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가깝게 지내면서 모시는 선생님이 제게 ‘토마스 울프(Thomas Wolfe’의 『그대 다시는 고향이 가지 못하리(You can’t go home again)』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나온 지가 너무 오래 된 책이라 근래에 생긴 도서관에는 그 책이 없어 읽지를 못했습니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You can’t go home again)』는 미국 작가 토머스 울프가 1940년 발표한 소설의 제목입니다. 『천사여, 고향을 보라』『때와 흐름에 관하여』『거미줄과 바위』와 함께 울프의 4대 걸작으로 꼽힌다고 하는데, 국내 소설가 이문열이 1980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도 이 책의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 가리』는 미국 뉴욕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유럽으로 훌쩍 떠난 작가가 방랑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의 삶을 소설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대표작에 고향이란 주제가 반복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울프는 평생 잃어버린 고향에 천착(穿鑿 : 끝까지 캐다)했다고 합니다. 그 천착은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투영돼 평론가들은 울프의 모든 소설을 사실상 자전소설로 본다고 하는데 저는 이 책들을 읽지 못했습니다. 너무 오래 전에 나온 소설들이라 아주 오래 된 도서관에 가야 있을 거라고 합니다.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등의 영향을 받은 울프는 시정이 넘쳐흐르는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작가들이 흔히 그렇듯 번역서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해, 국내에는 1995년 청목사에서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란 제목으로 출판된 것을 마지막으로 절판 상태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목만은 남아 고향을 그리워하는 자들의 마음에 여전히 공명을 울리고 있다는데 우리에게 그런 고향이 언제까지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런데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우리에게 과연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입원 소식을 듣고 급히 차를 몰아 고향으로 내려갔다. 부모님 연세가 일흔을 넘긴 뒤부터는 작은 소식에도 가슴이 철렁하게 된다.
다행히 아버지는 밤사이 고비를 넘겼고, 옷가지며 짐을 챙기러 집에 다녀왔다. 그런데 병원과 집을 오가는 길에 행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워낙 작은 도시이기도 하고, 이전에도 인파가 넘치는 곳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풍경이 고즈넉했다면 이날은 을씨년스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길거리에 안 보이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나 했더니 과장을 좀 보태면 다들 병원에 있었던 모양이다. 엑스레이(X-RAY) 검사를 위해 오전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아버지를 모시고 검사실로 갔더니 이미 휠체어와 이동식 침대가 복도까지 꽉 차 있었다.
1990년대 초반 한 소설은 고향을 ‘가장 나이가 많은 도시’로 묘사했다. 변화가 없다는 뜻으로,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표현은 적확한 듯하다. 병원 복도를 지나며 각 병실 문 앞에 붙어 있는 입원 환자들의 나이를 대충 훑어보니 70대 초중반인 아버지는 고령자 축에 끼지 못했다.
병원을 제외하고는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들 대부분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상가에 걸린 간판만이 달라졌다. 어릴 때는 우유 대리점이었던 곳이 노인재가복지센터로, 학원 건물은 한국어교실과 한국문화체험 등을 제공하는 외국인 지원센터로 바뀌어 있었다. 이주민들이 이용하는 마트 등의 편의시설이 늘어난 것도 눈에 띄었다.
인구 감소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라는 이야기가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지만, 나고 자란 곳이 없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다른 상념을 불러왔다. 실은 7년쯤 전에 같은 제목의 글을 여기에 쓴 적이 있다.
그때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던 동명의 소설 내용을 언급하며 어쭙잖은 감상에 젖었는데, 이젠 진짜로 기억에만 존재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르면 기업의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일반적으로 ‘계속기업의 가정’을 한다. 말 그대로 기업이 존속하리라는 가정으로, 경영진이 기업 청산 또는 경영활동 중단의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청산·중단 외에 다른 현실적 대안이 없는 경우가 아니면 계속기업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인구 감소가 지방만의 문제가 아닌 터라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계속기업의 가정을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상경을 앞두고 아버지와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버지는 “세계 인구가 증가세인데 국가소멸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건 인도 같은 다른 나라 때문이고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고 반박하려다 곱씹어보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의 말처럼 노동자를 비롯한 이주민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일 테다. 초등학교 때 배운 ‘대한민국은 단일민족국가’라는 내용이 ‘사람은 좌측통행’, ‘뚜렷한 사계절’처럼 철 지난 지식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측통행으로의 변화에 따른 부작용은 크지 않았지만 단일민족국가에서 다민족국가로 이행하는 것은 뚜렷한 사계절을 사라지게 만든 기후변화만큼이나 많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세계일보. 이우중 국제부 기자
출처 : 세계일보. [기자가 만난 세상]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이문열 님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는 30대 초반에 읽었습니다. 지금의 우리 고향의 모습은 80년대 작가가 그렸던 그 고향보다 훨씬 더 쇠락해서 이제는 반겨 줄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고향은 고향이 아니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기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고향‘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말도 아닐 것 같습니다. 고향이라고 얘기할만한 것들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일 때는 고향이 가는 것이 가장 바라는 일이었고, 명절 때 멀리 고향에 가기 위해 스무 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가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었는데 요즘은 두세 시간 걸리는 고향에 가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4월 16일 일요일에 고향 오서산 아래 폐교가 오서초등학교에서 고향 방문 행사가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오서초등학교 졸업생은 30회 정도가 되는 것 같은데 이번 고향 방문에 참가하는 졸업생 기수는 여섯 기 정도가 될 거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별로 기억할 만한 일이 없어서, 옛날 사람들 만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고향은 잊혀지고, 그대는 이제 고향에 갈 날이 더 없어질 것입니다. 여우가 죽을 때는 제가 태어난 굴 방향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도 이젠 빛바랜 옛말이 된 것 같습니다. 어제 홍성, 금산, 보령 등에 큰 산불이 나서 산과 집들을 태우고 아직도 꺼지지 않아 큰 걱정입니다. 부모님이 안 계셔도 가족 다 떠난 곳이라고 해도 거기가 고향이라는 것이 바뀔 수는 없을 겁니다. 제 고향에 큰불이 났다고 걱정의 전화를 해주신 분들이 여러 분인데 그건 제가 제 고향에 대해 남들보다 더 애착이 커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저는 4월 16일에 고향에 갈 것이고 갈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가려고 합니다. 그 고향이 없어지지 않는 한, 제가 죽기 전에는 매 년 고향에 갈 생각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