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산 속의 진주
산중호(山中湖) 은밀한 곳 백합(白蛤)이 입을 벌려
쫄깃한 혀 바위를 씹지 않고 삼키다가
버찌씨 보다 예쁜 핵(核) 목구멍에 걸렸어
* 망봉산(望峰山 363m), 망무봉(望武峰 430m); 경기 포천. 이곳의 맹주(盟主)인 명성산(鳴聲山)과 함께 수려한 산정호수를 품고 있다. 바위가 많아 오르기가 만만치 않지만, 이외로 조망이 트여 호수를 일별(一瞥)할 수 있는 짭짤한 숨은 산이다. 한화리조트 하동주차장 부근에서 오른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168면.
12. 아둔패기 때린 산
모난 돌 정(釘) 때리는 석수(石手)는 간 데 없고
계곡 옆 대장장이 내 허파에 센 풀무질
둔근(鈍根)을 모루에 얹고 산(山)망치로 두들겨
* 대둔산(大芚山 878m); 충남 금산, 전북 완주에 소재하며, 옛 이름은 한듬산이다. 같은 산을 두고 충남 전북이 서로 도립공원으로 지정해 좀 못마땅하다. 어쨌든 기암단애로 이루어진 웅장한 산세로 만물상을 보듯 하다. 숲과 계곡의 단풍도 빼어난데다, 설경은 더없이 황홀하다. 정상에 있는 평평한 바위는 꼭 대장간 모루 같다. ‘호남의 금강’ 또는 ‘남한의 소금강’이라 칭하는데, 백문불여일견!
* 둔근; 성질이나 재능이 우둔한 사람. 둔부(鈍夫) 즉, '아둔패기'를 이르는 말이다.
* 후음 제182번 ‘코뚜레 꿰인 청산’-대둔산 시조 참조.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125면.
13. 암탉 산
불벼슬 돋은 암릉 답청(踏靑)보다 짜릿한데
날 세운 소소리바람 내 곁간을 베먹고
암탉이 쪼는 바위길 지네새끼 발버둥
* 빈계산(牝鷄山 415m); 대전광역시 유성구, 공주시. 대전의 둘레산길로, 계룡산 천황봉에서 뻗어나온 지릉이다. 우리는 수통골 입구에서 금수봉(錦繡峰 532m)을 지나, 도덕봉(道德峰 535.2m)으로 내려서는 원형(圓形)의 원점회귀 등산을 할 것이다. 주민은 등산로가 폐쇄된 백운봉(白雲峰 536m)을 포함, 수통골을 둘러싼 산을 몽땅 묶어 흑룡산(黑龍山)이라 부른다. 암릉이 괜찮고, 정상에 케른이 있다.
* 빈계지신(牝鷄之晨); 새벽에 암탉이 움. ‘집안에서 여자가 세력을 부리면 집안이 망한다’는 비유.
* 답청; 봄에 파랗게 난 풀을 밟으며 산책함. 일명 답백초(踏百草). 보통 삼짇날(음 3/3)에 함(春祭 겸)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238면.
14. 강도춘일(江都春日)
쪽물 든 예성강(禮成江)이 제단(祭壇)을 적실 즈음
강송림(剛松林) 오층석탑 두 우주가 노닥이고
젖버듬 고인돌 밑에 입술 내민 봄냉이
* 봉천산(奉天山 291m); 인천 강화군 하점면. 강도는 강화의 딴이름이다. 정상에는 고려 때 축조한 봉천대(奉天臺)가 있는데, 조선 중엽에는 봉수대로 사용(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8호). 멀리 북녘 땅 예성강이 아스라이 보인다. 하산 후 오층석탑 근처에서 산제를 지냈는데, 주위에 리기다소나무(剛松-강송)가 많다. 탑은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며, 기단(基壇) 석면에 양 우주가 모각(模刻)되었다(보물 제10호). 강화지석묘(사적 제137호)는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유물인데, 주위에 냉이가 제법 자랐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220면.
