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익중씨의 ‘놀라운 세상’. 전세계 어린이 3264명이 보낸 그림을 모아 만든 설치미술품. |
지난 달 31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1층 제1, 2 전시실과 중앙홀에서 막을 올린 '평화선언 2004 세계 100인 미술가'는 미술 작품으로 테러와 전쟁을 고발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특별 기획전이다.
각국 문화인들이 이번 전시에 보이는 관심은 각별하다. 지구 위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 핵 문제를 둘러싼 대치 상황이 단골 국제 뉴스거리가 되는 한국이 나서 반전과 평화 전시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피에르 알레친스키.게르하르트 리히터.귄터 위커 등 쟁쟁한 화가들이 선뜻 작품을 내놨고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독일 소설가 귄터 그라스,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 등이 전시회 도록에 실을 글을 보내왔다. '평화선언전'이 내건 뜻에 그만큼 공감해서다. 특히 자크 데리다는 병상에 누운 상태인데도 미술평론가 알랭 주프루아와 함께 '미술가 100인 선언'을 작성해 보내왔다.
이 선언에서 그는 "지구상의 유일한 초강대국이 세계의 모든 정치적.경제적 사안과 갈등을 해결하는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오늘날"이라는 표현을 써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문화적 일방주의나 정치.군사적 일방주의는 모두 인류에게 타락과 부패의 영향을 가져온다"며 "'평화 선언 100인전'이 자발적인 국제적 문화 주도를 위한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이 받는 첫 인상은 전쟁이 인류에게 남긴 아픔과 상처다. 원폭이 투하된 일본 땅의 참상을 '버섯'과 '흰 눈'으로 비유한 일본 작가 오이와 사치오, 한국전쟁이 할퀴고 간 한반도를 묘사한 권순철.김정헌.손장섭.이만익씨는 과거를 잊지 말자고 말한다. 젊은 독일 작가 노버트 비스키는 청소년들의 몸싸움 속에 '고문'의 이미지를 그려 넣고, 한국 조각가 정현씨는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의 누더기 덩어리를 날카롭게 깎은 인간 형상으로 전쟁의 고통을 드러낸다.
평화를 염원하는 작가들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강익중씨는 인류의 미래를 평화로 이끌 주인공인 세계 각국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 3264장으로 둥근 모자이크 담 '놀라운 세상'을 세웠고, 채미현씨는 이라크에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를 관람객이 원통형 음성인식기에 직접 말할 수 있는 설치미술을 내놓았다.
게오르그 바젤리츠.안젤름 키퍼 등 독일 작가의 출품을 도우려 전시장을 찾은 마이클 슐츠(화랑 대표)는 "이런 전시는 유럽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인류 평화를 비는 세계 미술가들의 작품이 한반도에 모였다는 자체가 메시지"라고 평했다. 10월 10일까지. 02-2188-6000.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전시 기획한 김윤수 관장] "작가들 일일이 섭외…6개월간 유럽 훑었죠"
미술가 100인의 평화선언을 이끌어낸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여름 휴가도 미룬 채 전시장을 둘러보는 일로 불볕더위를 잊고 있었다.
지난해 말 텔레비전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기록필름을 보다가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힌 그는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국민 모두의 염원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런 간절함 속에 김 관장은 지난 6개월여 직접 유럽 현장에 찾아가 작가와 작품을 일일이 확인해 초청했고 문화계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았다.
"평화를 주제로 한 이런 대규모 국제전시는 1985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비엔날레가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 뒤 20년 동안 걸프전.이라크전 등 지구 위에서 벌어진 전쟁 참상은 인류를 슬픔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미술가들이 반전과 평화를 외쳐야 할 절박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미술계가 앞장서 국제적인 평화전시를 꾸린 일이 뜻깊다." 김 관장은 "파블로 피카소가 한국전을 주제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을 유치하려고 프랑스 외무장관의 약속까지 받아놓았지만 다른 전시에 먼저 초대받아 기회를 놓친 점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2004.08.03 17:41 입력 / 2004.08.04 08:5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