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편의 시조] 5월 /박기섭
이말라 시조시인2026. 5. 13. 19:15
부산시조시인협회 국제신문 공동기획
5월에 길 있다 막다른 그 골목길
난만한 구둣발에 쫓기고 쫓기다가
무참히 쭈그러진 채 내던져진 깡통 있다
5월에 칼 있다 숫돌에 날 씻은 칼
그 칼로 빚어 만든 나무 십자가 있다
비릿한 핏물에 엉긴 어머니의 눈물 있다
5월에 물 있다 맨발로 건너는 물
그 물 건너 감꽃 지는 먼 마을의 산역 山役
스스로 숯이 된 목숨 다독이는 불씨 있다
역사 이면에 숨은 삶의 비의를 파헤치는 눈썰미를 본다. 평화를 저당 잡혀 사는 시대를 함께했고 거기는 선택의 땅이었기에 시인은 ‘길’과 ‘칼’과 ‘물’로 5월을 가늠한다. 시간을 점령당하는 순간 삶의 질을 희생시키고 개인적 비극과 사회적 재앙을 몰고 온 지옥에 가까운 현실, 허나 현실에 기반한 지옥임을 우리는 안다. 엄청난 폭풍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흔적으로 남은 ‘지금 여기’에서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알겠다. 묵직한 좌담도 아닌, 시대 담론도 아닌, 한 편의 시조로 5월 눈부신 날에 그 어떤 희망의 말도 닿지 않았던 그날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이 모두의 기억을 살찌우는 불씨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