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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윤명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나는 그림자들을 보고도 전혀 놀
라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부대주 삼화일지 최신도, 그리
고 다른 수하들도 태연했다.
비수당이 호위하고 있다는 사실은 곽가장을 나서기 전부터 알
았고, 오급산에서 벌인 격전 소리로 미루어 상당히 곤란한 상
황에 직면했다는 것을 짐작했던 탓이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
로는 너나 할 것 없이 무척 놀라는 중이었다.
비수당은 거칠기 짝이 없는 들개들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몰
골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많던 사람은 다 어디 가고 절반밖에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일심각 무인들은 미지의 인물과 부딪힌 적이 없기에 그들의 무
공 정도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지금 모습을 보이지 않는 비수
당 무인 백여 명이 죽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고초가 많았습니다."
윤명은 가늘게 웃었다.
무적 봉법을 자랑하던 손위 저부가 낭패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
이 못내 즐거웠다. 이제 혼자서만 은자(隱者)인 척 도도하게
굴지는 못하리라.
한편으로는 크게 놀랐다. 초절정 고수인 탈명화검이 죽임을 당
했지만 일심각이 나서면 쉽게 처리할 줄 알았는데 비수당 양대
에 이어 음대, 그리고 처절한 싸움,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일
이었다. 단지 감여가 놈을 따라가다가 한 놈만 죽이면 될 줄
알았는데... 문파(門派)였단 말인가.
"무슨 일인가?"
혈향봉 조중은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윤명의 맞은편에
털석 주저앉으며 다짜고짜 물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가 물었다."
아직도 격한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 말투가 상당히 거칠었다.
마치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당하기는 호되게 당했군.'
악부는 사위들에게 공밥을 먹여 주지 않았다. 높은 직위를 준
대신에 그만한 일을 시켰다.
첫째 사위 소중분은 지노서(地老鼠:두더지)란 작호를 가진 골
칫거리 도수(盜手) 우본(禹 )을 필두로 무려 스물 한 명이나
죽인 끝에 신계각주가 되었다. 신계각주가 된 후에도 그는 한
시도 쉬지 못하고 강서무림계를 종횡(縱橫)해야 했다.
혈향봉 조중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혈향봉과 비수당은 구
천문(九天門), 가령채(茄嶺寨) 등 주로 굵직한 문파들을 제거
했다. 사우맹이 사파의 잔당들을 긁어 모아 연합세력을 만들고
도 떳떳이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혈향봉에게 정예 문파를 잃었
기 때문이었다.
이번 싸움이 첫싸움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격앙되어 있다는 것은... 패배다.
아니면 패배에 버금갈 만큼 고전했다는 반증이다.
"응? 정대주, 아닌가? 여기는 어쩐 일이지?"
윤명은 동종관의 경륜을 인정하지 않았다. 비단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경멸하기까지 했다. 사람이 오죽 못났으면 그 나이
를 먹도록 대주에 머물러 있을까. 직위는 곧 능력이라는 단순
한 사고(思考)가 육순 노인에게 거침없는 하대(下待)를 하게
만들었다.
동종관은 윤명의 성격을 아는지라 동석하지 않고 혈향봉의 뒤
에 시립(市立)해 있었다.
"허허! 저도..."
"내가 불렀다."
조중이 동종관의 말을 가로챘다.
"네에? 저부가 불렀다고요? 하하하! 이거 왜 이러십니까? 장주
님의 전서를 받아봤는데 그게 아니던데요? 동종관, 사공을 데
리고 지금 즉시 귀장해라, 이는 장주님의 명이다. 이번에도 거
역할 텐가?"
혈향봉에게 말하던 어투와는 전혀 다른 싸늘한 일갈이었다.
"내가 불렀다고 했다."
