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멀어져가는 시간과 점점 사라져가는 20대의 열정을 애틋한 감정으로 표현한 이 노래는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구나’로 끝맺음한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95년 23살의 나이로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조성민도 올해로 꼭 서른이 됐다. 그의 20대는 화려했다. 97년 1군 무대에 올라 98년 요미우리의 에이스 외국인선수로 매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2000년 톱 탤런트 최진실과 결혼하며 뭇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서른 문턱에 오를 무렵인 지난해 겨울. 20대의 마지막은 그동안 가진 것들과의 이별을 통보했다. 8월 요미우리와 결별하며 일본 생활을 청산했다. 11월에는 부인 최진실과의 불화로 결혼 생활의 위기를 맞았다.
하나 둘씩 이별을 하고 이제 남은 것은 야구와 슈크림 빵 전문점 ‘비어드 파파’. 기자는 21일 조성민이 운영하고 있는 강남 ‘비어드 파파’에서 그를 만나 ‘이별한 것’과‘남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서른 살의 방황
지난 12일은 조성민에게 또 하나의 실망을 안겼다. 지난 4월 30일 한국야구위원회에 드래프트를 신청했으나 1차 지명 최종 마감일인 이날 연고권을 가지고 있던 LG와 두산 모두 그의 지명을 포기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LG와 두산 중 한 팀은 반드시 지명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드래프트를 신청했는데 아마 돈이 걸림돌이었던 것 같아요.” 드래프트를 신청하기 전 두 구단은 조성민에게 어떤 암시를 하는 듯했다.
● 마지막 기로
그가 야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요미우리에서 떠날 당시 국내 활동에는 별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생활 문제로 불편함을 겪는 과정을 지켜보며 다시 글러브를 잡지 않고 사업가로 은퇴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일본에서 들어올 때 미국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 국내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한국에서 터무니 없는 대우를 받을 바에는 마이너리그에서 꿈을 키우며 살고 싶었거든요.” 그런 그가 국내로 고개를 돌린 것은 현실과 미련 사이에서 내린 최선의 결정이었다.
“20년 야구인생을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조성민’의 인생도 마찬가지였고요. 귀국 후 8개월을 쉬었는데, 내년까지 쉬면 앞으로 야구는 못할 것 같더군요.” 지금이 마지막 기로라는 것을 그도 느꼈다.
● 두 개의 Q&A
1차 지명 마감일을 앞두고 각 구단은 조성민에게 물음표 두 개를 붙였다. 가장 큰 물음표는 ‘야구는 할 수 있는 몸인가’였다. 일본에서 두 차례 팔꿈치 수술을 받은 부상 전력이 스카우트의 걸림돌이었다.
“부상은 요미우리를 떠나기 위해 제가 찾은 구실이었어요. 등판 기회가 없는 일본에서 더 이상 뛰기 싫었죠. 계약기간은 1년이 더 남았고 ‘아파서 못 던지겠다’고 하는 것이 팀에도 무난할 듯했고요. 부상을 약간 과장한 겁니다.” 지난해 10월에 귀국할 당시 조성민은 팔꿈치에 통증은 없지만 약간 저린 상태라고 했다.
기자는 돈과 관련한 민감한 두번째 질문을 했다. “사업상 돈이 필요해서 야구를 다시 하려고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의 첫 마디는 시원했다. “돈이 없긴 없어요. 그렇지만 꼭 돈이 필요해서 다시 마운드에 서려고 한다는 말은 억측이예요. 은퇴 후를 생각한다면 사업도 내 인생에 중요하지만 할 수 있는 그날까지 맘껏 그라운드에서 던져보고 싶어요.”
● 노란색 꿈
강남역 부근의 ‘비어드 파파’는 100m 앞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샛노란 파라솔이 인상적이다. 조성민의 인생에서도 샛노란 파라솔처럼 어디가나 눈에 띌 때가 있었다. 98년 선발로 뛰며 전반기에만 7승을 거뒀다. 3번의 완투와 완봉을 기록하고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네가 에이스란 말에 볼을 150개씩 던져도 힘든 걸 못 느꼈어요. 올스타 때 1이닝만 덜 던졌어도 인생이 달라졌을 텐테….”
올스타전에서 팔꿈치 통증으로 1이닝을 던지고 강판하기로 했으나 뒤에 던질 수 있는 투수가 없는 상황에서 2이닝을 던지며 인대가 완전히 끊어졌다. 그 후 인생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특히 최진실과 이혼 문제가 복잡해진 지난 겨울에는 야구를 그만두려고도 했다.
●나이 ‘서른 즈음에’
30대의 꿈이 뭐냐고 물으니 20대보다 더 화려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20대의 ‘화려함’과는 좀 달라요. 모든 불편한 문제들이 해결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지만 즐길 여유가 없다. 조성민은 2차 지명 마감일인 오는 6월 30일 전에 인생의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관심을 보이는 구단과 접촉해 가능성이 없으면 먼저 포기하려고 해요. 여태껏 제가 쌓아온 자존심에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 서른 즈음에 한꺼번에 닥친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 그를 지탱한 유일한 무기였다.
기자는 그가 야구와 사생활이 모두 잘 해결된 뒤 다시 한번 만나자고 요청했다. 상상만해도 기뻤을까.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귓가에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