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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입니다 |
올해 초 잉카의 결승문자에 대해 질문을 주셨던 이 개춘님. 저두 시원한 대답을 못드려 죄송한 맘입니다. 오늘 아래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참고가 되실라나? ^^;;
[서울신문]사라진 남아메리카 문명인 잉카 최초의 언어 ‘키푸(khipu)’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다양한 색깔과 방법으로 염색되고 매듭이 묶인 실 뭉치로 뜻을 전달하는 ‘결승 문자’인 키푸는 처음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존재가 알려진 뒤 500년간 학자들의 골치를 썩여 온 미스터리였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키푸가 세금 등의 정보를 담은 회계 장부라는 데 동의했으나 그 내용이 해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버드대 개리 어턴은 12일자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논문을 통해 “21개의 키푸를 컴퓨터로 분석한 결과, 페루의 리마에서 북쪽으로 11㎞ 떨어진 ‘푸루추코’란 도시를 나타냄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푸루추코는 어턴이 분석한 키푸가 발견된 곳으로 잉카 궁전이 있었던 도시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페루의 카롤에서도 지난달 키푸가 발견됐다. 이는 키푸가 4500년간 복잡한 문자 언어로 사용됐음을 보여준다.
어턴은 “키푸 해독 작업은 잉카의 계급 사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면서 “높은 계급 관리들은 키푸를 통해 낮은 계급에게 지시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 반대로 지역의 회계담당자들은 키푸를 통해 인구, 자원 등의 지역 정보를 상층 계급에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에는 700여개의 키푸가 존재하는데 이중 3분의 2는 십진법에 의한 회계 정보를, 나머지는 문자 정보를 기록한 것으로 분석된다. 어턴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키푸가 사라진 잉카 문명에 대한 역사적 정보를 풀어내는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네...오늘은 타임머신을 타구 역사 이전 원시 세계로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글자가 없던 원시인들은 어떻게 기록을 남겼을까요? (글이 좀 깁니다. 사진두 많고요 ^^;;)
<<<시에라 데 라 산 프란시스꼬Sierra de la San Francisco의 라 삔따다 원시 동굴벽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계속 이어지는 길쭉한 반도 바하 깔리포르니아Baja California는 스페인어로 ‘캘리포니아 아래’라는 뜻으로 깔리포르니아는 깔리다calida(더운)와 포르낙스fornax(불가마)가 합친 뜻이다. 지명만 봐도 얼마나 더운 곳인지 알 수 있다. 일설에는 신화 속의 깔리피아califia 여왕이 살았다는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연결되어 폭 100km에서 280km, 총 길이 약 1200km로 세상에서 가장 긴 반도다.
반도 서쪽은 태평양을, 동쪽은 멕시코 본토 사이에 900여개의 무인도를 가진 꼬르떼스 해를 두고 있다. 너무 길어서 남북으로 나뉜다. 크게 위도 28도선에서 북부인 바하깔리포르니아 주와 남부인 바하깔리포르니아 수르Sur 주로 나뉜다. 1973년 반도를 관통하는 횡단 고속도로로 2차선인 멕시코 1번 도로가 놓였다. 미-멕 국경 띠후아나에서 반도 끝인 까보 산 루까스Cabo San Lucas까지 총 1743km 다. 고속도로를 달리면 사람의 손이 닿은 것은 도로뿐 자연 그대로의 풍경 속을 그대로 지나간다.
바하 깔리포르니아는 온통 커다란 기둥 선인장만 죽죽 뻗어 있는 반사막지대다. 양쪽 바다로는 긴 해안선이 펼쳐진다. 건조한 사막기후로 사막과 대비되는 푸른 바다, 산맥들 사이의 풍요로운 만, 기둥 선인장이 빽빽한 높은 구릉, 신비스런 수도원, 산양과 사슴을 비롯하여 회색고래, 야생 돌고래 등 다양한 생물들, 원시 동굴 벽화, 광물, 진주, 와인, 해산물 등으로 독특한 풍경과 풍부한 자연을 가진 생태계의 보고다. 인구가 많지 않아 아직 전인미답의 처녀지와 해변이 많다.
미국과 육로로 연결된 데다 지나친 개발로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해변으로 휴양지가 발달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휴양지가 라 빠스La Paz의 로스 까보스Los Cabos. 로스 까보스는 2003년 12월에 세계 정상 회담(APEC)이 열린 곳이다. 우리나라 김 대중 대통령도 참석하셨다.
