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요 55개 성씨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추적
마한의 주력인 박씨는 서역의 박트리아에서 기원한 밝족
김씨는 세계 3대 제국을 건설한 흉노족의 후예
이씨는 상고 4대 성인 중 한 사람인 고요의 후손
주요 성씨 중 1/3 이상이 서역에서 발원한 것으로 밝혀져
한국 주요 성씨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최초의 추적!
한민족은 고대 중원을 지배하다 한반도로 이주해온 민족!
한국 성씨의 역사적 기원을 평균적으로 2천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
이병도씨는 『한국고대사연구』(1976: 51~52)에서 청주 한씨가 기자(箕子)를 원조(遠祖)라고 한다거나 고씨의 시조가 고양(高陽)이라고 하고, 또 김씨의 시조가 소호 금천 또는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날조라고 주장했다. 『삼국사기』의 성씨 관련 기록은 모두 사대모화 사상에 기초한 것이라면서 자기네의 가계를 빛나게 하기 위해 중국의 전설적 인물이나 혹은 명인을 시조로 가식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한민족은 고대 시대에 성씨 없이 살다가 서기 6세기 경에 가서야 중국에서 한자를 수입해서 가짜 성씨를 갖고 살고 있다는 것이 이병도씨 이후 강단사학자들의 일반적 주장이다. 이들 주장의 초점은 한민족은 뿌리가 없이 살아온 천한 민족이며, 조상이나 시조라는 것도 모두 허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한민족의 시조에 대한 자기 부정과 폄하로 인해 우리나라 대부분의 문중에서는 성씨가 신라 또는 고려 시대에 생겨나거나 왕에게 사여받은 것으로 믿고 있다. 대전의 성씨 뿌리공원에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씨 본관들의 기원이 고려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성씨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성씨의 기원은 그것보다 훨씬 이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원의 성씨가 원시 시대에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만 신라나 고려 시기에 가서 성씨가 생겼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서기전 2세기 조한(朝韓) 전쟁을 기록한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에는 조선의 재상 한음(韓陰)과 장군 왕겹(王唊), 대신 성기(成己) 등이 등장한다. 이들이 한민족의 시조가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한국인의 절대 다수는 중원을 거쳐 이주해온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한반도로 이동할 때 모두 성씨를 갖고 있었다. 중원에 가장 먼저 정착해서 살았던 것이 동이(東夷) 한민족이므로 중국에 한국과 같은 성씨들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민족은 태호 복희씨를 비롯하여 염제, 황제, 치우, 소호 금천, 전욱 고양, 제곡 고신 등을 시조로 한 매우 오래된 민족이다. 중원에서 하·상·주 시대를 열어 나간 것도 모두 한민족들이었다. 그러나 전쟁이나 씨족 해체 위협 등으로 인해 동이족 중 유력 세력들이 한반도로 이주해왔다. 이주 시기는 성씨마다 다르다. 각 성씨들이 한반도로 이주했을 때 자리잡은 곳을 본관으로 삼았다. 중원에는 본관이라고 하지 않고 씨족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을 군망(郡望)이라 부른다. 일본에서는 백제가 멸망하기 이전까지는 최초로 이주한 지역을 아예 성씨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민족 성씨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해본 결과 상고 시대에 중원을 지배한 것이 바로 동이 한민족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인류의 인문 시조로 숭앙받는 태호 복희씨는 풍씨(風氏)인데, 박씨, 백씨, 배씨, 임씨, 하씨 등이 그 후손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리고 염제의 후손들은 강씨(姜氏)라 했는데, 강씨, 고씨, 최씨, 정(丁)씨, 손씨 등이 모두 그 후손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소호 금천의 후손으로 김씨가 있고, 이씨는 고요의 후손이다. 이처럼 중원의 상고 시대에서 한나라 시기까지 중원을 지배한 것은 한민족이었다. 그러나 서진 말기 이후의 5호 16국 시대, 당나라 시기 안사의 난(安史之亂), 당나라와 송나라가 교체한 오대십국(五代十国) 등 크게 세 차례에 걸쳐 중원에 대란이 일어나면서 중원의 북서쪽에서 이민족들이 대거 중원에 들어왔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중국인들이 형성된 것이다.
