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感性)”은 ‘자극에 대하여 느낌이 일어나는 능력’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동안 ‘감성’이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요즘엔 ‘감수성’이 더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감수성(感受性)”은 ‘자극을 받아들여 느끼는 성질이나 성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수성’ 앞에 붙는 “인지(認知)”는 ‘어떠한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여 앎’의 뜻입니다. 둘이 합하여 ‘인지 감수성’이 되는데 그 앞에 또 다른 말이 붙게 됩니다.
그래서 ‘감수성’ 앞에 붙는 말이 더 중요한 뜻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 요즘 가장 많은 얘기가 나오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별 차이에 따른 불평등 상황을 인식하고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하는 감수성. '젠더 감수성'이라고도 합니다. 1990년대 중반, 주로 서구 사회에서 성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각종 정책의 주요 근거와 기준으로 제시된 개념이라고 합니다. 성인지 수준은 시대, 상황, 조건에 따라 다르며, 개인의 삶이 속한 정서적 태도와 가치와도 연결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이 국내 판례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2018년 4월 대법원 판결인데, 당시 권순일 대법관은 학생을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대학교수가 낸 해임 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권순일 대법관이 그 뒤 행적 때문에 그가 주장한 말은 이제 빛을 잃었지만 성인지 감수성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많이 오르내리는 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독재 인지 감수성’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솔직히 생소한 개념인데 독재 이닞 감수성이 아니라 '인간 인지 감수성'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윈스턴 처칠에 대해 꼭 해답을 찾고 싶었던 궁금증이 있었다. 그가 2차 대전 발발 훨씬 전부터 히틀러의 위험성을 경고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 어떤 계기로 독재자 실체를 간파한 것일까.
1932년 여름 그는 조상인 제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 관련 책을 쓰려고 독일 뮌헨에 갔다. 말버러 공은 18세기 초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연전연승, 유럽 패자(霸者)를 꿈꿨던 프랑스 루이 14세 야망을 무너뜨린 인물이다.
거리를 행진하는 나치 당원과 환호하는 시민을 보며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게서 광기(狂氣)를 봤다. 이때가 ‘유레카 모멘트’, 즉 깨달음의 순간이 됐다. 그해 11월 처칠은 의회 연설을 했다. “거리에 나온 게르만족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며 찾는 것은 바로 무기입니다.” 그러면서 무기를 손에 넣는 순간 독일은 과거 영토를 되찾으려 할 것이고 프랑스와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이 일제히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역사는 그의 예측대로 굴러갔다.
처칠의 안목은 전후에 또 빛을 발했다. 이번엔 소련과 스탈린에 대해 경고등을 켰다. 1945년 5월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전보에서 ‘철의 장막’이 드리워지고 있다고 했다. 이듬해 그가 미국 미주리주 풀턴에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철의 장막 연설’ 1년 전이었다. 소련은 물론 미국에서도 “처칠은 전쟁광”이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성범죄 영역에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란 말이 있다. 이를 본떠 독재의 본성과 위험을 감별하는 안목에 ‘독재 인지 감수성’이란 말을 붙인다면, 그 최고봉은 처칠일 것이다. 그의 탁월한 통찰력과 결연한 투쟁 덕에 자유민주주의는 승리했고 인류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사람이든 국가든 그 실체를 알아채긴 쉽지 않다. 알아도 맞서 싸우기 어려울 수 있다. 상대가 돈이 많거나 자원이 풍부하거나 군사력이 막강한 경우엔 더욱 그렇다.
‘무티(Mutti·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전 세계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60여 차례 만났지만 그의 포악함과 야심을 포착하지 못했다. 퇴임 때가 돼서야 “푸틴은 오직 권력만 중요한 사람”이라며 회한에 찬 말을 했다.
재임 중 메르켈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2008년 4월)했고, 독일과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를 크게 높였다. 러시아에 약점을 보였고,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 그 결과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2008년 8월), 크림반도 합병(2014년 3월), 우크라이나 침략이 발생했고, 세계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슈피겔은 “(메르켈은) 위기의 성공적 관리자에서 이젠 ‘위기의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했다.
독재국가인 그 나라가 후진국이라도 얕볼 수 없다. IT 발달과 세계화 덕에 언제든 핵 같은 무기를 가질 수 있다. 그들이 도발해도 종국엔 물리치겠지만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극악해질수록 독재 인지 안목과 그들 횡포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는 중요하다. 재앙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지도자뿐 아니라 국민의 ‘독재 인지 감수성’도 절실하다. 같은 민족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전쟁을 하자는 건가”라는 겁박 때문에 세계 최악의 독재자에 대한 경계심이 약해지기도 했고, 핵·미사일 개발 폭주도 막지 못했다.
우리 주변엔 여전히 독재자를 추종하는 세력이 적지 않고, 그들 지령을 받는 간첩단이 노동계 등 곳곳에서 암약한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식의 대국민 사기극이 재현되지 않게 하고, 그런 주장을 하는 세력이 다시 활개 치지 않게 하려면 독재를 보는 우리의 안목이 더욱 견고해져야 한다.>조선일보. 정일현 기자
출처 : 조선일보. [태평로] 처칠과 메르켈의 독재 인지 감수성
사람이 사람을 만나 상대를 판단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히틀러’를 만나서 회담을 했던 영국 수상 체임벨린은 히틀러가 폴란드만 차지하고 더 이상 다른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을 인정했습니다.
히틀러는 체임벨린이 전쟁보다는 평화를 더 원한다는 사실에 더 과감하게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침공했고 그게 세계2차 대전의 발발을 가져오게 된 원인이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공산주의 북한에 대해 늘 많은 경계를 했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로 이어지는 그들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가 많았는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세 대통령은 그들을 대화상대로 받아들였고 호의적인 자세로 대해 오늘날 북한의 위협이 극대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형과 고모부를 살해하면서 권력을 강화한 김정은이를 ‘현명한 지도자’니 ‘결단력 있는 사람’이니 하면서 호의로 대했다가 지금 뒤통수 맞고 있는 현실을 만든 사람들은 ‘인간 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무딘 사람들인지 잘 보여주는 예가 될 것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