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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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김재연 기자)
이선재(유아인 분)와 오혜원(김희애 분)이 함께하는 순간엔 늘 어둠이 드리웠어. 첫 키스를 나눴을 때도 밤이었고 서로 마음 놓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은 인적이 드물고 자칫 방심하면 발을 헛디딜 수 있는 위험한 공사 현장이었지.
하지만 12회는 달랐어. 두 사람 주위엔 빛으로 가득했어. 그것도 자연의 햇살이! 여태껏 빛이 '밀회'속 두 사람 사이에 이토록 강렬하게 내리쬔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지. 빛은 마치 그들을 지켜주는 것 같았어. 빛은 사위를 밝혀 어둠을 단번에 몰아내 주잖아. 선재와 혜원의 어둠도 거둬질 수 있을까?
지난 29일에 방영된 JTBC 월화 드라마 '밀회(극본 정성주 연출 안판석)'12회에서는 이선재와 오혜원은 둘만의 비밀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어. 강준형(박혁권 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선재와 혜원의 관계를 입증할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을 동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했지.
선재와 혜원은 야간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어. 하룻밤의 여행이었지. 서로의 밀애가 외부에 발각되자 이내 두 사람은 몸을 사렸지만 지칠수록 갈망하는 관계이기에 혜원은 선재를 찾아갔어. 그렇게 시작된,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하룻밤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어두침침하지는 않았어. 밖은 어두웠지만, 그들이 묵는 숙소엔 환한 전등이 주위를 밝혔거든.
밝은 숙소에서 혜원은 선재와 함께 가수 빌리 조엘의 곡 '피아노맨'을 함께 들었어. '피아노맨'은 혜원이 자신의 스무 살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노래였어. 그마저도 서영우의 수행원 노릇을 하며, 클럽에 들어간 영우를 근처 카페에 앉아 기다리며 들었던 노래였지만. '피아노맨'의 가사 속에 등장하는 노인은 혜원과 같았고, 그가 피아노 연주를 요청했던 '피아노맨'은 선재와 같았어. 노래 속 노인이 피아노맨에게 자신의 추억이 묻어나는 곡을 신청했던 것처럼 혜원은 그때 그 순간을 다시 불러들여 스무 살 적의 타지에서 느꼈을 고독을 이젠 혼자가 아닌 선재와 함께 나누었어. 혜원의 과거가 현재의 선재를 통해 치유 받는 것 같았어.
이내 아침이 찾아왔고 밝은 햇볕이 그들을 내리쬐었지. 선재는 밤에 숨겨놓았던 혜원의 신발을 꺼냈고 혜원은 문을 닫으려는 선재에 저지하며 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들였어. 그들은 숨지 않아도 됐고 햇빛 속에서 과감히 손을 잡고 돌아다녔지. 아침을 먹기 위해 읍내로 나간 식당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선재에게 혜원을 두고 "엄마야? 이모야?"라고 물어도 선재는 당당히 "커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을 에워싼 빛은 마치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희망을 내비쳐주는 것만 같았어. 선재는 혜원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며 함께 도망가자고 했지. 나름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어. 한남동의 더러운 돈으로 만든 협주곡 DVD랑 오디션 동영상을 해외에서 훌륭하다고 소문난 선생들한테 이메일로 동영상을 보냈다고. "나 이만큼 치는 사람이고 이런 여자랑 공부하고 싶은데 받아줄 수 있겠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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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둠은 혜원과 선재를 잠식해오고 있었어. 준형은 사람을 고용해 혜원과 선재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을 확보하라 지시했고 고용된 감시자는 선재가 숨겨놓은 혜원의 구두를 찾아내 휴대폰 카메라로 구두를 찍고 선재와 혜원이 아침 식사하러 나간 틈을 타 그들이 머문 이부자리를 살펴보기도 했어.
혜원과 선재를 감시하는 이는 준형뿐만이 아니었어. 화면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혹시 다른 데에도 부탁했냐"며 "아무래도 한 팀이 더 있는 것 같다"라고 준형에게 보고하던 감시자의 말에 따르면 준형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선재와 혜원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지. 한성숙은 서필원 회장이 서영우의 사업을 핑계로 빼돌린 자금을 자신에게로 돌리기 위해 혜원과 선재 사이를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앞서 손잡고 읍내 식당을 나서는 선재와 혜원을 멀찍이서 쳐다보던 식당아주머니는 매서워 보였지.
여행이란 속성이 그러하듯, 두 사람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만 했어. 다시금 선재와 혜원 앞에 드리운 어둠은 둘을 더욱 좌절케 했어. 줬다 뺏는 거잖아. 집에 돌아온 혜원에 준형은 선재와 혜원의 여행에 대해선 묻지 않았지만 혜원과 조인서교수가 선재를 자신에게서 뺏어가려는 게 아니냐며 "너 아주 나쁜 년이야"라며 폭언을 내뱉고는 방안의 전등불을 꺼버렸지. 혜원이 아직 서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급작스레 혜원에게 드리워진 어둠은 그나마 갖고 있던 빛마저 모조리 앗아가는 것 같았지.
선재 역시 마찬가지. 어두컴컴한 집에 홀로 도착한 선재는 컴퓨터를 켜고 커뮤니티 회원 '막귀형'에게 "신혼여행 갔다가 신부를 다른 놈한테 떨구고 온 것 같아"라고 말했어. 사실은 혜원인 막귀형은 선재에게 "네 신부 남편 침대에 안 들어갔다에 한 표. 혹시 아냐? 네 신부도 이미 너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라며 위로했지만 막귀형과의 대화를 끝낸 선재는 침대에 누워 오열했어. 선재와 혜원은 다시 어둠에 파묻혔어.
빛과 어둠의 대비가 흥미로웠던 12회였어. 선재와 혜원의 여행길이 너무 밝아서 더 슬펐던 12회였고. 밝음 뒤에 당연한 수순으로 어둠이 매몰차게 찾아온 것도 안타까웠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두 사람은 어찌 되었든 누군가의 신뢰를 저버리는 불륜 관계이니까. 태생부터가 어둡지. 그리하여 선재와 혜원의 빛은 어둠에 내몰렸지만, 동생들 그거 알아? 그럼에도 빛은 꽤 강력하다는 거. 한번 내리쬐기만 하면 어둠 따윈 훨훨 쫓아낸다는 거.
[방송정보]
프로그램명: 드라마 '밀회'
편성: JTBC 월, 화 오후 9시 45분~
극본: 정성주
연출: 안판석
출연: 김희애, 유아인, 박혁권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