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잠이나 더 주무시게.." (무진거사와 종율스님)
지방관리였던 무진(無盡)거사는 열심히 참선하여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마침 그 지역 도솔사에 종열선사(兜率從悅 1044~1091)라는
고승이 계셨는데 무진거사는 워낙 자신이 있던 터라
고승 다섯분을 초청하고 이런 게송을 읊었다.
다섯 분의 기연(機緣)이 한 곳에 모였지만
신비한 기봉(機鋒)은 저마다 소매 속에 감추었네
내일 아침 노익장이 단에 오르기만 하면
창을 빗겨들고 한바탕 결전을 청하리라
그랬더니 종열스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그댄 선(禪)을 말로 하는구려."
무진거사가 한방 먹은 거였다.
그렇게 기가 꺾인 무진거사는 가슴이 아파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사실 그 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저는 전등록 천칠백 기연 중에
오직 덕신선사의 '덕신탁발'에만 의심이 갑니다."
이것도 아주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말이었다.
하나 빼곤 다 안다니..
그때 종열스님이 한마디 하셨다.
"그렇다면 나머지도 모두 알음알이로 따지고 해석한 겁니다."
이렇게 자랑할 때마다 얻어맞은 무진거사는 분하고 또 분했다.
밤새도록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에이 안 되겠다'하고 확 일어나는 순간
실수로 요강을 걷어찼는데 그때 몰록 기연을 얻었다.
'어? 아하! 이거구나~'
거사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바로 종율스님 방으로 뛰어갔다.
"스님, 드디어 도둑을 잡았습니다!"
그랬더니 스님께서 또 한 번 일침을 주셨다.
"가서 잠이나 더 주무시게.."
스님께서는 거사에게
환희심 조차 여의어야 함을 깨우쳐 주신 것이었다.
<선업스님 bbs FM>
기연(機緣) : 깨달음의 계기. 틀(機 근기)이 바뀌는 인연.
회기인연(廻機因緣 마음을 돌이키는 인연)
기봉(機鋒) : 깨달음을 얻고 난 후 그 지혜(반야검)를 발휘하는 것
출처 : 불교는 행복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