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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교회] 감사송에 이어지는 환호 ‘거룩하시도다’는 어떻게 노래하나요?
‘거룩하시도다’(Sanctus)는 ‘환호’(acclamatio)이며, 교우들과 사제가 함께 노래하거나 분명한 목소리로 낭송해야 하며(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79항, 148항), 성가대만 노래하거나 회중이 노래하는 부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온 공동체가 함께 노래하거나 낭송합니다(총지침 216항).
온 회중이 함께 노래하는 이유는 이것이 지상 공동체가 천상 공동체와 일치하여 함께 환호하며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시도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Sanctus)는 천상 공동체의 외침입니다: “거룩하시도다! [...]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이사 6,3; 묵시 4,8 참조) 후반부(Benedictus)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외치던 함성(마태 21,9 참조)으로서 ‘땅 위의 환호’를 드러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전에 전반부와 후반부가 성변화 전후로 분리되어 있던 것을 하나의 노래로 합쳐서, 미사를 통해 천상전례와 지상전례가 연결됨을 명확히 드러내었습니다: “우리는 이 지상의 전례에 참여하며 [...]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 전례를 미리 맛본다.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주님께 영광의 찬미가를 부르며, 성인들을 기억하고 공경하면서 그들의 친교에 참여하기를 [...] 기다린다.”(전례헌장 8장)
[교회 상식 팩트 체크] (7) 사순 시기는 40일이 아니다?
하느님 만나기 위한 정화의 기간을 상징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가 왔습니다. 사순(四旬)은 40일이라는 뜻입니다. 라틴어로도 40을 의미하는 ‘콰드라제시마’(Quadragesima)라고 부릅니다. 워낙 40이라는 말로 부르다 보니 당연하게도 사순 시기가 40일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달력의 일수를 세어보시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일단 사순 시기가 며칠인지 알고 싶으면 정확히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순 시기가 주님 부활 대축일 전이라고 생각해서 부활 전날까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사순 시기는 파스카 성삼일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성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떼어 놓지 않고 함께 기념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까지를 세어보면 되겠습니다. 올해는 2월 14일부터 3월 28일까지가 되겠네요. 세어보니 44일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순 시기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325년 열린 니케아공의회 즈음에는 부활 전에 40일 동안 준비기간을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사순 시기라는 말이 나온 것이지요.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노아의 홍수 기간은 40일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까지 걸린 기간이 40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일 동안 단식했고, 엘리야는 하느님의 산 호렙을 향하기 위해 40일을 밤낮으로 걸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에서 40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거치는 정화의 기간을 상징합니다.
무엇보다 40일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단식하고 유혹을 당하신 일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예수님께서 이 40일의 단식 동안 겪으신 유혹을 설명하면서 “교회는 해마다 40일간의 사순 시기를 통해 광야의 예수님 신비와 결합한다”고 밝힙니다.성삼일부터 40일을 거슬러 올라가면, 딱 사순 제1주일이 됩니다. 그런데 왜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 시기를 지내게 된 것일까요?
5~6세기경 신자들은 사순 시기에 ‘단식’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기쁨의 날이라 단식하면 안 됐습니다. 사순 시기 중 6일은 단식할 수 없는 날인 것인데, 신자들은 예수님처럼 40일 동안 단식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사순 제1주일 전 수요일, 지금의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 시기를 위한 단식을 시작하는 관습이 생겼고, 이날이 사순 시기의 시작일로 정착됐습니다.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은 단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재의 수요일부터 주일을 빼고 단식하면 부활 대축일 전까지 40일 단식을 맞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사순 시기는 정확하게 40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순 시기를 40일이라 부르고, 또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40일이라는 날수에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참회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한다는 사순 시기의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알기 쉬운 미사 전례] (7) 복된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참회
죄 고백은 곧 자비하신 하느님 찬미하는 일
-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청하는 인사를 하고, 참회를 할 수 있도록 짧은 침묵 시간을 가진 뒤 공동체 전체가 고백 기도를 바친 다음, 사제가 하는 사죄경을 바친다.
