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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처음 SNPE를 처음 알게 해 준 것은 둘째 아이의 조리원동기였습니다.
2016년 둘째를 출산하고 육아로 힘들고 지쳐있을 때 조리원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자신의 친정엄마가 오래전부터 SNPE라는 운동을 하고 계신데 본인도 출산 후 여기저기 쑤셔서 엄마를 따라 하루 운동을 해보니 훨씬 통증이 완화되었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이후 인터넷에 SNPE가 무엇인지 찾아봤고, 우연히 집근처 백화점에서 1일 강좌가 있어서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를 들으러갔습니다.
오래되어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으나 웨이브베개로 이완하는 동작을 주로 했습니다. 다음날 후상장골극 부근이 맞은 것처럼 아팠지만 왠지 모를 시원함이 느껴져서 신기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근처 문화센터의 강의들은 아이들이 집에 있는 저녁시간이나 주말에만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대에 강의가 생기면 꼭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 이틀 지나 2년여가 흐른 2019년 2월, 제 삶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빨리 데려다주려고 아이를 안고 한 발짝 내딛는 순간 왼쪽 발을 심하게 접지른 것이었습니다.
저의 몸무게, 아이의 몸무게, 두꺼운 외투, 차가운 날씨 까지 겹치며 통증이 상당했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병원에 들르지 않은 채 약속장소로 갔고, 하루가 지나고 나니 어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미루게 됐습니다.
며칠 후 다시 심해진 통증을 견디지 못해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지루한 병원투어도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정형외과에서 며칠, 이후 한의원에서 며칠, 호전이 없으니 또 다시 정형외과로.
2월에 다친 발을 7월까지 치료받았지만 빨리 낫기는커녕 계속되는 통증에 돈만 낭비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다니지 않으면 통증을 조금이라도 낮출 다른 방법도 없었기에 하루하루 우울한 마음으로 병원에 다녔습니다.
어느 날 하도 답답해서 의사에게 너무 치료가 더디다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뜻밖에도 돌아온 답변은 최대한 움직이지 말고 몸을 아껴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서 빨리 지긋지긋한 통원 생활을 끝내고 싶었는데 오히려 매일 쓸 수밖에 없는 발목을 가급적 쓰지 말라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의사말대로 그냥 몸을 아껴 쓰자는 마음에 통원 치료를 그만뒀습니다.
최대한 걷지 않고, 무릎을 꿇는 등 다리를 접고 앉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발 근처로만 다가와도 혹시 발을 건드릴까 야단치기가 일쑤였습니다.
걷는 것도, 아이를 포함해 무거운 것을 드는 것도, 계단을 오르거나 의자를 밞고 높은 곳의 물건을 내리는 모든 행동이 부담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젊은 나이에 내 몸 하나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습니다.
변화
2019년 3월, 줌바댄스를 배우던 오전시간에 새로이 SNPE 수업이 개강하게 됐습니다.
너무나 기다리고 있던 수업이었고, 그날 넘어지며 다리를 다친 이유도 몸에 균형이 맞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던 차라 주저 없이 수강을 신청했습니다.
둘째를 낳은 후 건강회복을 위해 나름 필라테스, 플라잉요가, 줌바댄스로 다져진 몸이라 SNPE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던 제 기대는 착각이었습니다.
첫날 웨이브베개로 T무브, L무브를 했는데 너무 아팠습니다. 모두 잘 하시는데 저는 너무 아파서 겨우 할 정도였습니다.
월요일 수업 후 선생님께서 “며칠 아프실 거예요” 하셨는데 그 아픔이 사라지기도 전에 수요일 수업이 다가왔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 수업을 듣고 주말까지 괜찮아지면 또 다시 수업. 그렇게 처음 한 달은 아픈 기억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적응이 되면서 통증이 완화됐고, 다가오는 수업시간도 두렵지 않게 됐습니다.
왜 그런지는 이후 지도자 과정 수업을 통해 깨닫게 됐습니다.
윤지유 교수님께 배운 처음 4주 이내 통증완화, 8주 스트레스 감소, 12주 모든 것이 완화된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문화센터 선생님께서는 늘 바른자세가 왜 중요한지, 신체의 모든 굳은 근육은 부드럽게 풀어야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아울러 저희에게 카페에 올라온 체험사례들을 소개해주시며 흥미를 북돋았고, 이따금 SNPE지도자 과정도 소개하며 저 같은 아기엄마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사실 출산을 앞두고 퇴직을 하면서 7년을 육아만하다보니 자존감이 낮아져 내가 과연 무엇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도자과정을 통과한다면 운동도 평생 습관화하고, 늙어도 건강한 엄마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코로나19 탓에 개강일이 미뤄지는 바람에 마음을 졸였는데, 개강을 하고 수련을 시작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단조롭던 일상에 활기가 생겼습니다.
