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의 죽음 / 차윤정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친밀한 사랑의 감정을 기억하는 한 잊히지 않는 죽음을 죽을 수 있다.’ - 루게릭병 환자 모리
나무의 죽음은 그러나 삶의 또 다른 반쪽입니다. 나무가 사는 과정은 자신을 위한 내적 투쟁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나무의 죽음 이후의 삶 - 삶이 맞습니다 -은 자신의 모든 것을 숲으로 되돌리며 다른 생물들의 삶으로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나무의 죽음 이후는 훨씬 많은 생물들과 관련됩니다. 우리의 눈을 숲에서 숲 바닥으로 돌리면 푸른 숲에 묻혀 있는 절반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봄, 새잎을 피워내지 않는 나무는 완전히 죽은 나무입니다. 그러나 살면서 죽음과 더불어 지내온 세월은 덮어두더라도 죽은 나무의 그 흔적이 없어지는 데는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살아온 세월과 거의 맞먹는 시간입니다. 나무가 살아서 성장하는 과정은 숲의 자원을 사용하는 과정이지만 생명을 잃은 나무는 이제 사라질 때까지 자원을 되돌리는 과정에 놓입니다.
거대한 나무는 대부분 죽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실 세포의 수명은 두 달을 넘기기가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외부의 힘에 의해 쓰러지지 않는 한 수백 년을 살아가며 자신은 물론 궁극적으로 지구를 부양합니다. (...) 결국 50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나무는 499년의 죽음을 몸에 지니고 있었던 셈입니다. 단 일 년의 차이가 죽음을 가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런 죽음의 흔적들은 나무의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말라 떨어져나간 가지들, 줄기의 동공들, 잘려나간 뿌리... 그러나 오래된 나무는 죽어 바로 쓰러지는 법이 없습니다. 선 채로 죽어간다는 것이 더욱 마땅한 말입니다. 사는 동안 새겨진 500개의 나이테는 죽음과 더불어 하나씩 벗겨질 것입니다. 나이테는 나무 스스로 만들었지만 나이테를 벗겨내는 일은 다른 생물이 담당합니다. 이제 500개의 나이테가 거꾸로 벗겨지는 동안 물질은 나무에서 숲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엄청나게 큰 나무를 해체하는 작업에 얼마나 긴 시간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해체의 노동자들 가운데는 그동안 우리가 만나보지 못했던 새로운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광대한 수액의 늪은 온갖 곤충을 불러들입니다. 설탕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의 수액은 다른 나무에 비해 설탕 함량이 높아 단맛이 강합니다. 이 수액이 흘러나오는 곳에는 그래서 늘 먹이 다툼이 일어납니다. 벌, 개미, 나방, 딱정벌레,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할 것 없이 이 수액으로 모여듭니다.
딱따구리는 이 수액을 가로채기 위해 나무의 껍질을 벗깁니다. 적당한 나무를 찾은 딱따구리는 부리로 나무의 껍질을 가격하기 시작하여 나무의 속이 드러날 때까지 두드립니다. 그리고 나무의 구멍을 통해 수액이 흘러나오면 혀로 핥아 먹습니다. (...) 그러나 수액이 흘러나오는 동안은 나무는 살아 있습니다. 수액이 흘러나온다는 것은 나무의 물오름이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나무가 완전히 생명을 잃으면 물질의 흐름도 멈춥니다.
나무는 한번 정착한 곳에서 일생을 보내는 고착 생명입니다. 고착생활을 한다는 것은 숱한 시련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나무는 일생동안 온갖 생명체의 공격으로 성할 날이 없습니다. 잎, 줄기, 눈, 꽃, 열매, 심지어 뿌리까지도 무수한 동물의 표적이 됩니다. 나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시련을 극복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장기의 활력 높은 나무는 상처가 나더라도 곧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보상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무와 적들 간의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나무가 극복하지 못한 상처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극복하지 못한 상처가 모이면 치명적인 결함이 됩니다.
