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있으면 분리불안을 느낍니다. 그런데 엄마와 함께 있어야 평안을 느끼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엄마가 곁에 없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무언가를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독립하게 됩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다시 배우자를 찾고 의지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은 힘이 있을 때는 독립적이지만 힘이 약해지면 의존적으로 변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연약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만 세상적인 힘이나 능력이 생기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과거에는 금요 철야기도 때에도 목이 쉬도록 기도하고 휴가 때는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삶은 고단하고 나의 연약함을 잘 알았기에 하나님을 더 간절하게 찾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먹고 살 만도 하고 힘도 생겼다고 여겨지는 지금 시대에는 점점 주님을 떠나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를 위한 거처’를 예비하시겠다면서 자꾸만 어디론가 가시려고 하니 제자들의 마음에 분리불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떠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이르셔도 그것이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을 말씀하심을 제자들은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불안해하는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후략)”(요 14:27)라고 위로하셨습니다.
과거에는 성령을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 혹은 악한 영과 싸울 때 능력을 행하시는 분 정도로만 생각하고 삼위의 하나님 중 성령님의 역할을 축소해서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은 성부 혹은 성자 하나님과 동등하신 한 분의 하나님이시오 그리스도의 영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임금인 사단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 비록 현실의 어려움이 여전히 상존할지라도 믿음이 생겨나 담대해지고 평안해지게 됩니다. 나의 현실과 고난에서 오는 염려가 독버섯처럼 자라나 마음을 덮어버릴지라도 성령님은 언제나 동일하게 우리 안에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세상적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 세상의 것 때문에 내가 평안하다 여기게 됩니다. 반대로 세상의 것이 조금 부족해지면 불안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심지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지라도 그것이 사라질까봐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세상이 주는 평안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평안은 이와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 나라의 평안입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것은 죄와 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동시에 죄의 속성과는 정반대에 있는 평안과 생명,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에 불안이 떠나가고 평안을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시며 그 하나님을 우리가 의지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평안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평안한 정도가 곧 내가 주님을 의지하고 있는 정도를 나타냅니다.
성령님은 평안에 이어 용기도 주십니다. 피하고만 싶은 불편했던 세상과 맞설 담대함을 주십니다. 이제는 그 용기에 힘입어 현실을 직시한 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피할수록 더 무섭게 달려듭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맞서 선포하신다면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했던 것 같이 너와도 함께 하겠다”고 격려하신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도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