혈향봉도 물러서지 않았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장을 나설 때는 각주님의 명을 받았습니
다. 반여량의 뒤를 따라라. 일심각 무인이 나섰다는 것은 중대
한 일이 있다는 것. 어쩌면 탈명화검 사건을 풀게 될지도 모른
다. 무슨 일인지 알아내라는 말씀이셨죠. 그런데 비수당이 급
습을 당하고, 장주님은 돌아오라 명하시고... 이제는 뭐가 뭔
지 모르겠습니다. 청붕성까지만 동행을 부탁드립니다. 거기가
면 각주님의 의향을 알 수 있을터.'
조중은 동종관에게 빚을 졌다.
소중분이 양대의 몰살 소식을 전해 준 것은 순전히 동종관이
밀마를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동종관의 말을 듣자니 지금은
그 밀마도 끊긴 상태. 위험천만이지 않았는가. 단 한 번의 도
움은 베풀어야 한다. 비록 동종관의 행동이 마음에 썩 드는 것
은 아니지만 노우의 복수를 하겠다는데 같은 곽가장 식솔로서
말릴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말 돌리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해라. 지금 무슨 일을 획책하
고 있는 겐가?"
서릿발 섞인 고함이었다.
윤명은 눈길을 아래로 돌렸다.
피에 절은 목봉이 들썩거렸다. 금방이라도 날카로운 한성을 흘
리며 가슴이나 머리를 가격해 올 것 같았다. 조중은 황소 같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 이런 자가 화를
내기 시작하면 걷잡지 못하리라. 무슨 짓이고... 저지를 것이
다.
봉(棒) 대(對) 단창(短槍).
윤가창법과 조가봉법은 다같이 강서무림의 사대절기인 만큼 승
패는 숙련도로 판가름 난다. 혈향봉이 패한 적이 없다면, 자신
또한 패한 적이 없다. 싸움을 벌인다면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조중, 언젠가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거야. 너는 야심이 없지만 나는 만족할 수 없
는 호(壕) 이니까.'
윤명은 얼굴을 싸늘하게 굳혔다.
"저부, 잊으신 게 없습니까? 전서를 보여드릴까요? 일심각이
하는 일을 절대 방해하지 마라. 저부는... 후후! 이 윤명의 지
시를 받는다. 홍홍록록 윤명의 지시! 잊었습니까!"
"그래서 말하지 못하겠다는 겐가!"
"목봉을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지시를 받겠습니까?"
조중은 눈빛만 이글거릴 뿐 말을 잊어버렸다.
그는 곽가장을 가장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인 동시에 가장 사랑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내 곽무연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에 아내를 낳아 준 아버지가 있는 곳이기에.
"네 일이... 언제 종결될 예정이냐?"
한풀 꺾인 음성이었다.
"후후후! 역시 현명하시군요. 보름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반여
량의 발길이 멈출 때, 제 일도 끝납니다."
'그리고 나는 곽가장의 후계자로 지명되지요.'
마지막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좋다. 맡은 임무대로 일심각 무인들을 호위하겠다. 닷 동종관
은 돌아가지 않는다. 귀장하는 것을 내가 필요해서 잡아 두었
으니까. 그리고... 목봉을 들겠냐는 말. 잊지 않겠다."
"그렇습니까? 혹시 제가 잊어 버리면 일러주십시오. 언제든
지."
조중의 몸집에 비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는 윤명이지만 은연중
풍겨 나오는 기세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 전서(傳書).
사공을 거둬라.
그들에게 부여된 직책은 몰수한다.
팥월망계(八月望計)가 끝날때까지 사공은 그대의 손과 발이 된
다...
곽(郭)자가 새겨진 붉은 인장.
장주가 보내온 전서는 윤명의 품안에서 곱게 잠들었다. 장주를
빌어 동종관을 핍박한 것은 혈향봉 조중을 겨냥한 사석(死石)
이었다.
* * *
"야심한 시각에 길을 재촉하니 바쁘기는 바쁜 모양이군요."
반여량은 졸음이 쏟아지는지 하품을 길게 하며 말문을 열었다.
"허허허! 바쁘지. 좋지 않은 일은 빨리 매듭지어야하는 법일
세."
두두두두...!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고즈넉한 밤을 일깨웠다.
