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듣습니다.
(2026.08.02. 주일 낮 예배)
본문 말씀 : 사도행전 13 : 44-52
주 제 :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누군가가 듣고, 우리의 기도도 누군가는 듣고 있습니다.
1. 일승 일패는 병가지 상사.
옛날 역사를 살펴보면 새겨 들어야 할 말이 많습니다. 특히 삼국지 같은 소설을 보면 참 많이 듣는 말이 일승 일패는 병가지 상사라는 말입니다. 싸움을 하다가 보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이니 한 번 졌다고 해서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난주에 국회 청문회에서 정말로 정몽구 축구협회 회장과 홍명보 감독이 청문회에 불려나왔습니다. 저는 그 분들이 청문회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농담인줄 알았어요. 속이 상하니까 그런 말도 나오는구나 했지요. 그런데 정말로 청문회에 불려 나왔습니다. 이런 수도 있는가 했어요. 일승일패는 병가지상사인데 한번 졌다고 해서 국회 청문회까지 나와야 합니까?
앞으로 누가 축구 감독하려고 하겠습니까? 국회의원들이 정치나 잘 하지 애매하게 힘도 없는 축구 감독이나 불러가지고 청문회를 합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청문회 할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통령부터 청문회 해야 하지 않습니까? 강한 자에게는 말 한 마디 못하면서 힘없고 약한 축구 감독이나 불러서 청문회하고 있는 국회의원들 반성해야 합니다.
청문회에 불려나오신 홍명보 감독과 정몽구 회장 앞으로 준비된 그 힘을 더 크게 쓰일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더 깊이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 수고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왜 제가 축구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성경에도 이런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바울과 그의 일행들이 비시디아 안디옥에 들어갔어요. 이때는 안디옥이라는 도시가 여기저기에 있었습니다. 바울이 떠나온 도시도 안디옥이었어요. 정확하게 구분 하자면 바울이 떠나온 곳은 시리아 안디옥이고 지금 바울이 찾아간 곳은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안디옥이라는 말은 ‘왕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그땅을 다스리던 통치자가 자기 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서 여기저기에 안디옥이라는 뜻의 도시를 세웠어요. 자그만치 16개의 안디옥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성경에서는 시리아 안디옥은 그냥 안디옥으로 표시하고 지금 바울이 가 있는 그곳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참 헷갈리고 어렵지요. 성경이 원래 쉽지 않은 책입니다.
바울이 회당을 찾아갔어요. 회당장이 성경 말씀을 읽고 누구든지 나와서 할 말이 있으면 전하라고 했어요. 이처럼 어떤 고정된 설교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나와서 할 말이 있으면 전하면 되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도 초창기에 아무 권위도 없었지만, 회당에서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랍비 교육을 받은 사람이니까 꺼리낌 없이 나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16절에 보시면,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하면서 메시지를 시작합니다. 또 43절을 보시면,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설명할 필요가 없겠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라고 하는데 이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지난주에 말씀을 잘 들으신 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니지만, 유대교와 하나님에게 매력을 느껴서 이 회당에 참석해서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이방인들입니다.
그런데요. 바울이 열심히 말씀을 전했을 때, 그 말씀의 요지는 예수는 유대인들의 모함을 받아서 죽었지만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고,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말씀을 누가 받아드렸고 누가 그 말씀을 믿었습니까? 유대인일까요? 아닙니다. 유대인 옆에 앉아 있었던 옵서버로 참석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혹은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 즉 이방인들이 그 말씀을 받았고, 믿었습니다.
3. 바울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것을 바울은 예상했을까요? 바울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항상 유대인을 우선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그렇습니다. 로마서 1:16을 보세요. 복음이 무엇이냐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려주는 말씀인데요. 그때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어디를 가나 항상 유대인에게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씀을 받아드리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헬라인 그러니까 이방인에게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복음은 유대인을 건너뛰고 헬라인에게로 간 것입니다.
4. 바울은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전하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우선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한 후에 아라비아로 가서 삼년을 보냈습니다. 왜 아라비아로 갔느냐? 가야할 곳이 없어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사방에서 바울을 잡으려고 하니 편안히 있을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유대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그때 그곳에는 나바테안 왕국이 있었는데 그 왕국은 유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곳으로 가면 유대인들이 거기까지는 올 수 없었어요. 그래서 거기로 도망간 것이지요. 그곳에서 목숨의 위험을 느끼지 않고, 말씀을 연구할 수 있었어요. 훗날 전파할 일을 염두에 두고 많은 준비를 했어요. 이때도 그는 유대인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전할 일을 준비했어요.
다음 그는 3년을 지나고 난 뒤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요. 그렇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 그를 피했어요. 그래서 베도로와 몇명의 사도들만 만나고 그의 고향 다소로 갔어요. 사람들이 그를 아직까지 믿지 않았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그의 고향 다소로 갔어요. 그곳에서 다시 11년을 보냅니다.
그는 본의 아니게 말씀을 전하기 까지 14년 동안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전하려고 해도 사람들이 만나주지를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말씀을 전할 준비를 한 것입니다. 누구에게요. 유대인에게 말씀을 전하려고 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기가 이방인에게 말씀을 전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니까 듣는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5.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쓰실지 모릅니다.
바울은 몰랐지만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바울을 이방인에게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그릇으로 정해두셨어요. (사도행전 9장 15절) 그래서 이렇게 오랜 기간을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요셉은 어린 나이에 형들의 시기를 받아서 에집트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13년 동안 고된 훈련을 받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에집트로 데려와서 키우시려고 요셉을 먼저 그곳으로 보내어서 그의 가족을 받아드릴 준비를 시키신 것입니다.
다니엘은 전쟁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에서 거의 노예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까, 그는 바벨론에서 노예 상태로 끌려와 있던 많은 유대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불꽃이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다니엘을 보면서 위로를 받아서 그 힘든 노예 생활을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자기는 알지도 못하면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어려운 훈련을 받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렇게 힘든 훈련을 받고 계시는 그분들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일, 기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기도는 결코 아무 결과 없이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결과를 가져옵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제가 다녔던 목사님이 억지로 새벽기도를 시켰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자기나 기도할 일이지 왜 목사라고 나를 새벽기도에 나오라고 날마다 새벽에 전화를 하는지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제가 목사가 되리라는 것을 아시고 그때 기도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혹시라도 지금 이유도 분명히 모르면서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계시는 분 계십니까? 왜 내가 지금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투덜거리면서 그 일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이런 일을 하려고 꿈도 꾸지 않았는데 왜 어떻게 하다가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괴로워하시면서 그 일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마치 요셉처럼 먼 훗날이 되면, 아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려고 그때 나를 이렇게 몰아세웠구나 하실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날을 기대하시면서 오늘의 이 힘든 일을 이겨나가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