세계에서 꼭 가봐야 하는 명소 중 하나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꼽힙니다. 바다의 도시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카니발, ‘가면 축제’ 때에는 세계 각지에서 이 축제를 즐기려고 많은 관광객이 몰립니다. 축제는 1월 말에 시작해서 재의 수요일 전, 화요일에 끝납니다. ‘카니발(Carnival)’이란 단어는 종교적 배경 곧 사순 시기에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단식과 금육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 전통과 연관됩니다. Carnival은 라틴어 ‘Carnevale’에서 유래했으며, 이 단어는 ‘고기(carne)’를 ‘치우다(levare)’ 또는 ‘안녕(vale)’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곧, 카니발은 ‘고기를 치우다’ 또는 ‘고기여, 안녕!’이라는 의미이지요.
사순 시기를 맞이하기 위한 축제를 열심히 지내며 고기를 먹다가, 막상 사순 시기가 되면 왜 그런 축제를 했는지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기 파스카 축제를 위해 모인 교회 공동체는 축제의 기쁨보다는 먼저 참회의 성찰로 이끕니다.
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사제는 교우들과 하느님의 현존을 청하는 인사를 하고 참회하도록 권고합니다. 참회를 할 수 있도록 짧은 침묵 시간을 가진 뒤 공동체 전체가 고백 기도를 바친 다음, 사제가 하는 사죄경으로 끝납니다.
참회의 기원은 1세기 말경에 기록된 「디다케」(14,1)로, 성찬례에 참여하는 교우들은 먼저 서로 죄를 고백한 다음 깨끗한 제사를 바치라고 권고합니다. 1000년경까지는 일반적으로 예물 준비 전과 영성체 전에 모든 이가 공동으로 죄를 고백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1570년 「로마 미사 경본」이 나온 후로는 입당 행렬 후에 오직 사제와 봉사자만이 제대 앞의 계단 밑에서 시편, 공동고백, 사죄로 구성된 참회를 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미사 전례 개정위원회에서 참회의 위치에 대해서 논의한 결과 현재의 위치로 정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고백록」에서 ‘고백하다’라는 말이 두 가지 뜻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나의 죄를 고백하다’는 뜻과 동시에 ‘찬미하다’는 뜻이 있다는 거지요. ‘나의 한계와 약함 때문에 내가 하느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구원해 보려고 애쓰면서 죄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나의 이러한 한계와 약함,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지탱해 주시고 인내해 주시고 돌보아 주셨습니다’라고 그분을 찬미하는 일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나의 죄를 고백하는 일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알아뵙고 찬미하는 일이 되는 거지요.
파스카 찬송에서 “오, 복된 탓이어라! 그 탓으로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네”라고 노래합니다. 죄의 체험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죄의 자리가 우리가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는 자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찬가이지요. 물론 죄가 복되다고 계속 죄 속에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그분께 방향을 돌리는 전환이 있어야 하지요.
참회를 마무리하며 사제는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라고 사죄를 청합니다. 고해성사와 같은 사죄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의 참회 전례이기에 신학적, 전례적 사죄 효력을 지니는 것은 분명합니다.
[기도하는 교회] ‘감사송’이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지 쉽게 아는 방법이 있을까요?
감사송을 라틴어로 ‘praefatio’라고 하는데, 감사기도의 ‘서문’(序文)이라는 뜻이며, 예전에는 ‘감사서문경’이라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접두어 ‘prae-’는 ‘앞, 이전’이라는 뜻을 지니는데, 글의 서두나 시간의 앞을 의미하고 공간의 앞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감사기도를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인 동시에 공동체를 대표하여 앞에 나서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모든 감사송은 시작부, 본론, 마침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감사송의 시작부와 마침부에는 뚜렷이 구별되는 표현이 사용되기에 감사송이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작부에서는 사제와 교우 사이에 세 차례 대화를 주고받으며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당위성을 언급하는데 보통 다음과 같습니다: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 마음을 드높이. ◎ 주님께 올립니다. ╋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 거룩하신 아버지 [...]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본론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구원업적에 감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날의 축일과 전례시기의 특별한 신비에 대해 언급합니다.
