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덜커덩 덜커덩~~ 그녀에게 덜커덩거리는 기차소리는 ‘조선독립 조선독립’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파고다 공원의 만세운동 행렬에서부터 3월5일 서울역과 종로의 만세 집회 이후 일제는 전국의 학교 문을 닫았고, 이화학당의 학생이었던 그녀는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천안의 교회에 모인 어른들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내놓고 서울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하며 만세운동을 촉구했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어른들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향인 용두리의 매봉교회는 전 교인이 만세운동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거사일은 아우내 장터의 장이 서는 음력 3월1일 (양력 4월1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면내 어른들과 교회, 학교를 찾아 다니며 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설득했고
밤이면 태극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날 장터는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녀는 장터 한가운데의 쌀섬 위에 올라가서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지난 10년동안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 돼 온갖 압제와 설움을 참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나라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독립만세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자 만세 소리가 천지를 울렸습니다.
일본 헌병들이 달려왔지만 만세 행렬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헌병들은 마구 칼을 휘둘렀습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3,000여명.. 49명이 죽었고 부상을 입은 사람은 부지기수였습니다. 당당하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꽃다운 청춘을 제물로 바친 순교자요
순국 열사인 그녀는 바로 유관순입니다. 그녀는 하나님 사랑과 교회 사랑으로 불탔던 신앙의 딸이었고 민족 사랑과 나라 사랑으로 불탔던
애국의 딸이었습니다. 유관순은 한경직 목사님이 태어나신 해인 1902년 천안군 병천 마을(아우네 마을)에서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숙부가 매봉교회에서 선교사로 일하던 기독교 집안이었고, 아버지는 늘 자녀들을 붙들고
‘열심히 공부해 민족의 일꾼이 돼야 한다’며 기도했습니다. 유관순은 공부를 열심히 했을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이 잠들었을 때 기도실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가난한 친구에게 자기가 먹을 점심을 주고 자기는 점심을 먹지 않고 조용한 곳에 가서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매사에 적극적이며 친구들과 좋은 교우관계를 가졌고 봉사정신이 강했습니다. 14세가 되던 해 서울의 이화학당 3학년에 편입하면서 유관순의 신앙과 민족애는 더욱 뜨거워졌고
이화학당은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에게 ‘조선의 막달라 마리아’가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으로 유관순은 체포됐습니다.
재판정에서 검사가 “조센진 너 까짓게 무슨 독립이냐”라고 비아냥거리자
유관순은 검사의 어깨를 쳤고 이로 인해 함께 재판 받던 사람 중 가장 무거운 7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유관순이 마지막으로 수감된 곳은 서대문 형무소였습니다.
그녀는 옥중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 때마다 매를 맞았지만 굽히지 않았습니다.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는 독립선언서를 온몸으로 실천한 것입니다. 당시 감옥에는 최씨라는 한국인 간수가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은 같은 동족으로 일제를 위해 일하는 그를 증오했지만 유관순은 오히려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최씨는 그녀의 기도에 감동해 하루는 유관순을 따라 같이 만세를 부르다가 혹독한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1920년 9월28일 오전 8시20분 유관순은 고문과 영양실조로 짧은 생애를 마쳤습니다.
그녀의 나이 19세가 되는 해였습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나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을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가녀리고 어린 19세 소녀가 이런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온 몸이 찢기고 더럽혀져 그 시신마저 여섯 조각으로 나뉘어 버려 졌습니다. 죄명은 오직 하나ᆢ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는 것.. 그녀의 유해는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일제가 이곳을 군용지로 개발하면서
지금은 그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고, 유관순이 다니던 충남 천안 용두리의 매봉교회는 만세운동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불태워졌으나 해방 뒤 재건, ‘유관순 기념 교회’로 지정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을 386세대라고 합니다.