이 책자에서 우리나라 55개 성씨의 기원을 추적해본 결과 박씨, 백씨, 배씨, 안씨, 강(康)씨, 나씨, 노씨, 하씨, 마씨, 정씨, 소씨, 허씨, 조(曺)씨, 홍씨 등은 서역에서 비롯된 성씨로 밝혀졌다. 태호 복희의 후손이 박(巴=朴)로 나타났고, 백씨, 배씨, 임씨, 하씨 등도 복희의 풍성(風姓)에서 비롯된 성씨들이다. 그리고 강씨, 조씨, 한씨, 오씨, 신씨, 양씨, 우씨, 신(辛)씨, 최씨, 고씨, 정(丁)씨 등은 중원의 서쪽에서 비롯된 강족(姜族) 또는 서강족(西羌族)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염제 신농씨의 후손들이다. 이씨, 손씨, 송씨 등은 중원 또는 산동 지역에서 기원하였다.
강단학자인 이수건은 『한국 성씨와 족보』(2003)에서 최초의 토성은 조선 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토성(土姓)이라며, 이는 중국과 관련이 없는 성씨들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나주목’에는 토성(土姓)이 김(金), 나(羅), 오(吳), 정(鄭), 진(陳), 손(孫), 남(南), 박(朴), 유(柳) 등 아홉 개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들 성이 한국의 토착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이 책자에서 추적해본 결과 이들 아홉 개 성은 모두 중원에서 상고 시대부터 이주해온 성씨들이다. 중국과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라 중원을 지배하다 한반도로 이주해온 대표적 성씨들인 것이다.
나씨와 노씨의 경우 중원에서도 가장 오래된 성씨 중 하나이다. 나주 나씨는 중국 송나라의 나부(羅富)가 사신으로 왔다가 나라가 멸망하는 바람에 발라(發羅)현에 정착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금성 나씨의 경우에도 고려 초의 삼한 공신인 나총례를 시조로 삼고 있다. 광주(광산) 노씨의 경우 신라에서 광주백으로 봉해진 노해(盧垓)를 득관조로 삼고 있으나 고려 때의 노만과 노서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런데 광주라는 지명이 되살아난 것은 왕건의 고려 건국 이후이다. 그리고 나주라는 지명도 왕건 시기에 새롭게 옛 지명 나(羅)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왜 많은 지명 중에서 하필 광주나 나주였을까? 이러한 의문을 갖던 중 필자는 광주(光州)와 나산(羅山)이라는 지명이 중국의 하남성에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백도백과』에 따르면 하남성 광주에는 기원전 2030년 이전에 고대 광국(光國)이 건국되어 있었다. 광국이 멸망한 후 그곳을 광주라 불렀고, 광주의 치소는 지금의 하남성 광산(光山)현이다. 하남 광산현 바로 옆에는 나산(羅山)현이 있다. 광주와 관련하여 『백도백과』에는 “광주와 강소성, 절강성, 상하이, 민월 사이의 관계는 깊지 않고, 동이에서 왔으며, 예전에 양주지역에 속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지명의 도플갱어를 보는 듯한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남성 광주와 광산에는 노씨들이 살고 있고, 나산에는 나씨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광주(광산) 노씨들의 본관, 그리고 나주(금성) 나씨들의 본관과 한문으로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하다. 이를 역추적해 본 결과 이곳에 살던 나씨와 노씨들이 지명을 갖고 한반도로 이주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삼국지』 「한조」에 진한인들이 진시황의 진역을 피해 마한에 왔다고 했으므로 서기전 3세기 이전에 이미 마한이 성립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한의 치소는 나주시 반남면에 위치한 월지국이었고, 태호 복희의 후손인 월씨는 박씨, 백씨, 배씨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아울러 박씨와 나씨는 판순만 7대성으로 항상 같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월지국이 성립한 서기전 3세기에 이미 나씨와 노씨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이동할 때 광주와 광산, 나산 등의 지표지명을 갖고 이동한 것이다.