마침부는 보통 “그러므로”로 시작하며, 이제 ‘천상 공동체’와 함께 ‘지상 공동체’도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노래한다는 점을 언급하여 찬양 노래인 ‘거룩하시도다’와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어떤 본문의 시작과 끝을 알려줄 목적으로 사용하는 시작 형태를 ‘protocollum’, 마침 형태를 ‘exocollum’이라고 합니다.
[전례력 돋보기] 축성 생활은 아까운 인생이 아닙니다 -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및 축성 생활의 날
2월 2일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이날은 연중 시기에 있긴 하지만 성탄절의 날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에 성탄 축제의 마지막으로 여겨집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며(탈출 13,2) 아들을 낳은 여자는 40일째 되는 날 정결례를 드려야 했습니다.(레위 12,1-8) 교회는 성탄절인 12월 25일 이후 40일째 되는 날이 2월 2일이기 때문에 이날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면서 정결례를 드린 것(루카 2,22-40 참조)을 기념합니다.
실제로 주님의 봉헌이 이루어진 예루살렘에서는 4세기 후반부터 이날을 성대하게 기념했습니다. 성모님이 예수님을 안고 성전으로 향했던 것처럼 신자들은 갖가지 초와 등을 밝혀 들고 예수님의 무덤 성당에 이르기까지 찬미가를 부르며 장엄한 행렬을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빛이신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되신 이날에 우리들도 각자 영혼의 빛을 밝히고,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봉헌의 의미가 가득한 주님 봉헌 축일에 교회는 특별히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기억합니다.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이날을 ‘축성 생활(vita consacrata)의 날’로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축성이라는 말을 성직자에게만 국한시켜 ‘봉헌 생활의 날’이라고 번역해 왔지만 2019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그 번역을 바로 잡아 넓은 의미에서 하느님께 거룩하게 봉헌된 수도서원을 한 이들 역시 축성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축성 생활은 아까운 인생이 아닙니다.” 이 말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22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미사의 강론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교황님은 “세상은 종종 축성 생활을 ‘낭비 혹은 소모(spreco)’된 아까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괜찮은 젊은이가 수도자가 된다고요? 저렇게 괜찮은 젊은이가 수녀가 된다고요? 참 아깝네요. 차라리 못생기기라도 했으면….’ 세상은 어쩌면 축성 생활을 과거의 잔재나 쓸모없는 삶으로 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날 교황님의 강론은 그 미사에 참례한 수도자들을 향한 것이었지만, 참으로 현실을 꿰뚫는 말씀은 우리들의 생각과 시선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역시 은연중에 수사님이나 수녀님들을 ‘아까운 인생’으로 여기기도 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서 수도 성소가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좀 더 특별한 방법으로, 좀 더 온전한 사랑으로 따르려고 선택하는 수도 성소는 참으로 고귀하고 소중한 삶입니다. 가난과 정결과 순명의 서원을 통해 자신을 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두 팔을 벌려 예수님을 껴안고 살아가는 축성 생활자들의 존재는 세상에 예수님을 드러내고 그분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일이 참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고귀한 삶을 아깝다고 여기고 안타깝게 여기는 시선의 이면에는 세상의 편리함과 풍족함에 젖어 있고, 세상의 논리가 예수님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보다 우선한다는 사고방식이 앞서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물질주의와 세속화의 흐름 속에 예수님께 전적으로 봉헌된 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그 소중하고 고귀한 일을 자신의 삶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들, 또 그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과 존중과 격려가 전해져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지향은 인생을 낭비하거나 소모하는, 아까운 인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고결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주님 봉헌 축일에는 성전에 봉헌되신 티 없이 맑으신 아기 예수님처럼 우리도 영혼의 등불을 켜고 깨끗한 마음으로 우리 삶을 봉헌할 것을 다짐합시다.