무려 백이십여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일제히 말 배를 걷어차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무공을 모르는 반여량과 산귀 그리고 알기는 하지만 어디다 내
세울 수 없을 만큼 빈약한 곽소연은 동종관의 전용 마차를 타
고 정중앙을 달렸다.
"나쁜 기분은 아니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호위 받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 말일세."
"쓸쓸해 보이는군요."
"응? 무슨 뜻인가?"
"아무 뜻도 없습니다. 그냥 쓸쓸해 보이기에 말씀드렸습니다."
"허허허! 그렇게 보였나? 맞네. 쓸쓸하지. 얼마 전에 노우가
죽었다네."
"그렇군요. 시기(屍氣)가 느껴집니다. 애절한 시기. 보통 관계
가 아니었군요. 노인장께서 흘리는 비통함은 혈육이 죽었을 때
보다 더 절절하군요."
"으응? 그런 것까지 읽을 수 있나? 허허허! 나는 감여에 대해
서는 잘 모르지만 대단한 것 같으이."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만 있으
면 되는 거죠. 슬픈 사람의 눈빛은 애잔하고, 쓸쓸한 사람은
아무리 숨기려해도 그렇게 보입니다."
동종관은 딴 세상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종류의 대화는 상당히 낯설었다. 반여량은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산귀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반여량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 사전에 반
쯤은 인정했기에 이번 여행을 주도시켰고, 그런 능력을 자주
보이면 보일수록 동기감응을 이해하는 날은 빨리 온다.
그는 반여량의 몸짓, 눈빛, 말투등 모든 것을 관찰했다.
이렇게 같이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은 일찍부터 바라던 일이었
다.
곽소연은 애써 냉정한 표정을 유지했다.
반여량은 변했다. 처음 봤을 때의 칙칙하고 어둡던 기운은 사
라지고 밝고 포근한 기운이 자리잡았다. 마음이 극히 평화로운
고승(高僧)을 접했을 때 느껴지던 바로 그 기운.
가끔은 모골이 송연한 사이한 웃음 대신, 마음껏 하품하고 웃
는다.
이럴 수가 있을까? 한한이 혼인한 지 이제 십 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마음의 정리를 했다는 말인가.
그는 정리했다. 믿어야 한다. 마음이 다시 한한에게로 돌아갔
다. 떠나올 때보다 더욱 단단하게 굳어져서 아직도 가끔씩 드
러나는 쓸쓸한 감정은 한한에 대한 그리움일 게다.
'한한, 너는 내 아내야.'
진심으로 토해 낸 말일 게다. 방황 끝에 정리한 말이기에 쉽게
어긋나지도 않을 게다. 그는 다른 여자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
다. 여인이 알몸으로 목욕하는데도 훔쳐보지 않다니 관심이 없
는 게다. 밝은 불빛 아래서 나신을 보여준다면? 그래도 태연할
까? 설혹 짐승처럼 달려든다 해도 그건 인간이 지닌 욕정일 뿐
, 사랑의 행위는 아니다. 아무 의미가 없다. 아무 의미가.
쓸쓸했다. 동종관이 같이 있고, 매부도 둘이나 밖에서 말을 달
리고 있지만 아무도 없는 무인도(無人島)에 홀로 떨어진 고적
감. 곽가장에서도 그랬다. 그때는 책이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은 읽을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달래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하는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이런 촌놈을 사랑할 리
가 없다. 단지 그가... 그가...
곽소연은 싸하게 아파오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눈을 감아 버렸
다.
"노인장께는 짙은 아픔보다 허무함이 더 강합니다."
"허허허! 내 이름은 동종관일세. 작호는 동어구천. 이름이든
작호든 편한 대로 부르게. 노인장이라는 말만 빼고."
"마차 안이 너무 덥군요. 한낮의 열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철판을 깔아 놓지 않았다면 이렇게 더울 리가 없죠."
동문서답(東問西答)이었다.
그러나 동종관은 내심 크게 놀랐다.
마차는 반여량이 말한 대로 특수하게 제조되었다. 정대에서 납
치극을 펼칠 때 사용하는 마차로 일이 실패할 경우 납치자와
피납자가 동사(同死)하도록 설계되었다.
