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에스프레소] 구속 중인 국회의원 세비를 왜 줘야 하나
조선일보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 2023.05.23. 03:00업데이트 2023.05.23. 06:36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3/05/23/OUUXXGWVGNBDBDLOT4Q3VDO6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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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장 등은 바로 봉급 깎아
의원은 감옥 가도 세비 그대로
심지어 당이 로펌 되어 방탄까지
국민 혈세·사회 자원 낭비 막아야
얼마 전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따른 2차 피해구제 분담금 704억원을 완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원인 모를 급성호흡부전으로 환자들이 잇따라 입원하면서 사건이 대두된 게 2011년. 1800명 넘는 사망자를 낳은 이 사태가 정권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 흐르고서야 한 단락을 매듭지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그 긴 시간 동안의 재판은 피해자들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 병마와 싸우는 고통 못지않게 큰 아픔으로 다가갔으리라. 더군다나 상대가 옥시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라면 대형 로펌과도 싸워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병든 몸을 이끌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피해자들이 어떻게 재판을 챙기냐”는 한 피해자의 분노는 법조문에선 드러나지 않는 사법 체계의 불공정을 보여준다.
수백억원대 이스타항공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이상직 전 의원이 징역 6년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7일 이 전 의원의 상고를 기각하고 이같은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 전 의원이 지난 2022년 1월 전주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4.27 /연합뉴스
일반인들은 한번 송사에 휘말리면 좀처럼 일상을 회복하기 어렵다. 설령 그게 자기 잘못이 아닌 데서 비롯했다 하더라도 그렇다. 지난한 법적 투쟁을 위해, 나약한 개인들은 더러 큰 빚을 지거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 3심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의 외로움은 오롯이 개인 몫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원은 참 매력적인 직업이다. 이들에게 재판은 결코 외로운 싸움이 아니다. 의혹이 불거지면 동료 의원, 당원들의 적극적인 비호가 시작된다. 당내 입지는 오히려 높아진다. 검찰이 기소라도 한다면 그건 곧 훈장이다. 그 순간부터 부패 의혹에 사로잡혔던 정치인은 불의한 검찰과 맞서는 투사가 된다. 누군가는 이길 수 있는 재판도 선임한 변호사가 제대로 출석하지 않아 패소할 때, 국회의원은 당 전체가 로펌이 되어 그의 뒤를 받쳐준다.
백번 양보해 정당이 소속 정치인을 옹호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의를 빚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법적 결백을 밝히기 위해 투쟁하는 동안 국민의 혈세를 비롯한 사회적 자원들이 낭비되는 현실은 유감스럽다. 코인 투자 논란에 휩싸인 김남국 의원은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며 “무소속 의원으로서 부당한 정치 공세에 끝까지 맞서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1년가량 남은 그의 임기는 자신이 주장하는 결백을 밝히기 위한 과정이 될 것이다. 입법이나 국정감사가 아닌, 개인 비리 의혹을 밝히는 데 세비와 보좌진 월급이 쓰이는 셈이다.
심지어 국회의원은 감옥에 가도 세비를 그대로 받고 9명의 보좌진도 유지된다. 현재 뇌물 혐의로 수감 중인 국민의힘 정찬민 의원은 그런 식으로 10개월째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수당과 입법활동비 등을 받고 있다. 1년 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상직 전 의원은 보다 극단적인 사례다. 그는 21대 국회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이스타항공 관련 배임·횡령으로 수사받는가 하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도 기소되었다. 임기 중 두 차례 구속되었다. 상황이 이러니 제대로 된 의정활동이 될 리 없었다. 그가 임기 중 대표 발의한 법안은 고작 5건. 그마저도 각종 의혹에 대한 재판이 본격화한 2021년부터는 한 건도 없다. 누군가는 억울하게 입은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빚을 지고 생계도 포기하며 소송에 임할 때, 이들은 감옥에 가도 억대 연봉과 보좌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재판받는다. 이런 직접적 비용 외에 헌법기관이 고유의 활동을 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기회비용은 더욱 크다.
국회의원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은 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으면 봉급이 삭감된다. 지자체장의 경우 구속 4개월이 넘어가면 월 보수의 80%까지 삭감된다.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 탓인지 21대 들어 몇몇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들은 대체로 구속 중인 국회의원의 세비를 제한하는 걸 골자로 하고 있다. 그 법안의 제안자 중에는 김남국 의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