이 바하 깔리포르니아 수르에 우리나라의 귀신고래 즉 회색고래(2003년에 쓴 회색고래 칼럼 참고)의 성소가 있다. 작년에 귀신고래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1년만에 고래를 다시 찾아갔다. 그때 우리나라 울산에 고래 암각화가 그려진 반구대가 있듯이 바하 깔리포르니아 깊은 계곡에도 고래가 그려진 동굴 벽화가 있어 이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벽화가 그려진 동굴을 찾아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바하깔리포르니아에서 최초로 사람이 살았던 시기는 기원전 9500년에서 7000년 사이로 멕시코에서는 가장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지역이다. 기원전 5500년경부터 초기 원시 동굴 벽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바하 깔리포르니아의 시에라 데 산 보르히따Sierra de San Borojita의 산 보르히따 동굴과 라 트리니닫 동굴의 원시 벽화가 아주 유명하다.
그리고 바하 깔리포르니아 수르의 시에라 데 라 산 프란시스꼬, 산따 로살리아와 로레또 사이의 시에라 데 라 히간떼Sierra de la Gigante 그리고 라파스의 또도스 산또스에서 시작하여 로스 까보스까지 그 사이에 있는 Reserva de la Biosfera de la Laguna에도 원시 동굴 벽화가 있다.
게레로 네그로에서 150km 거리에 있는 고래 투어로도 유명한 산 이그나시오San Ignacio 마을에서도 산 프란시스꼬의 원시 동굴 벽화 투어를 한다. 산 이그나시오 마을을 들어서면 강이 하나 흐르고 그 주변은 온통 대추 야자들 천지다. 아름다운 오아시스로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가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싶다. 조그만 마을 광장에 들어서면 현란한 장식이 없는 소박하지만 장엄한 성당이 하나 있다. 1716년에 세워진 도미니카 파 성당이다.
이 한적하고 작은 오아시스 마을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 고래 투어와 원시 동굴벽화 투어를 하기 위해서다. 사막위의 오아시스답게 겨울은 몹시 추우며 여름은 47도를 오르내린다. 따라서 방문 시기는 고래가 오는 11월에서 4월 사이가 좋다. 그 이후에는 아주 덥다. 동굴 벽화 투어는 사실 혼자서 찾아 가기 힘든 곳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꼭 그룹을 지어 투어로 가는 것이 좋다. 1인당 하루 150달러로 차량, 노새, 텐트, 식사, 가이드가 다 포함이 되어 있다.
2004년 2월 어느날. 다 낡아서 폐차장을 가야 할 듯한 지프차를 타고 먼지를 마시면서 덜덜거리는 비포장도로를 2시간에 걸려 달린다. 지금까지 눈에 익은 것처럼 온통 기둥선인장인 까르돈Cardon 밭인 평원에서 산지로 오른다. 중간 중간 비포장도로를 가로지르다 차를 만난 멕시코 토끼 리에브레liebre나 사슴을 마주치기도 한다. 리에브레는 도로 한가운데 서서 우리 지프차를 빤히 바라보다 종종거리며 제 갈 길을 간다.
산지는 또 다른 풍경을 만난다. 수목원을 연상시키는 각종 선인장 수십 종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산을 올라가니 아주 독특한 모양의 나무들이 눈을 끈다. 마치 하늘을 향해 하늘하늘 춤을 추며 오르는 듯한 길쭉한 시리오Cirio(부줌Boojum 나무)들이다. 시리오 나무는 100년이면 20m에 이른다.
그 밖에 삐따야 선인장la pithaya, 땅에 딱 붙어 자라는 둥근 선인장, 여기도 선인장, 저기도 선인장 온통 선인장뿐이다. 때마침 아침 안개가 걷히면서 눈 아래 아득히 태평양이 보인다.
두어 시간을 달려오니(44km 지점) 갈림길이 있는 조그만 마을이 하나 나온다.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곳에 마을이라니. 그래도 학교가 보이고 마을회관도 있는 제법 마을다운 마을이다. 몇 가구 되지 않은 마을에 INAH(국립 역사 고고학회) 사무실이 있다. 동굴벽화에 가려면 항상 이곳에서 허가를 받아야한다. 멕시코시에서 받은 동굴 벽화 촬영 허가서를 보여준다.