나무 속으로 침투한 균들은 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 은밀하게 나무를 죽이는 작업을 진행시킵니다. 낙숫물이 돌에 구멍을 뚫듯이 언젠가 이 작은 상처는 보이지 않는 줄기 속에 길고 깊은 동공을 만들게 됩니다. 이 뚫린 상처에 의해 물길과 양분길은 끊어지고 저 하늘 높은 곳의 어느 가지는 서서히 말라갈 것입니다. 나무가 완전히 죽어 잎과 가지가 다 떨어진 채 서 있거나 혹은 폭풍우에 쓰러진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균들의 내밀한 작업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이면 도마뱀이나 개구리와 같은 작은 동물이 아예 밑동을 파고들어 잠을 잡니다. 가을 동안 떨어진 낙엽이 이를 덮어 보호함으로써 눈 속의 고요한 침실이 됩니다. 이 동공은 줄기의 구멍이 새들의 둥지가 되듯이 동물들의 거처가 되기도 합니다. 혹은 임자 없는 동굴로 남아 적에게 쫓기는 짐승들이 몸을 숨길 장소를 제공하게 됩니다. 줄기 밑동에 버섯이 층층이 피어나면 이제 나무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게 됩니다.
사탕단풍이나 느릅나무, 참나무류, 히코리와 같이 목질이 단단한 나무는 목질의 안쪽에서부터 부패가 진행됩니다. 이런 나무는 대개 크게 자라고 분해 속도가 느립니다. 뿌리로 혹은 부러진 가지로 침입한 균은 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안으로 구멍을 만듭니다. 그리하여 단단한 껍질을 가진 훌륭한 동공이 형성됩니다. 나무의 살아 있는 조직은 수피 쪽에 있기 때문에 나무 안쪽의 죽은 조직이 무너지더라도 나무가 서 있을 수 있는 한 그 양상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런 서 있는 나무의 내부는 몸집이 큰 포유동물이 은신처로 이용하게 되는데, 특히 겨울철에 곰과 같은 대형 동물들이 동면 장소로 이용합니다. 반면 사시나무나 자작나무같이 목질조직이 부드러운 나무는 비교적 짧은 생활사를 갖고 빨리 자랍니다. 나무의 껍질도 얇아 줄기 바깥에서부터 구멍이 쉽게 만들어지고 또한 온갖 곤충의 애벌레가 그 속에서 자라고 있어 새들에게 좋은 사냥터가 됩니다.
나무는 이제 죽어가는 나무로 불리게 됩니다. 그러나 죽어간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나무의 상당 부분은 이미 죽은 상태였기 때문이빈다. 오히려 이제부터 나무의 몸속에 살아 움직이는 세포가 들어찹니다. 단지 5퍼센트의 살아 있는 세포로 구성되었던 나무가 살아 있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생명들로 다시 채워지는 것, 죽어간다는 표현은 그래서 바뀌어야 합니다.
유령처럼 서 있는 죽은 나무는 오래된 숲이 남긴 유산입니다. 유산의 상속자는 당연히 숲의 모든 생명입니다. 이 유산은 오랫동안 숲의 완전한 일부가 되어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주체이기보다는 살아가기를 아주 열망하는 또 다른 삶들의 바탕이 됩니다.
오래된 숲에서 숲 바닥(임상)으로 쓰러지는 나무의 양은 연간 ha당 1.2개체 정도입니다. 죽어 쓰러진 나무들은 부분적으로 부서지고 잘려나가 굵은 목질 조각들을 만들어냅니다. 쓰러진 나무나 긁은 목질 조각의 존재는 숲의 물리적 안정성과 생물다양성들을 가늠하는 지표가 됩니다. 오래된 숲에서 쓰러진 나무나 굵은 목질 조각은 숲 전체에 존재하는 낙엽, 낙지의 50퍼센트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쓰러진 채 썩어가는 나무는 다양한 생물들과 생태적 기능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숲의 변화 혹은 발달 과정을 천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쓰러진 나무에서 이루어지는 변화 역시 천이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시간에 의한 목질의 풍화가 아니라 환경인 동시에 자원이 쓰러진 나무를 이용하는 생물종이 변화하고 이에 따라 나무의 분해 양상이 변해가기 때문입니다.
죽은 나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것이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이 단단한 유기물 덩어리를 해체하기 위해 침입한, 기원을 알 수 없는 미세한 균사로부터 시작되는 생물망은 개미, 좀벌레, 사슴벌레, 노래기, 밭쥐, 다람쥐, 오소리, 개구리, 뱀, 도마뱀, 멧돼지, 곰, 무수한 새에 이르는 동물생태와 이끼, 지의류, 들꽃, 작은 나무들에 이르는 식물생태, 그리고 물고기, 수달에 이르는 계류생태까지 연결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그리하여 죽은 나무는 오래된 숲에 의존해 살아가는 약한 생물들을 구원하는 노아의 방주가 됩니다. 이것은 숲의 일부이자 동시에 전혀 다른 별개의 숲을 이룹니다. 이런 별개의 숲들이 커다란 공동의 숲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면서 숲은 더욱 다양해집니다. 우연히 죽은 나무에 침입한 곰팡이, 그 곰팡이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을 통해 전체 숲 생물종의 약 30퍼센트가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연결됩니다. 숲이 풍성할수록 죽은 나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고 다양합니다.