100일 수련을 하며 한 달쯤 되었을 때 내 몸에 생긴 변화가 무엇일까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100일 수련을 하기 전 늘 시큰거렸던 발목 통증이 완화됐습니다.
둘째, 왼쪽 발꿈치 아래쪽에 콕콕거려서 족저근막염이 의심됐는데 그즈음부터 콕콕거리는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게 됐습니다.
셋째,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습니다. 발목을 다친 후 뼈 강화제를 시작으로, 종합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 등등 식사 후 대략 10가지가 넘는 약들을 열심히 먹었는데 운동을 하며 통증이 줄자 자연스레 약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게 됐습니다.
넷째, 이명 현상이 줄었습니다.
발목을 다친 이후에는 통증 때문에 무릎을 꿇고 않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통증 때문인데, 처음에는 2번 동작을 할 때에도 워밍업동작으로 대체해야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수련 2개월 차에는 어느 정도 무릎꿇기가 가능해졌습니다.
비록 푹신한 바닥에서지만 2번동작도 가능해졌고, 종아리를 이완할 때도 무릎꿇고 앉기가 가능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최근에 본 언니의 표정 중 가장 얼굴이 밝다며 달라진 제 모습에 놀라움을 나타냈습니다. 또, 구부정했던 등도 많이 펴졌다며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식은 예전에도 유사한 건강식품을 먹어 본 경험이 있어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식사대용으로의 효과에 놀랐습니다.
처음 먹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생각보다 든든해서 점심 이후까지도 거뜬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완전히 생식으로 대체한 후에는 몸이 정화돼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지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지할 생각입니다.
최근 다른 분의 내성발톱 완화 사례를 읽다보니 제 내성발톱도 통증이 완화된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다른 부위에 있던 큰 통증이 사라지는 데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내성발톱으로 인한 통증이 너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을 잊게 된 것입니다.
과거 내성발톱으로 인해 엄지발톱 양쪽 끝이 모두 안으로 파고들면서 통증을 유발해 시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재발과 시술을 반복하게 되면서 ‘시술로는 해결할 수 없구나’라며 씁쓸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 채 포기하고 살았는데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내성발톱 통증이 사라지게 돼 신기했습니다.
계획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지금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딸은 생후6개월부터 아토피증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7살이 된 지금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고통은 엄마의 고생이라 저 역시 지난 7년을 제대로 잠도 못자고 간지러워서 피가 날 때까지 긁는 모습을 보며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길을 지나가면 처음 보는 사람까지 ‘아토피엔 OO이 좋다’며 불쑥 조언을 해주는 탓에 마음까지 지쳤습니다.
그간에는 저만 운동하기 바빴지만 이제는 조금씩 놀이하듯 딸을 가르쳐볼 생각입니다.
또한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귀여웠던 우리 딸이 더 귀여워졌는데 운동을 통해서 통통이에서 날씬이로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남편에게도 SNPE를 가르쳐줘서 목, 등, 허리의 만성통증을 없애주고 싶습니다.
수련하는 동안에 제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도구에 익숙해져서 조용히 혼자 C무브를 하기도 하는데 제가 도구로 목부터 허리까지 마사지해주면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건 스스로 하는 운동이야, SNPE의 S는 Self야”라고 말하지만 계속 마사지를 해달라며 애교를 부립니다. 마사지에 싹트는 우정 ㅎㅎ
100일 수련이 끝난 지금도 부족함 투성이이지만 SNPE는 평생할 운동이고 조급한 마음은 내려놓고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꾸준함이 특별함보다 어렵다. 100일 수련동안 가장 와닿았던 교수님의 명언입니다.
마음에 새기고 꾸준히 수련하겠습니다.
아프고 힘들 때마다 다양한 도구로 이완하면서 ‘아, 교수님은 천재인가 어쩜 이리도 시원할까’ 했는데 정말 존경합니다. ^^
마스크로, 거리두기로 아쉬움이 많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했던 우리 동국대101기 계속 함께 멀리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