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Jacques Rousseau, <Emile> (<에밀>, 김순화 옮김, 청목) 글쓰기 과제
이 름 : 김 상 엽 학 과 : 영어교육과 학 번 : 200015721
주제 : 루소의 양심의 윤리학에 대한 정리와 비판
구성
루소는 그의 저서 <에밀> 4부에서 윤리적 행동의 원천으로써 신성한 본능(Instinct divin)으로써의 양심을 제시한다. 루소에 따르면 이러한 신성한 본능은 단순하고 원초적인 것이며 거추장스러운 이론들의 체계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루소의 주장이 옳은지 그리고 신성한 본능이 삶의 양식이나 가치 체계가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 어떤 의의와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검토하겠다.
내용
루소는 자신의 저서 <에밀> 4부에서 사보아 태생의 가난한 보좌 신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p.245~)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에서 추방당한 본래 칼빈 교도였던 한 청년이 무일푼이 되어 빵을 구하기 위해 개종자를 위한 구호소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곳의 사람들은 그에게 악을 가르치며 가두고 같이 죄를 짓게 만들었다. 이렇게 비참한 상태에 빠져있던 이 젊은 도망자 청년에게 어느 한 성직자가 찾아와 도움을 주기로 한다. 그 신부는 이 청년을 덕있는 사람으로 되돌리고자 다짐하고 청년의 감정과 성격을 잘 연구한 끝에 청년에게 존경심을 얻게 되며 청년의 오만한 인간 혐오증을 극복하여 세상의 부유층과 행복한 자들에 대한 원한과 시샘을 아무 가치도 없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여 가공적인 궁핍까지 느끼게 하는 불행한 그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바꿀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 신부는 반대로 젊은 청년에게 신앙 고백을 통해 자신의 윤리관을 이야기한다. (루소는 이 일화의 젊은 청년이 자기 자신임을 후에 다소 극적인 방식으로 고백한다.) 그의 양심의 윤리학을 살펴보자.
1)양심은 편견의 소산이라고들 말하지. 그러나 나의 경험에 따르면 양심은 인간의 모든 법규에 대항하여 자연의 질서를 따르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하네. 우리들에게 이것저것 금지해 봤자 소용없네. 바른 질서를 지닌 자연이 우리에게 허용한 일이라면 더구나 자연이 우리에게 명령한 일이라면 그것을 책망하는 우리의 회한은 언제나 미약한 것이네.
(강조는 보고자 강조)
루소의 위 구절은 서양 윤리학사에 있어서 일정한 전통을 보여준다. 2)먼저 플라톤을 통해 전해져 오는 소크라테스에겐 다이몬의 그의 내부에서 들리는 비판적 양심의 소리였다. 3)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인간의 양심과 인간의 내면에 현존하고 있는 신의 존재 사이의 관계를 강조했다. 이러한 양심을 강조하는 윤리학적 전통은 4)정념을 도덕적 행동의 원천으로 보는 흄과 이성적 존재의 자유를 통해 가능해지는 법칙에 대한 존경을 도덕적 행동의 원천으로 보는 칸트와 구별되면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즉, 양심은 공통적으로 인간 자신의 내면에 귀기울여 인간을 초월한 특정 존재로부터 얻게되는 것인데 아래 인용한 내용에서 루소는 다시 이런 입장을 확인시킨다.
5)양심이여! 양심이여! 신성한 본능이여! 불멸하는 하늘의 목소리여! 무지하고 유한하지만, 지성있고 지유로운 존재의 확실한 안내자, 인간을 신과 닮게 만드는 선과 악의 틀림없는 판단자, 인간 본성의 우월성과 인간 행동의 도덕성을 만드는 것은 그대이니라. 나는 그대가 없이는 규칙없는 오성과 원리없는 이성으로 오류에서 오류로 헤매다니는 슬픈 특권밖에는, 나를 짐승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라곤 내 속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6)루소에 따르면 그리고 신성한 본능(Instinct divin)이라는 용어가 보여주듯 이러한 양심을 발견하는데 있어서 공허하고 번거로운 논의나 철학이 필요치 않다. 흔히 7)자유주의적 혹은 계몽주의적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입장은 현대 사회에도 많은 효용을 지니고 있다. 8)지금도 미국에서 활동 중인 언어학자이자 사회 운동가인 노엄 촘스키는 스스로 데카르트, 루소의 자유주의적 전통을 잇고 있음을 주장하며 자본지상주의에 의한 인간의 통제, 인간 가치의 절하에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윤리학의 주제로써 루소의 신성한 본능은 몇 가지 한계들을 지닌다. 첫째, 루소가 주장하는 신성한 본능이 그 존재 여부나 여러 개인들 사이에서 동일성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만약 증명할 수 있는 명확한 방법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면 루소의 주장은 충고는 될 수 있어도 윤리학의 주제는 될 수 없다. 둘째, 신성한 본능에 따르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어서 갈수록 집단 윤리를 필요로 하는 현대 사회의 요구에 부족하다. 루소의 주장은 신학자 니부어가 주장한 이기적 집단의 문제나 혹은 점점 더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사회적 연대에 있어서의 윤리 문제와 같은 집단의 단위에 필요한 윤리 맞춰 재해석하거나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미 가치나 삶의 양상이 많이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 단순함과 원초성을 강조하는 루소의 윤리학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있다. 낙태 문제, 환경과 개발의 문제, 생명 복제 문제 등의 사안들은 그에 대한 많은 지식과 연구가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려야 함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비판한 내용을 통해 루소의 양심의 윤리학과 서양 윤리학사에 있어서 양심의 긴 전통은 현대 사회에 와서 일종의 과도기를 겪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재해석과 수정을 통해서 그 전통이 가진 장점을 살려내는 지적 노동이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윤리적 숙제라고 할 수 있다.
1) 루소, <에밀> (김순화 옮김, 청목) p. 250 (이하 <에밀>)
2)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3)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4) 비록 도덕적 행위나 판단에 있어서 이성을 정념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흄의 입장과 오직 이성을 통해 도덕적 행위나 판단이 가능하다는 칸트의 주장은 정반대의 입장에 서지만 둘 다 도덕적 행위나 판단의 원천이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동일한 입장으로 묶을 수 있겠다.
5) <에밀> p.256~257
6) <에밀> p.252
7) 양심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신뢰를 통해 개인의 자유 및 진보를 옹호하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다는 면에서 루소는 흔히 자유지상주의 또는 계몽주의로 불린다. 이러한 계몽주의, 이성주의의 입장에서 보자면 칸트의 입장과 비슷하게 엮일 수 있지만 이는 루소와 칸트의 철학이 가져다 준 효과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이고, 이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앞서 명시했듯이 루소에게 있어서 신성한 본능은 신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점, 반면에 칸트에게 있어서 도덕법칙은 지성계 시민인 인간의 이성에 의해 주어지며 신은 단지 이러한 도덕에 숭고함을 주기 위해 요청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갈라진다.
8) Robert Barsky, <Noam Chomsky, a life of dissent>(<촘스키, 끝없는 도전>, 장영준 옮김, 그린비) p.171
첫댓글 bra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