수피는 끝까지 나무의 위대함을 지켜냅니다. 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 수피는 호위무사의 철갑처럼 위용과 엄격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이면 수피는 더욱 위대해 보입니다. 나무는 모든 귀중한 것들을 수피 속에 저장한 채 한겨울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나무가 막 죽음을 맞이했을지라도 수피는 여전히 나무의 죽음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딱따구리에 의해 구멍이 뚫리고 보이지 않는 틈으로 미세한 균이 침투하여 은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지라도, 제 빛깔의 수피를 간직하고 있는 한 나무는 여전히 근사해 보입니다. 수피가 떨어져나가는 순간부터 나무는 초라해집니다.
수피가 안팎으로 서서히 붕괴되어가는 동안 곤충의 제왕들이 이 가공할 만한 나무에 공격을 시도합니다. 단단한 수피를 생으로 뚫기 위해서는 몸집도 크고 힘도 에서야 함은 물론이고 강한 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몸집이 아주 큰 사슴벌레가 나무의 수피를 올라가고 있습니다. 몸집이 큰 사슴벌레는 곤충 세계의 공룡에 해당합니다. 사슴벌레가 지나가는 길 아래 수피 조각 사이에는 몸집이 작은 딱정벌레의 거주지가 있습니다. 이 딱정벌레가 파놓은 구멍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나 곰팡이가 들어차 있습니다. 실로 두툼한 수 센티미터의 수피 조각에 만들어진 이 복층의 입체적인 생물 거처는 큰 나무의 수피가 얼마나 다양한 미소 서식처를 형성하는지 알게 합니다. 수피가 떨어져나가면 미소 생물의 침입 현장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수피는 쓰러진 나무 전체 부피의 20퍼센트나 됩니다. 수피가 두꺼울수록 더욱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더욱 많은 수분을 품고 다양한 무척추동물들의 서식지가 됩니다. 수피의 비중이 적은 어린나무는 죽으면 비교적 쉽게 다른 생물들의 침입을 받으며 사라집니다.
유난히 촘촘한 연골로 이루어진 딱따구리의 머리통은 충격을 흡수하는 근육들과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머리는 위아래 한 방향으로만 움직여 머리의 회전력을 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회전력은 머리를 양옆으로 비틀어 찢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송곳니 모양이 부리가 시속 20~25킬로미터의 속도로 나무를 두드립니다.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파는 동안 톱밥과 더불어 많은 먼지가 발생하는데, 딱따구리의 콧구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성한 털이 먼지가 들어오는 것을 막습니다.
더욱 명백한 사실은 죽어가는 나무의 본격적인 분해는 딱따구리의 공격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딱따구리의 부리에 나무를 부패시키는 다양한 곰팡이의 포자가 묻어 있거나, 깃털에 목재에 구멍을 뚫는 곤충들이 묻어 있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 숲에서 오색딱따구리나 크낙새의 멸종위기는 이들의 먹이가 되는 장수풍뎅이나 장수하늘소의 애벌레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이는 결국 큰 죽은 나무가 부족해 대형 곤충들의 산란지를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딱따구리가 버리고 간 둥지는 연쇄적으로 다른 새들의 보금자리가 됩니다. 박새, 딱새류, 동고비, 개미잡이, 원앙이 등 다양한 새들이 이 둥지를 두고 경쟁을 벌입니다. 딱따구리의 둥지를 이용하는 새는 전체 숲에 사는 새들의 30퍼센트나 됩니다. 분명 죽어 서 있는 풍부한 목질의 나무는 날개를 가진 짐승들에게 최고의 장소입니다.
