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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무기자 스크랩 군대! 내 인생의 첫걸음
호박조우옥 추천 0 조회 69 14.03.10 18: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07년 늦은 가을. 내 나이 26세. 친구들, 선배, 후배, 사촌 동생마저 군대를 전역 후 모두 각자의 목표를

향해 첫 발을 내딛고 있던 그때, 나는 아직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다. 특별히 뜻한 것이 있거나 꿈을

위해 군대를 가지 않았다기보다 막연한 두려움과 2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압박에 학업을 핑계로 군 입대를 미루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대책없이 군대를 미루고, 대전에

있는 작은 게임회사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 당시 군대만 생각하면 늘 걱정이었다. 26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2년이라는 공백, 그 시간이라면 내가

전공했던 프로그램 개발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친구들이 말한 매일

반복되는 훈련, 사회와의 단절, 무엇보다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서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내 머리 속은 가득 찼었다.


그토록 가기 싫었던 군대. 하지만 피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었던 군대. 그 군대라는 곳에 내 걱정과

두려움을 넘어선 너무나도 멋지고 값진 경험과 추억, 그리고 내 인생의 진정한 첫걸음이 있었다.

27살 늦은 나이에 입대한 그곳에서의 진정한 내 인생 첫걸음을 얘기해 보려 한다.


군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던 나는 학교 선배로부터 ‘S/W관리병’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특기병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S/W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보직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가야 할 곳은 이곳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해왔던 것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찾은 희망같았다. 그 후, 인터넷을 통해 S/W관리병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지원 자격, 지원 방법 등을

확인하고, S/W관리병을 지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 순간이 군대를 삐뚤어진 시선으로만 보던 내가

처음으로 군대에 가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이다. 이미 S/W 관련 학과와 관련 자격증, 경력을 가지고 있던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S/W관리병에 합격하였고, 2008년 4월 21일 군 입대를 하게 되었다.


훈련소의 기초 군사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5군지사 사령부 본부대 근무 1소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27살 이등병, 늦은 나이에 군 입대한 탓에 22살에 어린 고참들과의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나를 본

고참의 첫 마디는 이것이었다.

“어이 신병!”

“이병 유용섭!”

“너, 27살이야?”

“네 그렇습니다.”

“그래?, 앞으로 사회에서의 너의 나이랑 기억은 모두 지운다.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사회에서의 나이랑 기억을 모두 지운다. 훈련이 끝나고 입대를 한 지 1달여밖에 안되었는데 벌써부터

까마득했다. 앞으로 650일 가량을 더 해야 되는데,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미

상병, 병장이 되어 있는 고참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낯선 생활이 며칠 지나고, 나

는 업무를 배정받았다. 내 업무는 전산실 CERT반에서 바이러스와 네트워크 해킹 여부를 감시하고,

CERT반 서버실에 있는 서버들을 관리하는 업무였다. 이것도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였지만 내

주특기가 S/W관리병 이고 사회에서의 전공도 프로그램 개발이었기에 내심 전산실 내 프로그램 반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곳은 군대이고 내가 프로그램 반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괜히 프로그램 반에 가고 싶다고 말을 잘못했다가는 고참들의 미움을 살수도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2~3달이 지나갔다. 그날따라 전산실이 굉장히 분주해 보였다. 5군지사 상급 부대에서

임대위님이라는 분이 오셨다. 임대위님은 내 담당 간부이신 CERT반 대위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용섭이니?”

“이병 유용섭!”

그리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 있어났다.

“웅,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는데”

“부... 부탁 말입니까?”

“웅, 다른 게 아니고...”


2작사에서 오신 임대위님은 나에게 어떤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분이 말한 프로그램은

상황전파체계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업무 중 바이러스 또는 해킹에 대비해, 업데이트 및 공지사항 같은

전파될 내용이 있을 경우 사용자의 키보드, 마우스, 화면을 통제하여 전파 내용을 읽은 후에야 업무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할 수 있겠니? 네 얘기 듣고 왔다. 프로그램 개발을 잘한다며?

프로그램 반도 가고 싶지?” 뜻하지 않게 기회가 왔다. 그때 군대란 곳도 내 능력과 노력 여부에 따라

러 기회가 있을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프로그램 개발이라면 자신있었다. 설명을 듣고 어느 방향으로 개발을 해야될 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는 곧 바로 프로그램 개발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간부님들께 여러 가지 제약 사항들을 들었다.

회의를 거쳐 내가 CERT반에서 개발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등병임에도 불구하고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내 소속 부대인 본부대에도 연락이 갔으며, 내가 야근 하고 싶은 날은 간부 보고 하에

언제든지 야근을 할 수 있었다. 2달 정도 상황전파체계 개발에 매달렸고, 프로그램은 성공적으로

개발되었다. 그 후, 2작사 프로그램과 과장님이신 대령님이 오셨고, 대령님 앞에서 직접 프로그램

시연을 마쳤다. 대령님이 격려해 주신 순간 나도 모를 희열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일병으로

진급할 만큼 시간이 흘러 있었고 내가 원하던 프로그램 반으로 내 업무도 바뀌게 되었다.


일병도 진급하고 원하던 업무도 하게 되었지만 군대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일병이

되었지만 야근을 많이 했던 탓에 생활관 일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와 동기였던 영기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가 실수한 일은 영기가 다시 해놓고 내 실수에 대해 잘 설명해주었고 청소, 빨래,

정리 같은 생활관에서 해야 할 것들도 같이 했다. 영기도 나와 같이 전산실에서 근무 했는데, 영기는

전산실내 체계지원 반에 있었다. 우리는 나이 차이는 많이 났지만 허물없이 지냈고 끈끈한 전우애를

쌓아 갔다. 영기는 컴퓨터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한테 물어왔고, 나는 군대에서의 정보들을

영기한테 물어봤다.