15. 자모수유(慈母授乳)
두송실(杜松實) 보라 향기 육덕(肉德) 좋은 산마루
잡초덤 두견총(杜鵑塚) 위 하얀 달빛 부서지면
저 선모(仙母) 얼뚱아기에 젖 물리고 있다오
* 영대산(靈臺山 666.3m); 전북 장수. 후덕한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형국, 또는 노승이 목탁을 치며 염불하는 모습이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장수 5악 중 하나이다. 장수 팔공산 보름달을 제일 먼저 맞이한다는 영대영월(靈臺迎月)은 장수 8경에 든다. 능선에 노간주나무, 소나무와 무덤이 많다.
* 두송실; 노간주나무의 열매로, 약용하거나 술로 담근다.
* 두견총;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무덤’의 미칭. 즉, 두견화가 무덤을 지킴(필자 도입).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319면.
16. 소리산 일우(一隅)
할(喝) 일성(一聲) 청죽비로 돌대가리 내리치면
날카론 수리바위 더러운 간 쪼아대고
보일 듯 겨자씨눈에 금강산을 담노매
* 소리산(小理山 479m); 경기 양평. 깎아지른 절벽, 맑은 계곡, 소나무 등이 어우러져 ‘석산(石山)의 소금강’ 이라 부른다. 수리바위, 출세봉 등 기암괴석이 많아 작아도 야무진 산으로, 여름산행지로 알맞다.
* 언필칭(言必稱) 출세를 하면 좋기는 한데? 명예와 권력은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만 더해 갈 뿐이다!
*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희랍어로 ‘선견자(先見者)’라는 뜻. 천상의 불을 훔쳐와 인간에게 준 죄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카우카오스 산정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뜯겨 먹히는 벌을 받고, 나중에 풀려남.
* 芥子納須彌(개자납수미): 겨자씨 안에 수미산을 넣다.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불사의품(不思議品)>에 "須彌納芥子(수미납개자) 芥子藏須彌"(개자장수미)라는 구절이 나온다. "수미산 안에 겨자씨를 넣고, 겨자씨가 수미산을 감춘다"는 뜻이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287면.
17. 미인영춘(美人迎春)
되리의 음문 닮은 개나리 새실댈 제
매화는 흰 나비로 산수유는 폭죽으로
해감내 게운 재첩 국 잊은 살맛 돌려줘
* 쫓비봉(산)(536.5m), 갈미봉(葛美峰 519.8m); 전남 광양. 매화마을 청매실농원 뒤로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 오른다. 쫓비봉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특징이 없고, 갈미봉은 곱사처럼 생겨 얼른 눈에 들어온다. 산에 비해 고즈넉한 섬진강변 매화꽃과, 만개한 인근의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꽃 대군락이 한결 위라 할까? 이때쯤 간에 좋다는 섬진강 재첩국은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돌려준다. 오행(五行)중 간은 봄(靑)에 해당하므로, 간질환은 이때 도지기도 하고, 반대로 잘 치료하면 나을 수도 있다.
* 되리; 거웃이 나지 않은 여자. 백보지. 밴대보지. 알보지(이근술 최기호 역음 토박이말 쓰임사전 동광출판사 상권 586면). 초장 전구는 살려 두되, ‘산토끼 입술 닮은’도 병용키로 한다.(2023. 3. 28)
* 청매실농원에 있는 조선시대 성리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설매(雪梅) 시; 歲晩見渠難獨立(세만견거난독립)雪侵殘夜到天明(설침잔야도천명)儒家久是孤寒甚(유가구시고한심)更爾歸來更得淸(경이귀래경득청)-엄동에 너를 보니 차마 뜰 수 없어/ 눈 내린 남은 밤을 하얗게 세웠구나/ 선비 집 가난이야 오래된 일이지만/ 네 다시 와주어서 다시 맑음 얻었네라-석비대로 전재(轉載)하였으나, 어쩐지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필자 주).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제1-528번(389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8. 산길에 희롱 당함
-초봄의 선산행(禪山行)
저승꽃 할망구의 쪼그라진 유방인양
진달래 꽃망울과 회칼 맞은 멍게바위
씹조개 살을 내민 듯 물컹거린 부처 발
* 성주봉(聖主峰 911m); 경북 문경. 당포리 종지봉(665봉 수리봉 또는 장군봉) 대 슬랩구간(근래 밧줄 설치)을 스릴 느끼며 오른 후, 본격적인 산길에 접어들면 아직 피지 않은 진달래와 소나무 숲이 좋다. 기암과 험한 바윗길을 자주 만나 가슴 졸인다(정상은 암봉). 봄이 되어도 북사면은 잔설이 있고 흙도 얼녹아 물컹대는 바람에 좀 얄밉다. 검버섯 바위를 덮은 이끼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선(禪)의 원조(遠祖)는 석가이고, 종조(宗祖)는 달마이다. 부처가 쌍림(雙林)에서 곽(槨-덧널, 관을 담은 궤) 밖으로 발을 내보인 데부터 시작, 달마가 면벽 후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한데서 비롯된다(벽암록 11면-벽암록의 가치).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279면.
