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음악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Music and Lyrics은, 휴 그랜트와 드류 배리모어의 개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휴 그랜트는 한물간 왕년의 팝 스타로, 드류 배리모어는 우연히 휴 그랜트가 살고 있는 집의 화분에 물을 주기 위해 들렸다가 그가 두드리는 피아노 곡에 작사를 하는 역할로 등장해서 찰떡 궁합을 맞춰간다.
마크 로렌스 감독의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은, 처음에는 사소한 일로도 티격태격 싸우고 서로 엇갈리기만 하던 두 남녀가, 점차 서로를 알아가면서 진정한 사랑으로 승화된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형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내러티브의 새로운 것은 없다. 너무나 상투적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듀란듀란]이나 [웸]같은 80년대 스타일의 음악과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밉지 않은 휴 그랜트의 필살기 무대매너를 보는 것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룹 팝(POP)의 멤버였던 알렉스 플래쳐(휴 그랜트 분)는, 그룹 해체 후 솔로로 활동하며 겨우 왕년의 인기로 먹고 사는 퇴물 가수다. 그의 팬들도 그와 함께 늙어가서 이제는 대부분 주부가 되어 있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백화점의 작은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거의 전부인 그에게 어느 날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브리트니 이상의 최고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신세대 스타 코라 콜만(해일리 베넷 분)이 듀엣을 제의해 온 것이다.
우리도 조PD 노래에 인순이가 참여하거나 뭐 그런 비슷한 식이다. 코라 콜만이 어린 시절 그룹 팝의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제의를 한 것이지만, 알렉스가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리고 만든 노래가 마음에 안들면 없던 일로 한다는 단서도 붙어 있다.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알렉스는 오랫만에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며 작곡을 해보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더구나 문제는 가사다. 잘 나간다는 작사가를 데려 왔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때 알렉스의 집 화분에 물을 주는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대신 친구를 보낸다. 그 사람이 소피(드류 배리모어 분)다.
이런 준비 단계를 알고 있으면 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를 본 당신은 훤히 알고 있을 것이다. 맞다. 당신의 짐작대로 이야기는 흘러 간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원제는 Music and Lyrics 그런데 왜 이렇게 유치한 한글 제목을 붙였는지 영화사 관계자들의 낡은 감각에 두 손 들 수밖에 없다)의 진짜 재미는 그때부터다. 휴 그랜트가 건반을 두드리고 드류 배리모어가 한 줄씩 흘리는 작사,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재미의 반이다. 물론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왕년의 인기 그룹 팝의 뮤직비디오도 죽인다.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듀란듀란] 혹은 [웸]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는 정말, 딱이다.
또 하나 당신이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가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노래들은 립 싱크가 아니라는 사실. 그러니까 휴 그랜트는 실제로 자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는 영화 속에서 왕년의 최고 인기 스타이기 때문에 노래를 정말 잘해야 한다. 무대 매너도 아줌마 팬들이 뿅가게 만들만큼 잘해야 한다. 그런데 진짜로 노래도 잘 하고 무대 매너도 죽인다. 어떤 팝 가수의 목소리보다도 더 달콤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신이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재능을 준 것 같다는 질투가 날 정도이다. 더구나 엉덩이를 툭툭 흔드는 섹시한 무대 매너는 저절로 웃음이 나오게 한다. 이래도 흥행이 안될 소냐, 라고 눈가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왕년의 꽃미남 배우가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