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질질… 송철호·황운하·한병도·윤미향 임기 다 채울 판
정대협 후원금 유용 혐의 윤미향 기소 11개월만에야 11일 첫 재판
송철호 울산시장, 윤미향 의원/조선일보DB
정대협 후원금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전 더불어민주당) 무소속 의원에 대한 첫 본 재판이 오는 11일 서울서부지법 법정에서 형사 11부(재판장 문병찬) 심리로 열린다. 윤 의원이 작년 9월 기소된 지 11개월 만이다.
앞서 이 재판은 ‘공판준비기일’만 6차례 열렸다. 피고인 출석 없이 판사와 검사, 변호인이 쟁점을 정리하는 준비절차인 ‘공판준비기일’이 이처럼 많이 열린 사례는 과거엔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선 잇따라 나오고 있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청와대의 울산 선거개입 사건’도 공판준비기일이 6차례 열려 본 재판으로 가기까지 1년 4개월이 걸렸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직권남용 사건은 재판 준비에 7개월이 소요됐다. 공통점은 모두 여권 인사들이 피고인이란 점이다.
법원
반면, 뇌물·횡령 등 16개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직권남용·뇌물 등 15개 혐의로 기소돼 기록만 20만쪽에 달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은 준비기일에 1개월 정도 걸렸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기소된 여권의 선출직들이 재판 지연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판결 결과에 상관없이 임기를 다 채울 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미향 의원은 1심 본 재판이 열리기 전에 임기(4년)의 29%인 14개월이 지났다. ‘울산 사건’으로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황운하·한병도 민주당 의원도 마찬가지다. 같은 사건의 피고인인 송철호 울산시장은 임기(4년)의 4분의 3이 지났다.
‘울산 사건’의 경우, 김미리 부장판사를 대체해 새로 꾸려진 재판부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증인신문에도 들어가지 못한 상태다. 한 법조인은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의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임기의 4분의 3을 채운 상태에서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온 것을 두고 말이 많았는데 ‘울산 사건’ ' 윤미향 사건’ 재판은 너무 심한 것 같다”고 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지난 5월 12일 ‘김학의 불법출금 수사 무마’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고검장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이 이달 23일에야 열리는 것을 두고 “고검장 임기(1년) 이내에 1심 선고는 안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재판 지연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재판 준비를 위한 기록 복사를 두고 변호인은 ‘전체 복사’를, 검찰은 수사 보안을 이유로 ‘일부 복사’를 주장하면서 공판준비기일이 늘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 안팎에서는 “그런 상황을 ‘교통정리’ 하는 게 법원의 역할인데, 유독 여권이나 친정부 인사들의 재판에서 손을 놓는 것 같다”고 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 결과에 따라 직위 상실 여부가 결정되는 공무원들이 임기를 다 채운 상태에서 최종 판결이 나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법원이 불공정 시비를 자초하고 있다”고 했다.
★靑선거개입 재판부, 송철호측 PPT요구에 “이미 시간 줬다”
김미리 부장판사 병가로 바뀐 재판부
‘증거조사 순서 바꿔달라’ 변호인 갑작스런 요구에 ‘정해진 대로 하자'
2021년 6월 14일 오전 송철호 울산시장(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이진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이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사건 3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의 울산 선거개입 세 번재 재판에서 변호인이 증거조사 순서를 바꾸자고 하자 재판부가 증명책임이 검찰에 있음을 언급하며 당초 합의된 대로 하겠다고 밝혔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1-3부(부장판사 장용범 마성영 김상연)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송철호 울산시장과 송병기 전 울산 부시장,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공판을 열었다.
이날 송 시장 변호인은 “증인신문을 통해 새로운 내용이 밝혀지면 서증도 달라질수 있다”며 “재판 진행을 위해 서증조사보다 증인신문을 먼저 해 달라:고 했다. 아울러 재판부에 공소사실 쟁점에 대한 프리젠테이션(ppt)변론도 필요하다고 했다.
변호인은 “서증조사와 관련해 검찰이 입증취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증거능력이 부여되지 않은 진술내용들이 많이 포함된다”며 “예단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들이 서증조사에 포함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자 검찰은 “그동안 이견이 없다가 증거조사를 목전에 두고 순서를 변경해 달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어떻게 입증할 지도 검사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맞섰다. 검찰은 재판이 지연된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인이 동의한 증거에 대해 서증조사를 먼저 하기로 했고 피고인측도 이견이 없었다가 갑자기 순서를 바꾸자고 했다는 것이다.
변호인의 PPT변론 주장에 대해서도 “이미 공소사실에 대해 충분히 진술했고 증거조사가 시급한데 또다시 모두진술에 준하는 PPT를 하면 재판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송철호측 PPT요구에 재판부 “이미 시간 줬다..반복은 안돼”
재판부도 “이미 시간을 줬었는데 그때 준비가 안 됐다고 다시 반복해 기회를 달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재판부는 “변호인들이 증거조사 순서에 민감하고 어떤 부분을 우려하는지 잘 알고 있다”며 “증거능력 없는 증거가 나오거나 다른 의미로 설명이 이뤄지면 그때그때 변호인이 반박하면 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그거(변호인의 우려) 때문에 증거조사 순서 자체를 증인신문 모두 한 이후에 나중으로 돌리자는 것은 증명책임이 검사에 있는데 증거조사 순서를 다른 쪽(변호인)에서 정하는 것 같아서”라며 당초 합의된 대로 서증조사를 먼저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도 한병도 전 정무수석, 이진석 국정상황실장 등 일부 피고인들은 증거에 대해 의견을 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음 공판 전 두 차례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이들에 대한 증거 의견을 정리하기로 했다.
작년 1월 말 기소된 이 사건은 김미리 부장판사가 공판준비기일로만 1년 3개월을 끌면서 지난달 10일까지 본 재판이 한번도 열리지 못했다. 지난 2월 정기인사에서 이 재판부는 일반 합의부에서 부장판사 세 명으로 구성된 ‘대등 재판부’로 구성이 바뀌었다.
이후 김 부장판사가 갑작스럽게 질병휴직을 신청해 재판부에서 빠졌고 서울중앙지법은 마성영 부장판사를 투입했다. 새로 구성된 재판부는 지난 5월 10일 첫 재판을 시작으로 정기적으로 공판을 열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준비기일 1년 3개월은 누가봐도 비정상적이었다”며 “피고인 숫자가 많고 갑작스런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어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재판부가 비교적 상황을 잘 정리하면서 궤도를 찾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