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가 왔다.
강원도 화천...이름만 들어도 그리운 곳에서.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 한 장과
군 생활을 하면서 읽은 책 몇 권을 보냈다.
아들의 체온과 냄새가 묻어나는 책을 받으니
바깥 날씨는 영하였지만 마음은 하나도 춥지 않았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 가운데 하나인 화천에서 근무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이깟 추위 앞에서 춥다고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일 때 일이다.
"아빠, 나 일 년만 휴학하면 안 돼요?"
경북 경산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예상하지 못한 아들의 전화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곧 방학이니 집에 오면 생각해 보고 이야기 하자"
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금요일 저녁에 아이는 집에 왔다.
그 날은 반가움만 나누고
뒷날 아침, 우리는 마을 뒤로 산책을 갔다.
일부러 아들 손을 힘주어 잡고 걸었다.
"아들, 지난 번에 전화로 한 말 무슨 뜻인고?"
심각하지 않은 듯 가볍게 물었다.
"그냥 집에서 공부하고 싶어서요."
시험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 실망을 한 것이 분명해 보여
평소에 내 성격과는 다르게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가원아, 우리 꿈을 한 단계 낮추자"
열 일곱살 아들의 꿈을 키워 주지는 못할 망정
낮추자고 말하는 심정이 쓰리고 아팠지만
그 순간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부터 아이의 꿈은 한의사였다
지리산 자락에 한의원 차려서, 오전에는 진료하고 오후에는 환자들과 산을 누비며
꽃과 나무와 풀을 살피며 웃다 보면
몸도 마음도 자연이 고쳐 주는
멋진 한의사가 되는 게 아이 꿈이었다.
풍광 좋은 곳에 찻집처럼 꾸며 놓고 지리산에서 캔 약초들로 만든 차를 마시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분위기 있는 진료실은 아빠가 마련해 주마...
아이 꿈을 나도 부추켰다.
어린 나이지만 한의학 관련책을 구해서 열심히 읽는 아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뿌듯한 마음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내신 비중이 높아진, 바뀐 입시제도 때문에 같은 반 친구들이 가장 큰 경쟁자가 된 교실
중간고사 기말고사.....단 한 번의 실수로도 끝없이 추락할 수 있는 얼음판을 걷는 기분
어쩌면 아이는 여기에 질식을 했는지도 모른다
기대에 못 미친 성적 때문에 깨진 꿈의 부스러기라도 주워 모으려는 아들의 몸부림이
내 눈에 들어 왔다.
더 잘 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허용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아이 마음을 읽었다.
부모이기 때문에........
"가원아, 아빠도 네가 멋진 한의사가 되는 게 꿈이란다
하지만 우리,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자
아빠는 네가 꿈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을
가슴 한 번 펴 보지도 못하고 신음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꿈은 결코 짐이 아니란다."
"어차피 입시제도는 바뀔 수 밖에 없으니 기다려 보자
대신 책을 많이 읽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라."
한 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적이라는 짐을 아빠 입으로 덜어 주는 게 고마왔던지 아들 표정이 밝아졌고
휴학하겠다는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젊은 날을 허비하지 않고
"청춘의 독서"에 빠진 대한민국 군인, 아들이 기특하다.
부디, 바른 생각을 키워
더 큰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길 빌 뿐
아들의 냄새는 착불로 와도 이리 좋은가.
...............................
첫댓글 감동! 착한 아버지, 착한 엄마, 착한 아들... 보기 좋습니다. ㅎㅎ
고맙습니다.^^
즈그 엄마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 넘쳐 탈입니다 ㅎㅎ
내가 기분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잠시라도 기분이 좋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아드님이 대견합니다...부럽부럽...울 집 막내도 곧 입대할껀데...이넘은 막내라 그런지 아직은 철이....그래도 빨리 군대 다녀오겠다고 고마울 따름입니다...ㅎㅎㅎ
군대 가니까 철이 들던데요 ㅎㅎ
아드님 군대 가면
얼마나 그리워 하실까요^^
저 몇일전에 토담에 백일된 아가델구 갔었는데...여기서 아는분을 만나다니 ㅋㅋ
ㅎㅎ그렇군요~
친절한 동자씨가 그럼 진하어머니?
여기서 만나니 또 반갑네요.
지난 번 오셔서 여러 가지로 고생하셨어요.
고마운 마음
가슴에 담아둘게요^^
글을 정말 잘 쓰십니다요.
요즘 군대에서는 금서가 없나보죠?
좋은 아빠시네요.
전 아들들이 '잔소리만 하고, 화만 많이 내는'아빠란 소릴 듣고 산답니다.
시골에서도 애 셋 키우는건 장난 아니네요.^*^
위에 진선생님 반가워요.
저도 아들녀석이 집에 오면
잔소리 할일 많습니다 ㅎㅎ
워낙 일찍 부모를 떠나 공부를 한 탓에
늘 애잔한 마음이랍니다.
자녀가 많은 것은 큰 복이라는 생각입니다^^
언제나 멀리서만 보고 인사를 나누었더랬는데 이렇게 글로 만나뵈니 반갑네요
글에 아들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자연스레 묻어 나오는군요
단향매님께 사진 감사했다고 전해주십시요
그렇네요^^
만날 때 마다
반갑게 눈인사 주시는 마님이시군요 ㅎㅎ
앞으로는 더 친절하게 인사 드릴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어제 추운데 고생 많이 했재?
좋은 사진 많이 올려 봐~
꿈은 결코 짐이 아니라는 말...
새겨볼 말입니다.
전환시대의 논리가 눈에 팍! 꽂히네요.
좋은 부모밑에서 좋은 아이가 나온다는 말 더 실감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노무현자서전 '운명이다'도 들어 있었습니다.
꼭 읽어 보라고 하데요^^
읽으니 또 밀려오는 아픔 ㅠㅠ
추운 날씨에
두 분
잘 계시지요?
밀려오는 아픔...
밀려서 차오르는 아픔...
공쌤, 이씬님 오늘 취재 간 이야기 우리끼리 말해요...
저, 오늘도 착하게 사는 이야기 하면서 막걸리 다 마십니다.
저희 잘 지내요.
오늘은 순대 친구들 넷 와서 술 마시다 원델랠라 이쌤 자고 저도 눈치껏 들어와 취한체 자판을...
왜, 취하면 맞춤법 틀린 게 눈에 거스르는지... ㅎㅎㅎ
확! 한번 당겨 주세요!
(근데 쌤은 늘 저희를 배려하니... 그 맘 알아요)
그래도 억지로 뵈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