자폭용(自爆用) 마차였다.
제일 먼저 강철이 마차 문을 봉쇄한다. 다음은 사면에서 독 묻
은 우모침이 빼곡히 쏟아져 내린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천
장이 순식간에 함몰되며 사백 근 중량의 철판이 육신을 덮친
다. 밑바닥도 철판이라 도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도 동기감응으로 알아낸 것인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철(鐵)의 기운은 강(剛). 강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 마차 안에서 풍기는 냄새는... 곤륜(崑
崙)에서만 나는 곤오철(崑烏鐵) 특유의 냄새니까요."
"놀랍군."
동종관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살아오면서 숱한 사람을 접해 봤지만 반여량 같은 자는 처음이
었다. 벗이라면 더없이 마음 든든하지만 적이라면 반드시 죽여
야 할 사람. 정대주 입장에서 분류하면 그런 사람이었다.
"눈을 붙여 두게, 내일이면 청붕성에 도착할 게야. 거기는 도
읍이라 놈들도 함부로 날뛰지 못해. 허허허! 남들이 들으면 배
꼽을 잡고 웃겠군. 곽가장 문도가 정체불명의 흑의인들에게 쫓
겨 다니는 꼴이라니."
동종관은 다리를 길게 뻗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는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오랜 세월, 곽가장에 머물렀으면
서도 신계각주가 되지 못한 것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약점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리 심한 피로를 느끼다니... 이제는 나도 정
말 늙었군.'
오늘 하루 종일 한 일이라고는 멀거니 하늘을 쳐다보는 일뿐이
었다. 그러나 육신은 물먹은 솜처럼 묵직하기만 했다. 아직 여
독(旅毒)이 풀리지 않은 탓이다.
남창에서 오급산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었다. 더욱이 편한 마차
를 타고 왔기에 고달픈 여로(旅路)도 아니었다. 젊었을 적에는
이보다 더한 길도 밤새 달렸건만.
동종관은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눈까풀을 감았다. 그러
나 처참히 죽은 탈명화검의 얼굴이 아른거려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냥 넘어가지 않아. 아무리 장주님이 내린 명이라 해도...'
'힘들군. 쉬어야 해.'
반여량은 마차 밖에서 꿋꿋이 말을 달리고 있는 석수를 바라보
았다. 그는 혼절 직전이었다. 그러면서도 표정 한 번 바꾸지
않고 말을 달리는 모습은 인간의 인내가 어디까지인지 보여 주
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고삐를 힘차게 거머잡고 있지만, 지금
바로 상처를 치료해야 할 중한 상태. 그것은 눈으로 봐서 안
것이 아니라 동기감응으로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두 시진 전만 같았어도 그냥 무심히 지나쳤으리라.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돈과 상관이 없으면 구원하지 않겠다고 다짐
을 거듭했으니까. 부정독심(不情毒心)을 중얼거리면서 마음을
닫아 버렸겠지.
근 십여 일 동안 독해지려고 마음을 다잡았고, 괴로움을 잊으
려고 스스로 학대도 가해 봤지만 어느 것 하나 번뇌를 떨쳐 주
지 못했다. 돈을 벌겠다고 이를 악물었지만, 돈에는 워낙 인연
이 없는 사람인지라 선뜻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마음 속에서 싸우는 선과 악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으르렁거
렸다.
그 둘은 공존이 불가능한 맞수다. 선은 악을 악은 선을 죽이려
한다.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어느 한쪽이 우위를 지킬 수는
있어도 다른 쪽을 영원히 소멸시킬 수는 없다.
스물여섯 해를 살아 오면서 몸에 배인 사고, 생활방식은 한한
에 대한 증오까지도 묻어 버렸다. 한 순간은 '무정해지자' 돈
을 벌자고 발버둥쳤지만 욕심 없이 베풀고만 살아온 사람에게
는 힘든 주문이었다.
생각을 바꾸니 세상이 환하게 열렸다.