현재까지 지구상에 알려진 생물종 수는, 생물학자 간에 이견이 있지만 대체로 142만 종 정도입니다. 이중 절지동물이 약 87만 5천 종이며 곤충은 약 75만 종이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지구상에 알려진 생물종의 50퍼센트 이상이 곤충인 셈입니다. (...) 곤충 무리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딱정벌레 무리입니다. 딱정벌레 무리는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 성충의 시기를 거치는 완전 변태를 하는 곤충으로 몸 전체가 단단하고, 특히 앞날개가 딱지날개로 변형되어 있습니다. 날 때는 단단한 앞날개 아래 감추어진 뒷날개가 펴지면서 날아오릅니다.
엄청난 개체수의 가장 큰 무기는 대대적인 공격으로 적을 단숨에 쓰러뜨린다는 데 있습니다. 오래된 숲에서 굵고 육중한 줄기로 서 있는 나무를 공격해서 와해하는 데 딱정벌레 무리는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나무는 마지막 힘을 다해 수지를 분비하며 저항하지만 대규모 공격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이들의 공격으로 죽은 나무의 운명은 아주 잘 짜인 순서로 진행됩니다.
사슴벌레가 큰 몸집을 숨기고 알을 낳을 곳,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애벌레가 먹고 자랄 충분한 먹이를 제공해줄 곳, 바로 껍질이 두껍고 줄기가 굵은 죽은 나무가 제격입니다. 오랜 숲에 딱따구리가 깃드는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된 셈입니다.
아직 무수히 남아 있는 천공성 딱정벌레와 더불어 토양 속 개미나 응애, 목수개미들이 나무 속을 파먹으며 내부 해체 작업을 거들기 시작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침공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박테리아, 효모, 암브로시아균과 같은 미생물을 운반하여 더욱 극적인 상황을 만들냅니다. 이 미생물들은 분해 작용을 이끌 뿐 아니라 그들을 섭식하는 톡토기, 진드기, 암브로시아딱정벌레와 같은 곤충을 다시 끌어들입니다. 이제 쓰러진 나무는 거미, 전갈, 지네, 도마뱀에게는 잘 차려진 만찬 테이블입니다. 지렁이, 진드기, 쥐며느리, 집게벌레, 노래기 등이 이들로부터 떨어지는 분비물을 먹기 위해 다시 테이블 주변을 서성입니다. 실로 다채롭고 경이로운 이 작은 세계야말로 오랜 숲이 내밀하게 진행시키는 웅장한 생명 드라마입니다.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 절지동물들에게 썩어 무너진 나무는 분명 좋은 서식 장소입니다. 이 작은 절지동물들은 죽은 나무를 비롯한 숲에서 발생하는 생물 사체를 물리적으로 조각내는 데 선수입니다. 곤충의 애벌레와 달리 나무 속 회랑을 경계 없이 넘나드는 이들 절지동물들에 의해 나무 속은 거의 너덜너덜해집니다. 이들이 조각낸 생물 사체들은 곰팡이나 세균에 노출된 표면적이 넓어집니다. 곤충을 포함한 절지동물은 토양권에서 오늘날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절지동물이 사라지면 촉촉한 땅은 얼마 가지 않아 말라 터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단 몇 달도 되지 않아 양서류나 파충류와 같은 지상의 동물들이 마르고 곧 식물도 말라갈 것입니다. 생태계는 말 그대로 황폐화될 것입니다.
오래된 숲의 신비는 웅장한 나무보다는 숲 바닥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물안개 걸린 초록의 이끼 융단은 숲의 시간성을 보여줍니다. 숲이 오래될수록 이끼나 고사리와 같은 원시성 식물들이 늘어납니다. 밤이면 찬 이슬이 나무의 수피 속으로 스며듭니다. 물기는 수피에 갇혀 쉽게 마르지 않습니다. 나무토막은 물기로 부드러워지고 조직의 거친 표면엔 갈라진 틈이 생깁니다. 물기를 따라 유랑하던 이끼의 홀씨들은 수피의 물기에 이끌려 달라붙습니다. 수피로부터 녹아 나오는 양분은 이끼의 발아를 촉진합니다. 두툼한 이끼층이 숲 바닥을 융단처럼 덮어버리면 우리는 이끼의 놀라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숲에서 죽은 나무에 이끼가 자라는 것은 단순히 풍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역동적인 생태 드라마입니다.
