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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차부터 19차까지 촛불집회를 모두 참석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의 가슴 뭉클하고 감동적인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중 가장 압권이 바로 지난 3월 4일의 19차 촛불집회의 마지막 무대의 바로 이분이다
이름은 모르겠다
혹시 아는 분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 주시기 바란다
동영상을 보시면 알겟지만 공연 시작무렵은 평범하다
그러나 중간이후부터 수많은 우리 촛불이 저분의 추임세와 표효하는 목소리에 압도되고 빠져들어 모두 일어서서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추면서 그야말로 우리의 전통 가락에 몰입해서 열광했다
참 아쉬운건 저분은 저 열기를 그대로 더 하시려고 했으나 아마도 집행부의 만류가 있었던지 그대로 종료한거다
다음 집회에 집행부는 꼭 저분을 다시 모셔서 다시 한번 휘날레를 맡겨주시기 바란다
총재님의 민주종편 정청래쑈나 청래시대 팟캐스트에도 초청하셨으면 한다
대추리가 어쨌다고?
인터넷 과 아고라에서 설치는 "헛소리"를 위시한 수많은 군상들이 올리는 사진들이다
2006년 5월 4일
참여정부당시 대추리 농민시위모습인데 이걸 올리면서 심지어는 "제2의 광주항쟁" 이라고까지 우기면서 날뛴다
언뜻보면 그럴듯하게 보이고 그래서인지 아고라에서 저런 사진과 글은 영자가 친절하게 베스트에도 올려준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그 사건이 벌어져야했던 원인이 있고 그 원인부터 살펴 봐야한다
대추리사건의 원인은 용산 미군기지 이전이다
용산........
용산은 1231년 고려를 침입한 몽골군의 병참기지로 점령당했고 임진왜란당시에는 일본군의
보급기지로 그리고 1882년 임오군란당시 흥선대원군이 용산의 청군사령부로 납치되어 동작
진에서 배에실려 청으로 압송되는 수모를 당했던 곳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을 거치면서 청과 일본이 번갈아 점령했고 1904년 러일전
쟁당시 일본 제12사단에 의해 용산일대 약 300만평은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된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미 24군단 예하 7사단이 일본군 용산사령부를 접수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용산은 외국군에게 점령당한 치욕과 오욕의 땅으로 70년이 넘는 세월동안 기지주변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사실상 무정부상태로 해적이 날뛰는 소말리아수준에서 발전이 멈췄다
아니, 그건 용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의정부 파주 동두천 춘천 원주 부산 인천 대구..... 대한민국 전국에서 그랬다
항공기 소음과 고도제한으로 묶여버린 주변지역은 집창촌수준으로 변해 버렸다
용산 미군기지 (헤럴드 경제 펌)
용산기지 인근의 시가지 사진을 보라
저게 과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 시가지 모습으로 보이나?
그래도 저 사진은 그나마 개선된 최근의 모습이다
과거 7,80년대 당시에는 그냥 살벌한 철조망에 해골그림과 함께 "무단 접근하면 발포함" 이라
는 무시무시한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용산 미군 기지
1984년 개통된 동작대교는 원래 중앙청에서 용산미군기지를 통과해 과천까지 일직선으로 도로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그러나 미군의 반대에 막혔다
지상이 안된다면 지하도로를 뚫겠다는 양보안조차도 거부당했고
그결과 서울의 강남북을 연결해서 한강대교와 반포대교의 과밀교통량의 분산효과를 기대했던 동작대교는 병목현상과 교통지옥의 원인이 되어 버렸다
1990년 노태우정권에서 용산기지 이전이 추진되었지만 실패했고
2004년 노무현정부에서 확정되어 대한민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50여개의 미군기지가
용산기지와 함께 평택 대추리로 이전하기로 합의한다
반환합의 당시 오죽했으면 미국의 대표적인 강경보수 매파인 럼즈펠드 미국방장관조차
"한나라의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 기지가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라면서 이전에 동의했다
매년 이천오백만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뉴욕의 센트럴파크 도심공원
참여정부의 계획대로 용산기지를 인수하면 녹지공간이 절대부족한 삭막한 콘크리트일색의 서울에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미국 뉴욕의 거대한 센트럴파크 수준의 도심생태공원이 탄생한다
뿐만 아니라 강남에 비해 열악한 강북의 각종 기반시설과 도시계획 편의시설 녹지공간의 획기적인 발전과 부동산가격과 임대료의 균형 그리고 미세먼지와 매연의 감소 등등.....
