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가을 하늘 북쪽으로 날아가는 철새들 모습이 보인다. 이번에 진주에서 병상에 있는 친구 만나고 왔다. 1년째 의식불명이다. 밤 9시 병실에 간병하는 여인만 있다. 얼굴이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문박사 나 김**이네. 널 보러 서울서 내려왔어' 여윈 손을 잡고 말을 걸어보았다. '아까 낮에는 잠간 눈을 떴습니다. 더 불러보세요.' 간병인이 그러길래 '문박사 나야나. 김**이.' 몇번 반복하니 비록 시선은 나에게 보내지 못했지만 눈을 허공으로 뜬다. 의식은 있다. '문박사 자네와 나 둘다 불교 좋아했어. 자네는 불교 관련 책자도 나에게 선물했고, 함양에 있는 자네 암자에서 하루 밤 자고오자는 말도 했어. 생노병사가 여여한 것이고 희노애락이 역시 그런 것 아니었나. 오랜 병고에 얼굴이 평화로워 보여 생각과 행동이 같은 것 같아 보기좋네.
자네는 자식도 법조인 만들었고, 진주서 병원장 하면서 베풀기를 좋아했어. 성공한 인생이었어. 서울 친구 왔다고 삼천포서 회를 공수해와서 진양호 레이크사이드 호텔서 진주 친구 10여명까지 초청한 자리를 만들어준 적 있고, 부산 울산 대구 친구 지리산 합동 등반시 덕산에서 백여만원 잔치 뒷바라지도 했어. 내가 도라지담배 좋아한다고 담배 품절된 1년 후 나에게 몇갑 선물하던 정도 잊히지 않네. 문교부 정차관님과 진주 지나갈 때 자네가 벤츠 몰고와 인사드리고 식사 대접하고 간 일도 그렇고. 어쨌던 성공한 인생 살았으니 더 바랄게 무언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가세.'
그때 옆에서 간병인이 말했다.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요.' 유심히 얼굴을 보았으나 침침한 내 눈에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의식이 있어 내 말은 들었을 것이다.
진주목사 강홍열과 육거리 곰탕집에서 소주 하고 헤어진후 이튿날 아침 혼자 남강변 걷노라니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이별의 노래가 어딘가서 들린다. (2018.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