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속도로 안동휴게소는 낙동강과 강 건너 낙강정이 어우러지고 상락대가 절경을 이루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오가는 길손들에게 잠시나마 여행의 피로를 풀게 한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대부분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글자 뜻 그대로 쉬었다가 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흔히 쉼을 나타내는 말 중에는 ‘휴식(休息)’이 우리에게 익숙한데 고속도로의 쉼터를 휴식소라 하지 않고 왜, 휴게소라고 했을까? 휴식이든, 휴게이든 둘 다 쉰다는 뜻을 지닌 ‘휴(休)’ 자를 쓴다. 이때 쓰는 휴 자의 모양을 보면, 사람이 큰 나무에 의지해 있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로 일을 그만두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식(息)’ 자는 숨 쉴 식으로 들숨과 날숨 사이의 공백 상태로 ‘한숨 놓았다’고 하는 말에서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휴게(休憩)라 할 때 ‘게(憩)’ 자는 혀 ‘설(舌)’ 자와 ‘식(息)’의 합성자로 혀로써 음식을 맛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단지 숨을 고르는 곳[休息]이 아닌 음식을 먹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다가 가는 곳[休憩]으로 쓰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하겠다. 뜬금없는 휴게소로 말문을 여는 것은 이야기의 주제가 바로 휴게와 관련이 있는 낙동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안동의 누정(樓亭) 이야기를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경남 함양 농월정(弄月亭)이다. 농월은 ‘달을 희롱한다’는 의미이나 달을 실없이 놀리거나 멋대로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달과 능숙하게 교감하면서 그와 일체되는 낙을 즐기는 경지를 말한다.
옛 선비들은 정신적 여유와 대자연의 심오한 이치를 체득(體得)하기 위해 경치 좋은 곳에 누각(樓閣)이나 정자(亭子)를 짓고 휴식을 즐겼다. 이러한 누정은 선비들에게는 정신적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자 고상한 모임의 장소였다. 그들은 정신이 혼란하고 시각이 옹색해질 때면 누정에 올라 풍월주인을 자처했다. 때로 벗과 함께 정담을 나누다 시흥(詩興)이 일면 읊조리는 시 한 수에 사계 풍광을 모두 담아내기도 했다.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의 작가인 고려 말의 문인 안축(安軸)은 그의 기문에 누정을 짓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천하 물건이 형체가 있는 것은 모두 이치가 있으니, 크게는 산수, 작게는 주먹만 한 돌, 한 치의 나무라도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이치를 보고 흥취를 느끼고 즐거워하는 것이니, 누대와 정자를 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형체가 기이한 것은 겉으로 나타난 것이니 눈으로 구경하게 되는 바이고, 이치는 미묘한 데에 숨어 있으므로 마음으로 찾게 되는 바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 「강릉도호부」, 누정 조)” 고 했다. 또 우암 송시열(宋時烈)은 ‘비어 있는 남의 정자를 빌려 몇 달 동안 혼자 조용히 앉아 글을 읽었더니, 지난 1년간 읽은 책 수에 맞먹었다.’고 할 만큼 우암에게 있어 누정은 독서와 수신의 공간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보백당 김계행은 연산군의 폭정을 보고 홀연히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했다. 그 후 지금의 풍산 소산에서 풍천 가일의 경계를 이루는 '설못' 가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으나 길옆이어서 늘 번잡하고 시끄러우니 만년을 보내기에 좋은 조용한 장소를 찾아 길안 묵계 송암폭포 위에 정자를 짓고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휴식한다는 ‘만휴정’이라 이름하고 겸손하고 신중하게 몸을 지키고, 충실하고 돈후하게 사람을 대하라.(持身謹愼 待人忠厚)”라는 유훈과 “내 집에는 보물이 없다, 보물이라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 있을 뿐이다.(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는 편액이 걸어 후손들에게 남기고 있다.
송암폭포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는 안동 만휴정
이처럼 누정에 은거하는 것이 비록 세상과 단절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 오래 머물고 있다 보면 새 소리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대나무와 달은 옛 벗처럼 다가오며, 빗소리 솔바람 소리는 흥을 일으키는 도도한 음악처럼 들린다. 누정은 이처럼 건물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자연에 그 깊이가 있다. 누정은 자연과 어울릴 때 진정 존재 의미가 살아나고, 그럴 때라야 누정 생활도 의미와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다.
선비들은 인생의 거취문제에 있어서 ‘출처지의(出處之義)’를 가장 중시했다. ‘출’은 출사(出仕)를 의미하고, ‘처’는 사직하고 물러나 은거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퇴계를 정점으로 하는 영남학맥을 지탱해 온 선비들에 있어서 출처의 도리는 그들이 추구한 학문적 이상을 실천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숨거나 나타남에 있어서 그것이 의리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또한 도리로 보아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먼저 헤아렸다. 대의에 맞으면 벼슬길로 나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 쉬었다. 그런데 낙향하여 쉬는 일도 세상에 나아가 벼슬하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하는 것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명분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즐긴 ‘휴’의 시간은 인위적 허식을 벗고 인간의 근원적 행복을 찾는 창조적 쉼의 시간이었다.
전북 진안 수선루이다. 신선이 자고 있는 누각이라는 뜻을 지녀 낮잠 자는 풍류를 떠올리게 하는 누각이다.
낙동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안동의 누정이야기를 2023년 계묘년 한 해 동안 답사하고자 한다. 그 첫 발길을 떼며 누정이 지닌 가치와 의미에 대해 들여다보았다. 다음 호에 '선계(仙界)의 영역으로 비상(飛上)을 꿈꾼 그 곳, 고산정(孤山亭)'을 시작으로 독자들과 함께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
선계(仙界)의 영역으로 비상(飛上)을 꿈꾼 그 곳, 고산정(孤山亭)이다.
낙동강이 협곡을 이루며 빚은 가송협에 살포시 내려 앉아 선경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