그야말로 서울시민의 삶의 질은.. 아니 전국 50여곳의 미군기지가 있던 도시까지 그야말로 상전벽해수준의 변화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박근혜정권에서 전작권 인수연기와 함께 용산기지를 일부만 인수받고 그외의 용산기지와 동두천같은 지역은 미군이 그대로 잔류하기로 바꾸어버렸다
미군기지 잔류결정에 규탄시위하는 동두천 시민들.." 박근혜정권에 배신감! "
지난 67년동안 동두천시 면적의 42%를 미군에 내어주고 17조원대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며 미군 접객위주의 특수유흥업에만 의지할수밖에 없었던 동두천은 미군기지 평택이전으로 대기업 생산기지와 외국대학 유치등등.. 균형잡힌 도시발전의 계기를 맞아 희망에 부풀었으나 박근혜정권의 이전 연기에 이어 반환까지 불투명해짐에 따라 모두 무산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동두천 미군기지 "캠프 케이시" 의 전체면적만 무려 1,414만 8,760 m² (428만평)이다
미국대사관앞에 길게 줄을 선 한국인 행렬
(2008년 11월17일...한국이 미국의 비자면제 프로그램에 가입하면서 저 행렬은 사라졌다 (http://www.abraham.co.kr/bbs/board.php?bo_table=pds_bbs&wr_id=33&page=6 자료사진 펌)
지난 7,80년대
미국에 한번 가려면 입국비자를 받기위해 아침일찍 광화문 미국 대사관앞에서부터 길게 수십미터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삼복더위에도 그늘막조차 없는 인도위에서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행렬들
광화문근처를 지나가다보면 언제라도 볼수 있던 그 모습은 볼수록 처량하고 서글펐다
오죽했으면 당시 대신 줄을 서주는 알바도 등장했었다
국가가 힘이 없었고 가난하던 시절이니 어쩔수 없었다고?
1995년 단절되었던 미국과 국교가 재개되고 미국영사관앞에서 길게 줄을 서던 미국입국비자행렬이 재현되자 개혁개방이전의 세계최빈국수준의 베트남정부는 우천과 햇볕을 가릴수있는의자를 구비한 쾌적한 실내대기실을 미국정부에게 요구해서 관철시켰다
전 세계 어떤 나라도 수백년간 국가의 수도한복판과 전국 주요도시의 중심지역을 외국군의 주둔지로 내어주고 철조망을 치게 하고 접근하면 발포한다는 협박을 용인하지 않는다
단 한나라라도 그런 사례가 있으면 말해보라
미군 용산기지의 평택이전은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거쳐 비준동의 받았고 대추리 주민들과 45회 이상의 간담회와 150회이상의 설명회를 거쳐 전체 대상부지의 79%는 주민합의에 이르렀고 21%만 합의에 실패했다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의 평균 보상금은 6억원이다
10억원 이상의 보상금이 책정된 주민도 21명에 이른다
미군 기지 이전사업이 시작되기전인 2003년 이지역 땅값은 평당 4만5천원선이었지만 국방부는 평당 15만원 ~ 18만원으로 보상가를 책정했다
땅이 없는 저소득 임차농은 '평택 특별 지원법'으로 7천619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 보상금에는 주거이전비 697만원 이사비 72만원 이주정착 지원금 1천500만원 생활안정 특별지원금 750만원 주책구입 보조비 1천만원 생계지원비 월 30만원 (120개월) 이 포함되어있다
또한 그들이 계속 농사짓기를 원하면 서산 간척지를 시세보다 싼 가격에 제공받고 농지관리기금 융자를 제공했다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배려해줘야 했나?