19. 장명난(長命難)
모세관(毛細管) 막혀버려 정맥류(靜脈瘤)로 불거지고
삽차 단 바퀴벌레 뇌수까지 파먹는데
들릴 듯 개펄 가 인읍(蚓泣) 애간장을 녹이네
* 장명산(長命山 102m); 경기 파주. 사실 한북정맥(漢北正脈)은 고양시계(高陽市界)부터는 아파트, 골프장, 도로 등이 개설되어 마루금 으로서의 가치를 이미 잃은 상태다. 이산은 산경표상 한북정맥의 끝자락인데, 정상은 벌써 파헤쳐져 흔적이 없다. 둘레는 건축폐기물 하치장으로 쓰여, 재활용 가능한 자재를 추려내는 포클레인(삽차)과 굴착기(掘鑿機) 등이 굉음(轟音)을 내며 먼지를 흩뿌린다. 그 가운데서도 할미꽃이 피어있어, 자연의 놀라운 생명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우리는 바로 옆 깃대봉에서 종주를 마친 기념촬영을 하고, 맥(脈)이 함몰(陷沒)하는 한강의 지천 곡릉천(谷陵川-일명 金村 水路)에서 마지막 손을 씻는다. 마침 개펄에는 낚시꾼이 한가히 줄을 드리웠고, 들릴 듯 말 듯 지렁이울음(蚓泣)이 애잔하다. 마치 단명(短命)으로 끝난, 내 인생 일모작(一毛作)을 대변이나 해주듯..
* 삽을 경상도에서는 '수군포'라 한다.
* 인읍; 슬프게 들리는 지렁이의 울음.
* 한북정맥 이견(異見); 어떤 이는 한강봉과 첼봉 사이에서 분기(分岐)된 또 하나의 맥, 즉 월롱산 오두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정맥으로 주장하는데, 연구할만한 사항이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부제 산음가 산영 1-481(360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20. 지옥 갈 동냥중
한반도 닮은 호(湖)를 발우(鉢盂)로 바쳐 들고
좁쌀만 한 돌무지에 구걸하는 행각승
벼룩의 간을 빼먹곤 목탁 한번 안치니
* 두타산(頭陀山 598m); 충북 진천. 전체적으로 ‘부처가 누운 형상’으로 높지 않은 능선인데도, 소나무가 많고 기복이 심해 호락호락하지 않다. 문둥이같이 얼굴이 찌그러진 암릉길도 녹녹치 않아, 이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정상(두타산 中心峰 흑표지석)은 돌무지(케른)가 여럿 있고, 삼국시대 축성한 석성의 흔적이 있다. 조망이 확 트여 인근의 초평저수지가 꼭 한반도로 보인다. 진천의 ‘상산8경’인 고찰 영수암쪽 계곡은 미군의 사격 훈련으로 통제되어, 산이 떠나 갈듯 굉음이 울린다. 청정지역이라 수리부엉이, 산삼 등 진귀한 동식물이 많은데 걱정이다.
* 조장출식(蚤腸出食); 벼룩의 간을 빼먹음. 극히 보잘 것 없는 이익을 부정하게 갉아먹는다는 속담(동해언ㅡ東言解에서).
* 산이 행각승일까? 산을 오르는 자가 떠돌이중일까? 이산에서 뭘 얻을게 있다고? 道란 진작 네 마음에 있으니, 의식주(衣食住)를 버리고 수련해보라!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14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