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학기 기말고사는 작문형 시험이 아니라, 자기가 주제를 하나 잡아서 연구하고 교수 앞에서 1대1로 발표하는거였습니다.
저도 주제를 잡긴 했는데 자료가 조금 골룸한 중세 의학이라 3주동안 도서관을 출퇴근 했었네요.
나름 흥미로운 주제라서 한번 여기다가 적어봅니다. (그나저나 그지같으니라고 1시간 넘게 쓴 글을 날려버렸어..)
중세 유럽 초기의 의학은 미신과 신앙의 결합이었는데 대표적으로 동물신앙, 엑소시즘 그리고 소변치료가 있다.
1)
샤를마뉴 시대의 문서 De Metaria Medica 에서는, 독수리의 기운이 사람을 건강하게 해준다는 미신이 있었는데,
독수리의 머리뼈를 사자 가죽이나 늑대 가죽으로 싸서 가지고 있으면 그 기운으로 질병이 나을 수 있다고 한다.
2)
바바리아의 공작이 불임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스위스 알프스 산의 성 장크트갈렌의 수도사 Notker의 소변을 구해다 마셨더니 자식을 낳았다는 전승이 전해져 내려온다.
3)
질병은 악령에 의한 것 - 이라는 믿음은 고대로부터 주욱 내려왔는데, 심령술사의 구마의식도 치료의 일종이었다.
로마의 역사가 大플리니우스는 심령술사가 환자로부터 악한 영혼과 부정한 기운을 뜯어내어 검은 개에게 전이시켜 병을 낫게 하는 치료법을 기록했는데 이것이 중세 와서도 그대로 유행했다.
흑사병 전후의 시기에 중세 의학은 나름대로의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이슬람 권과 접촉하면서 이슬람 의학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히포크라테스의 4액체설과 갈레노스의 이론을 수용하게 된다.
최초의 의학수업은 남부 이탈리아의 살레르노의 학교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는데
신성로마제국에서는 황제의 칙령으로 대학에 의학강의가 설립되게 된다.
이 결과 3가지 직업군이 유럽에서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데 Physician, Apothecary 그리고 Practitioner이다.
Physician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의사로서, 환자를 진찰하고 병명을 진단하며 그에 걸맞는 처방을 내리는게 업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가정의학과 전공하신 분 쯤 된다고 해야 할까.
이들의 처방은 주로 이슬람 의학의 영향을 받아서
1) 환자의 식단 개선 : 신선한 채소, 과일과 육류를 통한 치료로써,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생 포도주와 깨끗한 물에서 낚은 연어 같은 음식을 권했고, 단 맛이 나는 포도주나 장어는 권하지 않았다.
2) 방혈법 : 체 했을 때 손가락을 따서 피를 내는 것 처럼, 이들은 몸 안에 축적된 더러운 피가 병을 유발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일정량의 피를 뽑아내는 것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의학생들은 이 직업을 선호해서, 파리 시와 대학에서는 의사 길드를 세우고 이들에게 자격증을 주는 정책을 펼첬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의학생들을 독점함으로 그들로부터 얻는 수강료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
2) 도시 안팎으로 설쳐대는 Practitioner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의사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
학생들은 파리 시 공무원들과 길드에서 파견 나온 현직 의사들 앞에서 깐깐한 면접과 실습을 거쳐야 비로소 자격증을 받고 의사 길드의 일원으로 의사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Apothecary
Physician들이 의사들이라면, Apothecary들은 지금 약국에서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해주는 약사라고 생각하면 쉽다.
지금이야 의약분업으로 처방은 의사가 하고 약의 제조는 약사가 했다만, 이 때는 이 친구들도 환자들에게 처방을 할 수 있었다.
다만 Physician들 처럼 대학처럼 전문적인 양성기관을 통해서 나오는게 아니라 대부분은 Apothecary 길드에서 장인-도제의 방식으로 교육받았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Apothecary라는 직업은 의외로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직업이었는데
목숨 걸고 숲을 싸돌아다니면서 채취한 약초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동방의 향신료까지 끌어다가 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들이 제조한 약은 부르는게 값이었고 돈 많은 상인이나 귀족이 아니고서는 보통 사람들은 접하기가 어려웠다.