마을을 나서면 두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22km 길이의 산따 떼레사Santa Teresa 계곡으로 다른 길은 35km의 산따 마르따Santa Marta 계곡으로 간다. 이곳에서 짐을 부릴 당나귀와 사람이 타고 갈 노새, 짐꾼 등을 빌려서 이곳에서부터 동굴 벽화까지 32km로 장장 5시간의 거리를 들어가야 한단다.
당나귀보다는 크고 말보다 조금 작은 노새를 탄다. 타고 보니 제법 높다.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돌투성이의 산길을 가려면 노새를 꼭 타야 한단다. 우리의 길을 안내할 가이드는 길이 아주 험하므로 내리막길에서는 최대한 등을 뻗어 뒤로 젖히라고 하고 오르막길에서는 최대한 노새 등에 몸을 붙이라고 요령을 일러준다. 당나귀들 목에 걸어준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출발이다.
시작부터 돌투성이의 길 아닌 길을 내려간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노새 위에서 균형을 잡기가 그리 쉽지 많은 않다. 하지만 노새들은 그저 순순히 자기 앞에 가는 노새 엉덩이만 쫓아간다. 무성하게 자란 가시나무 메스끼떼스 사이로 난 길을 가니 가시에 발을 긁히기도 하고 얼굴을 맞을까 고개 수그리기 바쁘다. 메스끼떼스는 12m까지 자라는 사막의 나무다. 발목이 나오는 짧은 청바지를 입어서인지 가시나무에 발목이 죄다 긁히게 생겼다. 노새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히 제 갈 길을 갈뿐.
계속 아야! 하고 비명을 지르는 필자가 보기 안타까웠는지 짐꾼이 다가와 자신의 발에 차고 있던 각반을 내게 내어준다. 아하. 각반을 차고 나니 더 이상 가시나무가 두렵지 않다. 아까보다 씩씩하게 가시나무를 헤치고 간다.
30여분을 가니 평원이 나온다. 무릎에 닿을 만큼 자란 낮은 관목들. 평원 끝에 안내 표지판이 있다. 안내판이 서 있는 자리 아래로 펼쳐지는 장관이란! 끝도 없는 깊은 계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왼쪽 산자락에 구불구불 뱀처럼 휘돌아가는 가느다란 길이 보인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말은 길이라고 하지만 형편없이 좁은데다 돌투성이의 땅이다.
노새는 익숙한 듯 내려가기 시작한다. 불규칙한 돌을 밟고 가느라 이리저리 흔들릴 때마다 그 등에 탄 필자는 간이 콩알만 해졌다가 등골이 서늘해졌다 반복한다. 고삐를 꼭 잡고 등을 있는 대로 젖혀서 노새와 함께 몸의 균형을 맞추는데 정신이 없다. 좀 전에 안내 표지판이 있던 곳에서 봤던 그 멋진 장관 속을 가고 있지만 내 눈은 노새 모가지 아래로 보이는 앞발굽을 보느라 미처 경치를 즐길 여유가 없다.
노새가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머릿속은 비쭉비쭉 서고 심장은 쿵쾅거리고 온몸에 진땀이 난다. 아아니...이런 길을 도대체 몇 시간을 이러구 가야한단 말인가. 게다가 나중에는 다시 이 길을 올라와야 하는 거 아닌가. 아유~ 죽갔네 소리만 계속 나온다.
온 신경을 노새 앞발에 집중하다보니 어디선가 당나귀 방울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머리를 들어보니 어느새 평탄한 길을 걷고 있다. 아마 산 중턱을 돌아가는 모양이다. 그제야 제대로 주위가 보이고 소리가 들리나보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깜빡 잊게 할 만큼 장관이다.
계곡으로 내려오기 전에 보았던 파노라마는 더욱 웅장하고 깊은 모습으로 눈이 미치는 한 멀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치 별 세상이라도 온 듯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서부활극의 무대에라도 온 듯하다. 어느덧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 머리위에 올라있다.
가시나무 메스끼떼스 사이로 굵직한 초록색 기둥들이 쑥쑥 뻗어 있다. 사구와로Saguaro 선인장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하늘로 하늘로 양 팔을 뻗어 오르듯 자라난 초록 기둥들이 길에도 발아래 계곡에도 산위에도 온통 거인처럼 솟아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얼마나 나이를 먹었을까.
밑둥치는 이미 바위처럼 회색빛으로 단단하게 굳어 있는데 그 위로 뻗어있는 가지들은 푸르디푸르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왕관처럼 생긴 앙증맞은 하얀 꽃들이 달려 있다. 6월이면 이 자리에 씨가 가득한 열매가 열려 사막 동물들의 먹이가 된다.