나아가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을 봉헌한 축성 생활자들의 사랑과 열정이 한결같이 밝게 타오를 수 있도록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기도에 담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연중 시기’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전례주년에서 대림 시기, 성탄 시기, 사순 시기, 부활 시기를 뺀 나머지 시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특별한 개념도 명칭도 없이 그저 “공현 후” 또는 “오순절 후”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것이 전부인 ‘자투리 시기’였습니다. 공의회는 이 시기를 ‘연중 시기’라 부르면서 하나의 단일한 시기로 보고 그 본연의 의미를 제시하였습니다.
전례주년의 여러 시기는 주님의 파스카 신비를 여러 특별한 측면으로 드러내는데, 연중 시기는 특별한 측면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핵심인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일의 사건이 지니는 신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연중 시기는 사순 시기 직전 곧 ‘재의 수요일’ 바로 앞 화요일까지가 전반부이며, 이후 부활 시기 마지막 날인 오순절 곧 ‘성령 강림 대축일’ 직후 월요일에 다시 후반부가 시작하므로 사순시기와 부활 시기 전후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이렇게 연중 시기 ‘한 가운데’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가 위치한다는 사실에서 연중 시기가 파스카 신비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시기임이 오히려 명백해집니다. 연중 시기의 ‘종착점’ 역할을 하는 마지막 주일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라는 점은, ‘교회가 성자 그리스도께로 수렴하는 구원역사를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연중 시기는 매일 주님의 파스카 신비 안에서 하느님께로 나아가 그분과 일치하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을 드러냅니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6) 학사모는 원래 신부님들 모자다?
비레타, 전통적으로 쓰던 사제의 모자
- 사제각모 ‘비레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는 전례 중에도 사제들이 착용하는 대표적인 성직자의 복식이었지만, 비레타 착용이 선택사항으로 바뀌면서 오늘날 비레타를 쓴 사제 모습을 보기 쉽지는 않다.
해마다 2월이면 대학마다 졸업 분위기가 물씬 느껴집니다. 졸업식을 상징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학위 수여식에서 쓰는 학사모가 아닐까 싶습니다. 학사모는 학사 학위를 받는 이들이 쓰는 모자를 일컫습니다. 모자의 상단이 딱딱한 사각형 모양이고, 술이 달려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졸업자들이 받는 학위에 따라 학사모, 석사모, 박사모라고 불립니다. 이 모자는 졸업식의 상징처럼 여겨져 유치원 등 어린이들이 졸업할 때도 사용하곤 합니다.
이 학사모가 원래 신부님들이 쓰던 모자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도저히 ‘모자’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실 교회에는 전통적으로 신부님들이 쓰는 모자가 있습니다. 바로 사제각모라고도 불리는 비레타(Biretta)입니다.
비레타는 챙 없이 단단하게 각이 진 형태로, 윗부분에 등마루 모양의 둥근 장식과 술이 달려있는 모습의 모자입니다. 비레타는 중세에 성직자를 양성하던 성당학교에서 유래했습니다. 성당학교 학생들은 교복으로 가운을 착용했다고 하는데요. 특별히 졸업생들은 재학생들보다 더 긴 가운과 비레타를 착용했다고 합니다.
이후로 비레타는 성직자들의 복식으로 사용돼 왔습니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는 전례 중에도 사제들이 착용하는 대표적인 성직자의 복식이었습니다. 지금도 추기경 서임식이라고 하면 교황님이 새 추기경에게 비레타를 씌워주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비레타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성화 중에 검은 비레타를 쓴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성직자의 복식에 따라 신부님은 검은색, 주교님은 자주색, 추기경님은 진홍색 비레타를 착용합니다.