오마이 뉴스 펌
전 세계 어느나라 공권력이 저렇게 주민들에게 몽둥이로 두드려 맞으면서 방어만 하나?
저 사람들은 대추리에서 농사짓던 순박하고 힘없는 농부들이 아니다
저 사람들에게 묻는다
국가의 수도와 전국 주요도심의 중심지역을 수백년부터 수십년간 치외법권지역으로 외국군에 내준 치욕스러운 현실을 바로 잡고 국가의 자존심과 도심의 균형발전을 이룰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냥 버려야 했는지?
힘든 농사
아무리 지어봐도 매년 적자만 늘어나지만 평생 해오던 일이라서 죽지못해 한다는 농사
그래서 젊은 사람은 모두 떠나고 아이 울음소리가 끊어져 버린 적막한 묘지 수준이라는 농촌
이대로 두면 머지않아 인적 끊긴 황량한 황무지로 변해버릴거라는 우리 농촌
그런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파격적이고 전례없는 보상과 혜택을 제시해도 거부하는 소수의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새까맣게 몰려와서 저렇게 백주대낮에 공권력을 오뉴월 개패듯 두드려 패서 내쫓는 당신들
좋다!
당신들의 약자를 지지하겠다는 숭고한 사회연대의식과 고귀하고 용기있는 행동에 경의를 표하겠다
그런데 이명박정권에서 터무니 없는 보상조건으로 삶의 현장에서 쫓겨나기를 거부했다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6명이 참혹하게 산채로 불에 타죽는 IS 생지옥수준의 용산 참사 현장에서는 왜 그토록 고매하시고 정의감에 투철하고 용감하신 당신들을 콧빼기도 볼수가 없었나?
용산참사 주요원인중 하나는 상가권리금이었다
용산 철거민들은 생업을 이어갈수 있는 실질적인 보상을 요구했지만 상가권리금이 감정평가항목에서 제외되어 그 금액은 실제 시설투자비나 인테리어 비용보다도 낮았다
당시 용산상가 세입자들이 받은 보상금은 겨우 몇달치 영업손실 보상금으로 금액이 삼천만원에 불과했고 세입자들은 이를 항의하다가 점거농성을 시작했고 엄청난 참사로 이어졌다
삼천만원...
평택 대추리의 보상조건과 한번 비교해보라
대한민국 흑역사 용산참사...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 모습
2009년 8월 5일 노조원들이 농성중이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이날 헬기까지 동원한 경찰특공대의 폭동진압용 대테러용 발사기와 테이저건을 동원한 초강경일변도의 진압작전으로 5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그중 부상당한 노조원 1명은 척추골절의 중상을 당했다
경찰특공대의 쌍용자동자공장 2차진압 장면
공권력을 개패듯 두드려패서 내쫓고 대추리벌판을 점령했던 용감무쌍했던 수많은 당신들이라면 저 용산참사현장과 평택쌍용자동차공장의 대테러진압전문 경찰특공대는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한데 왜 저곳에서는 당신들의 그토록 용맹한 활약을 볼수가 없었는지 대답해보라
우리 좀 솔직해지자
한마디로 노무현은 만만하고 이명박은 무섭다
노무현은 물고 늘어질수록 보상금 액수는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반대급부로 이런 저런 이권이 보장되고 성공하면 양대노총을 능가하는 또하나의 사회단체나 세력의 수뇌부가 될수 있다
게다가 아무리 극한폭력투쟁을 해도 노무현이 설마 우리를 강경진압하겠나?
그런데 이명박은 무섭다... 그것도 엄청 무섭다
괜히 건드려봤다가는 본전도 못찾겠다
농성만 했다하면 곧바로 대테러진압부대 투입해서 박살을 내고 가족이 보는 앞에서 산채로 불타서 시체조차 못찾는다
시위현장에는 얼씬도 하지말고 숨어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이거 아닌가?