그러던 중 영기는 나에게 레바논 파병에 대해 말해 주었다. 영기는 월급도 많이 주고 여러 경험도

쌓을 수 있는 레바논을 정말 가고 싶어 했다. 영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꼭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동시에 레바논 파병에 지원하기로 하고 지원 날짜, 지원 자격 등을 꼼꼼히

알아보았다. 영기와 나는 매일 같이 레바논 이야기를 하며 둘이 같이 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했고

동시에 파병 지원서를 제출했다. 사실 우리가 레바논 파병에 선발될 확률은 굉장히 적었다. 유학 경험이

있는 병사 위주로 선발했고, 영어 실력, 업무 능력, 계급 등 선발 기준이 까다로웠다. 선발 인원

발표일 전날 우리는 침대에 누워서 다음날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영기가 말했다. “용섭아,

내일 발표 됐는데 너만 선발되고, 난 떨어지면 어떡하냐? 왠지 그렇게 될 것 같다.” 난 꼭 같이 선발될 것이라고 말해주었지만 아무래도 영기는 일반 전산병이었고, 나는 S/W관리 특기병 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했던 말 같았다. 주위에서도 레바논 파병 선발이 확률이 워낙 적었기에 만약에 우리

부대에서 선발된다면, 영기 보다는 내가 혼자 선발될 확률이 높다고들 말했다.


그렇게 다음날이 왔고, 나는 근무지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영기가 기쁜 표정으로 뛰어왔다.

그는 부산 사투리로, “용섭아 됐다. 니 레바논 됐다!” 나는 기뻐할 틈 없이 곧 바로 되물었다. “영기

니는?”, “난 안됐다. 난 이미 안될줄 알았다 아이가? 정말 잘 됐다. 니 정말 잘됐다!”, 영기는 내게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난 그런 영기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정말 눈물이 날만큼 고마웠다.

처음 자대배치를 받아 전입한 날부터 나에게 도움을 주고, 내 옆에서 친구가 되어주고, 또 이렇게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떠나 보내주고, 난 이것이 진정한 전우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영기에게 ‘네가 없었으면 군 생활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내 진심이었다. 그때 난 정말로 영기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파병 준비 부대로 떠났다. 그 후 3개월의 파병 교육을 마치고 동명부대

5진으로 레바논을 향해 출국했다. 그곳에서 난 잊지 못할 많은 추억과 경험들을 하였다.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친절한 레바논 현지인을 만나고, 메달 퍼레이드와 각국의 UNFIL 전부대가 출전한

농구대회에서 우승도 하였다. 레바논에서의 업무도 만족스러웠으며, 국가를 대표하는 군인같은 느낌

속에 하루하루 즐겁고 보람차게 지냈다. 또한, 나는 파병 병사 중 최고참이었기 때문에 통신중대

분대장을 맡았다. 분대장이라는 직책 속에 나와 나의 분대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레바논 동명부대 홈페이지 관리와 위병소 출입관리 프로그램 등을 개발 관리하는 업무도 수행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레바논 파병 생활도 끝나갈 때쯤 앞으로 사회에 나와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군대를 가기 전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은 사라졌고, 군 생활을 하면서 얻게 된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지금까지 군대에서 얻은 경험과 전우애, S/W 특기병으로 임무를 수행했던 것들이 큰 힘이

되기에 충분했다. 한국 복귀 후 파병 특별 휴가를 나왔다. 그 휴가 기간 동안 이력서를 만들었다. 물론,

친구들과 열심히 놀기도 했다. 군대를 가기 전 초라하기만 했던 내 이력서에는 군대에서

S/W관리병으로 2년간 근무했다는 이력과 군대에서 개발했던 프로그램 개발 경력들이 포함되었고

레바논 파병 경험도 자기소개서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이력서를 보고 많은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 중 여의도에 위치한 디노밴이라는 회사가 가장 눈에 띄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신개발 업계에서는 최고의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회사였다. 군대를 가기 전의 나였다면

입사지원서를 넣을 생각도 못했을 회사였다. 그곳에서 연락이 왔다. 휴가 기간 중 그곳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고 면접관들 앞에서 내가 특기병으로 있었던 일과 레바논 파병에 대한 경험들을 주로 이야기했다. 며칠 뒤 그곳 연구원으로 합격 통보가 왔고 제대일까지 기다려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2010년 3월

10일 제대했고 3월 15일 2년 경력을 인정받고 취업에 성공했다. 나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고, 2년 경력을 인정받은 탓에 남들 보다 빨리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 하였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 내가 좋아하고 해왔던 일들을 잃을 것 같았던 곳에서 오히려 나는 한층

성숙해진 실력과 경력을 얻어서 나왔다. 특기병이라는 군 제도의 혜택을 받은 것 같다. 내가

사회에 진출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였고, 또한 살아가면서 필요한 사회성 이라는 것도

나에게 준 군대. 문득, 군대 가기 전 나에게 친구들이 약을 올리면서 하던 말이 떠오른다. “너 지금

군대 가면 끝이야 크크 가지마 다 잃어” 하지만, 친구들의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앞으로 군대, 그리고

사회에 나아가야 할 친구와 후배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인생의 첫걸음은 군대였고 특기병이었다.”라고.


2007년의 나와 같은 상황,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군 특기병으로서 자신의 인생에 진정한 첫 걸음을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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