한편 중세시대 성직자들을 양성하던 성당학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평신도들도 교리와 문법을 배우는 곳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당학교들의 문화를 바탕으로 설립된 대학들이 성당학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졸업식에 비레타를 착용했습니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학사모가 됐습니다. 신부님들의 모자 비레타와 학사모는 유래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사제들의 비레타 착용은 선택사항이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비레타를 쓴 신부님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도 비레타를 쓴 신부님이 계십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가면 비레타를 쓴 신부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명동대성당에 상주하면서 기도에 전념하는 ‘주교좌 기도 사제’들입니다.
주교좌 기도 사제로 계신 유승록(라우렌시오) 신부님은 “비레타를 쓰고 다니면 몸가짐을 더 조심하게 되고, 사제로서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소감을 말씀하시면서 “한 신부님은 과거 선배 신부님들이 쓰고 다니셨던 비레타를 쓰면서 그분들과 연대감을 느끼고 그분들의 수고와 사목적 열정에 감사하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고 비레타를 쓰는 신부님들의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알기 쉬운 미사 전례] (6) 주님의 현존을 청하는 인사
비언어적 표현 통해서도 하느님을 찬양
심리학자 메라비언(Albet Mehrabian)은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시각이 55%, 청각이 38%의 영향을 미친다고 하며, 정작 전달하고 싶은 말의 내용은 고작 7%라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각과 청각의 비언어적 표현을 읽어내는 시간은 0.1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입술을 통해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 자세와 태도 등으로 대부분이 이미 전달된다는 것이지요. 말보다는 동작과 자세와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소통 방식은 이미 미사에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사 거행을 위해 입당한 사제는 제대 인사, 십자성호 그리고 신자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의 동작, 그분의 현존을 청하는 인사말을 통하여 미사에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참된 희생 제사인 미사가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잔치라는 사실을 교회 공동체는 영혼 가득한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입당 성가와 함께 복사들과 행렬을 지어 제단 앞에 온 사제는 참된 사제이며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에 인사를 한 후, 제단에 오르고 주님께 대한 공경과 사랑의 표시로 제대에 입을 맞춥니다. 이 관습은 4세기 말경에 이방 종교의 영향을 받아 도입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큰 절로 대신하지요.
입당 성가가 끝나면 사제와 교우들은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을 합니다. 십자성호는 14세기에 사제가 제대 앞 층계에서 복사들과 함께 바치는 이른바 층하경을 시작하는 기도로 미사에 도입되었습니다. 2세기경 교회 예식에 들어온 십자성호는 입교 예식에서 주례자가 예비신자의 이마에 작은 십자가를 표시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현재와 같은 큰 십자성호는 5세기경에 나타났지만 널리 보급된 것은 13세기부터입니다.
현재의 미사 통상문에는 세 가지 인사 양식을 제시합니다. 첫째 양식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3장 13절에서 사도 바오로가 사용한 인사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둘째 양식은 사도 바오로가 편지 서두에 자주 사용한 전례적 인사에서 유래했지요.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로마 1,7; 1코린 1,3; 2코린 1,2; 갈라 1,3 등 참조) 셋째 양식인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는 신약과 구약에서 자주 나오는 인사이며(판관 6,12; 룻기 2,4이하; 1열왕 17,37; 루카 1,28; 2테살 3,16), 미사에 도입된 시기가 3세기 이전이라는 사실을 3세기에 기록된 히폴리투스의 「사도 전승」 4장과 25장에서 밝혀줍니다.
이러한 사제의 인사에 교우들은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Et cum spiritu tuo)라고 답하지요. 2017년 이전의 미사 통상문에서는 ‘영’(spiritus)이 없는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교회의 전통과 교부들에 의한 연구가 발전하면서, ‘영’이 사제 개인의 ‘영혼’이 아니라 서품식 때 받은 성령과 그 성령께서 주시는 직무 수행의 은사를 가리키는 것임을 확인하고 교황청에서 ‘영’을 꼭 넣어야 한다고 강하게 권고했습니다.
미사를 시작하면서 성호를 긋고 사제와 인사를 나누면서, 습관적인 태도가 아닌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예레 32,41), 곧 ‘진심’이 담긴 태도와 자세, 그리고 목소리는 미사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으로 이끌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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