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흑사병으로 무너진 행정조직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부르주아가 탄생했다. 그후 부르주아는 왕의 도우미로 지방 영주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다가 프랑스 혁명으로 왕과 귀족과 지방 영주들을 배신하고 자본가가 되었다.
중앙정부의 왕은 교회와 지역민들과 공모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가게 되었고, 그것의 중심에는 흑사병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었던 행정조직이 부르조아였다.
프랑스의 왕은 부르조아들을 교회로 보내 교회의 언어였던 라틴어를 배우게 하고 그것이 정부의 모든 행정 문서가 되었고, 그 어려운 언어는 무식한 귀족들을 속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나중에 귀족들은 자신들이 속앗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부루조아들은 왕을 도와 프랑스의 거든 모든 산업과 행정조직을 장악했던 것이다.
무식한 귀족들은 자신들의 무지함을 알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이 계몽주의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식한 귀족들의 계몽주의로 인한 교양은 또 다른 부루조아를 탄생시키는데 기여했을 뿐이다.
왕의 도우미였던 부루조아는 급기야 왕을 몰아내었다. 그것이 프랑스 대혁명이었던 것이다.
부르주아는 민주 혁명만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도 만들었다.
레닌, 모택동, 순원, 장개석, 호치민, 체게바라, 카스트로, 김일성, 박정희, 등 20 세기 이후 모든 혁명과 독재자들 또한 부르주아였다.
미셀 푸코에 의하면, 부르주아의 탄생은 흑사병으로 전 유럽의 인구 3분의 1이 사망하고 행정 공백을 채우기 위한 행정요원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이들은, 중세 절대 왕조의 도우미로서 지방 영주들의 세력을 막기 위한 중앙집권 왕의 도우미가 되었다.
이후 부르주아는 다양한 변신을 한다.
자본주의를 완성한 자본가가 되기도, 학자나 철학자가 되기도 하고 예술가가 되기도 하고 공산주의 혁명가가 되기도 하고 민주주의 권력자가 되기도 한다.
민주주의 정치를 완성한 영국에서도 부르주아는 중심 세력이었고 자본주의 역시 그들이 완성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의미를 혼동하게 되었다.
공산주의 혁명도 역시 부르주아의 작품임에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유럽의 절대 왕조의 중상주의가 부루조아 주도의 자본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던 셈이다.
사무라이라는 말의 등장은 헤이안 시대이다. 귀족들을 경호해주는 사람을 사무라이라고 부른 것이 시작인데, 구체적으로는 '시중들다'를 의미하는 옛 일본어 사부라우(さぶらう, 당시 표기로는 さぶらふ)에서 유래했다. 구체적으로는 사모라우(さもらふ)라고 썼던 것이 말이 변해 사부라우가 된 것인데, '사부라우'의 명사형(시중드는 사람)이 사부라이(さぶらひ)이고 이것이 다시 변형되어 사무라이(さむらひ)가 되었다.
그리고 1946년 정서법 개정에 따라 さむらい라고 쓰게 되었다.
백제 유민들이 일본으로 가면서 우리말 싸울아비에서 파생되서 사무라이라는 어휘가 생겼다는 유언비어가 1990~2000년대 국내에서 꽤 크게 퍼졌던 적도 있는데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실제로 싸울아비란 말이 문헌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일제시대에 이광수가 쓴 소설이고 그 무렵에서야 모습을 드러낸 어휘가 1400년전 백제에서 존재했을 가능성은 낮다.
사무라이를 한자로 쓸 때는 侍('모실 시')를 쓴다.
사무라이들은 양민들보다 높은 신분으로서 칼을 차고 다닐 권리가 있는 특권계급이었다.
본래는 전쟁에서 활약하는 무사와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었으나 역사학이 아닌 일반적인 용법으로는 구분 없이 쓴다.
구체적으로는 문관도 사무라이를 자처하며 칼을 차고 다녔으며 그런 면에서 무사(武士)와 사무라이(侍)는 엄격하게 구분된다.
일본 전국 시대에 사무라이들은 군사로서의 역할과 영주들의 참모 역할을 했다.
애초에 사무라이는 文武를 겸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통일을 하고 막부를 세우고 더 이상 사무라이들은 전쟁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도꾸가와 막부 시절에도 각 지방 다이묘들의 정부를 인정해주는 지방자치의 시대였다.
사무라이들은 영주들의 행정조직으로 변신을 했다.
이 부분은 정확히 프랑스의 부르조아와 일치한다.
사무라이와 부르조아는 왕의 행정조직이었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메이지 유신 전까지 눈 부신 활약을 하고 일본을 풍요로운 나라로 만들었다.
메이지 유신은 죠슈와 사쯔마 지방의 하급 사무라이들이 일으켰다.
하급 무사들은 성리학에 바탕을 둔 君爲臣綱의 가치를 둔, 젊은 하급 무사들 사이에서 천황을 받들고 외세를 물리치자는 尊皇攘夷 사상이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 후, 서양 제국주의 사상에 눈을 뜨고 메이지 유신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었던 사무라이들은 그들이 완성한 산업사회에서는 실업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후 사무라이들은 화투의 쓸모없는 조합인 8(や), 9(く), 3(ざ)를 단어로 만들고 '쓸모 없는 존재, 인생을 무모한 도박처럼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야쿠자로서 불리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들이 반사회적인 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집단으로 변하게 되고 일본 자본주의의 암적인 존재가 된다.
프랑스의 부르조아들은 프랑스 대혁명과 영국 자본주의 형성과정의 절대적 존재였으나,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제국주의 국가가 되는 기틀을 잡았지만, 그 후 자본주의 걸림돌이 되고 만다.
어쩌면, 자본주의는 마피아와 야쿠자들이 보여준 악마의 행동이 본래의 모습일런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