허나 한번 먹힌다는 소문이 돌면은 높으신 분들이 앞다투어 사기 바빴기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은 없었다.
Practitioner
굳이 묘사하자면 이런 거?? (다키스트 던전, 삼림지대의 마녀 - 특제 솥밥이 맛이 그만이다)
아니면 이런 거라고나 할까? ( 위쳐3의 등장인물 키이라 메츠, 스토리 진행하다 보면 XXX도 가능한 캐릭터다.)
Physician들이나 Apothecary들의 진료비를 부담할 수 없었던 도시 밖의 사람들도 치료는 받아야 했기에 Practitioner들을 찾았다.
이들이 뭐냐면은, 민간요법과 잡지식을 짬뽕해서 처방하는 일종의 '야매'의사 였다.
대부분은 전문 양성기관을 거치지 못한 여성들이었는데,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민간요법지식이나 잡지식, 개인적인 경험들을 모아서 의료행위를 했다.
가끔 되는 일도 있었고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꿩 대신 닭이고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도시 밖 사람들은 이들에게 의존했다.
이들의 의료행위는 시 당국과 Physician 길드로부터 대대적인 탄압을 받는데
1) 잘못된 민간요법으로 대규모 역병이 터질 가능성
2) Physician들의 사업에 아주 큰 방해물
위 두가지 이유를 들어서 시 공무원들은 이들을 마녀로 몰아서 사냥하고 다녔다.
시 당국의 탄압을 피해서 이들은 숲 속이나 외딴 곳으로 깊이 들어갔는데, 판타지 세계나 동화에 나오는 숲 속 마녀들의 모티브가 이들이 아닐까 싶다.
첫댓글 오오 재밌네요. ㅎㅎ 그림까지 있어서 더욱 좋군요.
쓰는거야 별거 아니었는데, 이거를 주제잡고 기말고사 대비하는건 정말 피똥싸는 일이었음 ㅎㅎ
중세 자료찾는게 너무 힘들었음 ㅠㅠ
재밌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쉿! ㅋㅋㅋ 꺄르륵 스포 자제요 ㅋㅋㅋ
@수보타이 아녜요 ㅎㅎ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음요 ㅋㅋㅋ
@PANDA 위쳐3 1회차 할때 키이라 설치는거 보기 싫어서 니 알아서 살라고 냅뒀다가 노비그라드에서 끔살난거 보고 피눈물 흘렸었는데.. 참 마녀사냥 고증 잘해놨더라구요;
@리허터 숲에서 한바탕 뒹굴다가 뒤통수 맞은게 은근히 기분나빠서 그냥 죽여버렸는데 왠지 찜찜하더라구요 ㅎㅎㅎ
중세 의사 하면 까마귀 주둥이 마스크가 떠오르네여ㅎㅎㅎ
역병의사들이라면 대개 Physician쯤 된다고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본격적인 세균학이나 위생관념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physician들이 잘 나가는 직업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초기 쯤에 나온 직업군입니다.
후반기 르네상스 가야 사람 신체를 과학적으로 해부하는 해부학이 등장하고 외과의가 나타나긴 하지만 말 그대로 썰고 꼬메고 하는 수준이고 이 사람들은 도시보다는 전장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반면에 physician들은 높으신 분들이 많이 찾는 일반의였으니 사업이 ㅎㄷㄷ한 직업이었습니다.
야매의사들인 practitionor 들을 때려잡았으니 사람들이 찾는 의사는 apothecary 아니면 physician들 밖에는 없으니 ㅋㅋ
어휴 자료 찾느라 고생하셨네요. 피지션 분야만 띠엄띠엄 알고 있었는데 요렇게 보니 재밌네요.
의학 분야야 말로 시대에 따라 학문이 퇴보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분야입니다. 로마와 중세가 어찌 이리 다를 수 있는지...
공부하면서 얻은 정보라 혼자 알고만 있기에는 그래서 ㅎㅎ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으셨다니 저야 감사하죠.
그만큼 그리스-로마의 체제가 유럽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엄청났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