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에서 백제 출신 고승은 국사를 못하는데,
일본에선 잘만 합니다.
또한 통일신라에서 백제 유민은 암것도 혜택 본게 없는데
일본에서는 백제 멸망 직후 무려 20년동안 조세와 부역을 면제받았죠.
또한 통일신라에선 백제 유민 출신은 태수는 고사하고 현령도 못하며, 촌주나 간신히 합니다.
옛날에 백제 왕족이니 뭐니 백제 귀족이니 뭐니.....다 소용 없습니다.
한편 일본에선 태수도 하고 현령도 하고 중앙 고위 관리도 하고 할 거 다 합니다.
물론 제아무리 그래봐야 최고위 관직은 황족 혹은 황족에서 갈라져 나가 생긴 귀족 가문이 독차지합니다만
이런 자리들은 일본 토종 귀족도 하기 힘든 자리라 논외.
그나마 좀 대우받았다는 고구려 유민? 어쩌다가 6두품 대우는 받는데
실제로는 거진 5두품이 한계였을 거라고 하더군요. 이러면 머 끽해야 현령급이죠.
그나마 각 신라 부대 하급 장교까진 할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조상 대대로 신라인인 견훤조차 승진이 꽤나 어려웠던 상황을 보면 그외 다른 친구들은 대체 뭘 할 수 있었을 진 영....
물론 통일신라가 삼한일통 캐치프레이즈 선전은 꽤나 많이 했습니다.
근데 실상이 이 지경이니, 도로 안 짜개지면 이상한 거죠.
한마디로 말로만 삼한은 같은 가족 이래놓고 실제로는 아니 그랬다는 겁니다.
알면알수록 나오는 소리는 '이러니까 망했지.....' 입니다.
여기서 신라를 위한 변호를 하자면, 신라왕들은 이런 현상을 해결하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만, 진골들이 죄다
엎어서 망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결과니 변호에는 한계가 있지요.
ps.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얘기들은 '최근 연구'도 아니고, 이미 십삼 년 전 밝혀진 연구 결과들입니다.
ps2. 이런 얘기들을 쿨게이 신라빠들은 극구 부정하면서 거짓말로 덮으려 든다는 게 더 충공깽.
대놓고 저보고 한다는 소리가 대부분은 '니 즌라도 늠이가?' 이 수준입니다.
어차피 모든 한반도 현대인은 다 신라의 자손이거늘, 이 부류의 병신들은 어쩌다 현재 지연이 경상도,
혹은 그 가짜족보상 인연이 김이박이라고 어처구니 없게 진퉁 신라인 행세를 하려듭니다.
뭔가 지금 대한민국 국사 교육 자체가 대단히 잘못되어 있음을 실감합니다.
첫댓글 학계의 연구결과가 학교교과과정에 녹아드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문제죠.. 그동안 머가리 물러터진 아해들은 어디서 듣도보도못한 출처 이상한데서 역사를 배우고
(욕설)
근데 궁금한건
우리한반도 신라말고
다른나라나 기타 중원국가에서도
골품제도같은것은 없었지요
신분제도를 골품으로 정한단는건
인도 카스트제도 보다
더 지독한거지요
일본은 백제멸망후
일본지역에서는 한반도 국가
식민지 분봉국 형태서
백제멸망으로
엄청난 유민들이 일본으로
흘러가서 한반도와 절연한
신백제 일본국을 건국합니다
신라골품제도 연원이 궁금합니다
사필귀정이라고
무슨 개뿔 통일은 백년못가서
아작난건데
우리가 지금도 잘가는 술집이나 가게집에서
단골손님이라고 부르지요
신라가 외세불러서 고구려 백제멸망후
유민들이 신라인들하고 거래를
거진 안했지요
고구려 백제유민들끼리
단군국가계열들이라고
단골들이라고 부르고
서로 돕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단골손님이란
용어가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으로 간 백제 유민들이 일각의 착각처럼 상류층 전부, 몇십만 이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기껏 끽해야 몇 만 정도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것만 해도 적진 않은 수지만.
또한 골품제가 꼭 부작용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초기 아이디어대로 정말로 멸망 전 직급 대우였으면 나았을 겁니다. 그렇게 안 되어서 문제지..... (;;)
나라가 망했는데 어쩌겠습니까 ㅜㅜ
똑같은 망국 유민이지만, 일본에선 대우 받고 신라에선 대우 못 받았습니다. 단순한 망국의 한은 아닙니다.
국가적 위기를 맞아서 구 가야계를 포섭하는 좀 더 오픈된 마인드를 보였으나 위기가 넘어가고 다시 폐쇄적인 구조로 돌아갔다고 봐야죠.. 그 과정에서 진골간 권력 투장이 격화되고 말이죠.
잘 읽었습니다. ㅎㅎ
신라는 제국이 될 자격이 없었군요
진골들이 만악의 근원입니다.
삼한을 온전하게 통합하지 못한거였네요.
근데 이게 통일신라의 기록이 많이 전해지는 것이 없어서 인지 얼마나 고백 유민들이 신라 관료에 등용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속일본기 일본후기에 신라 석박김 6성을 제외하고 아무래도 고구려랑 관련이 있는 고씨라던가 부여씨의 단축 성씨로 보이는 서씨들이 사신관료로 등장하는 것을 봐서 아예 배제를 했다고 볼 수는 없네요 제 생각에는 가야 처럼 김씨로 사성하거나 아니면 대부분 신라 왕족 귀족들이 중대의 혼란시기에 몰락했기에 여기에 편승해서 몰락했을듯 싶습니다 이게 거의 우리나라에 고구려 백제 기반의 가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5두품 이하도 사신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초반부터 아예 국정에서 배제되었기에 몰락이고 자시고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씨도 대부분은 신라계입니다.
관료에 등용하는 원칙은 그리고 분명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본문에 제가 쓴대로입니다. 그리고 김씨로 사성했으면 기록에 없을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계층이 고착화 되는걸 그래서 상당히 우려합니다.
닫힌사회가 선택하는 엔딩인듯. 이래서 결국은 이민자던간에, 신흥세력이던간에, 무조건 포섭과 유화 방침으로 나가는것이 좋은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