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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셋째 날
오늘은 빅아일랜드 가는 날. 드디어 화산이 살아있는 섬 빅아일랜드에 간다고 하니 아침부터 마음이 설랜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호놀룰루 공항은 산호초 지대를 매립하여 활주로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겠다. 태평양 섬에 있는 공항은 대개 이렇게 산호초와 같이 하지 않을까? 하늘로 높이 올라가 수평 비행에 들어간 비행기는 하와이 제도 맨 끝에 있는 빅아일랜드를 향하여 남동쪽으로 날아간다.
오하우 섬을 벗어난 비행기는 잠시 후 몰로카이 섬 옆을 지난다. 저 아름다운 섬 북쪽 칼라와오에는 나환자 수용소가 있었다. 이 아름다운 섬이 예전에는 문둥병 환자들의 유형지라고 하였다니... 무릇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이들을 돌보는 거룩한 이들이 다만 한 명이라도 있는 법. 벨기에의 신부 다미안 드 베스테르는 1864년 하와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복음 선포에 힘쓰다가 1873년 기꺼이 몰로카이 섬으로 간다. 33세의 팔팔한 남자중 누가 나환자촌에 가려 할까? 그러나 다미안 신부는 자청하여 섬으로 건너가, 나환자들을 한 형제로 여기며 이들을 돌본다.
그러나 신부님도 결국 1885년 이 병에 걸렸고, 끝내 1889년 숨을 거둘 때까지도 나환자들을 돌보다 숨을 거둔다. 신부님의 유해는 본국으로 모셔갔지만, 사람들은 신부님의 그 거룩한 활동을 잊지 않고 그 사모하는 마음은 늘어만 갔다. 그리하여 신부님의 오른팔만은 다시 이 섬의 칼라우파파 묘지로 돌아와 영원히 몰로카이와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부님이기에 로마 교황청은 1977년 다미안 신부를 복자로 시복하였다. 신부님의 거룩한 생애는 영화로 다시 탄생하여 ‘몰로카이의 성인’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단다. 카톨릭 신자가 아닌 나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나라 카톨릭 신자중에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이 많이 있으리라.
몰로카이를 지나니 마우이 섬과 그 밑으로 그보다 작은 카훌라웨 섬이 보인다. 반갑다. 예전에 하와이에 왔을 때 저 마우이 섬에도 갔었지. 구름을 밑에 깔고 있는 태양의 집이라는 할레아칼라 산(3,058m)을 보자니, 그 때 차를 타고 산을 오르던 추억도 새삼스럽다. 해안에서부터 이리 굽이 저리 굽이 돌며 오르던 그 때의 추억. 그 때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이번에 결혼하는 조카 가족들도 저 할레아칼라 산을 같이 올랐었지.
한 번 가봤던 섬이라고 계속 눈이 가는데, 해변가의 골프장도 눈에 들어오고 해안가에 초승달처럼 생긴 특이한 섬도 눈에 들어온다. 섬이 어떻게 초생달처럼 생겼을까? 저 섬은 원래 화산의 분화구였다. 화산의 분화구 안에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분화구 가장자리 일부분만이 물 위에 남아 초생달의 섬을 만든 것이다. 비행기가 약간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니 마우이섬 건너편으로 드디어 우리가 가려는 빅아일랜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옆으로 길게 펼쳐진 하얀 구름이 빅아일랜드를 덮고 있는데, 그 하얀 구름 위로 빅아일랜드의 최고봉 마우나케아(4,260m)와 두 번째 봉우리 마우나로아(4,170m)만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하와이제도는 여기 빅아일랜드로부터 북서쪽으로 마우이, 몰로카이, 오하우, 카우아이으로 늘어서있다. 그런데 빅아일랜드의 화산은 아직도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데, 북서쪽으로 가면서 하와이의 화산은 잠시 활동을 멈춘 휴화산에서 죽어버린 사화산으로 바뀐다. 섬의 높이도 북서쪽으로 가면서 점점 작아진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지구의 지각은 크게 16 판(plate)으로 나뉘어 맨틀 위에 떠있다. 그리고 맨틀의 대류 현상으로 그 위에 떠 있는 판도 움직인다. 태평양판도 북서쪽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지금 저 빅아일랜드 밑의 맨틀에는 열점(hot spot)이 있어 그 위의 판을 콕콕 쑤신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콕콕 쑤시는 그 위로 마그마가 올라오고 화산 활동이 생기면서 수중 화산이 생긴다. 그리고 이 수중 화산이 계속 자라면서 물 위로 솟구치면 화산섬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태평양판이 북서쪽으로 움직임에 따라 이 섬도 북서쪽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열점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 계속 쑤셔대던 섬이 북서쪽으로 이동하면 열점은 또 새로운 화산섬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북서쪽으로 이동한 섬은 열점에서 마그마를 공급받지 못하기에 화산 활동을 멈추게 되고, 계속 이동하면 화산도 죽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또 화산이 왕성하게 활동하여 높은 키를 자랑하던 섬도 화산이 멈춰버리면 이제 남는 건 침식작용뿐이라 침식작용으로 섬은 계속 작아진다.