사구아로는 40년이 되면 4~5m가 되고 100년이면 10m, 200년이면 12m 이상이 된다. 즉 다 자라면 보통 16m 정도다. 선인장이 아니라 나무네 나무. 멕시코의 사막에서만 자라는 독특한 나무 선인장이다. 서부 활극의 상징이 된 선인장 나무. 솜브레로에 총만 차면 딱 카우보인데. 가지 중간에는 딱따구리와 꼬마 부엉이들이 홈을 파서 둥지로 삼고 있다. 마르면 아주 단단한 나무로 목재로 또는 연료로 쓸 수 있다.
푸석푸석 마른땅에 박아논 듯한 덩치 큰 선인장들은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지만 사막의 동물들에게 먹거리와 집을 제공하고 사람들에게 목재와 연료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평지를 지나며 선인장 꽃도 보고 앞서가는 당나귀 떼도 보고 멀리 펼쳐지는 계곡 풍경도 감상할 만큼 노새에 적응도 되고 여유까지 생겼다.
다시 내리막길이다. 노새가 앞발을 내딛는 대로 몸을 맡겼더니 아까보다는 훨씬 두려움이 가신다. 역시 사람은 적응이 빠르다. 좀 여유로워지다보니 조심조심 발을 내딛는 노새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안쓰럽기도 하다. 도대체 이곳에는 비도 안 오는지. 노새의 발이 미끄러져 내릴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인다. 까딱하다 길 아래로 굴러 내리는 돌처럼 노새와 내가 함께 저 아래 계곡으로 구를 것만 같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내리막길이 끝나는 그곳에 거짓말처럼 집이 한 채 있다. 사람도 있네. 커다란 나무 그늘에 앉아있던 솜브레로 아저씨 둘이 반긴다. 여기가 목적진가 했더니 이제 반쯤 왔단다. 집 앞으로는 물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밭이 보인다. 오아시스가 따로 없구먼. 잠시 휴식한다는 말에 노새에서 내렸다.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었던지 두 다리가 아프고 후들거리고 온 기운이 다 쭉 빠진다. 걷지를 못하겠다.
아저씨들은 우리를 인솔하는 사람들과 잘 아는 사이인지 무척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저씨들은 이곳에서 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평생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로 가족이다. 그러고 보니 맞은편 산 중턱쯤에도 집이 보인다. 아니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해먹고 사나했더니 소, 양, 염소 등 가축을 방목하고 자급자족하며 산다고 하신다.
가끔 필요한 물품을 사러 바깥세상으로 나가는데 우리가 오는 길 말고 집과 좀 더 가까운 마을로 연결된 다른 길로 다닌다고 한다. 1시간 정도면 간다는데. 아니 그러면 왜 우린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와야 하냐고 했더니 INAH에서 그렇게 룰을 만들었다고 한다. 계곡 보호와 관리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방문객들을 통제하는 루트를 만든 것이다. 사실 안내자들이 없으면 들어가기도 힘든 곳이다. 하지만 경치하나는 정말 장관이다. 사람의 손이 덜 타면 덜 탈수록 자연이 그대로 잘 보존되는 것이 사실이다.
충분히 쉬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이제 좀 전에 내려온 것 같은 내리막길은 없다고 하니 힘을 내야지. 물이 흐르는 내를 따라 가기도 하고 건너기도 하면서 평지를 간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야자수가 인상적이다. 수 천 년 아니 수 만년을 그 자리 그대로였을 주변의 경치에 그저 감탄 또 감탄. 인간의 일생이란 얼마나 하잘것없이 짧기만 한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국적인 새소리, 야자수를 스쳐가는 바람소리, 파란 하늘, 뭉게구름, 붉은 산, 붉은 암벽, 온갖 선인장들, 예쁜 꽃들. 이 모든 풍경이 너무나 낯설면서도 아름답다.
한참을 그렇게 물과 함께 가더니 아뿔사! 이제는 오르막길이다. 내리막이 없다더니. 오르막이나 내리막이나 어지러운 건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 한 고삐를 꽉 잡고 노새 등에 몸을 착 갖다 붙인다. 발이라도 헛디디는 날에 끝장이다. 노새야 제발 잘 가자구.
