳐 햇빛에로 산새에게로 시냇물에게로 계속 퍼져 나간다. 화자가 속삭인 사랑의 말은 공간적으로 퍼져 나가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적으로도 확장되어 흐른다. “여름 한 철 시냇물이 줄창 외우며 흘러가더니/이제 가을도 저물어 시냇물 소리도 입을 다물고/다만 산수유꽃 진 자리 산수유 열매들만/내리는 눈발 속에 더욱 예쁘고 붉”게 열린다.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랑의 말도 함께 흘러 마침내 예쁘고 붉은 산수유 열매로 열린 것이다. 내리는 눈발의 흰색 이미지와 붉은 산수유 열매의 붉은색 이미지가 대비되어 사랑의 확장과 결실이 선명한 이미지로 아름답게 그려진다.
살아서 숨 쉬는 사람인
것만으로도 좋아요
아믄, 아믄요
그냥 거기 계신 것만으로도 참 좋아요
그러엄, 그러믄요
오늘은 전화를 다 주셨군요
배꽃 필 때 배꽃 보러
멀리 한 번 길 떠나겠습니다.
-「꽃 피는 전화」 전문
나태주의 시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게 그려지곤 하는데 이 시도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시이다. “살아서 숨 쉬는 사람인/것만으로도 좋”고 “그냥 거기 계신 것만으로도 참 좋”은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은 그리움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아믄, 아믄요”나 “그러엄, 그러믄요” 같은 고향의 말을 하게 만드는 존재일 것이다. 그리운 이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사랑이 꽃 피는 전화이자 그리움이 꽃 피는 전화이겠다. “배꽃 필 때 배꽃 보러/멀리 한 번 길 떠나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존재는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이거나 그리움의 대상일 것이다. 나태주 시의 사랑은 이렇게 사람을 향한다. 이 시를 읽는 독자들 또한 고향에 있는 그리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아믄, 아믄요”, “그러엄, 그러믄요”는 화자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공감의 말이다. 이 시를 읽는 독자들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화자를 따라 “아믄, 아믄요”, “그러엄, 그러믄요”라고 중얼거리며 멀리 보고 싶은 이를 향해 길 떠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될 것이다. 공감을 불러오는 나태주의 시는 독자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나태주의 시가 치유의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이런 공감력에서 오는 것이다.
3.
나태주 시가 발휘하는 공감의 힘은 자연이라는 원천에서 발견한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낮추는 자세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사는 일」에서 나태주 시의 주체는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고 하루하루를 긍정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세상에 나를 던져보기로 한다”. “퇴근 버스를 놓친 날 아예/다음 차 기다리는 일을 포기해버리고/길바닥에 나를 놓아버리기로 한” 것이다.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땀 흘리며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경험을 기억하며 “누가 나를 주워가 줄 것인”지 일부러 세상에 자신을 던져보기로 한 것인데 이를 통해 “나는 달리는 차들이 비껴가는/길바닥의 작은 돌멩이.”(「사는 일」)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특별하거나 선택받은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길바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찮고 흔한 돌멩이로 인식하는 시인의 시선은 낮은 자리에서 더불어 돌멩이로 구르며 대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인식하는 시선을 보여준다. 그의 시가 쉬운 말로 이루어진 시를 고집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런 시선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까?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시·1」 전문
나태주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일은 “마당을 쓸”거나 “꽃 한 송이 피”는 일처럼 “지구 한 모퉁이”를 밝히는 일이다. 마당을 쓰는 행위 덕분에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지고 “꽃 한 송이”가 피어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듯이 “마음속에 시 하나 싹”트자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다고 시의 주체는 말한다. 마당을 쓰는 일과 꽃 한 송이 피는 일과 시를 쓰는 일은 시의 주체가 “지금 그대를 사랑”하는 일과 동일한 무게를 지닌다. 모두 지구 한 모퉁이를 깨끗하고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인 셈이다. 사랑과 긍정의 시인 나태주는 시를 씀으로써 지구 한 모퉁이를 밝히고자 한다. 그것은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시·2」 전문
시의 주체는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버려진 채 빛나는/마음의 보석들”을 “그냥 줍는 것”이 시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거나 버려둔 것에서 “빛나는/마음의 보석들”을 발견할 줄 아는 것은 나태주 시인이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특별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서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어머니나 아내나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아내와의 소소한 일상에도 시가 숨어 있고, “담장 위에 호박고지 가을볕”(「눈부신 속살」)에 놓인 풍경에도 눈부신 시가 있다. “직장을 그만둔 뒤” “가끔은 아내 따라 시장에”(「그날 이후」) 가는 일상 속에서도 시가 발견된다. 나태주 시인의 시가 어렵지 않은 까닭은 그가 생활의 감각을 잊어버리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다른 아이들 모두 서커스 구경 갈 때
혼자 남아 집을 보는 아이처럼
모로 돌아서서 까치집을 바라보는
늙은 화가처럼
신도들한테 따돌림 당한
시골 목사처럼.
-「서정시인」 전문
나태주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서정시나 서정시를 쓰는 시인을 소외시킨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 모두 서커스 구경 갈 때/혼자 남아 집을 보는 아이”나 “모로 돌아서서 까치집을 바라보는/늙은 화가”나 “신도들한테 따돌림 당한/시골 목사”는 모두 소외되고 외로운 존재들이다. 오늘날 서정시인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시인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서정시인이기를 고집한다. 비록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한 외로운 존재로 남는다 해도 서정시인으로 남아 세상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겠다.
4.
나태주 시의 궁극은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시선에 있다. 그것은 자신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도 닿아 있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시선과도 닿아 있다. 나의 생명이 소중함을 아는 마음에서부터 타인의 생명의 소중함, 자연을 이루는 생명 하나하나의 존귀함을 아는 마음이 비롯된다.
누군가 죽어서
밥이다
더 많이 죽어서
반찬이다
잘 살아야겠다.
-「생명」 전문
내가 매일 먹는 밥과 반찬은 누군가 죽어서 나에게 오는 것임을 나태주 시의 주체는 잘 알고 있다. 생명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뿐 아니라 다른 생명의 소중함도 아는 것이다. 생명의 무게가 다르지 않음을, 한 생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이 죽어야 함을 아는 일이기도 하다. 생명의 무게에 대한 이러한 자각은 나태주의 시에서 “잘 살아야겠다”라는 긍정적 다짐으로 이어진다. 나태주의 시가 지닌 사랑과 긍정의 힘은 나태주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게 한다. “멀리서 보면 때로 세상은/조그맣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나태주의 시는 알려 준다. “배시시 눈을 뜨고/나를 향해 웃음 지어”(「눈부신 세상」) 보이는 ‘눈부신 세상’을 만나는 일은 이토록 끔찍한 시절에도 시를 읽으며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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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수 :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저서로 불온한 상상의 축제, 바벨의 후예들 폐허를 걷다, 춤추는 그림자, 이후의 시, 너는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다시 읽는 백석 시, 백석 시를 읽는 시간, 아직 오지 않은 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