아니면 어디 반박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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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5일
정꾸앙수는 저런 비장한 글을 올린다
"사막의 별이 지다!"
"가다피! 사랑하는 딸과 함께 자살하다!"
"나의 오랜 군생활을 통한 정보 비선라인을 통하여 얻은 극비사항이다"
그리고 아고라 네티즌은 댓글을 통해 이렇게 감격한다
"대단한 정보력이십니다!"
그러나....
무려 8개월뒤 그해 10월 25일 가다피는 비맞은 개처럼 도망다니다 혁명군에 잡혀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애걸복걸 구걸질하다가 총맞아 죽었다....
우선 흘러간 60년대의 재미있는 광고 하나 보자
진로가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장진호회장
선친의 뒤를 이어 진로경영권을 물려받아 공격적 경영으로 계열사 24개를 거느린 재계순위 19위 재벌이 되어 진로그룹회장에 올랐다가 97외환위기로 몰락한 황태자가 되어 진로그룹은 공중분해되어버리고 얼마전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또하나
지금은 사라진 기업과 제품이지만 적어도 60년대말까지는 라디오 광고에 자주 나오던 꽤 인기있던 제품이었다
그리고 지난 박그네정권 말기에 그네를 비판하는 팟캐스트 방송의 이름으로 다시 부활하여 지금도 하고 있다
저무렵 대한민국 광고사상 최초의 그야말로 피튀기는 대혈전이 벌어진다
바로 이거다
일제가 물러간뒤 아지노모토의 빈자리를 미원이 차지했다
그리고 한발늦게 그 자리를 노린 삼성의 미풍이 물량공세를 앞세운 엄청난 반격을 시작한다
골목마다 구멍가게의 제일 좋은 진열대를 차지하기 위한 양측의 영업사원간의 난투극이 벌어지고 가게 유리창이 박살나고 경찰이 출동하기 바빴다
그야말로 사생결단 한치도 물러설수 없는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싸움이 될수 없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이름 없는 일개중소기업에 불과한 미원에 비해 미풍은 국내최고의 재벌 오죽하면 돈병철로 불리던 삼성이 야심을 가지고 밀어부치던 제품이었다
삼성의 막강한 자금력으로 저가공세와 미원을 파는 점포에는 삼성의 모든 제품 공급을 중지하는 초강경책을 썼지만 결과는 처참했고 누적되는 적자를 견디지못한 미풍은 결국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만다
도무지 믿어지지않는 이 어이없는 결과에 삼성의 이병철회장은 "세상에서 내마음대로 안되는 세가지는 자식농사와 미원과 골프" 라고 탄식했다고까지 전해진다
패전의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거론되지만 중요한 한가지가 바로 국민의 민심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기업이 겨우 골목의 중소기업에 불과한 미원을 상대로 피튀기는 혈전을 벌이는 꼬라지가 보기싫었던거다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시작되던 시기
일제의 잔재가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기업의 경영은 글자 그대로 일본식 경영이었다
경영자 중심의 의사결정.저임금 근로자와 대량생산. 수출주도. 연공주의. 종신고용.평생직장.