내려온 만큼 그렇게 한참을 오르고 내리면서 서서히 지쳐갈 즈음 한 사람이 손으로 오른쪽 건너편 산을 가리킨다. 고개를 돌려보니 산 중턱에 커다란 바위틈이 보인다. 저것이란 말인가. 우리가 지금 찾아가는 원시 동굴이. 멀리서 보니 동굴이라기보다는 산허리를 갈라놓은 커다란 틈 같다.
감개무량하여 이젠 다 왔겠구나 했더니 그곳에서도 한참을 다시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가는 것이다. 오전 10시경 마을을 출발하여 오늘 우리가 야영을 할 장소에 도착하니 오후 3시경. 꼬박 다섯 시간이 걸린 것이다.
양 옆으로 커다란 절벽이 있고 그 사이에 물이 흐르는 전형적인 계곡 속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산따 떼레사 계곡의 한 곳이다. 동굴은 맞은편 절벽위에 있다. 계곡이라 해가 빨리 떨어질 것 같아 짐을 풀어놓고 요기를 하자마자 동굴로 향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야자수가 빽빽이 있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먹을 것과 물이 있고 짐승을 피할 높은 곳에 동굴이 있으니 원시인들은 분명히 만족해했을 곳이다. 절벽위로 오르는 좁은 길을 올라 동굴까지 약 20분 정도 걸었다. 발아래로는 무성한 야자수와 계곡이 흐르고 그 맞은편 절벽이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다. 구름다리가 있었다면 한달음에 동굴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을.
이처럼 사람이 쉽게 오기 힘든 곳에 있는 원시 벽화를 볼 수 있다니 이곳까지 힘들여 온 고생길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얼마나 커다란 행운이란 말인가. 나를 이곳까지 무사히 데려다 준 노새에게 감사하는 마음까지 든다.
총 면적 약 800km 평방의 산 프란시스코 산맥에는 총 11개의 캐넌이 있다. 그중에서 산따 떼레사 캐넌Caon de la Santa Teresa에는 약 5000개의 동굴들이 있고 이중에서 330개의 동굴에 크고 작은 원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동굴 벽화는 지금 보고 있는 라 삔따다La Pintada에 있다. 이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터널식 동굴이 아니라 절벽을 따라 움푹 팬 커다란 틈이 가로로 계속 176m로 이어지는 큰 바위 절벽아래의 틈새 동굴이다.
벽화가 있는 동굴의 입구는 허술하다. 하지만 일년 내내 이곳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계신다. 카우보이 차림의 멋쟁이 아저씨. 위 아래로 절벽 사이에 난 틈의 동굴이라 아슬아슬한 절벽 바위 길은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나무판자와 가드레일을 설치하여 기다랗게 외길을 놓았다. 길을 따라가며 동굴의 벽과 천장에 빽빽하게 그림을 그려놓았다.
넓은 동굴 벽을 도화지 삼아 그린 벽화는 전체적으로 붉은 톤에 검은 색이 눈에 많이 띈다. 원시인들이 남겨놓은 메시지를 살펴가며 끝까지 간다. 절벽 동굴 끝의 바위는 훨씬 넓어서 5m는 되어 보인다. 그 넓은 면에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때 당시에도 사다리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2~5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절벽위에 저렇게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이 원시 벽화의 하이라이트가 이곳인듯 하다.
벽화에는 사람의 모습은 물론 자연 동물들 즉 육지 동물과 바다 생물들이 가득 그려져 있다. 두개의 고래 그림을 비롯하여 코요테, 거북, 물고기, 새, 사슴 등등 약 천 여개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어떤 것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선명하거나 큰 것이 있는가하면 어떤 것은 희미해지고 있는 것도 있다.
정면을 보고 팔을 들어 올린 역동적인 모습의 인간들과 옆모습의 다이내믹한 동작의 사슴들 등이 금방 그려진 듯 하다. 산 프란시스꼬의 원시 동굴 벽화는 아메리카 최초의 벽화 예술의 장이었다.
선으로 그린 그림도 있고 온 면을 다 칠한 것도 있고 반쪽을 다른 색으로 칠한 것도 있다. 그림에 사용한 색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썼다. 빨강, 검정, 갈색, 노랑과 하얀색이 주 색상이고 아주 조금씩 파랑과 초록을 썼다. 문자가 없었던 원시나 고대에서 색의 상징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원시나 고대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붉은색은 생명을 유지하는 피빛이라 삶을 상징하는 색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중남미 고대 국가에서는 신전과 피라미드 그리고 건물을 온통 피빛 붉은색으로 칠했었다. 특히 멕시코의 고대 마야에서부터 떼오띠와깐, 아스떼까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물들은 붉은색으로 단장하였던 것이다. 원시와 고대에서의 이러한 색상들은 자연에서 얻은 광물가루 색소에다 물과 교착 물질로 주변에 널려있는 선인장에서 나오는 끈적이는 수액을 섞어 물감을 만들었다.