숲은 결코 나무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벌채하고 난 후 나무를 심더라도 온전한 숲이 만들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숲이 온전한 숲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물이 살고 다양한 생물 관계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오래되어 쓰러진 나무가 다양한 균과 도마뱀을 위해 필요하고 딱따구리를 위해 필요합니다. 또한 오래된 죽은 나무는 착생식물들의 새로운 정착을 위해 필요하고 이들을 위해 궁극적으로 이끼가 필요합니다. 이끼로 뒤덮인 오래된 숲 바닥층은 경이로운 생명들의 생태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입니다.
쓰러진 나무가 다양한 소형 동물들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적당한 수분과 서늘한 온도 등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겨울 동안 썩은 나무는 마치 스펀지와 같이 많은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가 봄 건기에 유용한 물자원의 원천이 됩니다. 썩고 있는 나무는 내부 구조가 스펀지와 같아 나무 무게의 2배에 달하는 물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수분과 그늘은 숲에서 극단적인 온도 변화를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지의류는 생태계에서 가장 빨리 정착하는 생물입니다. 일단 바위 위에 지의류가 정착을 하면 바위는 곧 흙을 만들어내고 풀씨를 잉태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딱딱하고 건조한 지각의 경계에 지의류가 붙으면서 생물과 무생물 간의 가교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지의류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지의류가 다양하고 화려할 뿐 아니라 아주 작은 생물의 연쇄적 과정을 지원하는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위대해집니다. 지의류에 나방이 알을 낳고 알이 부화하면서 지의류를 뜯어 먹습니다. 거미가 나방의 애벌레를 먹고 새는 거미를 잡아먹습니다. 새를 먹기 위해 뱀이 어슬렁거리고 가끔 개구리도 뛰어오릅니다. 지의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 스스로를 지키려 애써보지만, 이런 자들이야말로 정작 지의류를 여기저기 퍼뜨리는 일등 공신이니 이들 간의 관계는 별 이변이 없는 한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의류 자체가 나무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약간의 수분만을 얻어 갈 뿐입니다. 그러나 나무는 지의류로 인해 유인된 다른 곤충들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이미 생명을 잃은 가지가 본래의 잎 대신에 전혀 다른 식물들로 가득한 공중의 정원이 연출해내는 모습은 숲의 오랜 여유와 한가함의 극치입니다. 어쨌거나 지의류가 피어나는 숲은 오래된 숲입니다.
비버 댐에 의해 숲에 새로운 습지나 작은 연못, 물새 서식지, 어류 산란지, 침전지 등의 지형이 만들어집니다. 비버 댐이 아니라면 빠른 물살에 쓸려 내려가버렸을 잔가지나 낙엽이 댐에 갇히어 양양염류로 거듭나면서 다양한 생물의 먹이가 됩니다. 물에 잠긴 지역에 사는 나무들은 물속에 잠긴 채 썩게 되고 영양 물질이 침전되면서 풍성한 수생태계가 형성됩니다. 풍부한 유기물질을 따라 물고기가 몰려들고 양서류와 파충류가 모여듭니다. 물고기와 개구리를 먹기 위해 물새들이 모여들고 때로 왜가리같이 큰 새도 이곳 댐에 생겨난 물고기를 먹기 위해 방문합니다. 사슴들은 종종 물을 먹기 위해 찾아옵니다. 단조로운 숲의 한가운데 가장 역동적인 생태계가 비버라는 동물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숲 바닥의 두터운 낙엽층은 숲 토양의 성격을 결정짓습니다. 무기 입자와 섞이지 않은 생물 사체들의 층을 유기물층이라 합니다. 유기물은 아직 무기 입자와 만나지 못한 생물 잔해입니다. 유기물층은 말 그대로 흙 입자 위에 쌓여 있는 생물 사체가이루는 층입니다. 지구 표면적의 32분의 1만이 이런 유기물층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속적인 물질의 분해와 순환을 이끕니다.
토양식물상은 대부분의 고등식물의 뿌리와 일부 식물성 미생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광물질 토양에 깊이 침투하여 토양의 발달을 촉진시키며 토양에 유기물을 제공합니다. 식물의 뿌리는 전체 식물류의 무게 중 10~45퍼센트, 그리고 연간 새로 만들어지는 조직 무게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합니다. 오래된 숲에서 지상의 무게만큼의 뿌리가 땅속에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상당히 많은 양의 유기물이 땅속에 이미 박혀 있음을 암시합니다.
