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끝
신용목
비 오는 풀숲에 들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비 갠 풀숲에서는 다시 모르게 되는 것들
이를테면
뱀, 비를 잠시 눕혀놓았을 뿐 이를테면
물속으로 사라지는 것
태양이 먼 능선에 허물로 벗어놓은 구름, 그러나 공원에 함께 온 너는 모른 척한다 아는 것을
다시 모르는 것을
그치다, 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의 눈에 잠시 남아 있는 꿈에서 본 슬픔
다시 오월이다 작년 오월도 다시 오월이었지만
작년이 되었고, 지금 구 도청 분수대는 공사 중이다
분수가 씻어주던 허공을 기계로 고치는 중이다, 오래전 오월 보름 동안 나는 전자공장에 다녔다
초록색 트랜지스터 단자 하나를 기판에 제때 꽂지 못해 컨베이어를 따라 빙빙 돌다가 넘어졌고
모두가 웃었다
소형 텔레비전을 만드는 곳이었는데
얼굴이 지직거렸다 안테나 좀 돌려봐, 비 오는 날 지붕에 나를 올려보내놓고는
왼쪽으로 아니 오른쪽 소리치던 형들처럼
지직거리던 브라운관처럼
모두가 웃었다
여전히 돌아가는 컨베이어 앞에 앉아 내 몫의 단자까지 너댓 개를 끼워 넣던 누나가
미안하다며, 발가락 끝에 끼고 슬쩍 들어보이던 분홍색 슬리퍼 한 짝
신발은 흠씬 젖어 있었다 마른 풀 몇 가닥 바지에 붙어와 산책로를 함께 걸었다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온 알바생이 차양을 들어 고인 물을 흘려보냈다, 사람은 비를
잠시 세워놓은 것 같다 가끔씩 흘러내린다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2. 4월호 ‘연애’ 개제, 《시와 반시》 2022. 여름호 근작시 ‘오월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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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언제나 여기서
추모시는 되도록 쓰지 않는다. 거절에 성의가 있을 수 없겠지만 성심을 다해 사양했다. 추모의 마음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내 전부라 하더라도 나의 글이 그들의 삶을 다 받아낼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에 뒤따르는 부끄러움이 늘 내 시를 앞질렀기 때문이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또 없지는 않아서 나는 누군가를 추모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복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이 『나의 끝 거창』이란 시집이다. 무엇이든 볼 수 있는 만큼만 말할 수 있고, 어디든 돌아올 수 있을 만큼만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오월 광주’는 알 수 없었고 알아서도 안 되었다. 진실은 오직 광주에만 있었다. 대학에 간 선배들로부터 귀동냥을 한 우리는 서너 명씩 나누어 광주행 버스를 탔다. 거창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하루에 두어 대밖에 없었고, 그마저 남원을 경유했는데 그 어름엔 어김없이 검문이 있었다. 우리는 지도를 보고 미리 외워둔 대로 산수동이나 운암동 어디 있지도 않은 친척집을 대야 했다. 금남로를 밟았고 분수대를 보았으며 YMCA 회관에서 ‘학살2’를 낭독하는 김남주 시인의 칼날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문제는 숙소로 가기 위해 대열에서 벗어났을 때였다. 하얀 파이버 체포조 두 명이 우리를 쫓아온 것이다. 미리 약속한 대로 흩어졌는데, 그 중 한 명이 하필 나를 선택했다. 달리기라면 자신 있었지만 역시나 그가 더 빨랐다. 나는 골목을 두 번 꺾어 2층 건물에 들어섰다. 1층이 잠겨 2층으로, 2층이 잠겨 옥탑으로 올라갔다. 옥상 문도 잠겨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사복경찰은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 계단에 쪼그려 앉았을 때, 처음 들었다. 열일곱 내 심장 소리가 내 몸을 울리고 불 꺼진 옥탑을 울리고 캄캄한 2층 건물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 나는 ‘시’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 후 모든 게 달라졌다. 평화롭던 세계는 적대와 모순으로 가득찼고 예속 속에서는 어떤 자유도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생을 생각할 때마다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아니면, 그 사람이 아니면, 그 순간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불행한 미래를 앞서 기억하는 습성 말이다.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우리에게는 있어서 그 상실의 공포가 세계를 온통 슬픔으로 에워쌀 때. 예컨대 사랑과 젊음이 그러해서 그 순간의 우리는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사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금의 나는 팬데믹이 불러온 소외와 결락의 불안감 전부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 달라붙는 불평등과 고통의 차이를 마저 체험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만나는 학생들 속에 여전히 숨어 있는 나를 만나곤 한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순간을 여전히 알 수 없는 삶이라는 이름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마음들 말이다. 아니, 그 시절 내가 광주에 올 때마다 빈 강의실에 박스를 깔고 하루 이틀씩 묵었던 장소가 지금 학생들과 시를 공부하는 조선대학교 본관이었으니, 설령 착각일지라도 아예 근본 없지는 않다고 떼를 쓸 참이다. 그렇다고 딱히 달라질 건 없지만 여기서 시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시와 이야기와 불가능한 상상을.
위기를 기회로 바꾸라는 말은 대체로 처세에 쓰인다. 그런 기회는 얻기보다 빼앗는 것이고 그게 능력이면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폐기하며 발휘된다. 다행히 팬데믹 덕에 우리의 자유는 조금 더 분별력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인권과 관련된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공공선’에 대한 적극적인 사유가 인권과 꼭 무관한 것만도 아니다. 재난에 대응하는 자원의 활용을 ‘지원’이나 ‘복지’라는 수혜의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권리이자 민주주의의 가치로 받아들일 기회를 주었으니까. 지금이야말로 공동체의 기획이 가능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 시들을 쓰면서 알아버렸다. 매순간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