심지어 당시 임시고용원으로 불리던 비정규직도 3개월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인정받았다
그랬던 대한민국은 정치민주화를 요구하는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후 노사관계에도 큰 변환점을 맞아 민주노총이 출범한다
기존 한국노총이라는 이승만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있으나 마나가 아니라 차라리 없는게 더 나은 권력의 시녀노릇이나 하던 어용노조를 배제하고 진정한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할 전국적인 조직을 건설하겠다는 민주노총의 선명투쟁은 기존의 생산직 노동자 위주가 아닌 사무직 운수노동자 서비스직으로 그리고 중소기업노조에서 대기업으로 심지어 방송민주화를 요구하는 1990년 kbs사태로까지 뻗어 나갔다
이 시기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노동자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권익을 보장받았던 절정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시 노태우정권은 막강해진 노동자들의 힘에 의해 휘둘리는 노사분규에 대항하기위해 3당야합의 초거대 집권여당과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만들어 공안통치로 맞선다
1990년 10월 22일
일명 "최틀러" 로 불리던 당시 최병렬 노동부장관은 "노동운동의 준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대책으로 노조의 불법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적극 활용하라" 라는 지침을 발표한다
1989년까지 기업이 노조를 상대로 한 손해보상 소송은 거의 없었고 있다해도 중도에 노사타협을 통한 파업종료시 쌍방 모두 소송을 취하하는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틀러노동부장관이후 기류가 완전히 바뀌었고 노조를 대상으로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금액이 기하급수로 증가했다
배후에는 정부가 있었다
노동계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노동부장관이 총지휘를 한거다
1991년 10월 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온 최틀러 노동부장관은 "노사분규중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불법 합법 파업을 가리지 않고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토록 강력 지도하겠다" 라고 발표했다
이후 재벌기업들은 발이라도 맞추듯 너도 나도 노조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가압류소송을 냈다
효과는 컸다
사측은 아주 작은 불법파업 근거자료라도 제시하면 법원은 즉각 가압류처분을 했고 기업은 노조의 적립금 노동조합원의 재산 월급 심지어 전세보증금 과 신원보증인의 재산까지 압류했다
그리고 1994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자리잡는다
최상의 전관예우를 자랑하는 판검사출신의 변호사들을 줄줄이 거느린 재벌기업들이 그럼 과연 그 이전에는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같은 엄청한 무기가 있다는걸 몰라서 못썼을까?
아니다.. 몰라서 못쓴게 아니다
미원 미풍의 싸움에서 보듯 일반국민들은노사분규를 볼때 저임금 세계최장노동시간 과 열악한 노사관계에서 절대적인 "을" 일수밖에 없는 노동자를 심정적으로 지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돈과 권력과 그외의 모든걸 가진 절대 "갑"의 위치에 있는 재벌기업이 가난한 노동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걸고 월급과 전세보증금까지 가압류를 했을때 돌아올 후폭풍이 무서웠던거다
그것도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첫 소송사례로 자신의 기업이 역사의 판례로 남는걸 두려워 했던거다
어쩌면 삼성의 미풍처럼 시장에서 처참하게 퇴출당할지도 모르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를 내가 먼저 할수없었다
그걸 3당야합을 통해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갖게된 노태우정권의 최틀러장관이 선두지휘를 하니 재벌은 아무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노동자와 노조의 지옥문을 열어 버린거다
1997년
대한민국은 국가부도위기에서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한다
그리고 그 조건중에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리해고 제한 완화.. 파견근로제 도입...
이로서 그때까지 일본의 경영방식을 본따서 형편없는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 세계최고수준의 산업재해 어용노조일망정 비정규직없는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정리해고가 남발되고 간접고용형태의 비정규직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의 파업은 전부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고 노동조합법 3조의 면책조항은 사문화 되어 버린다
"사용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를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게 그 배상을 청구할수 없다"
이후 마구 양산되는 정리해고에 맞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의 가압류와 손해배상소송을 당했고 그 엄청난 금액에 절망한 노동자들은 2003년 참여정부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시작했다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그나마 참여정부는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위해 손배 가압류남용을 막기위한 노사정협약을 맺고 노조원의 급여중에서 최저 생계비는 제외하고 가압류하도록 개정했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되어 이명박정권이 들어서자 노사정협약은 쓰레기통으로 던져졌고 아예 정부가 직접 손해배상 청구당사자로 나섰다
2009년 법무부는 불법파업으로 공공부문에 손해가 발생하면 민사책임을 묻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용산참사 화물연대집회 쌍용차 파업에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걸보고 기업은 얼씨구나 하고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소송과 금액을 다시 대폭 늘려 수천억단위로까지 늘어났다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수많은 글들....
"참여정부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되고 구속되고 죽었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노동자의 죽음....