그러므로 하와이 제도 북서쪽 끝에 있는 니하우와 오하우 섬도 지질학적으로 아주 오랜 옛날에는 지금의 빅아일랜드 자리에 있었던 것이고, 또 그 때에는 하와이 제도의 다른 큰 섬들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저 빅아일랜드도 언젠가는 북서쪽으로 이동하며 서서히 화산활동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지금 빅아일랜드 남동쪽 수중에서는 로이히라는 수중화산이 자라고 있는데, 이 로이히도 언젠가는 바다 위로 떠올라 하와이 제도의 새로운 식구가 되리라.
그럼 이 열점으로 태어난 섬은 하와이 제도뿐일까? 하와이 제도에서 북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미드웨이 제도가 있다. 이 미드웨이 제도도 하와이 제도가 생기기 전에는 하와이 제도 자리에 있다가 지금의 자리로 긴 긴 여행을 온 것이다. 당연히 미드웨이 제도의 섬들은 하와이 제도의 섬들보다 낮아진 것이고... 그런데 미드웨이 제도에서 북서쪽으로 계속 시선을 돌리면 섬이 잘 안 보이는데, 이 이론대로라면 그쪽에도 섬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미드웨이 제도 자리를 지나 계속 여행을 한 섬들은 계속 깎이고 침강 작용으로 바닷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실제로 물속으로 들어가면 바닷속 섬들이 북서쪽으로 향해 이어지다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줄 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지점에 와서는 태평양판은 북쪽으로 움직이기에 수중섬들도 북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럼 이렇게 북쪽으로 방향을 바꾼 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북서쪽으로 움직이는 태평양판은 아시아판과 부딪친다. 그러면 대륙판인 아시아판보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태평양판은 아시아판 밑으로 말려 들어간다. 그러므로 하와이 제도에서 출발한 섬들은 이제 캄차카 반도 앞바다에서 아시아판의 밑으로 말려 들어가(涉入) 맨틀로 돌아가며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하늘 위에서 하와이 제도를 내려다보자니 말이 길어졌다. 이제 비행기는 구름 아래로 내려가 코나 비행장으로 접근한다. 주위에는 온통 용암밭인데, 코나 비행장만 활주로를 만들기 위해 아스팔트로 덮었다. 비행장 내에서도 활주로가 없는 부분에는 용암밭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이제 화산이 살아있는 섬 빅아일랜드에 발을 디딘다고 생각하니 가벼운 흥분마저 느껴진다. 비행장 바깥으로 나오니 3명의 하와이 여인이 치마를 펄럭이며 전통의 훌라춤을 추고 있다. 훌라춤을 추는 청동 조각상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훌라’라는 말 자체가 춤을 춘다는 뜻이란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는 콧수염을 기른 가수 이장희 같이 생긴 아저씨다. 명함을 주는데 '조지 곽'이다. 이름이 '성기'라 영어 이름으로 조지를 쓴다는구먼. 재미있는 발상이구나 생각했는데, 조지 곽은 가이드 기간 내내 친절한 설명에 더하여 우리를 웃겨준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저 위로부터 흘러와 굳은 용암밭은 검은 점과 황색 점이 어울려 얼룩점을 형성하고 있다. 검은 용암밭 곳곳에 풀씨들이 날아와 얼룩무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 저 용암밭에는 관목의 씨들이 날아오고 교목의 씨들이 날아와 숲을 만들 텐데, 이곳은 눈이 미치고 있는 먼 곳까지도 작은 관목 덤불들만 보일 뿐 그런 숲은 보이지 않는다. 숲이 만들어지기 전에 또 다른 용암이 덮어버려 숲을 만들 시간을 주지 않은 것인가? 그런데 검은 점과 황색점만 있는 줄 알았더니 도로 가까운 곳에 하얀 점들이 보인다. 관광객들이 하얀 돌을 가져다가 검은 용암밭 위에 얹혀 만든 것들이라는데, 신혼부부가 자기들 사랑을 남겨둔 것들이 많다고 한다. 저들 중에는 한국인 신혼부부들이 만들어 놓고 간 것도 있을 법하나,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차안에서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차가 가다가 왼쪽 해안가로 빠져든다. 목적지인 힐로로 넘어가기 전에 코나 해안에 만든 힐튼 와이콜로아 리조트에 잠시 들르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에메랄드 빛의 넓은 수영장에선 돌고래가 유유히 유영하고 있고, 여기저기서 시원한 야자수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꽃들이 방긋방긋 웃고 있다. 힐튼에서 이 용암밭 황무지에 파라다이스를 건설해놓았구나.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모노레일까지 만들어놓았다. 우리는 걸어서 이동하며 둘러보는데, 여기 저기 불상이라든가 황제가 타고 다녔음직한 청동 마차와 말이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것이, 이곳 리조트 경영주는 동양적인 것에도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와이콜로아를 나온 차는 힐로를 향하여 800m의 고개를 넘는다. 그런데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나무들이 나타나더니 이윽고 작은 숲도 나타난다. 이에 따라 마을도 나타난다. 태평양에서 오는 습한 바람이 힐로에서부터 산을 타고 넘으며 비를 뿌리는데, 산을 넘어오면서는 남아있는 수증기를 다 써버리고는 코나의 해안가에 내려올 때는 바짝 마른 바람만 내려온다. 그렇기에 코나 해안은 비가 별로 오지 않아 가뜩이나 용암밭으로 황량한 곳을 더욱 황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까 본 와이콜로아 리조트는 다른 곳에서 단물을 끌어다 그런 파라다이스를 만든 것이리라.
