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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길
창 32: 1-12
Ⅰ. 천군이 함께 가는 길입니다(1-2)
아람나라 군대가 도단성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를 잡으려고 도단성을 포위하였습니다.
아람 군대는 엘리사가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신세가 된 줄로 생각하였으나 천군의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를 둘러 진치고 지켜주었습니다.
결국 엘리사가 승리하였습니다. 천군이 함께하여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야곱의 일행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형 에서의 보복이 두려워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 때 야곱이 하나님의 군대(복수)를 보았습니다. 두 떼의 천군이었습니다. 즉 앞뒤에서 호위하고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서 야곱을 지켜주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길에도 천군이 지켜주십니다(히 1 : 14).
Ⅱ. 화평을 위해 가는 길입니다(3-10)
이삭이 결혼한 후에 20년이 다 되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잉태하였습니다.
이삭은 기도를 중단했으나 리브가는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리브가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동생 야곱이 장자의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대로 장자의 축복을 받았으나 형 에서는 빼앗긴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형제간에는 원수가 되었고 결국 야곱이 도망하여 외가에서 20년간 지내야만 했습니다. 거기서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하나님의 명을 받고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이 형에게 사자를 보내며 화해를 청했으나 첫 단계에서는 실패했지만 끝내 야곱은 형과 화해하고 서로 사는 길을 찾았습니다.
성도는 화평의 길을 살아가야 합니다.
Ⅲ. 기도하면서 가는 길입니다(11-12)
하나님께서 포로생활 하는 이스라엘에게 유다 땅을 에덴같이 회복시켜 줄 것을 약속하신 후에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고 하셨습니다(겔 36 : 37).
즉 아무리 하나님의 허락일지라도 기도를 통해서만 이루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길을 갈지라도 반드시 기도하면서 가야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와의 화해를 시도했으나 처음에는 실패하였습니다.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온다는 소식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기도 없이 시작하면 낭패를 당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이 때 비로소 하나님께 간구하였다고 분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결과 도망치려던 자신(8절참고)이 변화되고 형 에서도 변화되었습니다.
기도할 때에 모두에게 살 길이 열렸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2:1~12
이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지만 크게 나누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과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에서는 사람 편에서 보면 좋은 사람이요, 남자다운 남자였으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경건치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사람 편에서 보면 유약하고 야비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이 보실 때 축복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야곱은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표준과 하나님의 표준이 다릅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느냐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어떤 일을 만나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야곱이 벧엘 들에서 단신으로 평안히 누워서 잠잤던 것처럼 우리도 아무 위험이 없을 것입니다.
400명 용사를 거느린 에서를 만나서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이 우리의 피에 굶주려 할지라도 원수들 가운데서 조금도 해를 입지 아니합니다. 왜냐 하면 주께서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희 가정은 애들 셋이 다 가정을 이루어 나아가 자기들끼리 살고 우리 두 사람이 삽니다. 제 집에 와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대문도 없이 문만 하나 열면 방이 됩니다. 집안에 있던 웬만한 물건들은 애들이 세간 나면서 하나씩 둘씩 가져갔기 때문에 값이 나가는 물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그날 입는 옷, 밥해 먹는 주방기구,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어디 나가 다녀도 집 때문에 마음이 안 놓이는 일은 없습니다. 가끔 우리가 없는 동안에 다녀가는 사람이 있어도 가져갈 것이 없으니까 방안만 널어놓았지 없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둑이 다녀가면 “이번 감사에 걸린 것 뭐 없었나?” 하고 말합니다. 도둑한테 감사 받아 걸리는 것 없으면 평안합니다.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평안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역경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사실 분노에 가득 차 있는 형 에서로부터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야곱은 도무지 좋은 방도가 서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에서가 자기를 죽이고 망하게 하려고 오는 줄로만 생각해서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뒤에는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요 도우는 분이신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위급할 때 주님이 자기를 돌보실 것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려운 처지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두려워만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시지 않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우리의 형편을 그대로 아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울 수 있고 도우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평탄한 시기에는 그 조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폭풍우가 그에게 휘몰아쳐 오려고 하니 선원들이 풍랑을 피하려고 항구로 들어가는 것처럼 야곱은 자기 하나님께로 피해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곤란 중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구하지 못하고 그저 염려하고 불안해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믿으시면 그 형편을 낱낱이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에 랍사게의 편지가 왔습니까? 그러면 히스기야 왕처럼 주 앞에 나아가 그 편지를 내놓으세요. 병들어 죽어 가는 아이가 있습니까? 다윗처럼 주님께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요나처럼 깊은 곳에 빠져 있습니까? 깊이 빠진 그 밑바닥에서 우리의 기도가 솟아오르게 하십시다. 우리 마음 속에 어떤 어려운 일, 억울한 일이 있어도 주님 앞에 다 쏟아 놓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고 기도로써 하나님을 움직였습니다. 어떻게 기도하였기에 하나님이 움직일 정도로 역사가 나타났습니까?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12절을 보세요.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끊임없이 간구하는 힘이 여기에서 생긴 것입니다. 야곱의 기도는 그저 자기 마음의 소원만이 아니었습니다. 공연한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는 간구합니다.” 하는 자세입니다.
