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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예수의 길
마태복음 2:13-23
2024년12월25일 수요일 오전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마태복음 2:13-23 KOERV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찾고 있으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아기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하여라. 그리고 내가 다시 일러 줄 때까지 이집트에 있어라.”
"일어나라, 그 어린 아기와 그의 어미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하라."
그 명령은 다급한 것이었고, 그 현자들, 동방 박사들이 떠나는 즉시 임했습니다.
요셉 가족이 이집트에 피난처를 갖는 것은 요셉에게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집트에 대규모 유대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요셉의 가족을 그곳으로 인도한 것은 자연스러웠습니다.
이에 대해 카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집트는 도피하기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헤롯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고, 로마 식민지가 질서있게 세워진 곳이고, 비교적 거리가 가까웠습니다.
필로(Philo; 주후 40년 Circa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 유대 공동체 인구는 약 일백만명이었습니다."(Carson, 재인용 David Guzik, Matthew 2, Blue Letter Bible app.).
"헤롯이 그 어린 아기를 멸하려고 찾을 것이라."
권력에 눈이 먼, 헤롯의 성품과 광기를 아신 하나님의 긴급조치로, 아기 예수를 안고 피신케 하셨습니다.
[14] 요셉은 서둘러 일어나서 그 밤중에 아기와 마리아를 데리고 이집트로 몸을 피하였습니다.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그 어린 아기와 그의 어미를 데리고 출발했다."
요셉이 꿈을 꾼 그 밤에, 그 순간에 즉시 일어나서 순종했습니다.
청년 요셉이 나사렛 처녀 마리아와 약혼했을때,
그가 이런 긴박한 상황을 맞이할 것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고난은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며 인류의 구속을 위한 구세주의 사역과 일에 참여하는 영광스런 것이었습니다.
[15] 요셉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셉 가족이 이집트의 어느 지역으로 갔는지, 그곳에 얼마나 머물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혹자는 육년 혹은 칠년 일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이들은 삼개월 혹은 사개월이라 말합니다."(Poole, 재인용 David Guzik, Matthew 2, Blue Letter Bible app.).
호세아서 11:1 KOERV의
[1]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였을 때 내가 그를 사랑했다. 그래서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는 말씀이 이뤄졌다고 마태는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한 나라로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 약 70명이 기근, 굶주림을 피하여 이집트로 가서 430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이주시키셨습니다.
430년 만에 70명이 이백만명 이상의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노아 가족 여덟 사람은 방주에 들어가서 377일 동안 지내다가, 대홍수 심판의 멸망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대홍수가 그치고 물이 빠지고 땅이 말라가니 노아 가족은 방주에서 땅으로 나왔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기 예수와 마리아와 요셉의 가족은 일정 기간 헤롯의 살륙을 피해 이집트에 피난 가서 머물렀습니다.
헤롯이 죽은 후 그곳을 떠나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16]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그는 베들레헴과 그 둘레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17] 이리하여 주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18] “라마에서 들려오는 소리 울부짖으며 크게 슬퍼하는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그들이 모두 없어졌으므로 누구의 위로도 받으려 하지 않는구나!”
"베들레헴과 그 지역 안에 있던 모든 남자 아기들, 두 살 이하는, 헤롯이 군사들을 보내 죽였다."
세속 역사 기록은 없지만 헤롯의 무자비한 성품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브루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믿기 어려운가?
자기 아내와 아들들을 살해했던 그 사람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었다.
이 행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충격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헤롯의 경력에 작은 일이었다.
그것이 그 당시 역사였다(Bruce, 재인용 David Guzik, Matthew 2, Blue Letter Bible app.)."
특히 그의 말년에 헤롯은 잔혹하고 의심이 많아졌습니다.
그가 곧 죽을 때가 되니 헤롯은 예루살렘의
유대 지도자들을 거짓 죄목으로 체포했습니다.
그가 죽는 순간 그들을 모두 살해하라고 미리 명령했습니다.
그가 죽을 때 아무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을때 학살을 해서라도 누군가의 눈물이 필요했습니다.
카슨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실제로 헤롯 생애에 비추어 볼때 그 역사는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소수 아이들의 죽음, 아마도 십여명 쯤, 베들레헴 총 인구는 많지 않았다, 은 그런 폭력의 시대에 기록되기 어려웠을 것이다."(Carson, 재인용 David Guzik, Matthew 2, Blue Letter Bible app.).
"라마에서 애통하여 울고 큰 애곡의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예레미야 31:15 인용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정복당하고 포로가 되었을 때 그 어머니들의 애곡을 언급했습니다.
여기서 "라헬"은 베들레헴 어머니들의 대표로 기록한 것입니다.
풀에 의하면, "이 예언은 문자적으로는 유다가 망하고 포로가 되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베냐민과 유다 지파에 큰 애곡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죽임당하고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로 이루어지고 검증되었습니다."(Poole, 재인용 David Guzik, Matthew 2, Blue Letter Bible app.).
"라헬은 모든 시대에 걸쳐서, 여인의 자녀들의 불행을 공감하는 이스라엘 한 어미로서 히브리인이 좋아했습니다."(Bruce, 재인용 David Guzik, Matthew 2, Blue Letter Bible app.).
[19] 헤롯이 죽고 난 뒤에, 주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20] “아이를 죽이려고 하던 자들이 죽었다. 일어나서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거라.”
