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산에만 가면 내가 옆으로 빠지는 버릇이 있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기에 등산코스를 머리에 넣고
가는데도
꼭 삼천포로 빠져 여럿 사람 생고생 시키는
이 버릇이 일상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니 마누라가 얼마나 애간장을 태우겠나.
영남이 하고 오대산 간 이후에 혼자서 산악회
따라 오대산에 또 갔는데 그 산악회가 백두대간 등반 중 놓친 구간을 보충하려고
계획된 팀이었다. 산악회 차에서 내린 곳은
야트막한 구릉이긴 하지만 어딘가 장엄해 보여
산세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일행을 뒤 따라가다가 양 갈랬길을 만나, 길은
만나게 된다는 것을 믿고 나는 밑 길을 택했다가 일행을 놓여버렸다.,
내 위치를 알 수가 없어 전화해 볼 수도 없고
개고생하며 고개를 넘어서니 고랭지논이 보이고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이화여대 수련원" 이라 쓴
현판이 보여 총무에게 전화했지 그런데 그 길이 산악회가 지나가야 할 길이라 어렵지 않게 나를 태울 수 있었다.
내가 차에 타니 일동이 한밤중에 홍두깨비도
아니고 기립하여 박수로 맞이하며 운전석 뒤 자석 자리를 양보해 줘 편안하게
오는데 한 사람이 옆으로 와서 정중하게 고개 숙이며
" 어느 산악회 소속이며 산행 경험이 얼마니 되시는 지요"
라고 한다.
" 나 58 산악회 소속이고 한 3~40년 되어요 "라고 했다.
정각산 그날도 타이탄 트럭을 타고 가는 중 "나는 무사하니 일정대로 진행하세요 "라고 총무에게
전화했는데 전달이 안 된 모양이다.
이 경우 말고도 소백산 나 홀로 산행 시 영주역에서 버스로 이동하여 희방사에서 연화봉 가는 중에 규홍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 소백산 혼자 산행 중이다 " 라고 전화를 끊고 비로봉에
올랐다.
비로봉에 서서 아래를 보니 힘들게 올라오는
등산객이 멋있어 보여 그리로 하산하면 희방사역이겠지 했는데 역은 보이지 않는다. 물어 물어
가까운 역에 도착하여 열차 시간표를 보니 자정 쯤 경주 가는 열차뿐이라 식당에 들어가 막걸리 마시다가 지갑을 잃어버리는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오대산에 있는 이화여대 생활관은 무엇이며 그 산이 오대산이 맞는지, 소백산에서 내려와 만났든 역은 또 웬 역인지
아리송하다. 하도 고생해서 생각하기 조차 싫었는데 이제와서 궁금하다.
박달재는 충북 제천시 백운면과 봉양읍의 경계를 이루는 시랑산(侍郞山, 해발 691m)의 산행 들머리가 되는 곳이다.
실제 노랫말에 등장하는 천등산 박달재의 天登山은 해발 807m로 박달재에서 남서쪽으로 약 9㎞ 이상 떨어져 있다
박달재 휴게소 입구에는 노래 가사를 적어 넣은 박달재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주위에는 寒碧樓 , 德周寺磨崖佛像이 있고, 그밖에 錦南樓, 八詠樓가 있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눈에 언뜻 들어온다.
고리원자력 본부 소속일 때 마누라, 해주, 진주 모두가
수안보 생활원에 입교하여 온천도 하며
고수동굴, 도담삼봉, 청풍호반을 견학하고
박달재를 지날 때 찍은 사진이다.
박달재 표지석에서 마누라가 진주를 안고 해주는 옆에 세워고 세 명이 찍은 사진이니 내가 사진사가 되어 찍은 사진이었다.
이 제천의 고갯길은 해발 453m로 1997년 박달재 터널 개통 후 관광 명소로 탈바꿈한 곳이지만 그 당시에는 특별히 마음먹지 않으면 가기 힘든 곳이었다. 참 귀한 사진이다.
얼마나 잘해준 것이 없으면 이런 게 귀하게 느껴지는 것 일까
첫댓글 2007년 8월 11일 밀양 구만산에 산악회따라 같이 갔을때에도 산 입구에서 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리더니 산은 올라오지도 않고 놀다가 택시타고 집으로 갔었던 적도 있지~
근데 우꼬이와 함께 추억속의 산행은 대부분 7~8월 한여름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