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 / 이성경
수년간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불안감을 주었던 일들로 인해
사는 것이 아니었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하던 날도 머언 뒤안길로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날만 남았으니 그때처럼 잉꼬부부로
함께 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악악대며 달려들던 우악스런 손길들과 발길질들로 인해
두려움과 정신적인 고통과 공포에 시달렸던 날들이 얼마나
길고 지독했는지 정작 그들 자신들은 모를 것이다.
마치 해야 할 일 하는 것처럼,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재촉하는 것처럼
괴롭히고 괴롭혔음에도.
어떤 사람은 마치 배려하는 듯한 말투로 '힘드시겠지만 나중에
꼭 달라고 다시 오겠다.'고 내 부모의 배려가
그들의 선함으로 남았으니 처참하기만 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들, 오지 않아야 할 날들로 새겨진
그날의 고통들도 모두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고요만이 남았다. 정적만이 감싸고 있다.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덤벼들어
두들겨 팬 자들에게 이유도 모른 채
맞아야 했던 일들은 아직도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그들은 왜 때리고 옷도 입지 못한 상태로
놀라 돌아와 찢어진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
병원을 갈 수밖에 없도록 했을까?
그들은 작은애와 비슷한 나이였다.
그들은 작은애에게 불만이 있었을까,
집에 오던 작은애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
타고 가던 차에서 내려 얼굴이 찢어지도록 팼다.
병원에서는 파상풍 주사나 맞으라고 했으니
예수가 로마 병정에게 맞고 녹슨 못에 찔린 것이라고 했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교회에 바쳐진 애 아냐?
재수 없다, 얼굴 알지? 예수님처럼 맞아도
교회에서 하는 일이니까 가만히 있겠지.
누가 뭐라 하지도 않을 테니 만나면 패주자."
터무니없는 소문을 만들어 내더니 폭력 행사까지
한 자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 막막함은 여전히 따라다녔고 그들은 어디서든
작은애라는 것을 확인하면 방해와 폭력을 행사했다.
어떤 방식이든 가리지 않고.
그들의 교묘함과 잔인함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따라다니며 괴롭혔고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으니
공포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연단하신다고 했지만
그것은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들은 연단을 받지 않고 공짜로 뺏어도 된다고
성경 어느 구절에 있는가.
작은애가 당한 고통과 공포는 아마도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뿌린 것은 그것 뿐이니.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한다는 구절이 있다.
그대로 될 것을 나 역시 바라고 있을 뿐이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7.26 19:02
첫댓글 그거야 말로 하나님만 아시는 일이니까요.
사람이 추측으로 그럴거라고 하면서
일부러 고통을 주면 안되니까요.
마리아마리님 오늘도 비가 오락가락 하네요.
고요함 좋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날마다 건강하게 지내세요.
좋은글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아픈 삶의 추억...수고 많으셨어요..겪어온 고난과 시련이 축복의 소재로 변함 받아 삶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시길
감사합니다.
고요함 좋은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고요함 시에 머물다 감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