[21] 요셉이 일어나서,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마 2:19-21은 아기 예수와 마리아와 요셉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
살기 등등했던 헤롯이 죽고,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주의 천사가 이집트에 거하던 요셉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그 어린 아기와 그의 어미를 데리고 가라."
요셉은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 어린 아기 ... 그 어린 아기 ... 그 어린 아기."
"그 어린 아기"를 반복하여 말함으로, 그 아기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렀다."
이집트에서 메시아가 몇 년을 지냈을 수 있습니다.
살기 가득한 헤롯을 피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필연적으로 "이스라엘 땅"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메시아는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기 때문입니다(마 2:2).
구원의 복음은 유대인에게서 시작하여 이방인에게로 흘러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될 때 이방인들 중에서도 택한 자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집트 마술사들, 점치는 자들이 예수께 영향을 주었고, 훗날 그의 이적들은 이집트 술법이었다고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주장은 "증거"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 형식은 구약 유대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집트 신비주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David Guzik, Matthew 2, BLB=Blue Letter Bible app.).
[22] 그러나 요셉은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유대 지방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지방으로 가기가 두려웠습니다.
요셉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리 지방으로 갔습니다.
[23] 요셉은 갈릴리의 나사렛 이라는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를 나사렛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마 2:22-23은 헤롯 아들 아켈라오가 다스리게 되었고, 그 역시 아버지 헤롯처럼 악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요셉 가족은 북쪽 나사렛에 정착하게 됩니다.
아켈라오가 다스림을 들은 요셉은 상당한 경계심을 가졌습니다.
그 역시 무능하고 폭압적 독재자였습니다.
이후 유대의 유대인들 탄원으로 로마가 그의 직위를 박탈했습니다.
주후 6년 로마 제국이 세운 유대 총독으로 대체됩니다.
브루스에 의하면, "어린아이 같은 성품, 의심많은 성격, 호전적 성향이었다(요세푸스 고대사, 17,11,2).
그는 두려움과 기피 대상이었다."(Bruce, 재인용 David Guzik, Matthew 2, BLB).
풀에 따르면, "그의 형제 헤롯 안티파스는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질이었고 소극적 성격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 지시로 자기 고향 갈릴리로 갔다."(Poole, 재인용 David Guzik, Matthew 2, BLB).
"꿈속 하나님 경고를 받고 갈릴리 지역으로 갔다."
꿈속 하나님의 경고를 들은 요셉은 유대와 예루살렘의 매우 종교적 지역을 벗어나 갈릴리 인구 밀집 지역으로 갔습니다.
갈릴리는이방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브루스에 의하면, "샨즈, Schanz,는 어거스틴을 참고해, 요셉이 예루살렘에 정착하길 바랐다고 한다.
메시아에게 가장 적합한 도시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리들, 죄인들, 이방인들의미래 구세주를 위해, 멸시받는 갈릴리가 더 나은 훈련 학교로 판단하셨다."(Bruce, 재인용 Davidavid Guzik, Matthew 2, BLB).
"그리고 그는 나사렛 어떤 도시에 가서 거했다."
요셉이 마리아의 고향이고, 아마도 요셉의 고향이기도 한 나사렛에 돌아온 것은 주목할 일이었다(눅 1:26-7).
나사렛은 "주목받지 못한 마을"이었으므로, 눈에 띄는 일이었습니다.
그곳은 모든 사람이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 예수의 이상한 출생 상황을 아는 곳이었습니다.
나사렛은 성벽이 없고 무방비 마을로 다소 나쁜 평판을 가졌습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물었습니다(요 1:46).
하나님 계획 속에 작고, 초라한 곳이고, 상대적으로 나쁜 평판을 가진 곳이, 예수님 성장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란 곳입니다.
(David Guzik, Matthew 2, BLB).
""그가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것이다."는 선지자들 말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구약에 관련 구절이 없습니다.
혹자는 "메시아가 나실인이 될 것이라"는 말이라 주장합니다.
나실인이 되는 것은 성별의 특별한 맹세였습니다.
민수기 6:1-21에 있습니다.
그 맹세 아래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머리를 자르지 않고, 포도주나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지 않고, 시신이나 사체 접촉을 피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성별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마태가 "나실인"개념을 참고했지만 "나사렛"마을과 연계하는데 중심을 두었을 것입니다.
프란스에 의히면,
"마태는 구약 특정 구절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천하고 배척당하는 메시아에 대한 구약 성경 암시를 나사렛의 모호성에 담았다."(France, 재인용 David Guzik, Matthew 2, BLB).
마태가 특정 구절을 염두에 두었다면, 이사야 11:1이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 11:1 KOERV
[1]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 가지가 돋아난다.
"나자렌"은 나사렛 사람,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 사람이라는 의미다."(Bruce 재인용 David Guzik, Matthew 2, BLB).
사도행전 22:8 KOERV에서
부활의 예수님이 자신을 나사렛 예수로 소개합니다.
[8]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내가 여쭈었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다.’ 하고 그분이 대답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7-29 KOERV
[27]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8] 또 무엇이나 된 척하는 자들을 멸하시려고,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 곧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9] 그것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 되시고 그렇게 낮고 천한 이들과 함께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0 KOERV에서
[10] 그리하여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연약함과 모욕과 어려움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때 그때가 내가 정말로 강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여, 사도 바울 역시 나사렛 예수의 길을 갔습니다.
성탄절 오전에 나사렛 예수님의 낮고 천하고 겸선한 길을 가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되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