벽화 아래의 바위위에는 돌을 갈아서 가루를 내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붉은색이 선명한 가루들이 담겨진 팔레트처럼 움푹 들어간 흔적들이다. 얼마나 오랜 기간에 걸쳐 사용했으면 돌이 달아서 그렇게 움푹 파여졌을까. 하루 이틀 걸리는 것도 아니고 수없이 많은 날들에 걸쳐 그렸을 이 그림들을 연구한 끝에 학자들은 이곳이 이 꼬치미 부족들이 의식을 치르던 장소라고 결론지었다.
이 주변에는 다섯 개의 크고 작은 동굴 벽화들이 있다. 중간 크기의 라스 플레차스Las Flechas와 라 솔레닫La Soledad, 좀 작은 라 보까 데 산 훌리오La Boca de San Julio 그리고 가장 작은 로스 무시꼬스Los Musicos가 있다. 동굴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라스 플레차스에선 화살 모양이 로스 무시꼬스에서는 음표 모양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다른 동굴 벽화 라 솔레닫
누가 이곳에다 그림을 그려서 몇 천 년이 지난 후 후손들이 찾아오게 만들었을까? 그게 누굴까? 누가 처음으로 이를 생각해 냈을까?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 수렵과 채취로 살아가던 꼬치미cochimi 부족들이 화강암 혹은 화산암 바위틈의 벽을 따라 놀라운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남긴 벽화는 매우 다양하다. 바닥에서부터 14m까지 이르는 대형 그림도 있다. 그 벽화들 중의 일부는 멕시코시티 인류학 박물관에 복제되어 있어 볼 수 있다. 양팔을 높이 들고 기도를 하는 듯한 포즈의 사람들, 반은 검정 반은 빨강으로 칠해진 사제들, 창에 찔린 동물들. 이는 아마도 희생 제사를 지내는 듯하다. 다양한 머리장식은 남녀를 구분하기도 한다.
그림으로 남겨진 형상들은 다양해서 사슴, 산양, 푸마, 코요테, 리에브레 등의 육지 동물들과 바다사자, 고래, 어류, 가오리, 참치 등의 바다 생물 그리고 펠리칸, 물수리 등의 새와 거북이, 뱀 등의 파충류도 있다. 어떤 형상은 반인반수 또는 바다와 육지를 상징하는 사슴머리의 뱀도 보인다.
고래-루세로 구띠에레스 사진
벽화가 그려진 동굴에서 약 50~60m의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있다. 물을 따라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올리브 나무, 무화과나무 등이 자라고 하늘을 찌를 듯이 야자나무가 숲을 이룬다. 물이 흐르고 먹을 것이 있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동굴이 있다면 이는 아주 완벽한 피난지일 것이다. 이곳의 경치는 가장 장관 중의 하나다. 찾아 가기 정말 힘든 곳이지만 경치가 아주 좋고 먹을 물이 있어 뿔뿔이 흩어져 살던 부족민들이 매년 한번씩 중요한 의식을 치르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었을 것이다.
라 삔따다 동굴은 1960년대 초 이곳을 다니던 한 목동이 발견한 후 1962년 얼 스탠리Earl Stanly Gardewer 라는 미국인이 헬기를 타고 이 계곡을 확인하였다. 그 후 1980년부터 동굴들을 보호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동굴은 아주 덥고 아주 춥고 폭우에 강한 바람까지 부는 기후가 불순한 야외에 노출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동굴벽화들은 자연 현상에 의해 서서히 침식당하는 중이고 일부는 훼손되어 있다.
어느덧 해가 건너편 산을 넘으려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름모를 새들이 서로 짝을 찾는 울음소리도 긴 여운을 남긴다. ...적막하다. 우리와 동행을 해준 루세로 구띠에레스 원시 동굴 벽화 박사님에 의하면 아침 첫 햇살이 맞은편 절벽에 반사되어 벽을 비출 때 그림들이 환하게 빛이 나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내일 아침이 정말 기대된다. 계곡의 해는 짧아 금방 어두워진다. 초승달이 있어 아주 캄캄한 어둠은 아니지만 유난히 맑은 공기 속으로 반짝이는 별들이 총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