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 교수의 'B&G 경영']
낯선 고양이 이름인 애플 '스노 레오파드'보다 '세상을 보는 창'이란 '윈도'가 얼마나 탁월한가
개념은 모호한 현실을 구체화하고 재생산한다 문화적 맥락 설명하는 '개념 경영'을 하라
오죽 헷갈렸으면 가수 조용필까지 나서서 이렇게까지 물었을까. '정이란 무엇일까? 주는 걸까? 받는 걸까?' 이 정서의 주체가 누구인지도 모호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 문화에서 이 '정'이란 표현을 통해 많은 상황들이 분명해진다. 뜨겁게 사랑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한국의 중년 부부관계가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이야기한다. "그놈의 정 때문에!" 그 애매모호한 관계가 '정'으로 아주 간단히 설명되는 것이다. 독일어에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개념이 있다. 고통, 슬픔 등을 의미하는 '샤덴(Schaden)'과 기쁨을 의미하는 '프로이데(Freude)'가 연합하여 만들어진 개념이다. 남의 고통을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남의 슬픔이 나의 기쁨이 되는 아주 몹쓸 심리적 상태를 기막히게 표현한 단어다. 독일에서 유학할 때, 기숙사 옆방의 그리스 친구는 독일에서만 가능한 단어라고 했다. 그런 심리상태는 어느 문화에도 존재하지만, 그런 미묘한 심리상태를 이토록 분명한 개념으로 표현하는 독일어의 못된 정교함에 우리는 혀를 내둘렀다.
문제는 개념이 현실을 재생산한다는 사실이다. '샤덴프로이데'라는 개념이 존재함으로 남의 고통을 즐거워하는 몹쓸 심리상태는 구체적 '실재(實在)'가 된다. 당연한 심리적 현상으로 정당화된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그 몹쓸 감정은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 한국문화의 헷갈리는 '정'이라는 개념이 미적지근한 중년부부의 지속적 동거를 가능케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이전에 없던 '국토해양부'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전 정권의 핵심부서였던 '정보통신부'는 없앴다. 4대강 사업이든, 대운하 사업이든, 건설관련 사업을 임기 내 핵심사업으로 하겠다는 의지가 '국토해양부'라는 개념으로 정해진 것이다. '국토해양부'가 존재하는 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방향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개념이 현실을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개념을 경영해야 한다. 개념은 모호한 현실을 구체화하고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의 첫 알파벳만을 모아 만든 어설픈 미국식 경영용어들은 예외다. 예를 들어 MOU, M&A와 같은 단어는 개념이 아니다. 축약어일 따름이다. 난 'MBA'가 '경영학석사(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의 축약어에 불과한 것을 처음 알았을 때의 그 황당함을 잊지 못한다. 기업경영 관련 모임에 참석하면 이런 종류의 엉터리 단어들이 난무한다. 다들 아는 것 같아 함부로 질문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알고 보면 평범한 단어들의 첫 알파벳을 모았을 따름이다. 허탈하기 그지없다. 내 칼럼 제목인 'B&G(뻥&구라)경영'도 미국식 경영용어의 패러디일 따름이다. 언뜻 보면 폼나 보이지만 알고 보면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이야기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운영체계인 '윈도(windows)'는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탁월한 개념이다. 아날로그 세상에서 우리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본다. 가상공간에서 우리는 컴퓨터의 모니터로 세상을 본다. 그 모니터의 이름을 '창문', 즉 '윈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기술적으로 훨씬 탁월한 애플 매킨토시의 운영체계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윈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개념의 격차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창문 개념을 고집하며 '윈도7'까지 오는 동안, 애플 매킨토시의 운영체계 이름은 여전히 뜬금없는 동물 이름을 번갈아가며 붙이고 있다. 최근의 운영체계 이름은 낯설기 그지없는 '스노 레오파드'란다. 애플 마니아를 자처하는 나이지만 이 뜬금없는 고양이 이름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라는 개념으로 성공했다면, 최근 애플사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터치(touch)'라는 개념 때문이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애인을 어루만지듯 손가락으로 살짝 밀고, 당기고, 돌리는 그 아날로그적 '로테크(Low-Tech)'개념으로 최첨단 '하이테크(High-Tech)'를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피부로 느껴지는 구체적인 감각 경험을 디지털 매체에 개념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는 아이팟으로부터 아이폰까지 이어지는 애플사의 일관된 정책이다.
개념이 있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기술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설명해주는 개념체계가 존재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2010년에는 어설픈 미국식 알파벳 축약어가 아닌, 우리가 만들어 낸 새로운 경영개념들이 넘쳐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