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전 시골에서 기르던 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겠다.
당시 내가 살던 시골에서 키우던 개들은 대부분 잡종견으로 집을 지키거나
나중에 팔아서 가계에 보탤 목적으로 거의 집집마다 개를 길렀었다.
통나무로 짜서 만든 개 구융(구유의 충청도 사투리)에 먹다 남은 음식과
뜨물이나 쌀겨를 섞어 사료로 주기도 하고 애기가 똥을 싸면 개를 불러
그 변을 먹게 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똥개라는 별명이 붙은 듯 하다.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개도 할머니께서 친정쪽에서 얻어 온 강아지로
<마루>라는 이름을 지었고 커선 당당한 황구 모습의 성견이 되었었다.
<마루>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하려 한다.
두메 산골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며 중학교 진학을 하겠다는 학생들을 위해
그 당시는 6학년 담임 선생님 두 분께서 학교가 끝난 뒤 한 두시간 정도
입학시험 대비 부족한 부분을 무료로 보충학습을 시켜 주시곤 했다.
그 당시는 면 단위에는 중학교가 없어서 시군 소재지 상급학교로 유학을
해야 하는 실정이였고, 중학 진학을 원하는 아이들도 당시 100여명중
10명 정도가 될까 말까 한 정도였다.
추운 겨울 보충학습을 마치고 해가 지고 나서 6 키로 넘는 하교길을 혼자
결어오다 보면 춥기도 하고 겁도 나는 그런 나이였다.
그런데 집에서 2킬로 정도 되는 곳까지 저녁마다 달려와 나를 반겨주는
친구가 있었다, 바로 < 마루>였는데 꽤 먼 거리인데도 내 냄새를 맡고
2킬로 넘게 달려와 펄쩍펄쩍 내게 뛰어 오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6학년 겨울을 보내고 나는 충주 시내의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어
입학식이 끝난 다음 주말에 처음으로 시골집에 가게 되었다. 그 당시는
시내버스가 없는 시절이라 토요일 수업이 끝나고 20킬로가 넘는 거리를
5시간 정도 걸어서 밤에 집에 도착했고 동상 결릴까봐 손을 콩자루에
넣고 몸을 녹였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 오른다.
일요일엔 아침부터 눈이 펑펑 쏟아져서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집을 나서
하숙집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내가 충주 하숙집으로 돌아가는데 <마루>가
따라 나선 것이다. 집 근처까지 따라오다 가겠지 하고 걷다 보니 <마루>는
계속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쫓는 시늉을 하고 눈을 던지곤 해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묵묵히 나의 뒤를 계속 따라오니 걱정이 되었다.
눈에 빠지면서 하숙집에 도착하니 꽤 늦은 밤이 되었고 하숙집까지 따라온
<마루>가 내 하숙방앞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마루>는 보이지 않았고 개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2주만에 고향집에 갔을 때 <마루>는 그곳에 있었고 다시 또
펄쩍펄쩍 뒤며 나를 반기는 것이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는 나는 개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고 어른이 되어
서울에서 단독주택에 살 때에는 개를 오랫 동안 계속 키우곤 했다.
개도 주인을 닮는다고 하던데 다행이도 내가 기른 개들은 사납지 않고
많이 짖지도 않아서 키우는 데는 그리 애를 먹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서울에선 개를 묶어 놓고 기르다 보니 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아 집에 있는 시간엔 집 주변 산이나 학교 운동장 같은 곳으로 운동도
시킬 겸 개를 자주 데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개가 목줄이 풀리거나
묶어놓은 끈이 빠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되고 집 밖으로 개가 뛰쳐
나가서 다른 개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집을 못 찾아와서 개를 분실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개를 기르기를 포기하는 사건이 있었다.
직장 후배가 진돗개라며 분양해 준 수캉아지가 있었다.
키우며 정성껏 보살피고 시장 닭집에서 생닭을 팔며 버리는 부산물을
구해 자주 끓여 먹였더니 개가 덩치도 커지고 힘에 여간 센 것이 아니였다.
개집도 넉넉하고 만들고 목줄도 넓은 걸로 하고 쇠사슬로 목줄끈을
만들어 집 마당에 단단하게 묶어 놓고 키웠다.
퇴근하고 나선 저녁을 먹고 집 근처 배봉산을 오르내리며 운동을 시키곤
했었다. 내가 운동을 하려면 이놈을 나무나 단단한 곳에 묶어 놓아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배봉산 중턱에서 개의 쇠사슬
목줄끈을 놓치는 일이 발생했고 아래로 내 치닫고 사라진 개를 다시는
찾을 수가 없었다. 며칠을 개를 놓친 장소를 다녀보고 혹시나 하며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결국 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나는 개를 키우지 않고 있다.
요즘은 반려견을 키우는 데 많은 고려 사항과 법적 규제 사항들이 있어
선뜻 마음이 내키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린 시절 집에서 키웠던 <마루>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때문에
반려견에 대한 생각은 호의적이다.
그런데 요즘의 세태인지는 모르지만 반려견을 키우는 일부 사람들의
반려견에 대한 태도나 표현들이 내겐 거부감으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TV에서 만나는 반려견 주인들은 아우 서슴없이 개에게 엄마, 아빠,
내 새끼란 표현을 흔하게 쓴다.
가족이라 생각하고 본인이 낳은 자식처럼 대하는 건 이해할 수 있으나
반려건의 엄마 아빠라고 표현하는 건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인격이 개의 犬格이 되어서는 안된다.
개자식, 개새끼라는 욕이 맞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개가 사람을 낳을 수 없고 , 사람이 개를 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첫댓글 마루란 이름, 추억속의 개 이야기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