저 밑의 해안가에서 이곳까지는 차로 잠깐 사이에 올라온 것 같은데, 비 하나로 풍경은 이렇게 변하는구나. 물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하겠다. 고개를 넘어가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숲은 날씬하고 키가 큰 나무들로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조지 박은 이 숲은 유칼립투스 숲으로 일본인들이 종이를 얻기 위해 심은 것이란다. 하와이의 일본 인구는 전 인구의 24%를 차지하여 백인들과 비슷한 숫자라니 단일 민족으로는 제일 많겠다. 일본이 하와이를 점령한 셈이나 마찬가지인가? 그러니 하와이 어디를 가도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도 그렇게 많이 보이는 것이지.
차가 힐로로 내려갈수록 주위의 풍경은 코나와는 180도 다른 풍경이다. 차 옆으로 계곡이 길게 안쪽으로 이어지는데, 그 계곡을 무성한 숲이 덮고 있는 풍경도 계속 나타난다. 우리는 먼저 높이가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2배나 높다는 135m의 아카카 폭포를 보러 간다.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폭포를 찾아 숲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설명문을 보는데, 이곳에 사는 오푸('O'opu)라는 물고기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여기서 태어난 오푸는 콜레콜레 하천(stream)을 따라 바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인데,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 남대천을 따라 올라오는 송어 생각하면 별로 특이할 것도 없다.
그런데 여기는 높이가 135m나 되는 아카카 폭포가 있지 않은가? 이 녀석은 이 폭포도 기어올라 폭포 위에서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말도 안 돼! 높이도 높이이지만 위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물의 압력을 이기고 어떻게 폭포 위로 올라간단 말인가? 그런데 이 녀석은 특수한 빨판과 가슴 지느러미를 이용하여 폭포의 바위를 붙잡고 올라간다는 것이다. 야~아~~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그냥 폭포 밑에서 알을 낳아도 될 텐데, 기어코 폭포를 올라가는 녀석들의 집념이란... 당연히 녀석들은 알을 낳고 기진맥진하여 거기서 삶을 마치겠지만, 녀석들의 그 강한 집념에 고개 숙여진다.
그리고 아카카 폭포에 얽힌 전설 이야기도 있다. 옛날에 아카카라는 전사의 대장(warrior chief)이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힐로에 있는 친정에 간 사이 아카카는 레후아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런데 아내가 예상치 않게 빨리 돌아와 아카카를 찾는 것이다. 아무리 전사의 대장이라도 이런 경우에는 당황하는 모양이다. 아카카는 허둥지둥 대다가 폭포 밑에 빠져 돌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다니던 개는 폭포 위에서 돌로 변하고, 늦게 도착한 아내는 남편을 구하려다 역시 돌로 변한 개 옆에서 또 돌로 변한다. 그리고 레후아는 이를 알고 슬피 울다 아카카 폭포 아래 계곡에서 작은 폭포로 변한다. 그런데 아카카에게는 레후아 말고도 숨겨둔 애인이 또 있었던 모양이다. 또 다른 애인 마일레 또한 슬피 울다 작은 폭포로 변한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이 폭포를 아카카 폭포로 부른다는 것이다. 그것 참! 바람피우다 들키니 자기만 돌로 변한 것이 아니라 여러 여자 돌로 변하게 했군.
이제 아카카 폭포를 향하여 숲속길로 들어선다. 아까 설명을 보니 이곳에 외래 식물이 많이 유입되었다는데, 어느 것이 하와이 원주민 식물일까? 가면서 왼쪽으로 보이는 나무는 아바타에서 나옴직한 나무다. 가지에서 다시 수직으로 뻗어 내린 줄기 때문에 나무의 원줄기는 가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쪽은 비가 많이 와서인지 나무에 이끼가 낀 나무들도 많이 보인다. 뭐~ 그런 나무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데, 대나무에 이렇게 이끼가 낀 것은 여기서 처음 보는 것 같다.