3.1절을 모르고, 8.15 광복절을 모르고, 6.25 사변을 모르는 세대를 의미합니다. 오늘은 그냥 휴일이 아니며 나라의 보호 아래서 폔히 살수 있는 오늘이 그저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애국지사들은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겪었던 때마다 한 손에는 성경을 쥐고, 또 다른 한 손에는 태극기를 붙잡고 이 나라를 이끌고 한민족을 지켰습니다. 고당 조만식, 우남 이승만, 월남 이상재, 남강 이승훈, 도산 안창호 등 여러 민족의 선각자들, 민족의 사표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19세기 말 개화의 과정과 일제 치하에서 독립하는 과정 중에 성경이 한글로 번역이 됨으로써 교회는 한글 깨우치기 교실을 운영하여 문맹퇴치 사업과 한글 대중화에 기여하였습니다. 찬송가는 교회에서만 불리는 것이 아니라 개화의 물결을 타고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찬송가의 곡조에 나라 사랑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가사를 붙인 노래를 만들어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반석 위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기독교 정신으로 피흘림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시편 23편으로 올려드리는 대한민국을 살리는 기도문
여호와는 대한민국의 목자시니 대한민국에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대한민국을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대한민국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대한민국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대한민국과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대한민국을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대한민국의 원수의 목전에서 대한민국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대한민국의 머리에 부으셨으니
대한민국의 잔이 넘치나이다
대한민국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대한민국을 따르리니
대한민국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민족의 눈물을 씻겨주시고 주님의 흘리신 십자가 보혈로 죄의 종이었던 저희를 자유케 하시고
죽음과 절망의 쇠사슬에서 해방시켜 주시니 감사합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외면한채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며 세상의 쾌락을 사랑하기를 주님 사랑하기보다 더하고 있사오니, 우리 민족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상한 이 땅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예수님의 향기로 진동하는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우리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평화와 사랑이 풍성한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한치 앞을 가늠할수 없는 폭풍 속을 지나고 있는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기사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진실된 지도자들이 세워지는 지도자의 복을 주옵시고, 대한 민국이 겪는 어려움속에서도 한국교회의 간절한 기도가 회복되어 보다 강력한 복음의 능력과 생명사역이 불길처럼 일어나게 하옵소서. 체제유지를 위해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북한 정권의 만행이 속히 중단되게 하시고, 식량난으로 고통받는 북한 동포를 살려주시고 하루 속히 북녁 땅에 성령의 새바람이 불어오게 하옵소서. 130년전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생명의 씨앗이 되어 대한민국이 복음화되게 하셨사오니
세계선교의 마무리를 위해 쓰임받는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온 국민들이 혼란스러운 정치, 사회 현실에 낙담하지 않게 하시고 대한민국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 민족의 앞날을 주님께 맡겨드리오니 피흘림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이나라 이 민족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영역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옵시고, 통일된 한반도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그 날이 속히 오게 하옵소서. 이 민족의 주인이시요 우리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지난 날을 되돌아 보니 저희 정주건축에게도 의미있는 교회가 있어
다시 한번 소개합니다.
지난 1996년에 설계를 시작하여 완공한 이 교회는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의 작은 농촌마을 입구에 위치한
유관순 열사의 생가에 인접한 교회로서, 배후에 있는 매봉산에 기대어 기존 교회당이 있었습니다.
감리교단은 이 낡은 교회당을 헐고 그 자리에 유관순 열사를 기념하는 새로운 교회당을 건립하기로 하였습니다. 설계를 의뢰받은 저희 정주건축은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장소에 세워지는 이 교회의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설계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첫째, 이 새로운 교회당은 생가와 형태적, 공간적 조화와 이미지의 연계성, 기능의 연속성을 가지도록 한다.
둘째, 교회당은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함께 일제하에서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상징하는 강한 기념성과 장소성을 보존해야한다.
셋째, 교회당은 매봉산의 자연 및 마을의 집들과 형태적 조화를 이루면서, 기독교 교회로서의 식별성을
가져야한다.
위와 같은 목표로 지어졌던 유관순 기념 매봉교회도 어느덧 20여년의 세월의 흔적이 묻어
이 지역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민족이 어려웠던 시기,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만세를 불렀던 신앙선배들의 뜻과 희생, 헌신을 다시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