이들 지명은 왕건의 고려 건국 이후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나씨와 노씨들이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지명도 복제해 사용했기 때문에 광주, 나주라는 지명이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발라(發羅)는 박씨와 나씨들의 족명에 기초한 이름이다. 박트리아의 월지족 도읍은 박라(博羅)라고 하였고, 중원에도 박라(博羅)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라(羅)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배화교 세력이나 이집트 문명에서 태양신으로 숭배했던 태양신 라(Ra)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노씨와 관련하여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지리지」에서는 광주를 노지(奴只)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여기서 노지는 선주족인 노씨들의 땅, 즉 노지(盧地)를 간략하게 표현한 것으로 분석된다. 갑골음으로 노(盧)는 [gərə(ᄀᆞᄅᆞ)]로 빛(光)을 의미한다. 고려 초 씨족들이 부활하면서 이들은 예전 지명을 복원하는 데 열성적이었다. 그 결과 광명족을 가리키는 나(羅)나 광(光)이라는 씨족 명과 지명들이 고려 초에 새로이 되살아났다. 이는 그 이전부터 광주와 나산이라는 지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씨와 노씨는 영산강 유역의 선주족들이었다.
중원 최초의 나라로 주장되고 있는 하나라를 건국한 우임금은 서강족(西羌族) 출신이라는 것이 수많은 문헌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따라서 중원의 화하족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판명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우(禹)씨와 신(辛)씨, 곽씨는 모두 하우(夏禹) 임금의 후손들이다. 이뿐만 아니라 하(夏)나라는 축융족들에 의해 뒷받침된 나라였다. 축융 오손족들은 태고 시절부터 태양을 숭배했다. 이들 밝족과 축융족 등 동이족들이 중원과 사방을 모두 장악하고 살다가 한반도로 이주해와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리고 열도에 새로운 문명을 전수했다. 소(蘇)씨, 황씨, 한씨, 정(鄭)씨, 강(姜)씨, 조(曺)씨 등은 모두 축융족의 후손들이다.
이 책자에서 우리나라 성씨와 본관의 기원을 추적한 결과 한국 성씨는 서기 6세기 또는 고려 초 왕건의 사성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스스로가 상고 시기부터 성씨를 사용하였고, 그 제도가 오히려 중원으로 퍼져 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첫댓글 전세계 규모 1위 싼쌰댐 수몰지역이 하.상.주 문명 발원지역임.
알고 그랬을까, 모르고 그랬을까!
지들꺼였으면 저리 못했지.
우리는 보편적인 것을 즐기죠.
쉽게 말해서 누구나 인정하는데 무리가 없는 걸 말하는 것인데
문명이 발달한 곳에서부터 성씨가 발생하기 마련이죠.
그들이 번식력이 좋은 것은 지배계급이라서 많은 여자들을 탐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성씨가 널리 퍼질 것이고 그놈들 중에 똘아이가 나와서 다시 새성씨를만들고
시조라고 까불기도 할 겁니다.
문명발생지가 성씨의 기초가 될 것이고 그게 퍼져나가서 또다른 어떤 성씨를
만들겁니다.
성씨가 중요하지가 않죠. 그저 생존자체가 행복하게 살다가면 그만인데
줏대를 세운다고 성씨로 자기나라를 번영시키지 못하죠.
사생아도 많았을 것이고 그래서 모계가족은 아마도 성씨가 없는 시대가 됐을지도 모르죠.
북방민족은 모계중심사회라서 열악한 환경이라 씨만 뿌리고 가는 떠돌이 수컷들이 많았다고 하죠
그게 수렵민족이라고 한다죠.
가부장제가 되면서 성씨타령을 했으니 말이죠.
우리민족은 현 중국땅에서 세력을 넙혀지요
현재의 한반도로 강제이주 당하지요
강제이주의 주범은 이차대전의 세력인 일본세력 이지요 우리의 조상님은 중국대륙에서 살아고
일부분이 한반도로 옛날 에 이주
역사에 밝은분이 오서네요
부디 일본의 식민사관에 젖지 말고 우리 민족
고유의 역사를 밝혀 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esfosGREt0c&ab_channel=%EC%B1%85%EB%B3%B4%EA%B3%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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