외환위기와 국가부도사태를 맞아 이제는 합법적인 고용방식이 되어버린 비정규직.. 정리해고..
그걸 반대하는 노동자의 파업에 맞서는 정당하고 당연한 수단으로 자리잡은 기업의 손배 가압류소송을 참여정부가 강제로 막을수는 없었다
과반수가 넘는 의석수를 가진 열린우리당이 법개정을 해서라도 막았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으니 노동자들의 비참한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2015년 박근혜 정권에서 강력하게 밀어부치던 노동법개악이 실패한 이유는 뭔지 대답해보라
당시 새누리당은 의석수가 과반수가 넘었고 한국노총까지 합의안에 찬성했고 무엇보다 장악당한 언론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고 참여정부는 악랄한 비판만 받았다
그리고 이 발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꽤 오래전 어느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 라는 책을 내고 화제의 중심이 된적 있다
그때 궁금해서 그의 발언을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서 봤다
동영상에서 첫발언이 바로 저 발언이었다
노무현대통령은 삼성에 항복했고 삼성과 유착했고 그래서 시장경제에 올인했고 그 증거가 바로 저 발언이란다
바로 꺼버렸다
2005년 7월 5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시책 점검회의에서 노무현대통령 발언 전문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가지 힘의 원천이 시장에서 비롯되고 또 시장에서의 여러 가지 경쟁과 협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정부는 시장을 어떻게 공정하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정부가 중소기업 정책을 많이 해서 나름대로 기여를 하긴 했겠지만 지금 정책을 하면서 정부 정책만으로는 결국 이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우리는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기업 간에 여러 가지 협력들이 잘 이뤄져야 비로소 상생협력이 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나가보니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이미 세계 수준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참 자랑스럽고 참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대기업이 있어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갖고 대통령은 나가서 큰소리도 하고 돌아오면 생색도 나고 참 좋습니다.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한편, 욕심에는 제조업 분야에서 대기업만 세계 일류가 아니라 중소기업도 그렇게 세계적인 경쟁의 마당에서 좀 당당하게 앞서가고 또 그렇게 됐으면 좋겠고 그렇게 해야 우리 경제가 좀더 튼튼해지지 않을까, 우리 대기업들도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우리 중소기업들도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대책이 꼭 있어야겠는데, 말씀드렸듯이 역시 이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이뤄져야지 정부가 정책적 간섭을 통해서만 잘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데 오늘 이 회의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부로서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또 뭔가 좋은 아이디어들이 있을 때 정부로서는 최대한 협력하고 뒤에서 지원하고 해서 우리 경제가 그야말로 상생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으면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좋은 토론이 이뤄지기 바랍니다" |
2012년 7월 17일 뉴스 토마토 자료 펌
노무현대통령이 저 발언을 하면서 신나서 박수치고 좋아했었나?
기레기들이 발언의 앞뒤 거두절미하고 한마디만 잘라다가 왜곡조작하는 행태와 뭐가 다른가?
발언의 요지는 과거 유신 5공 군사독재 권위주의정권의 강압과 간섭의 정경유착 관치경제를 벗어나 공정한 시장경제로 나가는데 정부의 정책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오늘 당사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길을 한번 찾아보자는 뜻 아닌가?
그때 그 동영상을 끄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나도 사법고시나 봐야겠다"
그런데 어디 저 변호사뿐이랴?
그뒤 두고두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저명한 경영학교수 진보신문들 사회활동가 심지어 이명박그네정권을 비판하던 유명 팟캐스트 진행자까지. ...
모두 같은 논조로 혹독하게 노무현과 참여정부에게 독설을 퍼부어댄걸.....
참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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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정말 속이 시원하네요.
감격스럽기도하고..
19차 못간게 너무 죄송하고 아쉽습니다.
저도 궁금합니다.
정월 대보름에도 헌재앞에서 저 분이 촛불행진 리드차량(?)에 올라서 신명을 터뜨렸죠~
지난 토요일에는 광화문 광장에 메인무대에서 뒷풀이로는 최고였네요!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