역시 사부님 말씀이 옳았다. 자연은 순리에 따라 흐르고, 인간
은 참되고 선함 속에서 기쁨을 얻는다.
물론 한한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랑이 변한 것은 아
니다. 그녀에게로 향하는 사랑만은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
가까이 할 수 없는 추억 속의 허상에 불과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감여가 있지 않은가. 모든 열정을 감여에 쏟아
붓는거야. 비보감여(裨補堪與), 잘린 기운을 이어 주고 정체된
기운을 풀어주는 감여. 사부님이 혼인도 안한 채 일평생 걸어
왔던 그 길을 걸어가면 된다.
반여량은 마차 문 곁에 길게 늘어진 붉은 승삭(繩索)을 힘껏
잡아당겼다.
뎅그렁! 뎅...!
동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석수의 상태를 지켜보며 말을 달
리던 우모우 진육이 말머리를 붙여왔다.
"무슨 일인가?"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백부하(白浮河)가 나오죠. 그곳 갈대
밭 정도라면 하루 이틀 쉬어갈 만합니다. 윤명 각주에게 말해
주세요. 마차 안이 불편하고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고. 심
신이 피곤하면 정신집중이 안 될 것이라고."
"알겠네."
순간 동종관은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반여량을 쳐다보았다.
밖은 한 치 앞도 분간하지 못할 만큼 어두웠다. 그런데 지금
어디쯤 왔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쉬어 가고 싶은 마음은 동종관이 더했다. 석수의 상태는 치료
할 시기를 놓쳐서인지 아주 위중했다. 환단을 먹이고, 금창약
(金創藥)을 발라주고 싶은 마음이야 말해 무엇하랴.
마차 안에서 잠을 못 이룬다는 것은 핑계이리라. 석수를 쉬게
하려는 핑계.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윤명은 들은 척도 하지 않
았을 게다. 하지만 반여량의 말이라면, 또 그 말이 감여에 관
계되었다면 어떠한 말이라도 들어야 한다.
'허허! 정대가 영 형편없어 지는군. 혈향봉의 도움에다가 이제
는 감여가의 도움이라. 허허!'
백부하에 도착할 즈음 석수는 혼절한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요대(腰帶)를 풀어 몸을 말에 묶고 고삐를 굳게 잡
은 모습은 무림에 몸을 담은 사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일단면이었다.
"이 놈은 몸이 골골해서 탈이야."
함상이 가볍게 중얼거리면서 금창약(金創藥)을 발랐다. 그러나
그의 내심은 말 같지 않은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상
처를 만지는 손놀림이 가늘게 떨려 나왔다.
'혈육(血肉)보다 깊은 정(情)...'
반여량은 석수와 함상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정을 읽었다.
역시 동기감응이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아야만 하고,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만
하고,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껴야만 하는 감응. 눈을 뜨면서
부터 깊은 잠이 들 때까지 한시도 끊기지 않고 들려오는 만물
의 소리.
머리가 터지는 것 같았다. 잠을 이룰 수 없어 항상 눈가에 붉
은 혈기가 내비치고는 했다. 마음의 중심을 잡기 전까지는.
'살기닷! 오급산에서 읽었던 살기.'
반여량의 상념(想念)은 불현듯 다가오는 살기로 인해 중단되었
다.
곰팡이처럼 습습하면서도 끈적끈적한, 어제 낮에 읽었던 살기.
세상 만물이 내뿜는 기운은 수천 종(種)에 이른다. 그리고 그
많은 기운들은 떨어지지 않는 끈적이처럼 피부에 달라붙었다.
잊혀지지도 않았다. 한번 느낀 기운은 십 년 세월이 지나도 단
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뇌력을 집중해 보면.
각인(刻印)되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氣).
거기에 사람이 내뿜는 기운까지 더한다는 것은 지옥(地獄)에서
사는 것과 다름없었다.
오급산에서 느꼈던 살기도 자연의 기처럼 생생하게 각인되었
다. 그것이 지금 백부하의 강변에서 다시 읽혀지고 있는 것이
다.