사실 야곱은 결점 투성이의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기도하는데는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씨름하는 야곱’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셨으므로 나에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면서 매달렸습니다.
진리를 소유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큰 힘이 됩니다. 왜냐 하면 진실한 사람은 그가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원이 있을 때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기도의 응답을 받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 이것은 우리의 청원의 근거가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에 의해서 청원이 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성경에서 찾아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모두 다 잊어버리더라도 새로운 약속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 마음 속에 잘 간수해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래 전에 선포된 것이지만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시므로 이 말씀을 우리는 변함없이 소중히 여겨야만 합니다.
이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이 성경 중에 보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금고 속에 귀중품을 보관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관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자세히 보세요. 야곱이 먼저 하나님께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한 다음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가 하나님께 내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귀한 것입니다.
전에 영국에 고든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평생에 신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클라크의 ‘Precious Promiser’(보배로운 약속들)란 책을 언제나 휴대하고 다니면서 자기에게 어떤 문제가 부딪치면 거기에 해당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를 두고, 이 말씀들이 진실됨을 또 주께서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면서, 이 말씀들을 영감한 주님 앞에 나아와서 그대로 간구했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그는 응답을 바라며 그대로 행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일생의 영웅적인 모든 면모는 다 그가 약속들을 굳게 믿은 데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 많은 사람이 이 약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은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안에 무엇을 약속했는지 알기 위해서 실제로 탐구하지 않아서 그럽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좋은 것들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또 자신들이 당면하고 있는 개인적인 현재의 고민거리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 베풀어 줄 은총들에 대한 약속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것은 유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상당히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성경을 읽어 왔지만 우리는 큰 유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록된 말씀 가운데는 무한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게 되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유익이 되겠습니까!
