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
표리부동(表裏不同)이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겉치레에 더 노력하고 있지는 않은가. 좋은 옷으로 휘두르고 얼굴은 예쁘게 뜯어고치며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속은 채우지도 않고 돌보지 않아 빈 양철 동이처럼 소리만 요란하지는 않은가.
옛말에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까지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라는 이직의 시다. 고려와 조선, 두 왕조를 섬긴 자신을 돌아보며 지은 것이다. 까마귀는 자신처럼 조선의 개국을 도운 충신이며, 백로는 조선의 개국공신을 비난한 고려의 충신을 뜻한다.
인간의 행위는 겉과 속이 다를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많이 가진 자가 속은 초라하게 비어 있을 수도 있고 겉은 보잘것없어도 속은 꽉 찬 이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인간만이 부여된 영혼의 크기는 겉으로 가늠할 수 없다.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수도자들은 겉은 초라한 누더기 하나 걸치고 있지만, 영혼의 내면에는 생명수가 흐른다.
인간을 창조하신 신은 시공을 초월한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런데도 인간을 사랑하시어 가장 낮고 비천한 모습으로 인간 세계에 내려오셨다. 당신의 크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세상의 방식과 다르게 오히려 초라한 모습으로 육화하시어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그 길을 가게끔 이끄셨다.
그 길은 수난과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었다. 십자가의 희생으로 부활의 희망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었다. 겉모습은 누구와도 비할 데 없는 초라하게 탄생했으나 가장 위대하고 큰일을 이루었다. 그 길은 희망이요 구원의 길로 진리이며 생명으로 많은 사람이 가고 있다. 그러나 결코 순탄하고 평탄한 길만은 아니리라.
우리는 가끔 산행하다 어느 길을 가야 할지 방향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여러 갈래의 갈림길을 만날 때가 그렇다. 그러나 그러한 곳에는 이정표나 길의 방향을 상징하는 표지가 있어 길을 잃지 않고 따라간다. 그 이정표가 희망으로 구원에 이르게 한다.
옛 어른의 가르침은 언행일치에 있다. 말은 속에서 나오며 행동은 겉의 표현이다. 말은 반듯하게 하면서 행동은 제멋대로 분수에 맞지 않게 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속에서 나오는 말과 겉의 행위가 일치하도록 노력함이 길을 잃지 않고 올바른 길로 간다.
첫댓글 비오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 이 시대에 너무나 많이 존재하는것 같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을 더 자주 보고 듣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