"준비해야겠소."
반여량은 마차로 다가가며 혈향봉에게 언질을 주었다.
"준비?"
"오급산에 있었소?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는데."
"있었다. 그런데?"
"그럼 당신이 맞군. 산 정상으로 향하던 살기를 중도에서 가로
막은 사람이. 그들을 맞이해야 하지 않소?"
"뭐라고!"
조중의 눈이 퉁방울만하게 부릅떠졌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살기라니? 오급산의 살
기? 그럼...조중은 재빨리 땅에 엎드려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스물다섯? 여섯?"
"모두 스물일곱이오."
"뭐...?"
어처구니없었다. 지청술(地廳術)로도 감지 안 되는 발걸음 소
리, 그런데 무공도 모르는 감여가가 단번에 인원수를 헤아리다
니. 그보다 다급한 것은 다가오는 자들이었다. 흑의인 스물일
곱 명이 다가온다면 그만큼의 비수당원이 피를 흘려야 한다는
말이 된다. 더군다나 지청술에 걸려들지 않은 한 명은 적어도
자신과 버금가는 절대고수다.
조중은 급히 음대주를 바라보았다.
능공십자와 파가자는 조중을 만난 후부터 한시도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호법(護法)을 섰다. 물론 무공이야 자신들보다
훨씬 높지만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자는 충정에서 우러나온 행
동이었다.
파가자 황보청 역시 당주와 반여량이 주고받은 말을 듣고 지청
술을 전개하던 참이었다.
"당주..."
"가라."
황보청의 고개가 힘차게 끄떡여졌다.
그는 부대주 일성검 성하추를 비롯하여 음대에서 암격(暗擊)에
특출한 면모를 보인 수하 삼십 명을 추려 갈대 숲 사이로 파고
들었다. 암전(暗戰)이다. 암전에서는 많은 인원보다, 높은 무
공보다 상대를 먼저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있지만 이런 싸움은 정작 필요한 사람만 싸워야
한다. 나머지 무인들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숨을 죽여야 한다.
혈육로에서 형제를 베어 내며 터득한 전법(戰法)이었다.
강물이 은비늘처럼 반짝거렸다. 흐르면서도 흐르지 않는 듯 고
요한 물결. 밤에는 여인의 검은머리처럼 반질거리고, 낮에는
처창(悽愴)한 적막이 되어 흘렀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요, 지자요수(知者樂水)라.
맞는 말이다.
비단폭을 넓게 펼쳐 놓은 듯 푹신하고 뭉클거리는 백부하의 강
물을 바라보다 보면 세상의 모든 이치가 한줄로 꿰어졌다.
강 저쪽에도, 이쪽에도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거리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일 리는 될까? 그 머리 위로 무심한 햇볕
이 사정없이 내리쬐었다.
벌컥! 벌컥...!
조중은 죽엽청(竹葉淸)을 벌써 네 호로나 마시고도 모자랐는지
다시 호로 한 개를 집어 입 속에 털어 넣었다. 그는 강을 등지
고 앉은 채 갈대밭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술을 마시는 중에도,
텅 빈 호로를 던질 때에도... 한시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주위로는 바람 한점 불지 않았다.
갈대밭은 화폭에 담긴 그림 마냥 흔들림이 없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는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 일순간 세상이 정적 속에 묻혀
버린 것 같았다. 시간이 정지하고, 너도나도 몸이 굳어진 채
정적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았다.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혼신의 기력을 다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이 있다. 그들은 폭풍 같은 흔들림을 만들고는 이내 잠잠해진
다. 그리고 풍겨 오는 피냄새.
음대와 흑의인들.
전문적으로 암격을 수련한 사람들답게 그들은 일체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도, 육질이 베어지는 소
리도, 비명음도, 고통스러워 흘릴 법한 비음소리도 들리지 않
았다.