드디어 아카카 폭포가 건너다보이는 계곡까지 왔다. 폭포 밑까지는 경사가 가팔라 내려갈 수가 없어, 여기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폭포에선 물이 힘차게 떨어지고 있는데, 과연 저 높은 곳을 오푸가 오른단 말인가? 그런데 이 앞에 쓰여 있는 안내문에는 한 술 더 떠 오푸뿐만 아니라 오패칼라올레라는 2인치 밖에 안 되는 새우도 오푸처럼 바다에서 돌아와 이 폭포를 오른단다. 오푸는 또 그렇다 하겠지만, 그 작은 새우까지 이 폭포를 오른다니! 그것 참! 생명의 경이란...
그런데 설명을 계속 보다니 빅아일랜드에는 아카카 폭포보다 훨씬 물 하락 높이가 긴 폭포가 있다. 와이마누 계곡의 와이힐라우 폭포는 높이가 무려 792m나 된단다. 옆에 붙어 있는 사진으로 보니 와이힐라우 폭포는 폭포물이 떨어지는 아래는 깔때기처럼 움푹 파여 있고, 오직 한 군데만 살짝 열려 떨어진 폭포물은 그쪽의 조그만 틈을 빠져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가만있자...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 이런 폭포를 본 기억이 나는데, 그 때 그 영화 찍을 때 바로 이 와이힐라우 폭포에서 찍은 것이 아닐까? 어떤 영화였더라? 쥬라기 공원이었던가? 안내문은 또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는 베네수엘라의 천사(angel) 폭포라며 979m 높이에서 물이 떨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네가 듣기로 엔젤 폭포는 보통 때는 윗부분이 구름에 가려져 있어 폭포물은 구름 위에서 그냥 쏟아져 내리는 것 같다고 하지. 자연의 그 경이로움이란... 아카카 폭포도 저 밑에 내려가 올려다보면 입이 좀 더 벌어지겠지.
주차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하여 힐로로 내려간다. 힐로로 다 내려와서 차가 가는데 오른쪽으로 공동묘지가 보인다. 조지 박은 저 공동묘지에 100여명의 한국인들도 묻혀 있다고 한다. 대부분 이민 1세로 하와이에 왔던 분들이다. 1902년 음력 12월 20일. 그저 돈을 벌 수 있다길래 하와이행 첫배를 탔던 121명의 이민 1세대들, 그들은 대부분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인천 내리교회 출신들이었단다. 아무래도 서양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먼저 서양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낯선 미지의 땅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뒤를 이어 계속하여 도합 7,266명의 선조가 희망을 가슴에 안고 하와이로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희망과는 달리 노예나 다름없는 노동조건에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해야 했지.
조정래 선생의 소설 ‘아리랑’에 보면 이들의 한과 땀이 잘 나와 있지 않은가? 또 백범일지를 보면 이들은 그야말로 피땀 흘려 번 돈을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보내지 않는가? 그들이 조선에 살고 있을 때 조국은 그들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살 길을 찾아 피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 머나먼 하와이까지 왔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기들의 피와 같은 돈을 상해로 보낸 것이다. 백범도 그런 사정을 너무나 알기에 이들의 자금을 결코 헛되게 쓰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였었지. 나는 그런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달리는 차안에서나마 묘지를 바라보며 묵념을 올린다.
신중국찬청(新中國餐廳)이라는 힐로의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우리가 먼저 들른 곳은 코나커피 농장이다. 나는 조지 박이 이런 곳에도 안내하나 하며 다소 못마땅하였는데, 코나커피는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예멘의 모카와 더불어 세계 3대 커피로 유명하다네. 그래서 매년 11월에는 이곳에서 커피 축제가 열리고... 원래부터 커피가 났던 것은 아니고, 1825년 영국인들이 하와이 왕실의 허락을 받아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란다. 그래? 나도 하나 샀다.
힐로를 벗어난 차는 화산을 향하여 계속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마음은 마그마가 흐르는 곳으로 먼저 달려가나, 조지 박은 또 아카추카 오키드 가든(Akatsuka Orchid Gardens)이라는 농장을 한 군데 더 들른다. 그래서 원하지 않게 난(蘭) 구경을 실컷 하는데, 그중에 눈에 띄는 난 하나. 난 하나의 가격이 2만 달라! 이 조그만 식물이 뭐 그리 비싼고? 이거 사서 키우다 죽으면 2만 달라가 날아가는 것 아냐? 나야 2만 달라 난이나 그 옆의 난이나 다 그게 그것 같은데, 난 매니아들이 이 난을 보면 당장 눈이 휘둥그레지며 지갑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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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와이 구경한번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