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2024년 9월 13일(금), 중딩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한 뒤 경복궁과 청와대를 산책하였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이었다. 북으로는 북악산 가까이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하다.
비가 내려서, 경복궁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국립고궁박물관'을 탐방하였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건국에서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왕실 문화유산을 가장 압축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품격과 예법이 살아 있던 조선 왕조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박물관은 광화문 담장 안에 있어, 이곳에 가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에 와 있는 것 같다.
'경복궁'은 사적 제117호로 조선의 정궁으로 정연한 배치체계를 갖춘 궁궐로 북궐이라고도 한다.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삼으면서 건설한 것으로 "시경"의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의미를 따 이름을 지었다.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으나 임금이 거주한 기간은 길지 않다. 궁궐 내부는 정문인 광화문으로부터 홍례문과 근정문과 향오문을 일직선 상에 배치했다. 이 사이 공간은 정사를 보고 의식을 행하는 업무공간이다. 향오문 뒤에는 제반시설이 자리한 후원이 자리잡고 있다.
여러 차례 화재 피해를 겪어 이에 대한 복구가 거듭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원래 건물을 해체하는 등 본래 모습을 잃었으나 1996년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면서 일부가 복구되었다. 현재 다양한 국보·보물급 건축물과 석조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때인 1867년 중건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중건된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이었다.
경복궁의 첫번째 문은 광화문으로 광화문은 1395년 처음 세워졌고, 처음에는 '사정문' 이라고 불렸다. 그후 1425년에 광화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임진왜란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되었고, 일제시대때 동쪽으로 옮겨졌다가 한국전쟁때에 다시 소실이 되었다. 박정희대통령 시대때 복원은 되었으나 시멘트로 복원이 되었다. 그 이후 다시 원래 자리에 목조건물로 복원을 했고, 2010년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 되었다고 한다.
광화문을 들어갈때 문이 3개인데, 그 중에서 중앙은 왕이 지나다니던 문이고, 동쪽은 문관들, 서쪽은 무관들이 다니던 문이라고 한다. 문 위에 천장에 보면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무관들이 다니는 문 천장에는 현무가 그려져 있고, 문관들이 다니는 문 천장에는 기린이 그려져 있다. 기린은 현명하고 똑똑함을 상징해서 현명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라는 뜻해서 그려놨다고 한다.
광화문-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을 잇는 중심부분은 궁궐 핵심 공간이며,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건축 되었다. 그러나 중심부를 제외한 건축물들은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변화와 통일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었다.
경복궁은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중심이고, 조선의 으뜸 궁궐인 경복궁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광화문에서 교태전까지 살펴보았다. '청와대'(靑瓦臺)는 '신무문'(神武門)으로 입장을 한 뒤, '본관'에서부터 '춘추관'을 탐방하였다. 뒤풀이는 종로3가역 근처에까지 이동, 30년 전통의 '제주집'에서 닭도리탕에 막걸리(소주)를 한 잔 한뒤 귀가 하였다.
◈ 월일/집결 : 2024. 9. 13(금) / 3호선 경복궁역 3번출구
◈ 점심식사 : 곰탕에 동동주 / '나주곰탕' <경복궁역 3번출구 근처, (02) 722-0733>
◈ 산책코스 : 국립고궁박물관-경복궁(광화문-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신무문-청와대(본관-소정원-상춘재)-춘추문-안국동-조계사-종로3가-뒤풀이장소-종로3가역-<전철>-산성역-집
◈ 뒤풀이 : 닭도리탕에 막걸리(소주) / '제주집' <종로3가역 근처, (02) 2263-1206>
◈ 기타 : 명일 산책은 '시산회' 492회 '인왕산'둘레길 산행이나 가평파크골프에서 파크골프 운동 위계