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
손 원
일 년에 한 번 정도 예초기 사용할 일이 있다. 추석을 앞둔 벌초 때다. 그때쯤이면 초목이 무성해 제거하기가 힘이 든다. 조상 산소는 초목에 묻혀 묵묘처럼 보여 죄송하기도 하다. 특히 벌초를 한 산소와 비교가 되기에 열 일을 제쳐두고 산소 벌초를 하게 된다. 문중별 벌초 시기도 비슷하여 그때쯤이면 산야의 여기저기서 예초기 소리가 요란하다. 여름 막바지 더위에 벌초는 힘든 노동이다. 문중 벌초에 참석하는 이들을 보면 조상 숭배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음력 팔월 첫째 일요일은 문중 벌초 일이다. 사촌과 조카들 몇몇이 벌초를 한다. 4대조까지의 벌초로 오전이면 끝난다. 무더위에 반나절 수고는 그래도 할 만하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골골의 조상 묘를 찾아 벌초를 했다. 그때는 온종일 땀을 흘렸다. 세월이 갈수록 모든 일을 쉽고 간편하게 하려고 한다. 먼 조상 묘지는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며 벌초할 묘지도 절반 이상 줄였다. 부모산소만 벌초하는 이도 있다. 조상을 납골당이나 공원묘지에 모신 경우에는 벌초할 일도 없다. 어릴 때만 해도 벌초 때는 많은 친척이 힘을 합해 먼 조상 묘까지 챙겼다.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지만 장례문화의 변화로 묘지 쓰는 일도 점점 줄어 오래지 않아 벌초도 사라질 것이다. 조상의 산소가 있다면 벌초 정도는 하여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것이 자손된 도리다.
요즘 벌초에 예초기가 필수다. 예전에는 낫을 사용하여 많은 인력이 필요했지만 예초기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낫은 보조도구에 불과하다. 예초기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부럽다. 요즘 병영에서도 예초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군대서 사역병을 오래 하다 보면 삽질 낫질에 이골이 난다. 요즘 제대군인은 예초기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벌초 때 낫은 돌부리 주위나 구석진 곳을 정리할 때 조금 사용할 뿐이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이 낫으로 뒷정리를 하는 정도다. 기계사용에 무딘 나는 비교적 젊은 층이면서도 낫을 들고 뒷정리를 해 왔다. 무겁고 사용이 까다로운 예초기 사용을 기피한 것 같아 일행께 미안하기도 했다. 어쩌다 내가 예초기를 사용해 보면 너무 서툴러 예초기를 뺏기기까지 했다.
10여 년 전에 어머니 산소가 생겼다. 선산이 아닌 곳의 외톨이 산소로 가급적 혼자서 벌초를 해야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도왔기에 낫질은 비교적 능숙하다. 한두 해 아내와 같이 낫으로 벌초를 해 보니 예초기 생각이 간절하여 구입했다. 예초기 엔진을 등에 지고 기다란 파이프 끝에 달린 회전 칼날로 잡초를 베어 넘기는 것은 어느 정도 숙련이 되어야 한다. 회전 칼날을 땅바닥에 바짝 붙여 작동해야 하는데 자칫하면 칼날을 땅바닥이나 돌부리에 부딪치기가 일쑤다. 그러면 튕겨 위험하고 엔진이 꺼져 바닥에 내려놓고 재시동을 하는 등 번거로움도 있다. 그래도 낫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낫고,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면서 몇 년간 어렵게 벌초를 해 왔다. 일 년에 한 번 사용하는 예초기에 익숙해지는 데는 수년이 걸릴 것 같았다. 낫으로 벌초를 돕는 아내도 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어머니 산소 근처의 외할머니 산소도 벌초를 하기에 능숙한 예초기 사용이 절실하다.
지난해는 예초기를 가지고 갔다. 구입한 지 수년은 지났기에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도 혹시나 해 낫도 몇 자루 날을 세워 지참했다. 예초기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별문제는 없을 걸로 여겼고, 이참에 다소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날도 무척 더웠다. 출발 전 집에서 연료를 주입하고 시동을 걸어보니 문제가 없어 안심하고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30km 거리의 산소에 갔다. 현장에서 예초기 시동을 걸어 등에 지고 칼날이 달린 긴 봉에 동력을 연결하니 굉음과 함께 엄청난 진동이 있어 얼른 작동을 멈춰야 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이 확실했다. 수 킬로의 면 소재지까지 가면 수리하는 곳은 있겠지만 일요일이어서 문을 열었는지 확신도 없었고, 가서 허탕 치면 당일 오후 벌초를 마칠 수가 없기에 힘들더라도 낫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깔끔하게는 어렵겠지만 그럭저럭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을 했다. 그렇게 세시간 쯤 하여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예초기 사용을 못 한 게 너무 아쉬웠다. 고장 난 예초기는 적어도 일 년간 사용할 일이 없기에 그대로 창고에 보관했다. 몇 달 후 예초기 고장상태가 궁금하여 수리하러 갔다. 수리기사가 점검을 해 보니 고장이 아니었다. 예초기 칼날이 접합 홈에서 이탈된 상태였다. 지난해 예초기 칼날을 교체했을 당시는 문제가 없었는데 올해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예초기를 3년 정도 사용하니 칼날이 무뎌져 인터넷으로 새 칼날을 구입하여 자가 조립하면서 조임이 헐거워서 칼날이 홈에서 이탈되었던 것이다. 칼날 조립 미비로 진동이 심했던 것이다. 간단히 나사를 조여 내년 벌초를 위해 보관하고 있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어떤 일이든지 최적화되고 있다. 산업화 이전에는 인력 위주로 작업을 했다. 예초기가 없었던 시절에는 낫으로 벌초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예초기로 한다. 예초기 사용이 서툴다고 옛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예초기 사용에 익숙해져 올해는 당당하게 벌초를 해야겠다. (2023. 6. 20.)
첫댓글
벌초의 시즌이 왔네요. 예초기, 낫 연장 준비가 일의 반이니 잘 점검해야 겠습니다.
많은 산소를 돌보려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저는 도시에 자라서 낫질도 서툴러 부끄럽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