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진다. 부지런히 이불을 세탁하고 있다. 햇살에 뽀송뽀송해진 이불을 걷을 때 무척 행복하다. 이불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각 방에 있는 이불을 돌아가면서 세탁기가 깔끔하게 빨아준다.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빨래가 끝났다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주면 세탁기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진심으로 건네는 인사다.
오늘은 국군의 날이다. 오랜만에 광화문에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했다. 지금 우리는 휴전 상태임을 잊고 산다. 나는 군인의 딸이다. 언제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군인의 딸임이 자랑스럽다. 아버지 어머니의 딸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이 정말 감사하다. 군복 입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찡했다. 보고 싶습니다.
한결 컨디션이 좋아졌다. 오후에 대구 월드컵 경기장을 갔다. 대구미술관 주차장에 자동차가 꽉 차 있다. 간송 미술관에서 ‘국보 보물 전시회’를 하고 있다. 서울 간송 미술관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본 추억이 있다. 끝이 없이 길게 늘어선 줄에 끼어서 두 시간 넘게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았던 뜨거운 시간이었다, 은사님과 선배님과 두 번이나 갔던 간송 미술관이다. 대구에 분관이 생겼다니 반가운 일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미술관을 찾은 일은 처음인 것 같다. 모처럼 활기찬 미술관을 보면서 가을이 훌쩍 다가온 느낌이다. 나뭇잎이 바람에 휘말리면서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간다. 아! 가을이다.
간송 미술관에서 귀한 작품들을 두 번 보았지만, 다시 보고 싶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눈에 선하다. 그리고 이제는 먼 나라로 돌아가신 선생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