더구나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를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경우를 주의해 볼 때 우리는 더욱 큰 위안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사람의 형편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거기서 많은 교훈을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언약을 세우신 그 처지들이 우리가 부딪치게 되는 환경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은혜스럽게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와 위로가 충만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야곱에게 말씀하시고, 다니엘에게 말씀하시고, 또 바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그들 한 사람의 개인적인 처지에 관해서만 언약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 꼭같은 형편에 처한 우리에게도 역시 같은 언약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이 말씀은 소수의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널리 보편적으로 개방된 것이어서 모든 믿는 자들이 꼭 같이 이어받을 수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약속들은 처음 말씀을 들은 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그들의 같은 상속자인 우리에게도 역시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약속하셨습니까? 야곱은 약속의 상대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앞의 구절에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셨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내게 말씀하시기를 네 고향과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약속은 역시 내가 그와 같은 처지를 당하고, 그와 같은 성격을 가지며,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서 같은 형편에서 그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 섬으로 그 약속이 내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말씀이 하나님을 옴짝 못하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을 옴짝 못하게 하는 것에는 그 사람이 한 말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섭리를 확정하는데도 주님이 말씀하신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책임을 지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을 만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진실성을 너무 가볍게 취급해 버리고 있어서 약속을 소홀히 합니다. 약속을 철석같이 했다가도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면 그것을 헌신짝 버리듯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진실성을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오, 하나님. 주는 내게 복을 주시기로 자신이 결정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이신 것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므로 주께서 언약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계약을 맺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세운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일에 지키지 못하면 거짓말쟁이로 취급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나 그 사람의 능력이 미치지 못해서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자신이 약속한 바를 이행하려 힘쓰지만 힘이 모자라 그것을 지키지 못해서 마음에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주의 팔이 우리에게 닿지 않을 만큼 짧은 일도 없고 우리를 도울 수 없게끔 말리는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의 강한 것보다 더 강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작은 것이라도 사람의 가장 큰 것보다 더 강합니다. 주께는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자신의 하신 말씀에서 물러서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 은총을 베풀어 주의 종을 도와주소서. 나는 주께서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주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라고 간구하십시오. 주님의 약속에 의해 말씀하신 대로 이뤄 주실 줄 믿습니다.
3. 우리도 야곱처럼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를 기도의 무기로 쓰십시다.
주님의 은혜로운 약속으로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을 변호하는 구실로 삼으십시다. 야곱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이 티끌 가운데 엎드려서 하늘을 향하여 기도의 소리를 높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기도 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주여, 나는 주님께로부터 벌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감히 주님과 함께 있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주님,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께 부르짖으면 분명히 우리의 청원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약속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볼 때 내가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약속을 파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만일에 그 약속을 이행치 않는다면 그것은 그의 인격에 관한 문제이지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가 없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모든 것은 약속을 세우는 자의 인격에 따라 작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이사야서에 있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라는 말씀을 들어 기도하세요.
주님께 고하기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라고 주님께 말씀하세요. 주님은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을 맺으신 우리가 아무리 비참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진리의 하나님은 그 언약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기도 드릴 수 있는 힘을 북돋워 주십니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지 그것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위선자나 변덕쟁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입으로만 약속을 하시고서 실제로는 행치 않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실제로 우리가 그 약속의 이행을 받으려는 것보다 주님은 자신이 언약하신 대로 성취하시기 위해서 더욱 애쓰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범했을지라도 주님께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죄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내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내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은혜를 주시고자 기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용서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위험에 직면했습니까? 야곱도 위험에 직면했을 때 기도하기를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자기의 분노한 에서에 대한 자기의 두려움을 꾸밈없이 낱낱이 아뢴 것입니다. 다가오는 무서운 위험에서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서 야곱은 약속의 방패를 높이 쳐들고서 자기의 주 하나님께 아뢰기를 “만일 이런 재난이 불어닥친다면 주의 약속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에서의 칼이 우리의 피를 흘리면 불행한 일입니다. 그의 분노의 칼이 우리를 찌르면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면서 매달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될 때 모세도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만일 이 백성이 광야에서 멸절된다면 하나님의 크신 이름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세의 기도는 훌륭한 웅변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현재의 고민이 무엇입니까? 의식 문제 때문에 한숨 짓고 있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지키며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이지 아니하리라.”, “공중에 나는 새 들에 핀 백합화를 입히시고 먹이시는 주께서 먹을 것 입을 것 위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우리 식구가 먹을 것이 떨어지겠습니다. 주님, 나는 주님이 말씀하신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지 않나 보십시오.
참으로 얍복강에서 주께서 야곱과 씨름한 그날 밤의 기도, 애통, 간구가 그를 구한 것입니다. 결국 야곱이 에서를 이기게 된 것은 야곱의 작은 조치로 인한 것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그의 마음에 닿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수단과 계획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외친 그의 탄원으로 인해 모든 것이 해결된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에 어떤 형편에 이르고 어떤 처지에 직면한다고 해도 이것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근거해서 기도하시고 청원하시면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책임지시고 우리에게 넘치는 축복으로 안겨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