능공십자는 파가자가 떠난 다음부터 땅에 귀를 갖다 대고 지청
술을 펼쳐보았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무척 느리
게 움직였다. 일각(一刻)에 일장(一丈)이 고작이었다. 빨리 가
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굼뱅이처럼 느릴망정 적에게 발각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누가 먼저 보느냐. 암격의 승패는 거기서 판가름 났다. 무공의
고하는 중요하지 않았다. 선기를 잡고 뒷머리를 가격하는 자에
게 검을 들이대려면 그보다 서너 수 윗길의 무공을 지녀야 한
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햇볕이 따갑다고 투정을 부릴 법한 곽소연도 긴장된 낯빛이었
다.
"글쎄요..."
능공십자는 입 안이 바싹 말라 침으로 입술을 축인 다음에야
말문을 열었다. 그도 모른다는 소리.
곽소연은 더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누구와 말을 나눈다는 자체가 사치로 여겨
졌다. 조중은 갈대밭을 보면서 연신 술을 마셨고, 비수당 무인
들은 낯빛을 굳힌 채 조중의 뒤에 좌정해 있다.
동종관은 정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숙의하는 중이었
다. 석수는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는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동종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공. 모두 짙은 그늘에
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윤명과 일심각 무인들은... 그들은 음대와 흑의인들의 싸움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비수당을 곤란하게 만든 자라면 상당히
특색 있을 것이다. 어떤 무공들인가. 어떤 싸움인가. 윤명이
갈 길을 재촉하지 않는 것은 지척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의 결
과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곽소연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반여량
에게로 걸어갔다. 그의 곁에는 산귀가 묵묵히 앉아 있었다.
반여량은 무심히 갈대를 뽑아 강물에 띄우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의 발 밑에는 갈대 밑동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강물을 따라
흘려 보낸 갈대 잎의 잔해였다.
"무슨 생각해요? 한한?"
반여량은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그 생각하는지 어찌 알았소?"
"푸훗! 자나깨나 오직 한한 소저 생각뿐이잖아요."
"고맙소."
"뭐가요?"
곽소연은 어리둥절해져서 반여량을 쳐다보았다.
"그날, 나를 말려 준 것 말이오. 하마터면 혼례를 망칠 뻔했
지. 언젠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기회가 없
었소. 아니, 기회는 많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소. 마음에
여유가 없었거든."
"후훗! 지금은 여유가 생겼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그런 모양이오. 이렇게 한가하게 갈대나 뜯고 있으니까."
반여량의 마지막 말은 무슨 사연이라도 담겨 있는지 묵직했다.
"이제 일어섭시다. 다 끝났으니."
"예? 뭐가요?"
"싸움 말이오. 음대는 전멸했소. 음대주를 비롯하여 모두 죽었
소."
잔잔하게 흘러 나온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 음성이 가져다 준
파문은 결코 잔잔하지 못했다.
또 한 번 시간이 정지했다.
멍한 표정이 되어 버린 곽소연, 호로를 들이키다 뚝 멎어 버린
조중, 자신들만의 밀마를 땅에 그려 가며 대화를 주고받던 동
종관과 사공, 그리고 일심각 무인들과 윤명.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쉬익!
번개처럼 날아온 능공십자가 반여량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그의 눈은 불을 뿜어 내는 듯 활활 타올랐다.
"저 갈대발에 숨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생기가 모두
사라졌지. 시신을 수습하시오. 묻어 주고 갈 시간은 있소."
"뭐라고!"
능공십자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도
봤지 않은가. 당주가 파악하기도 전에 반여량은 흑의인들이 온
것을 예감했다. 불행히도 반여량의 말은 맞을 것이다.
"들어가라. 가서 형제의 시신을 수습해 와라."
조중의 명을 받은 비수당 무인들이 솔개처럼 뛰쳐 나갔다.
"문, 문우(聞宇)!"
채 반각이 지나지 않아서 처절한 곡음이 터져 나왔다.
문우의 나이는 이제 스물넷. 둥그런 얼굴에 구레나룻과 눈썹이
짙어 음대원치고는 잘 생긴 용모였다. 병기는 검, 잘 쓰는 암
기는 콩알만한 철환(鐵丸), 여의주(如意珠)였다.