지렁이는 수분과 온도 조건이 적절한 곳에서 살아갑니다. 흙더미와 섞인 죽은 나무의 잔해는 지렁이가 살아가는 데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렁이는 이빨이 없어 생물 사체를 먹을 때 토양 입자를 함께 먹습니다. 몸속을 통과하면서 생물 잔해는 토양 입자에 의해 미미하게 파쇄된 후 찌꺼기로 함께 배설됩니다. 지렁이의 배설물은 온대지역의 풀밭에서 10년간 4센티미터의 높이로 쌓일 정도입니다. 마치 경운기로 땅을 갈아엎는 것과 맞먹는 작업량입니다.
토양권에서 낙엽만으로도 다양한 토양 생물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엽은 유지 기간이 짧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자원으로서 재빨리 이용되기만 할 뿐 생물 자체를 부양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미생물과 달리 토양의 다양한 동물상은 알을 낳고 몸을 숨기고 사냥을 할 비교적 안전한 서식지가 필요합니다. 비록 오래전에 죽어 거의 다 부서진 나무라 할지라도 썩은 나무가 쌓인 곳은 특별한 공간이 됩니다. 나무는 토양의 생물들에게 감사하지만 그들 또한 썩어가는 나무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잎이나 잔가지에 비해 줄기는 썩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쓰러진 나무가 완전하게 양분을 재순환시키는 데 150년 이상 걸립니다. 적어도 이 기간 동안은 토양 동물들의 거처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나무가 성장하는 동안 광대한 뿌리는 흙 속에 흩어져 있는 양분들을 끌어와 자신의 몸에 집중시켰습니다. 도대체 흙을 얼마나 먹어야 나무로 자랄 수 있을까요? 미미한 양으로 흩어져 있는 양분들이 나무라는 몸속에 농축되어 같은 양의 흙에 비해 훨씬 높은 양분 수준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한 모금의 흙보다 한 모금의 수액이 훨씬 영양가 높습니다. 나무가 살아가는 동안 무수한 생물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농축된 양분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나무는 웅장한 줄기와 풍성한 수관에 온갖 생물이 깃들어 조잘거리는 살아 있는 생명으로만 기억됩니다. 죽은 나무는 단순히 목재로만 기억될 뿐입니다. 그러나 나무의 일생에서 이것은 반쪽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무는 죽는 순간부터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숲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일을 진행시켰습니다. 죽은 나무가 없었다면 딱따구리도 장수하늘소도 아름다운 버섯도 없습니다. 나무는 죽었으나 절대 죽은 상태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세계는 죽어 있는 세계를 토대로 세워집니다. 숲이 성장하고 오래 될수록 나무의 죽음 이후는 중요해집니다. 살아 있는 숲은 죽은 나무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 경이로운 생태 드라마는 오래된 숲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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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가네동산 원문보기 글쓴이: 정가네
첫댓글 왜요 님이 궁금해 하셔서 '나무의 죽음'이란 책 속의 중요 부분을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왜요 님 뿐만 아니라 숲의 형성이나 숲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글 내용이 부분적으로 필요하신 분은 제일 아래의 '출처'에 있는 '원문보기'를 누르시고 제 블로그에 가셔서 복사해 가시면 됩니다.
숲을 신비화할 정도로 예찬하던 숲 생태학자였으나 4대강 죽이기에서 한 자리를 차지해서 강변 숲을 대거 죽여 없앤 차윤정.
학자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학문적 업적과 상관없는 평가를 받는 좋은 예.
그렇긴 해. 지금도 차윤정이란 이름을 검색하면 뒤에 4대강이 뒤따라 나오지.
2000년대 초에 참 인상깊게 읽은 책인데...사실 이 책은 눈을 활짝 뜨게 해줬습니다. 이 책을 읽기전까지 죽은 나무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고, 북한산 산행 중에 죽어 있는 나무를 왜 저렇게 방치하나?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죽은 나무 속에 꿈틀일 수많은 생명들을 생각하게 됐으니끼요....그러나 훗날 기고한 글이라니 ㅠ.ㅠ 유인촌, 박범훈과 함께 MB가 잡아먹은 내가 좋아했던 3인방. 그래서 참 슬픈 기억이 덧붙여진 기억의 책이 되었네요. ㅠ.ㅠ
역시 그러셨군요.
4대강 때문에 그 동안 쌓아올렸던 명성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사람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모래를 보지만 나는 물을 본다'고 했지요.
조금만 더 넓게 생각했더라면 오래도록 칭송받을 뼌했는데 말입니다.
정말 단견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