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어머니 제삿장을 보러 반여 농산물 시장에 과일을 사러 갔었다.
배 사과 도마도 바나나 참외 등을 사고는 호랑이콩을 한 팩 샀다.
시골에서는 두불 돔비라고 했는 데 여기서는 콩 표면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마치 호랑이 가죽처럼 생겼다 해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제삿날은 형제들 가족과 친지들이 모이므로 아파트 거실이 여러 사람을 수용하기에는 비좁다.
그래서 호랑이콩 두 팩을 그냥 차트렁크 속에 넣어 두었는 데 제사 파짓날에는 목포 전시회에 가고
어제는 산악회팀을 따라 함양 계관산과 천왕봉에 가느라 꺼내 올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문득 콩 생각이 나서 지하주차장에 파킹되어 있는 차의 트렁크를 열고 꺼내 왔다.
거실에 들고 들어와 보니 콩깍지에는 벌써 곰팡이가 허옇게 피어 있었다.
지하 주차장이라도 바깥 날씨가 더우니 쉬이 상했던 것이다.
어떤 꼬투리는 콩에서 발이 나와 있었다.
콩깍지를 만져 보니 허물허물 한 것으로 보아 썪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콩과 콩깍지를 보니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책에서 배운 '콩과 콩깍지'란 이야기가 생각났다.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고 노래했지만 이는 몰라서 하는 소리다. 꽁깍지는 콩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에 불과하지만
알고보면 콩을 자라게 하는 탯줄 같은 존재므로 어머니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콩이 다 익고 나면 콩깍지는 스스로 벌어져서 콩을 쏟아내고 자신은 거름이 되어 썩는다.
'자두연기(煮豆燃萁)'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삶을자, 콩두, 불탈연,콩깍지기자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는 꾀보였지만 글재주도 상당히 뛰어났다.
그의 맏아들 조비, 셋째아들 조식과 함께 삼조라 불리면서 건안시대의 문학을 꽃피우기도 했다.
특히 셋째는 재능이 탁월해 조조는 형인 조비 대신 태자에 책봉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조비와 조식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시기하면서 자주 충돌하였다.
그러던중에 조비가 조조의 뒤를 이어 위나라 문제가 되었는데도 그는 동생을 시기하여 괴롭혔다.
어느날 조비는 조식을 불러 명을 내렸다. 내 앞에서 일곱보를 걷는 동안 시 한 수를 짓지 못하면, 명을 어긴 죄로 엄벌에 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조식은 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곱보를 걷기 전에 시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콩을 삶는데 콩깍지로 불을 때니
콩이 솥 안에서 울고 있다.
본래 콩과 콩깍지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데
어찌하여 서로 삶기를 급하게 구는가
형과 아우를 콩과 콩깍지에 비유하여 본래 한 부모 밑에서 나왔는 데 왜 그렇게 들들 못살게 들볶아 대는가?라고
읊은 것이다. 이 시를 들은 조비는 느끼는 바가 있어 크게 부끄러워 했다고 한다.
이 시를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지었다고 해서 칠보시라고도 하는데, 후대에 시를 짓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칠보지재
(七步之才)'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