"강재(姜宰)! 안 돼!"
"정현모(鄭玄模)? 정현모!"
이제는 확실해졌다. 불길한 예감은 맞아들었다. 반여량의 말대
로 음대주 파가자 황보청을 비롯한 음대원 삼십여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들의 시신은 갈대숲 곳곳에서 속속 모습을 드러냈
다.
화르륵! 타탁...!
바짝마른 갈대는 한지에 먹물 스며들듯 새빨간 불길을 활활 피
워 올렸다. 넓디넓은 갈대밭이 화염구덩이로 변한 것은 그야말
로 순식간이었다.
반여량의 말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는 중이었다.
"역시 동기감응이었나?"
산귀가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그렇소."
"육감... 이렇게 말해도 좋은가?"
"맞다고도 할 수 있고, 틀리다고도 할 수 있소. 불가지(不可
知)의 사실을 감지해 내는 이상적(理想的) 능력으로 본다면 틀
린 말이오. 하지만 축적된 경험과 직입적(直入的) 감성이 결합
된 것으로 본다면 육감이랄 수도 있소."
"그게 그 말 아닌가?"
"아니오. 전자는 신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깊이 잠
자고 있던 능력을 깨운 것에 지나지 않소."
순간, 산귀는 비수 같은 눈길을 던져 왔다.
"그 말은...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소. 노력만 한다면."
산귀는 이 말을 듣고 싶었다. 배울 수 없는 능력은 아무리 뛰
어나도 그림의 떡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한다면 무용지물
이다. 모두가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후인을 양성할 수
있고, 감파의 명예가 자손만대로 이어질 것이다.
동기감응... 이제 원방 감여법으로 선택한 음지와 동기감응으
로 선택한 음지를 비교하는 일만 남았다. 무공이 아무리 절묘
하더라도 감여에는 소용이 없듯이, 동기감응이 아무리 뛰어나
더라도 원방감여에 적용할 수 없으면 그 또한 무슨 소용이겠는
가.
"놈들을 스물여섯 명이었다. 다른 한 놈의 행방을 아는가?"
조중이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는 한결 묵직해졌다. 온화한 인상 대신 강인한 패기로 가득
했다. 몸집이 워낙 거구이고, 단단한 근육이 두드러져 보이는
사람이라 더욱 그랬다.
반여량은 대답 대신 손을 들어 갈대밭 너머에 아스라이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저기로 갔단 말인가?"
"장담은 못하겠소. 하지만 저쪽으로 사라진 것만은 확실하오."
"하나만 더 묻자. 그 기(氣)라는 것... 어느 정도 거리를 격하
고 느낄 수 있나?"
"강한 기는 멀리서도 느낄 수 있고, 미약한 기는 바로 곁에 있
어도 못 느끼죠."
"그런가? 그럼 검기(劍氣)도 읽을 수 있나?"
"후후! 그런 기가 아닙니다. 내가 배운 것은 인간의 감정과 자
연기의 조합(組合). 혹시 모르겠군요. 내가 무공을 익힌다면
검기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을지. 제가 손님이 온 것을 안 것
은 살기를 읽었기 때문이죠."
"부탁이 있다."
조중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내용도 읽을 수 없었다.
"무인과 감여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무인이 몸이었
다면 감여가는 눈 역할을 해줬지. 부탁한다. 이번 일이 끝난
다음에 능공십자를 찾아다오. 단 한 번만 눈이 되어 주기 바란
다."
조중의 말은 극히 나직해서 바로 곁에 있는 산귀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와 정대의 천애사시 동목, 그리고 음대원 삼십 명은 일행과
떨어질 준비를 마쳤다. 음대원의 시신을 찾으면서 미미한 혈흔
(血痕)도 함께 찾았고, 그 뒤를 추적하려는 것이다. 방향은 역
시 반여량이 말해 준 곳. 혈흔은 그쪽으로 이어졌다.
"생각해 보겠소."
조중은 반여량을 힐끗 쳐다보고는 가타부타 말없이 발길을 돌
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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