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 구조조정.종자돈도 없이 출범
바닥난 예보 저축銀계정 "원죄론"
부실 상호저축은행의 잇단 사고로 예금자 보호를 책임진 예금보험기금의 저축은행 계정 부실화가 가속화되면서 출발부터 잘못됐다는 '원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2003년 1월 '신(新) 예금보험기금'이 출발하기 전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가로 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추가 사고에 대비해 '씨드머니(종잣돈)'를 갖고 출범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금이라도 추가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하거나 저축은행의 보험료를 올려 예금보험기금의 건전성을 조기에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잇달으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금보험기금은 지난 2002년 말 예금자보호법 개정에 따라 기존 예금보험기금은 공적자금 상환 목적의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과 2003년 1월 이후 발생하는 보험금 지급 업무를 담당하는 '신 예금보험기금'으로 분리됐다.
신 예금보험기금의 출범은 예금보험기금도 공적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일반 보험회사 처럼 금융기관이 낸 보험료로 운영해 나간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출범 당시 예보측은 저축은행 업계의 상황 등을 고려해 2조원 정도의 종잣돈을 갖고 예금보험기금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예산처의 반대로 무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보 관계자는 "저축은행 업계의 상황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목돈이 들어가야 하는 보험업의 특성상 2조원 정도의 자금을 갖고 기금을 출발해야 한다고 요구했었다"며 "그러나 예산처가 받아들이지 않아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예보 관계자는 "당시 기금에 1조원 정도의 자금이 있었는데 이것도 채권상환기금으로 넘기고 시작했다"며 "자금없이 시작하려면 신협처럼 기금 출범 전 구조조정이라도 한 차례 더 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된 예금보험기금은 저축은행들의 잇딴 사고로 인해 '금융기관의 보험료로만 운용한다'는 '신 예금보험기금'의 취지가 무색해진지 오래다.
예금보험기금 가운데 저축은행 계정은 지난해 11월 말 현재 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는 1460억원(2003년 667억, 2004년 793억원)인 반면 사고가 난 저축은행에 지급한 보험금은 2413억원에 이른다. 예보는 부족한 953억원을 은행이나 보험 계정에서 빌려 지급하고 있다.
신 예금보험기금 출범 후 김천상호저축은행을 시작으로 한나라, 한마음, 아림, 한중, 플러스 등 6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후 정리절차를 밟고 있거나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상태다. 특히 최근 두 달새 3개 업체가 영업정지를 당하는 등 사고 숫자도 급증하는 추세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예금보험기금이 건전성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거나 왜곡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사고 금융기관들의 회생 여부를 판단할 때 당장 보험금 지급에 부담이 있는 청산 보다는 회생쪽에 무게를 두고 구조조정을 진행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자생력 없는 금융기관들이 연명하면서 업계 전체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금보험기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공적자금 투입이나 보험료 인상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예금보험기금은 금융기관들이 부실로 고객들에게 예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예금자 보험법에 따라 5000만원 한도 내에서 고객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한다. 금융기관들은 대신 예금보험기금에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으며 보험요율은 은행권이 보호대상 예금 잔고의 0.1%, 증권은 0.2%, 보험 종금 상호저축은행 등은 0.3% 선이다.
진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