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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베르>
[Colbert, Jean-Baptiste, 1619.8.29~1683.9.6]
랭스 출생. 루이 13세 때 재상 J.마자랭에게 발탁되어 그 측근이 되었으며, 루이 14세의 친정(親政) 이후 재정총감 N.푸케의 독직사건을 적발하여 그를 징계하고, 1664년 스스로 그 후임에 올라 재정 이외에도 상공업 ·농업 ·토목 ·식민문제 ·해군의 업무를 담당하여 한때는 재상과 같은 권력을 휘둘렀다.
특히 경제개혁에 주력, 중상주의정책을 추진하여 프랑스의 국부(國富)를 증대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의 구상에 따르면 당시 모든 유럽국가들의 금 ·은의 보유량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국부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중상주의에 바탕을 두고 수출 ·입을 통하여 금 ·은의 보유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콜베르티슴(Colbertisme)의 일환으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자국의 상선(商船)을 증가시키는 한편, 국내의 생산을 일으켜서 수출산업의 진흥에 힘썼다.
또한 길드조직의 재편성을 단행하여 필요한 인원을 필요한 생산부문에 할당하고, 왕립 매뉴팩처를 창설하여 공업을 보호 ·육성하였다. 그러나 콜베르티슴은 국력의 물질적 기초를 구축한 반면, 국가규제의 원칙이 상업의 발전적인 요소를 저해하였으므로 1670년경부터는 차차 반발을 사게 되었으며, 1683년 그의 죽음으로 무산되었다.
관련이야기~<콜베르의 정직함>
프랑스 루이 14세 당시 재무장관을 지낸 콜베르가 25세때의 일이다.
한 포목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있던 그는 어느 날, 호텔에 숙박하고 있던 은행가에게 옷감을 팔고 가게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옷감의 값을 잘못 알고 돈을 배나 더 받아 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극구 만류하는 포목점 주인의 손길을 뿌리치고 호텔로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여분의 돈을 돌려주고 돌아왔다. 그런데 콜베르의 정직함에 넌더리를 낸 포목점 주인은 그를 해고하고 말았다.
2일 후, 그 은행가는 콜베르가 자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것을 알고는 그에게 자기 은행에서 일해 달라고 청했다. 콜베르는 은행가를 따라 파리로 가서 은행원이 되었다.
결국 그의 정직함이 출세의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블로그http://blog.naver.com/sang_kafe.do?Redirect=Log&logNo=120014952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