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115㎡형 주인인 김모(51)씨는 보름 전 아파트 매물을 급히 거둬들였다. 양도세가 완화되면 세금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는 데다 향후 가격도 지금보다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그는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본 뒤 인근 대형 아파트로 갈아탈 생각이다.
#2. 강남권 입성을 노리는 이모(47·서울 마포구 신수동)씨는 하루라도 빨리 양도세 완화 조치가 취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야 강남권 아파트 매물이 많이 쏟아지면서 가격도 떨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씨는 "양도세 완화 조치로 가격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강남권 아파트를 매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권 아파트 거래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매물도 많지 않지만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다. 특히 새 정부가 양도소득세 조기 완화 방침을 밝히면서 시세 6억원 이상의 고가아파트를 중심을 거래 실종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계의 설명이다.
강남구 도곡동 수지정공인(02-576-6002) 정수지 사장은 "주택 보유자들은 규제 완화 기대감에 매물을 거둬들이는 반면 매수 희망자는 집값 하락 기대감에 관망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의 경우 이달 들어 매물이 확 줄었다. 추가매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개포동 개포부동산(02-2057-1472) 채은희 사장은 "다주택자들은 이미 매물을 정리했거나 장기전으로 돌아선 경우가 많다"며 "양도세 감면 내용과 시행 시기가 구체화하면서 1주택자 매물까지 쑥 들어갔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거래가 끊기면서 호가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매매시장도 조용하다. 거래도 끊겼고 가격 움직임도 없다.
일반아파트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인근에 있는 동부센트레빌공인(02-564-8945) 이규정 사장은 "매도·매수 희망가간의 호가 차이가 더 벌어져 대선 직후보다 거래가 더 줄었다”고 전했다.
거래가 끊기면서 가격도 보합권에 머물고 있다. 한국부동산정보협회에 따르면 이번 주 강남권 아파트값은 0.06% 올라 전주(0.11%)보다 상승 폭이 줄었다. 일반아파트(0.01%)의 경우 가격 변동이 거의 없었다. 재건축아파트도 이번 주 0.17% 올라 지난 주(0.31%)보다 오름 폭이 크게 둔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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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도자는 완화 기대감에 매물을 거둬들이고 매수 희망자는 집값 하락 기대감에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서울 강남권 아파트 거래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
매도자는 ‘이 생각’, 매수자는 ‘저 생각'
세금 규제 완화라는 재료에도 불구하고 강남권 매매시장이 되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매도 희망자와 매수 희망자가 서로 딴 생각을 하고 있어서다.
①매도 희망자는 당장 집을 팔 생각이 없다.
적어도 양도세가 완화될 때까지는 매물을 내놓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강남구 개포동 미래공인(02-572-2111) 정준수 사장은 "1주택 장기보유자 양도세 감면 얘기가 나오면서 매물이 거의 사라졌다"며 "양도세 인하 이후에 세금을 덜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강남구 역삼동 K공인 관계자는 "양도세 완화로 시세 차익 발생분에 대해 부과될 세금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데다 규제 완화 조치로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는 집주인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1가구 1주택자의 장기 보유 특별 공제 확대 시행의 최대 수혜자는 6억원 초과 주택주택 소유자라는 분석이 많다. 현재 시세 6억원 이하 1주택자는 양도세 인하 여지가 별로 없다. 지금도 비과세 요건인 3년 보유 조건(서울·수도권 5개 신도시·과천시는 2년 거주 추가)을 충족하면 집을 팔 때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6억원이 넘을 경우 초과분에 대해서는 9∼36%의 양도세율이 적용된다. 그런데 6억원 초과분에 대한 양도세 공제폭이 보유기간별로 현행 최대 45%에서 80%(검토안)까지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②부동산시장에서는 양도세 인하에 이어 향후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도 상향 조정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누누이 밝힌 것처럼 종부세가 완화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언젠가는 각종 고급주택의 기준이 9억원 또는 10억원으로 상향 조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내집마련정보사 강현구 실장은 "인수위가 시장 불안을 우려해 '1년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고급주택 기준이 모두 올라갈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이 강하다"고 말했다.
고가주택은 가격기준이 '6억원 초과'로 정해진 1999년에는 1만3836가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4년 만인 2003년 13만4405가구로 10배 수준으로 늘었고 지난해 말에는 51만 가구를 넘어 36배로 급증했다.
가끔 나오는 매물도 배짱 매물 많아
강남권은 양도세 완화와 종부세 과세 기준 상향 조정의 최대 수혜지다. 종부세 과세 대상이나 양도세 고가주택 기준이 6억원에서 9억 또는 10억원으로 완화되면 이 금액대 아파트가 많은 지역이 혜택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가끔 나오는 매물도 "이 가격에 사려면 사고 아니면 말라"는 식의 배짱 매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대치동 명지공인(02-557-6969) 송명덕 사장은 "'앞으로 계속 규제가 완화될 텐데 가격이 떨어지겠느냐'는 생각에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높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양도세 인하→매물 증가→집값 안정'보다는 '매물 회수→투기 수요 증가→집값 상승'을 전망하는 점치는 경우가 집주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③반면 매수 대기자들은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양도세 완화 혜택을 받는 매물이 쏟아지면 가격도 약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 나은공인(02-545-4321) 관계자는 "양도세가 감면되면 그동안 높은 세금의 벽에 막혀 팔고 싶어도 팔 수 없었던 잠재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서 가격도 더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송파구 잠실동 학사공인(02-412-4989) 이상우 사장은 "새로 들어설 정부가 부동산 가격 불안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재건축 규제 완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대기 매수세들이 대부분 관망세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④매수 희망자로서는 당장 집을 매입할 이유가 많지 않다는 것도 거래 두절의 한 원인이다.
지금 가격이 크게 오르는 것도 아니어서 급할 게 없는 데다 취득·등록세도 곧 절반(2%→1%)으로 줄어들 것인데 서둘러 집을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매도자와 매수자의 기대감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어느 쪽이 나중에 웃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금과 같은 거래 위축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적어도 양도세 인하 등 세제 개편안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거래 공백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